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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세이] 마닐라, 필리핀

낯 익은 곳이지만 아직도 낯 익지 않은 그런 곳처럼 여전히 마닐라는 나에게 복잡한 심정을 안겨주곤한다. 2000년대 중반 몇 개월간 연수 과정으로 이곳에서 머문 적이 있어서 나름 친숙할듯 하기도 한데, 그 이후 몇 번의 출장으로 익숙할만도 한데 아직도 나는 이곳이 생소하다. 매년 6-7 프로의 경제성장률을 보이고 있어, 나날이 올라가는 고층 빌딩 탓일까?
다만, 필리핀 공항은 예전에도 그랬듯이 언제나 좁고 긴 이민수속 대기행렬. 그리고, 일가친척을 기다리는 기다란 외부 대기라인들만은 여전히 변하지 않은 듯 하다.
주최국의 도움으로 무사히 공항을 빠져 나온 나는 동승한 이곳 통신부 젊은 공무원들과 마닐라 이야기, 방탄 소년단 이야기 등을 나누며 속소에 도착한다. 나는 왜 요즘 젊은이들이 BTS에 열광하는지를 틈이 나면 자연스레 묻곤 하는지, 그러면서도 젊은 세대의 마음과 통하지 않는 나를 확인하며 내가 나이가 먹어들어가는거를 확인하게 되곤 한다.
필리핀.
어줍잖은 생각임에는 분명하지만, 나에게는 항상 이름만 들어도 바닥 저 밑에서 부터 안쓰러운 마음이 떠오르는 그런 나라이다. 내가 누군가에게 연민을 갖을 만한 형편과 자격이 되는 것도 아닐 뿐더러, 이들도 나름의 행복한 삶을 영위하고 있을게 분명하지만, 이들이 겪어온 굴곡진 역사와 부폐한 위정자들로 인한 경제의 추락과 빈곤의 증폭이 없었다면, 지금 이 보다도 높은 경제적 위상과 복지의 혜택을 구가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 때문일 것이다.
아시아개발은행(ADB)이 세워질 1960년대 후반만 해도 일본과 비슷한 수준의 경제 수준과 현지인들의 원활한 영어 구사 능력 등의 이유로 ADB의 본부를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두게 되었는데, 그 이후 독재와 부패는 미국의 원조와 해외 기업들의 유출을 막을 수 없었고, 그 이후 고장난 낙하산처럼 하염없이 추락하게 되었다.
그러나, 현재 대학 졸업자 초봉은 금융권이 월 700불 정도에 불과할지니 일반 기업의 소득 수준은 더 낮을 것으로 생각된다. (다만, 내가 이곳에 머문 2000년대 중반에 비해 2배 이상 상승한 듯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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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가 시작되기 전 반나절의 여유시간에 무엇을 할까 고민하다, 나는 동료 한명과 함께 Grab을 불러 스페인 식민지 시대의 잔재 등을 다시 볼 생각으로 인트라무로스(Intramuros)로 향한다. 마날라대성당앞 광장에 내린 우리는 마닐라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유럽의 어느 광장에 와 있는 듯한 착각을 갖게 되는데, 스페인 식민시대에 지어진 성당과 총독부 건물들은 이후 전쟁으로 많은 파괴가 있었지만 미국, 일본, 스페인 등의 원조로 재건되었고 마치 예전 모습 그대로 보존이라도 된 듯 보인다.
출장지에서 외출시 여권을 잘 소지 않고 다니는 나이기에 간혹 아쉬운 상황을 겪곤 하는데, 스페인 총독부 건물을 들어가기 위해서 필요한 신원증빙을 하지 못해 나의 출입은 거부되었고 우리는 대신 다른 유적지 등을 보기 위해 발길을 걷기 시작했다. 이런 우리를 살펴보았는지 눈치 빠른 어느 할아버지는 우리에게 다가와 마차 관광을 제안했고, 1시간에 천페소 (약 2만원)에 우리는 뙤약볕 아래 걷는 것을 피해 마차안 그늘에서 나름 시원한 말방구 바람을 맞으며 구시가를 누비게 되었다. 일본의 폭격과 전쟁으로 사망한 10만명을 추모하기 위해 세워진 조각상, 성어거스틴 성당, 현재 식당과 호텔로 사용되고 있는 스페인 시대 저택, 당시에 축조된 성곽 등을 거닐며 지어진 건축물들의 위대함 보다는 착취 당했을 이들 조상들의 땀구슬이 먼저 떠 오르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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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차로 이동하며 이곳 저곳을 구경하는데, 할아버지는 1시간이 다되어 간다며, 아직도 볼 곳이 훨씬 더 많은데 시간을 추가할 것이냐 묻는다. 마치 애초부터 꾸며진 계획이라도 된듯이 말이다. 아직 오후 회의 일정과 충분한 시간적 여유가 있어 우리는 1시간을 더 추가하기로 하고 중요한 스팟 몇 군데를 더 들르기로 한다. 그러나, 이 할아버지의 꾸며진 계획은 또 하나가 더 있었으니..
그러다 만난 한 무리의 여중생들. 아마도 소풍이나 현장학습 정도를 나온 듯 하다. 사진을 담고 있는 나를 관찰했는지 자기들 곁을 지나가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나에게 다가와 자신들의 사진을 담아줄 것을 제안한다. 오.. 이런! 찬스는 곧 기회라는 내 중학교 선생님의 재미없던 우스개 소리가 생각나며, 나는 이들의 단체와 독사진 등을 담는다. 다만, 나의 28mm 화각 카메라가 독사진을 담기에 너무 얼굴 가까이 다가가는게 부담스러웠는지 누군가는 억지 웃음을 짖기도 했지만, 대부분은 많이 연습한 듯 나름의 모델스러운 포즈를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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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내가 한국 사람이라는 것을 알아내고는 서로 앞다투어가며 BTS 등 K-Pop 스타들에 대한 자기네들의 열정을 격양된 목소리와 몸동작으로 표현하며, 자기네들만의 구호인듯 한 손동작을 우리에게도 요구하며 우리는 같이 어울려 사진을 담는다. 다만, 내 카메라를 넘겨 받은 여중생… 고맙다고 해야할까? 사진이 담기지 않았다. 분명 셔터의 위치를 가리켜주었는데… 아직도 나는 필름 카메라 촬영 습성이 몸에 베어서인지 담은 사진을 확인하지 않다 보니 이들과 함께 어울려 이들에게 받은 에너지가 가득했을 그 사진이 남아 있지 않아 다소 아쉬움이 남는다.
이들의 가져왔음직한 가방. 이들의 가방을 사진에 담는 나에게 큰소리로 오리지널이라며 묻지도 않은 대답을 하는 이들이 귀여워 멀찌기서 이들을 다시금 담아본다. 마치 기다리기라도 한 듯 또 포즈를 취해주는 이 여중생들의 웃음이, 그 에너지가 계속 이들에게 머물길 기도하며 나는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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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핀 역대 대통령의 얼굴이 조각된 어느 공원. 교복을 입은 한 무리의 대학생들로 보이는 무리가 있고, 인솔자 정도로 보이는 어느 남성분은 그들에게 따갈로그로 관련 설명을 하는 듯 하다. 우리네 마차 할아버지도 이곳 저곳을 설명을 해주고 있는데, 이방인들로 보이는 우리에게 호의적으로 인사해 오는 이곳 젊은 대학생들. 누군가는 지나가는 우리 마차에 손을 흔들며 "Welcome to the Philippines"을 외쳐주기도 했는데, 이들은 들이대는 내 사진기를 기다렸다는 듯이 웃음과 손가락으로 브이를 그려준다.
낙천적이고 순박한 필리피노/필리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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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문화를 어떤 단어로 정의한다는 것은 불가능 할 것이기에 무어라 단정하기 어렵지만, 나에게 다가오는 필리핀 사람들은 주어진 환경을 거부감 없이 받아들이는 순박함, 섬나라 사람들의 낙천적 성격 등의 결합되어 있는 듯 여겨진다. 그러나, 간혹 미디어를 통해 전해지는 총기 사고는 이런 나만의 정의를 깨는 다소 충격적인 사건이지만, 경제난이 가져다주는, 누구도 바라지 않는 사건사고이지만 돈이 필요한 누군가에게는 500불에서 2000불이 되는 금액이 어느 생명을 앗아가게 하는 보상이 되어진다는게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건 분명한 듯 하다. 마차를 운전한 할아버지, 당신이 몇 군데에서 가이드를 해주었으니 가이드 비용으로 천 페소를 추가로 지불해야 한다는 이 속임수도 참 기분 나쁜 일이지만, 또 상도에도 어긋나는 행동이기에 언성을 높여 당신께서 그러시면 안된다 얼굴 붉힐 수도 있는 일이지만, 이들의 상황에서 외부 관광객들을 대상으로 이런 일들을 꾸미는 것은 그럴수도 있다는 생각에 목소리를 낮추어 애초에 언급되지 않는 것이기에 가이드 명목으로는 비용을 지불 할 수 없으며, 단지 처음부터 팁을 드리려 계획했던 터이니 이 정도만 받으시라고 추가로 백페소 세장을 건내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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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대학생 무리. 사진 허락을 위해 보여진 내 사진기를 보며 손사래를 치는 대신 햇볕을 가리기 위해 쓰고 있는 우산으로 얼굴을 가리는데, 그런 주고 받는 행동들이 이들에게 하나의 웃을 거리라도 되듯 내 사진기를 피해 숨은 우산안에서는 웃음 꽃이 만발한다. 이런 행동이 귀여워 우산 쓴 이들을 몇 컷 담고는 고맙다는 인사하는 나에게 경계가 풀렸는지 우산을 내리고 나에게 웃음지으며 손을 흔들어 준다.
중국인이 모여 살았다는 곳. 이곳도 젊은 학생들로 가득하다. 한 곳은 남녀가 원형을 이루며 포크댄스를 추는 듯하고 어느 한 쪽은 K-Pop을 누군가의 지도하에 연습을 하고 있다. 포크댄스 그룹은 나의 카메라가 부담스러웠는지 추던 춤을 멈추고 잠시 휴식에 들어갔고, K-PoP 그룹은 28mm 광각임을 알리 없는 이들이기에 나의 사진 촬영을 돕겠다며 요구하지도 않았는데 한쪽으로 모여 포즈를 취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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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를 처다보는 한 학생. 멀리 앉아서 손가락 브이를 그리기에 가까이서 사진에 담으려 다가가니 막상 사진에 담기기 쑥쓰러운듯 다른 친구들 무리 사이로 줄행랑을 친다. 그리고 나서 또 그곳에서 나를 향해 브이를 그리니 나는 또 그 무리로 다가갔고, 그 학생과 나의 숨바꼭질에 모여 있던 한 무리는 카메라를 피해 흩어졌고, 애꿎게 그 앞에 앉아 있던 학생만 이런 내가 안쓰러웠는지 웃음을 지으며 자기를 담으라 자청해가며 고맙게도 희생양이 되어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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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나의 행동들이 이들에게 무례하지 않게 기분 상하지 않게 하기 위해 눈과 손으로 인사하며 이들과 최대한 교류한다. 다행히도 대부분의 무리와 사람들에게 나의 행동이 이들에게 하나의 작은 웃을 거리를 주는 듯해 고맙게 여겨진다.
정해진 2시간이 다 되어가는 듯 싶어 마차로 가려하는데, 한 무리의 남학생들. 멀리서 부터 손가락 브이를 그리며 내가 다가오기를 기다린다. 나는 이들이 좋다. 젊어서 부러워서 좋은게 아니라, 이방인을 이렇게 받아들일 수 있는 이들의 열린 마음이 좋다. 시키지도 않았는데 자청해서 대표단이 타고 있는 버스안에서 노래를 부르는 사람, 우리 대표단의 마닐라 교통국 현장학습 방문을 환영하려고 준비된 관악단 밴드에 흘러나오는 음악에 맞춰 춤을 추는 사람. 어딘가에 구속되지 않은 듯 한 이들의 모습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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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여년 전 내가 머물러 있을때 사귄 친구들. 몇 년만에 다시 만나도 언제나 가까운 친구였던 듯 나에게 보여주는 따스함. 물론, 왁자지껄한 친구 한명이 일정이 여의치 않아 영상으로만 잠시 볼 수 있어 우리 저녁 식사테이블의 웃음의 양은 예전보다 절반 가량만 채워졌지만, 그래도 여전히 느껴지는 이들의 즐거움과 따스함이 나는 참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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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의 축복이 이 땅의 사람들에게 특히 이들 젊은이들에게 함게하길 기도한다.
leica Q | summilux 28mm f1.7 | sep. 2019 | manila, philippines


댓글
  • 쌍둥아삼 2019/10/14 18:50

    2002, 3년 필리핀에서 주재원으로 2년 남짓 살았는데 그때 기억이 새록새록 납니다. 좋은 글, 사진 고맙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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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쌍둥아삼 2019/10/14 19:00

    그나저나 사진 보고 있으니 Leica Q 뽐뿌가 화악 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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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GNES™ 2019/10/15 08:06

    치안 안정적이지 않아 참 걱정이었는데, 다행히 무사고로 잘 돌아주셔서...
    글과 사진들 참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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