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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스위스 알프스 빙하에 떨어질 뻔한 이야기

제가 지금은 산이라고는 없는 덴마크라는 나라에 살고 있지만

10년전까지는 꽤나 오랜 시간동안 스위스에 살았습니다.

우리나라처럼 산악국가죠.

알다시피 알프스 산맥의 중심을 보유한 나라라 산 구경 다니기 좋습니다.

여러 명산들이 있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손꼽는 산들은

인터라켄 Interlaken 에서 올라가서 그린델발트 Grindelwald 주변을 기점으로 돌아다닐 수 있는 지역에 있는 산들입니다.

정상에는 융프라우 Jungfrau, 묀히 Mönch, 그리고 아이거 Eiger 세 봉우리가 있죠.

또 융프라우 정상 근처, 융프라우 요흐 Jungfraujoch 에는 큰 쉼터를 만들어 두고 기찻길을 뚫어 힘들이지 않고도 알프스 산봉우리들의 장광을 즐길 수 있게 해 두었습니다. 알프스에서 제일 높은 산봉우리는 프랑스에 있는 몽블랑이지만, 사람이 기차로 편하게 올라갈 수 있는 제일 높은 곳은 융프라우요흐라서 거길 Top of Europe 이라고도 부릅니다.

여기 불페너분들도 많은 분들이 다녀 가셨겠죠.

신라면 컵라면도 팔고 …


문제는 날씨입니다.

스위스도 날씨가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라서

돈들이고 시간들여 거기까지 갔는데

햇빛은 고사하고 바로 눈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바람 부는 날이 많아

결국 융프라요흐내 이런 저런 실내 시설물들만 구경하고 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합니다.

날씨 좋은 날과 그렇지 않은 날, 알프스 산봉우리 풍광은 차이가 엄청납니다.

예를 들어 그린델발트 지역으로 산행을 가면 일단 쉬운 하이킹 코스로 보통 First 를 추천하는데요

(독일어식으로 피f르스트라고 발음합니다, 퍼스트가 아니고)

먼저 케이블카를 타고 완만한 산길을 따라가면 끝에 

이렇게 멋진 바흐알프제 Bachalpsee 라는 호수가 나옵니다.






그림같죠?


그런데 3년전이던가, 우연찮게 그린델발트 갈 일이 있어 바흐알프제까지도 간 적이 있는데




6월이었는데도 풍경이 저랬네요.


스위스 사는 동안 융프라우요흐를 올라갈 기회가 다섯번 있었는데

날씨가 좋은 날만 개방하는 눈 덮힌 산길을 걸어 가 본 적은 딱 한번입니다.

제 짐작에 안전상의 이유로 중요한 건 햇빛이 있냐 없냐보다는 눈바람이 있냐 없냐인 거 같더군요.  

그래서 보통 그 동네에 산행 혹은 휴가를 가서 가령 4-5일을 머무른다면

일기예보에 촉각을 세우면서 어느 날에 융프라우요흐로 올라갈 지를 정하곤 합니다.


아무튼 여차여차해서 날씨가 너무너무 좋은 날

융프라우 위의 눈 덮힌 산길을 내 눈으로 직접보고 또 걸어가 볼 행운을 한번 가졌었네요.


보세요.

뭔 말이 더 필요하겠습니까






유명한 알레취 빙하 (Aletsch Glacier, Aletschgletscher) 도 맑은 하늘 아래서 봤네요.




그런데 위의 사진을 들여다 보면 중간에 길게 길이 만들어져 있는 게 보일겁니다.

사실 다른 곳은 위험하니 가지 말고 그 길로만 가라는 건데 … 그런 위험 경고 사인이 언뜻 눈에 들어오지 않았어요 ㅎㅎ 그저 걸어다니기 쉽게 눈 좀 치워둔 거라고만 생각했죠.




그래서 걷다가 좀 엉뚱한 생각이 들었어요.


‘남들이 가보지 않은 길을 가보자’


뭐 이런 바보같은 ….


그 당시 또 한번의 진로를 고민하던 시기라 나름 이렇게 저렇게 속이 시끄러웠던 배경도 있어서 그랬던 거 같네요.


아무튼 그래서 그 닦아놓은 길을 벗어 났습니다.




하, 뭔가 뿌듯하더군요.




저 위의 전망대나 아까 닦아 놓은 길에서는 보이지 않던 풍경들도 보이고






그래, 이거다, 남들이 다 가는 길을 가는게 아니야, 이렇게 나만의 길을 개척해 가는 거야,

하면서 열심히, 열심히 걸어가는데 …


눈앞에 똬 ~ 악하고 나타난 건





크래바스 crevasse!

와, 정말 두 다리가 그대로 딱 얼어 붙더군요.

나중에야 안 거지만 저렇게 눈에 보이는 크레바스는 어째도 근처에 안 갈거니까 괜찮은데

문제는 눈으로 덮혀져 있는 곳이 사실은 아래 크레바스를 살짝 덮기만 한 경우가 있어서 사고가 난다는군요.




나중에 당시 스위스 동료들에게 저 사진을 보여주면서 얘기를 해줬더니

알프스산을 제 집 드나들듯이 드나드는 녀석들까지도

야 이 ㅁ ㅊ ㄴ 아, 너 죽을라고 환장했냐 … 하면서 난리를 치더군요 ㅋㅋ

어째 거기 가드들이 길을 벗어나는 걸 안 막았는지 모르겠다고, 말이죠.

그런데 경고 사인도 가드도 눈에 안띄던데요?


어쨌거나 저쨌거나

그 거대한 갈라진 틈을 보고 나니

돌아가는 길에 다리가 후덜덜했습니다.


이제는 기억도 흐릿한데 

(왜 그러고도 제가 이 곳을 보게 되었는지 모르겠다는 의미에서)

돌아가는 길에 이렇게 낭떠러지가 완만하게 떨어지는 계곡도 봤네요.




그때는 모바일폰이 아니라 똑딱이 카메라로 이 풍경을 찍었는데

사진찍으려고 한쪽 주머니에서 카메라를 꺼내는데

아마 제가 부들부들 떨었기 때문인지

다른 쪽 주머니에서 뜯지도 않은 쿠키 한 통이 똑또르르르 … 떨어졌어요.




보이십니까?


하, 또 그 찰라를 잡았네요.


지금 생각하면 동영상을 찍었으면 더 좋았으련만

암튼 그때는 정신없었습니다.


산에서 당 떨어지면 먹을라고 들고 다녔던 초콜렛 칩 쿠킨데 …




제가 신문물에 그리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아니고

또 스위스에서는 저 때 여유 좀 있는 사람들도 이제 막 모바일폰을 하나 둘씩 사기 시작하던 때라

저는 전화기가 없었거든요.

또 와이프랑 애한테 혼자 길 벗어나서 간다는 얘기도 안 하고 왔는데

저 쿠키가 떨어져서 망정이지

저기로 제가 데굴데굴 떨어졌으면 과연 어찌 되었을까요 ….

으 … 요즘도 가끔씩 생각나면 오금이 저립니다.

 

아무튼 겨우겨우 다시 원래 길로 돌아왔습니다




저기 빠졌으면 결국은 까마귀 밥이 되었을지도 모르죠.






10년도 더 지난 일인데

뜬금없이 저 사진들을 뒤져보고 이런 글까지 쓰는 이유는

2017년발이긴 하나 저는 최근에 아래의 기사를 봤기 때문입니다.




정말 가끔씩 일어나는 사고인가 봅니다.


눈덮힌 스위스 알프스, 아름답지만 또 위험합니다.

저처럼 정신나간 짓 하지 마세요 ^^ 


어쨌거나 그 해의 그린델발트 여행은 날씨운이 너무 좋아

융프라우요흐 아니더라도

멋진 사진들을 많이 건졌네요.


괜히 덜덜 떨면서 얘기를 끝내고 싶지 않아

그때 찍었던 사진들 몇 장 같이 올려봅니다.

구글링만 좀 해도 더 멋진 사진들이 인터넷에 널리고 널렸지만

그래도 제가 직접 보고 찍은 사진이라 저는 아끼는 사진들입니다.

여러분들도 보면서 기분 좀 좋아지시길.






















제 기억이 맞다면 여긴 융프라우요흐 방향으로 클라이네 샤이덱 Kleine Scheidegg 바로 다름 역인 Eigergletscher 역이고 융프라우 패스 (그 지역을 특정 날짜 동안 무제한으로 탈 수 있는 기차표) 로 갈 수 있는 마지막 역일 겁니다. 여기서부터 융프라우요흐까지는 매번 따로 돈을 내야 할 거에요, 아마. 


그때 당시 Eiger Trail 이란 걸 새로 개통했었는데 




아이거 북벽을 올라가는 건 아니고요 ㅎㅎ




그 앞을 지나가는 일종의 하이킹 코스입니다.


그래도 아이거 북벽을 올려다 보면서 걸어 갈 수 있어서 좋았네요.




자세히 보면 사진 가운데 유리창 같은게 보일텐데요




융프라우요흐로 가는 기차가 중간에 쉬면서 손님들더러 기차에서 내려서 바깥 창문으로 풍경을 한 번 보고 오라고 쉬는 시간을 길게 주는 걸 기억하시는 분들이 계실 겁니다. 바로 그 창문입니다. 그러니 기차가 저 암벽 사이로 지나간다는 거죠. 오늘 얘기 포인트가 그게 아니라 언급도 안했는데, 스위스 사람들이 융프라우요흐까지 기찻질 낸 이야기도 찾아보면 흥미진진합니다 ㅎㅎ


요약 사진 두장


하나, 산길도 인생길도,

너무 천방지축으로 찾아 헤메지 맙시다.

알려진 길의 정보부터 먼저 챙기고.




둘, 스위스 알프스 산 정상 갈때는 날씨 체크가 굉장히 중요합니다.

재수없으면 이런 배경으로 얘네들만 보다 옵니다.





마지막으로.

융프라우요흐 꼭대기 어드메인가에는

뜯지도 않은 초코칩 쿠키 한 봉지가 있을 겁니다 ㅎ

댓글
  • 파인만선생 2019/09/14 09:06

    ㅊ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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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흥겨운백수 2019/09/14 09:09

    이야...첫번째 사진 정말 좋네요 ㄷ ㄷ 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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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09

    파인만선생//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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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10

    흥겨운백수// 운만 좋으면 그냥 카메라 자동에 놓고 누르기만 하면 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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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스팔트9 2019/09/14 09:10

    직접찍은 사진들이 참 좋네요.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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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14

    아스팔트9// 고마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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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린블루 2019/09/14 09:20

    융프라우요흐에가서 눈보라 밖에 안 본 기억이 나네요... 좋은 글 감사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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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왕 2019/09/14 09:22

    캬....알프스 사진 잘보고 갑니당.
    크레바스 정말 무섭네요 저기에 빠지면 어찌 구조는 되려나 ㅎ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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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미니츠미 2019/09/14 09:22

    재작년에 동부,중부유럽 방문했는데 취리히에서부터 스위스 전역에 내내 비가오더군요..; 그래도 그 유명한 융프라우 안가볼수는 없어서 비싼돈 내고 갔는데 나쁜 날씨랑 구름때문에 아무것도 안보였어요. 그래서 좀 실망했는데 ㅠㅠㅋㅋㅋ 그나저나 그 동네 빙하주변이 저렇게 위험한줄은 몰랐어요.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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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우가 2019/09/14 09:23

    와... 정말 멋지네요. 저도 이번 여름에 캐나다 록키 (밴프) 다녀왔었는데 역시 알스프 쪽이 훨 낫군요.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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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24

    그린블루// 그러니까요. 제 타율도 겨우 2할입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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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돌스키 2019/09/14 09:25

    사진저장했습니다. 너무 아름답네요~~~
    그와중에 크레바스 진짜 후덜덜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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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25

    인왕// 지금같으면 어찌 전화라도 할텐데 그때 빠졌다면 정말 방법이 없었을 거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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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26

    미니츠미// 그니까요. 대부분 그냥 비구름 보고 옵니다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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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27

    [리플수정]우가// 캐나다 록키 산맥도 멋질텐데요 ...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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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09:28

    포돌스키// 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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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rk61 2019/09/14 10:27

    어우야 흥미진진한 글과 사진
    잘 보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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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4 14:36

    park61// 재밌다니 다행이네요.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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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빅브라더 2019/09/15 00:03

    조국관련 담장글만 보다가 이런글 보니 정말 반갑습니다ㅎㅎ 좋은 글과 사진 잘 봤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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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00:08

    빅브라더// 감사합니다. 정치 문제로 싸울 땐 싸우더라도 또 머리식히면서 보고 읽을 거리 있으면 좋긴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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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닉네임귀찮 2019/09/15 00:59

    떨어진 초코칩 쿠키를 주우러, 한 사람이 다가서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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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01:04

    닉네임귀찮// 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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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륙지터 2019/09/15 05:08

    좋은 사진 감상 잘했습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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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05:14

    대륙지터//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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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기뛰기 2019/09/15 06:10

    어이쿠야, 큰일 없으셔서 정말 다행이네요. 전 간이 작아서 사진만 봐도 쫄립니다. 스위스에서 덴마크라니 지형은 극과 극이겠네요. 유럽 생활을 이렇게 길게 하시는 연유를 여쭤봐도 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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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기뛰기 2019/09/15 06:12

    저기 빠지면 뭐 방법이 있겠습니까? 전화도 안 터질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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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06:15

    [리플수정]달리기뛰기// 저도 그때 잠시 넋이 나갔던 거 같습니다ㅎㅎ 말씀대로 스위스와 덴마크는 지형도 극과극이고 세제도 극과극입니다. 거기 있을 때는 몰랐는데 스위스가 세금이 세계적으로 낮은 나라더군요. 그냥 직장 찾아서 살 곳 찾다 보니 이렇게 됐습니다. 저도 유럽에서 이리 오래 지낼 줄 몰랐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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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리기뛰기 2019/09/15 06:21

    풍데쿠// 전 미국에서 10년 넘게 있는데 저도 요새 만년설 위를 한번 걷고 오고 싶은 기분(비유, 전 대자연 무서워합니다)이네요. 건승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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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06:29

    달리기뛰기// 넵 ... 그 기분만큼은 저도 같습니다^^ 비슷할거라 짐작하지만 외국 생활이 편하고 좋은 점도 있고 또 힘든 점도 있고 그러네요. 저도 건승을 빌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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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베론 2019/09/15 12:26

    사진과 글 참 좋네요. 잘 읽었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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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15:05

    베론//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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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갈팡질팡 2019/09/15 21:34

    안녕하세요~ 덴마크 출장을 앞두고 정보 좀 얻고자 이것저것 검색하다 올려주신 글들을 읽게 됐습니다. 그간 몰랐던 많은 정보 얻고 가네요 ㅎ 혹시 괜찮으시다면 쪽지로 몇 가지 여쭤봐도 될까요?

    (nyTEaR)

  • 혼을담아 2019/09/15 21:34

    흔들리지만 않으면 예술사진이 나온다는
    풍경깡패 스위스군요ㅎㅎ
    저도 15년전에 융프라우요흐에 갔었는데
    딱한번갔던곳이 날씨가 넘좋아서
    위에서 4번째사진이랑
    똑같은 풍경보고왔던 기억이 생생하네요ㅎㅎ
    큰일 안 나서
    이런 추억회상할수있는 글도 적어서
    정말 다행입니다!
    사진도 잘보고
    제 추억도 살려보고 갑니다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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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21:52

    갈팡질팡// 아, 그럼요. 언제든지 쪽지 주세요. 확인하는대로 답글 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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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9/15 21:53

    혼을담아// 와, 한번에 맑은 날씨에 융프라우요흐에 가셨다면 정말 운 좋으신 거네요. 네, 큰일 안나서 다행입니다^^ 지금도 가끔식 생각하면 내가 미쳤지, 싶어요 ㅎㅎ 댓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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