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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무엇에 분노하는가 (새 발에 본드 발라 사진찍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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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김 아무개 씨가 연 개인전에서 부자연스러워 보이는 사진들이 발견되었다. 새끼 새의 발에 본드를 붙여 연출한 것으로 보이는 위태로운 사진들. 그리고 사진을 찍기 위해, 천적들로 부터 새 둥지를 보호하던 나뭇가지를 다 잘라냈다고 의심되는 사진들이다. 이 사진을 보고 사진 동호회 및 커뮤니티의 많은 사람이 생명을 경시한다며 분노하고 비판, 비난했다.
뭔가 이상했다. 단순히 생명을 경시해서 저런 분노가 느껴지는 걸까 하는 의구심이 들었다. 내 시선엔 그건 '인간 외 생물에 대한 일방적 힘의 행사'였다. 그저 상위 포식자의 유희 행위로, 우리가 다른 동물에 대해 일상적으로 하는 행동들과 다르지 않았다. 돼지, 소, 닭을 잡아먹기 위해 좁은 우리에서 기르고, 도살해 먹는 행위와 비슷한 행동이다. 돼지, 소, 닭의 입장과 그 새들의 입장에 대해 생각해보자, 무엇이 다른가? 모르겠다. 대상이 '작고 귀여운 어린 새'이기 때문이라 좀 더 공감을 불러일으키기 쉽기 때문일까? 그것이 우리의 본능이라 해도, 같은 행위에 대해 다른 기준의 적용은 나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사진엔 크게 두 맥락이 존재한다. 대상(모델)의 맥락과 사진가의 맥락이다. 사진가가 사진을 찍을 때 대상의 맥락을 무시한다면 사진은 온전히 사진가의 맥락에만 의지하게 된다. 대상의 맥락은 희생되며, 무가치한 것으로 치부된다. 그런 작품을 대중이 바라봤을 때 받아들여질 만한 내러티브를 가지지 못한다면, 혹은 가졌다 해도 작품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라 설득할 힘이 없다면 그 작품은 외면당하고 비난받기 마련이다.
이 사진들은 어떤가? 무엇을 표현하려 했는가? 발이 본드에 붙어 부모 새가 불안함에 떨고 둥지가 훤히 노출되어 공포에 절여진 새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을까? 이 사진들이 그렇게 읽히진 않는다. (그렇다고 말하려면 작가의 입술에 침을 많이 발라야 할 것이다) 작품은 아름다움의 추구(맥락에 대한 부합)에 실패함으로써 가치를 가지는 데 실패했고 결국 새들은 의미 없이 희생된 꼴이 되었다. 물론 작가의 이런 행위들이 들통나기 전엔 몇몇 사람을 속여 감동을 전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얄팍한 수가 드러난 순간, 속았다는 분노까지 더해 큰 반동으로 비난의 화살이 되어 작가에게 돌아간다.
이 사건에서 분노의 포인트는, '생명을 경시했다'는 것보다는 예술이란 이름을 허락받은 적 없는 사진사가 벌인 얄팍한 사기극이란 점에 있다. 그리고선 예술이란 이름을 방패 삼아 '법적 하자가 없는 행동이었다'라느니 '예술로 봐 달라'라는 뻔뻔한 소리를 늘어놓는 것이 가당찮은 것이다. 그가 바랬듯, 그 사진을 예술이란 이름의 잣대로 판단해 보면, 그것은 작가의 개입으로 인해 자연이란 맥락에서 벗어나기에 본래의 아름다움을 담지 못했고, 아마도 그것을 표현하려던 작가의 의도와는 전혀 상관없는 대상이 되어 버렸다. 남은 사진엔 의도한 미적 가치란 찾아볼 수 없고, 무가치하게 희생된 새들의 고통만이 남았다. 철저히 실패했다.
*이 사건에 대한 여러 기사가 나왔었다. 하지만 그 기사들은 조류 보호나 자연보호의 입장이 아닌, 그 행위가 왜 아름다움이 아닌지, 왜 예술작품이 될 수 없는지에 관해 썼어야 했다. 그래야 아름다움을 추구한다면서 자연을 함부로 훼손하는 사진가들의 잘못된 인식과 행동을 바꿀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예술가에게 기대하는 것은 도덕적, 윤리적 행위보다는, 미학적 완성도인 것이 아닐까.
*법 이야기를 하자는 것이 아니다. 법 또한 바뀌기 마련, 한때 흑인들은 재산의 개념이었다. 최근엔 지키기 위해 입법을 위한 노력이 많은 개, 고양이도 과거엔 그저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었다. 인식이 바뀌면 가치판단의 기준이 바뀌며 행위가 바뀌고 법도 바뀐다.
*도살과 차이점은 공공의 재산과 개인의 재산으로 구분된다는 것 정도의 차이점이 있을 것이다.
*끔찍한 것을 겉보기에 아름답게 표현하더라도 그것에 속으면 안 된다. 예술의 악용.
댓글
  • 자림♡ 2019/09/30 00:49

    첫 단추부터 잘못 꿰신것 같아요.
    일반적인 사람들이 분노하는 포인트는 철저하게 생명윤리입니다.
    단순하게 이야기하면,
    과연 그 작품들이 아름다워서 예술적으로 인정받았다면, 논란이 안되었을까요?
    전혀요. 똑같은 논란이 일어났을겁니다.
    생명윤리가 핵심이자 기본적 관점이었기 때문입니다.
    본 글 전체의 핵심이자 기본적인 출발점이 잘못되어 있습니다.
    예술에 대한 추구는 기본적인 인간의 소양을 다하고 나서 하는겁니다.
    인간으로써 기본이 안되어 있는 상태에서 미학적 완성도가 높다고 해서 가치있는 작품이 되는거 아닙니다.
    기사들 또한, 자연 보호나 동물 생명윤리의 입장일수밖에 없는것이,
    인간으로써 기본이 안되어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해 집중할수밖에 없습니다. 그게 맞습니다.
    아무리 미학적이라고 해도 의미없는겁니다.
    --
    다만, 생명윤리의 적용에 대한 부분적 시각들에 대해서는 저도 동의하는바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개 고양이는 생명이고 인간의 친구니까 먹으면 안된다.
    "시발 그따위면 풀은 생명이 없냐, 풀도 쳐먹지마라" 라고 하고 싶습니다.
    다만, 사육의 관점과 자연의 관점은 이미 어느정도 정리가 된 상태인데,
    생명윤리에 있어서, "인간의 생존에 필요한 최소한의 것들을 취한다" 라는 틀 안에서 사육을 진행하고, 그렇게 사육함에 있어 "최소한의 동물이 살아있을때 만이라도 스트레스를 최소화한다" 뭐 그런 동물 복지 개념이 최근에 주창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또 한편으로, "인간의 생존에 불필요한 살생을 최소화 한다"라는것이 전 세계적으로 공감대를 얻은지 오래이며, 이미 실천이 되고 있습니다. 이는 자연의 훼손에 대한 부분과 맞닿아 있습니다.
    예를 들면, 고래를 잡는 포경은 1986년 전 세계적으로 금지협약이 체결되어 거의 대부분의 나라에서 지켜지고 있습니다.
    --
    김X수 새끼의 사진은, 그런 자연적인 현상들을, "인위적으로 연출" 하려는데 목적이 있었고,
    그 연출은 인간의 생존권과 아주 거리가 멉니다.
    즉, 생명윤리에 위배되는 행위라는게 분노의 핵심적 이유입니다.
    생명윤리가, 소 닭 돼지에는 적용되지 않는, 이중적 의미라고 생각하셨겠지만,
    실상은, 그 사육조건에도 생명윤리를 계속 주창해왔었습니다.
    그 조건이 비록 살아있는 동안이라는 한정적인 시간동안 이라는것이 한계점이긴 합니다.
    즉, 결국엔 사람에게 먹힐 운명이라는 점에서 모순점이 있기는 있죠.
    그러나, 위에서 말씀드렸듯,
    그 새들은 인간의 생존과는 아주 무관한 아이들이었습니다.
    사람들이 "관찰"하는것 조차도 생명윤리를 따지는게 정상인의 생각인것인데,
    그들을 잡아서 본드질하고 뱀을 풀고.
    그 행동들이 사람의 생존 그 자체하고는 아무 상관이 없고,
    최상헌님이 말씀하신대로 "본인의 미학을 추구한다"라는 미명아래 이루어진 학살적 행위이기 때문에 문제가 되는것입니다.
    --
    그리고 "발이 본드에 붙어 부모 새가 불안함에 떨고 둥지가 훤히 노출되어 공포에 절여진 새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을까?" 라고 하셨는데,
    네, 그게 저한테는 느껴졌고, 다른이들에게도 느껴졌기 때문에 분노한 것입니다.
    그게 표현의 목적이었고, 사진의 목적이었고, 그 연출의 목적이었고,
    사진으로 달성했다고 봅니다.
    저혼자? 아니요.
    대다수의 사람이 분노할만큼 공통적인 분노였고, 비상식적 행동이었습니다.
    --
    왜 대다수의 사람이 생각하는것과 다른 생각을 하고 계신지,
    원천적인 포인트를 잘 못 짚고 계신지는 잘 모르겠으나....
    애초에 이 사건의 포인트는 생명윤리에 반한다입니다.
    --
    다시한번 생각해봅시다.
    사람 죽여놓고 피떡된 사람을 막 찍었어요.
    근데 진짜 예술적이야.
    그렇다면 이게 미학적 완성도라고 해서, 생명윤리에서 제외될만한 행동일까요? 예술로 인정받을까요?
    한번 생각해보시기 바랍니다. ^^

    (bhxdWH)

  • 최상헌 2019/09/30 01:33

    안녕하세요 자림님 언제나 긴 답글 정말 감사드립니다.
    --
    우선 글 둘째 문단 첫 줄에서 밝혔듯 '내(제) 시선엔'입니다. 제 시선이 일반적인 시선이진 않을걸 알고 있습니다. 제가 남다른 견해를 밝혔을지는 모르겠습니다만, 글의 우선적 목적이 저의 세계관을 확인하고 정리하는데 있기 때문에 스스로에게 솔직할 필요가 있는 글이었습니다. 모자르다 느껴지실지 몰라도, 저에겐 그쪽이 우선적으로 다가왔습니다.
    --
    제 경우엔 소 돼지 닭들이나 그 새들이나 같은 입장에 놓여있다고 보여지는 것입니다. 사육과 도살은 그저 인간들끼리 약속한 결과로 봅니다. 생존을 위해서가 아닌, 유희를 위해 동물을 다루는 예는 굉장히 많다고 봐요. 사냥부터 동물원이나 애완동물, 미식을 위한 학대에 가까운 사육 등등요. 이미 '사육'인 이상 그안의 생명윤리는 의미가 많이 퇴색되어 보입니다. 물론, 그것이 더 좋은 방향이라는 것은 인지하고 있고 그런 방향으로 가야한다는 것에는 동의합니다. 다만 같은 잣대로 재어도 무방할 사안으로 보여진다는 것입니다.
    --
    '기본적인 인간의 소양'이 어떻게 정의 될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역사적으로 '잘못된 가치관'을 가진 사람들이 했던 예술활동들의 결과물이 후대에 어떻게 평가 받느냐를 보면 딱히 그런것 같지도 않게 보입니다. 각자의 가치관이 있는 것이겠죠. 우선 그것이 사회에 받아들여지든 받아들여지지 않든 예술가는 스스로의 가치관을 확립하는것이 필요하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것을 작품으로 발현시켰을 때에 대중에 의해 심판 받을수도 있겠지요.
    --
    "발이 본드에 붙어 부모 새가 불안함에 떨고 둥지가 훤히 노출되어 공포에 절여진 새의 마음을 표현하려 했을까?"라고 쓴 글은 찍은이의 의도가 그것(불안과 공포)을 표현하기 위함이었는지를 묻고있는겁니다. 저는 그걸 표현하려고 했던게 아니라고 생각하는 것이구요. 오히려 아름다운 자연 따위를 표현하려고 했을거라 봅니다. 완전한 실패죠.
    저 혼자만의 생각일지도 모릅니다.
    --
    왜 대다수의 사람들과 다른 생각을 가지게 된 것인지 저도 궁금합니다. 찬찬히 뒤돌아 봐야겠어요. 남들과 저의 차이를 보고 정확히 어느 부분에서 그런지 확인해보기 위해 반감을 살것을 각오하고 올려본 글이기도 합니다.
    --
    칭송받을 수 없을지는 모르나 예술로 인정받는것과는 다른 문제라 생각 됩니다. 예술적 허용에 대한 범위는 각자 생각하는 바가 다를수 있을거라 여깁니다.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예술의 정의와 표현에 대한 허용범위 내에서 이 사건을 풀어보고 판단해 본 것입니다.
    *대댓글의 내용이 좀 꽉 막혀 보일것 같습니다. 다만 일부러 자림님의 신경을 긁기 위해서 쓴 댓글은 절대 아닙니다. 오해 안하셨으면 좋겠습니다. ㅡㅜ

    (bhxdWH)

  • 자림♡ 2019/09/30 02:14

    내용 보니... 혹시라도 오해하실까봐...
    지난번 글에서의 댓글 교환도 그렇고,
    감정적 선에서의 개인적 원한같은건 없습니다. 전혀요 ㅎㅎ
    오해하지 않으셨으면 좋겠구요.
    뭐.. 저도 고집쎈 인간인지라, 주관이 스리슬쩍 개입하긴 합니다만,
    어느정도 객관성을 생각하여 말씀드리는점이라는걸 생각해 주셨으면 하고요.
    생명윤리 관련한 두번째 문단의 경우에 있어서는 윗댓글에서도 말씀드렸듯,
    일정부분은 공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 굉장히 모순되죠.
    그래서 저는 오히려 생명윤리 같은 경우는 주장하기가 참 그렇습니다.
    공학도라서 그런지, 일반적으로 생명윤리를 주장하는 분들과 반대적 의견을 이야기하는 경우가 많고요.
    (예를들어 낙태논란이라던지. 하는.)
    수렵을 할수는 없는 노릇이니, 이런 부분이 이해도 가지만, 이해가지 않기도 합니다.
    다만, 인간의 손이 타지 않은, 타지 않아도 되는, 자연의 경우는
    최대한 손타지 않아야 한다고 생각하고요.
    위에 언급된 작가의 경우 "멸종위기종"을 가지고 장난질을 쳤습니다.
    멸종 위기종은 생물의 다양성 측면에서특별히 보호해야한다는 전제하에 "환경부"에서 관리하는 동식물을 말합니다.
    국가적 관리의 필요성을 느낄 정도의 종을 가지고 장난질 치는건 분명히 인간이 아닌 생물로써의 윤리에서 문제가 있다고 보고요.
    http://ecotopia.hani.co.kr/68626
    기사와 사진들을 보시면, 의도한 바와 그 결과에 대해서 설명되어 있으니 한번 찬찬히 읽어보셔도 좋겠지요. 물론 의도한 바는 추측이긴 하지만, 누가봐도 명확히 의도가 있으니....
    그리고 마지막으로 제 생각을 드리자면,
    개인적 생각의 정리와 세계관의 정리를 하기에는 커뮤니티 라는 매개체는 너무 오픈이 되어있는 매체입니다.
    개개인의 생각을 개인적으로 사유하는 공간으로써는 적절하지 않아서 이런저런 오해나 논지에 어긋난 이야기가 되기 쉽상이죠.
    블로그와 같은 개인이 중심이 되는 공간을 통해 사유하고 스스로의 개인적 세계관 확립에는 적절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합니다.
    그런 개인적인 공간과 그 공간을 중심으로 연계한 사회적 관계들이 도움이 많이 된다고 생각을 합니다.
    괜히 저와 같은 사람들이 다른 생각으로 끼어들지 않고, 개인적 사색을 통해 세계관을 구축하기에는, 블로그와 같은 개인적 공간을 기반으로 한 매체가 더 좋지 않을까 생각해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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