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 며칠 slr club 메인에서 라이카 관련 글들이 자주 보여서 들어가보니 여전히 그 케케묵은 이슈로 화제더군요.
그 옛날이나 지금이나 참 변하지 않는 떡밥인가봐요. *^^*
장비는 결국 모니터든 스마트폰이든 종이든 인화를 해서 서로 보기 위한 이미지를 만드는 도구일 뿐이겠죠.
하지만 그 과정에서 생기는 장비의 즐거움과 장면을 담는 과정의 즐거움 등등은 어떻게 무시할 수 있겠어요.
개개인이 가지는 그 수많은 기쁨의 요소들이 어떻게 다 같을 수 있겠습니까?
각자의 방식대로 즐기는 거죠.
그 방식을 서로 존중해주는 것이 당연한 매너라고 생각합니다.
몇해전에 적을 두고 있던 곳에 올렸던 글인데
사진과 장비에 대한 제 경험을 공유하고자 글을 복사해서 올립니다.
혼자하는 독백과 같은 글이어서 반말투인점 양해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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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을 취미로 시작한지 꽤나 오래되었다.
그 기간동안 사진은 나에게 어떠한 영향을 미쳤고 나는 또한 어떻게 그 영향을 받아들였나?
제목은 아주 거창하지만 실상 별것 없다.
그냥 사진이 내게 어떤 상황과 형태로 존재했는지 어느날 궁금해졌다.
[행위]
아주 오래전 대한민국에서 흔한 을의 직장에서 모든 것이 큰 갑과 직장내 또다른 갑들의 아래의 위치일때
나는 내가 생각하는 기준에서의 영향력을 가지는 사진을 시작했다.
물론 그 전에 인터넷에서 본 조금 과장된 색감의 하늘사진에 매료되어
로모나 아가트18 같은 토이카메라류를 만지긴 했었다.
그러다가 펜탁스 MX나 올림푸스 OM 같은 SLR도 다루긴 했다.
하지만 적어도 의미있는 기능을 시작한 사진은 묵직한 맨프로토 삼각대 위에 올려진 마미야 RB67이였다.
조선소 하청의 내가 몸 담은 회사는 모든 것이 모기업(현대중공업 같은)의 납기 및 요청(물론 강제성을 띈)에
의해서 모든 것이 결정되는 어쩔수 없는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을이였다.
그 덕에 야근은 기본이고 부족한 인력으로 새벽에 퇴근하고 또 이른 새벽에 출근하는 일이 참 많았다.
주말도 없이 일하던 그 시절은 우리 아이가 태어나고 돌이 될때까지
나는 늘 아이의 자는 모습을 보고 출근했으며, 퇴근후 집에 와서도 곤히 잠든 아기만 바라봐야했다.
해 떠있는 주말에 아이를 마주한게 몇번인지 모를 정도로 바쁘게 직장 생활을 했다.
이 모든 것이 가정을 유지하고 발전 시키고 싶은 아빠의 노력이라고 생각하고 다 감내하였지만
그것만으론 사실 버티는 것이 쉽진 않았다.
그런 시절을 버티고 행복하게 생각하며 다시 출근할 수 있었던 힘이 어디에 있었을까?
나 같이 소심하고 나약한 사람이 어떻게 그런 상황을 다 견디며 지내 왔을까?
아이도 태어나기 한참 전에 신혼시절에도 마찬가지였다.
분명 신혼인데 나는 왜 저녁에 아내랑 밥을 먹은 기억이 없는가?
직장생활을 일년쯤 한 시점에 나는 단지 그 이유로 직장을 관둘려고 생각도 했었다.
근데 그 시절 신혼부부의 이쁜 신혼일기는 못되지만 우리에게도 나름의 반복되는 우리만의 일기가 있었다.
본가에는 아주 오래된 유물과도 같은 카메라가 한대 있었다.
아버지께서 노년의 시간을 여유롭게 보내기 위해 잠시 발을 들였다가
디지틀혁명으로 쫄딱 망해버린 사진관의 흔적인 중형 마미야 카메라와 삼각대 한조
나는 사진을 간간히 하면서 본가에서 그걸 들고 와서는 종종 들고 다니며 찍었다.
하지만 점점 찍을 시간이 내게 주어지지 않으면서 그걸 밤에 들고 나가기 시작했다.
물론 나중에는 너무 무거워 바로 롤라이플렉스나 홀가 같은 작은 중형으로 바꿨다.
우리 부부는 둘다 부산사람이지만 못난 오빠를 만난 덕에
아내는 부산에서 멀리 떨어진 양산 서창에서 신혼을 보낼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밤에 우리의 경차 아토스를 몰고 나가면 기장 연화리까지 1시간이면 충분했다.
늦게 집에 들어와서 뭔가 가슴이 답답하고 머리가 무거운 날이면 아내는 보온병에 커피를 준비한다.
그러면 우리 부부의 재미난 야밤 드라이브 데이트가 시작된다.
바닷가에서 새벽공기를 마시며 뷰파인더로 이리저리 각을 맞추고
왼손에 찬 시계의 초침을 바라보며 오른손으로 릴리즈 버튼을 꼭 누르고 있다가
내가 생각한 때에 릴리즈 버튼을 놓는 순간 그 사각 거리는 소음이 어찌나 좋던지
나는 그 릴리즈를 잡은 손에서 오는 감촉이 너무 좋았다.
한겨울의 바닷가 칼바람을 양뽈로 맞으며 삼각대를 세우고 파인더를 내려다 보며
흔들리는 배들과 밧줄들 그리고 가로등의 그 불빛, 그 모든 것이 좋았다.
꼭 사진으로 담아 오지 않았더라도 그러한 행동들이 내 섞은 영혼을 청소해주고
내일의 힘을 낼수 있도록 나를 채워주는 것만 같았다.
[감각]
참으로 많은 카메라를 들였다가 다시 내보냈던 것 같다.
물론 엄청난 물량을 들이고 내보내는 사람들에 비하면 아주 작은 양이지만
나에게는 경제적으로도 한계까지 비용을 지불하며 들였던 경우도 있기에
적어도 내 상황에서 부릴수 있는 여유는 다 부렸던 것 같다.
어떠한 우연한 계기로 렌즈든 바디든 내 손에 들어오면
나는 꼭 그것들을 오리지날 파트들로 구성을 채웠다.
세트가 되는 대표렌즈는 꼭 광각, 표준, 망원으로 구비했고,
필터도 그 메이커에 맞는 것들로 다시 구성하고 후드며 캡이며
모두 하나씩 정성을 들여 완성시켰다.
국내에서 구해지지 않으면 외국사이트를 돌아 다녀서라도 구성을 맞췄다.
다 완성된 구성을 보고 있으며 너무너무 기분이 좋았다.
홀로 골방에서 공셔터를 날리고 융으로 바디를 닦고 불러로 먼지를 털어내는 그 시간이 참 좋았다.
물론 그것은 오래가지 못했다.
어느정도 완성되면 그 과정에서 이미 그 구성들은 내게 충분한 기쁨을 주었다.
마지막 최종의 구성품이 구비되는 순간 그 기능은 급격하게 쇠퇴했다.
그러면 가까운 지인에게 나의 소중한 카메라세트를 넘기고
나는 다시금 새로운 내 손길을 요하는 카메라를 찾아 나섰다.
중형 카메라 뿐만아니라 즉석카메라에 빠져 폴라로이드 기종들을
여렇 들였다 내보냈다 하면서 경험하는 것도 너무나 즐거웠다.
없는 필터를 만들기 위해 당장 추가로 필요하지도 않는 안경을
또 사면서 필터알과 필터를 주면서 가공을 부탁하기도 많이했다.
한번은 알이 두껍고 야물어서 안경알을 가공하는 기계에 무리가 와서
입장이 난처해진 경우도 있었다.
일본의 수공예 카메라가방을 구하기 위해 장터에 매복하며 기다리다
결국 그 것을 손에 들고 집으로 돌아갈 때의 그 밤바람을 잊을 수가 없다.
이 가방 저 가방 여러가지를 전전하다 맘에 드는 가방을 만나서
그 메이커의 카메라가방을 모조리 사다가는 가방콜렉터가 될뻔한 과거도 참 재미있었다.
카메라 캐비넷에 단품이 홀로 있다가 로버트가 변신합체하듯 하나씩 채워지는 것을 보면서
맘에 드는 악세사리를 가공해서 만들거나, 맘에 드는 가방을 구하거나 하면서,
나는 사진을 찍는 기쁨 말고 또 다른 기쁨을 느꼈다.
[사랑]
한참 기간이 지나면 어떤 것이든 소원해지고 멀어지기 마련이다.
장비질도 출사도 모두 이런저런 이유로 멀리하고 지냈다.
한참을 그렇게 있다가 다시 카메라를 든 것은 아이가 태어나면서 부터이다.
원래 나는 움직이는 것을 찍지 못했다.
무엇이든 나는 가만히 있는 것을 찍었다.
내가 찍는 사진에서 움직이는 대상은 겨우 바람이나 파도, 구름 정도가 전부였다.
그런 내가 아내가 임신했다는 소식을 듣고 한 첫번째 사진적 행동이 라이카를 사는 것이였다.
하지만 지버릇 개 못준다고 나는 KIRK 플레이트도 같이 구해서 들이긴 했다.
우선은 임신해서 배가 불러 오는 아내를 옆에서 자주 담았다.
같이 움직일 때면 항상 카메라를 가지고 다녔다.
아이가 태어나서 성장해 가는 모든 과정을 자연스러운 습관처럼 담았다.
특별한 포즈를 취해주던 아니던 그냥 수시로 셔터를 눌렀다.
아내든 아이든 내가 뭘하든 별 상관하지 않고 행동했다.
그래서 좋게 말하면 너무나 자연스러운, 다른 시선에서는 너무나 개인적인 일상 사진들이 쌓여갔다.
덕분에 저절로 스냅의 영역에 들어섰으며 제법 그럴듯하게 장면을 잡아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기도 한다.
아이 돌사진도 내가 핫셀과 라이카로 아는 분의 스튜디오에서 직접 찍어서 담았다.
나는 평소 주로 감도 800으로 세팅해서 찍었다.
감도 800은 저녁에 퇴근해서도 놀고 있는 아이를 담을 수 있는 한계 감도임에 동시에
가족사진의 범위에서 허용되는 그레인의 최대 범위였다.
현상용액의 특성상 가족사진은 아이가 아주 어릴때 잠깐을 제외하고는
아이가 어느정도 조심성이 있는 나이가 된 후로는 내가 직접 다 현상하고 스캔했다.
집이 좁아 내보낸 확대기만 그대로 가지고 있었다면 인화까지도 직접할려고 했을 것이다.
그런 것 같다.
내 가족을 내가 담는 다는 것.
그 기록을 내가 차곡차곡 쌓아가고 있다는 것.
우리집에는 총 7권의 가족사진집이 있다.
아이가 태어난 이후로 매 일년마다 아이생일에 맞춰 일년치 사진을 모으고 선별해서 한권씩 만들었다.
일기가 차곡차곡 꼽혀있는 책꽂이 마냥 사진집이 쭈르륵 꼽혀있는 것을 보고 있으면 저절로 추억여행이 시작된다.
그 속의 사진은 결코 뛰어나다거나 거창하지 않다.
초점이 나간 사진, 현상실수로 하이라이트가 다 날아가서 흔적만 보이는 사진,
셔터스피드가 못따라가서 형체만 나온 사진 등등
하지만 가족사진은 그 모든 것을 뛰어 넘는다.
그 사진 속에 가족이 있기만 하면 된다.
그때의 기억을 불러와 미소 짓게 하는데는 사진의 품질은 하나도 중요하지 않다.
종이 사진집도 좋지만 시대에 맞춰 온라인에도 작은 공간을 만들어
어디서든 인터넷에 접속을 하면 우리 가족의 과거와 현재를 볼 수 있도록 해두었다.
이 사진집 작업과 온라인 공간 작업을 나중에 아들이 이어줬으면 하는 바램이 있지만 아니라도 상관없다.
내가 마지막까지 즐겁게 하면 더 좋을 일이니까.
가만히 생각해 보니 소소하게 계속해서 나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 사진이였다.
잠시 멀게도 지내고 잊고도 지냈다고 생각했었다.
범위가 크건 작건 사진은 계속 내 생활에 영향을 미치고 있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선 그 영향이 나쁜 방향으로 이어진 경우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없다.
살림사는 마눌입장에선 다를지도 모르겠다.
어떤 형태로든 나에게 영향을 미친 것은 확실하다.
그럼 나에게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의 행위에 감각에 사랑에 어떤 영향을 미쳤을까?
나는 사진이 치유의 기능으로 나에게 영향을 미쳤다고 생각한다.
내 마음의 응어리를 풀어주고, 우울한 내 기분을 다독여 주고,
다시금 힘을 낼 수 있는 내일을 맞이하게 해준 영향.
내속에 그렇게 사진이 작용하고 있었다.
물론 앞으로도 계속 그렇게 영향을 미쳐줬으면 좋겠고,
그 영향을 무시하지 않고 받아들이는 나였으면 좋겠다.
여러분에게는 어떠한 영향을 미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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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적인 글과 사진입니다.
한참을 생각하면서 보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저는 사진이 어느 순간 제 삶이 되었습니다.
"저는 사진이 어느 순간 제 삶이 되었습니다." 강인상님의 이 말씀에 아무도 반대하지 못할 겁니다.
아주 몰입해서 정독했습니다. 취미로 사진을 찍는 사람들에게 가장 얼맞은 표현이 '치유로써의 사진'인것 같습니다.
좋은 글 정말 감사히 봤습니다~.
저는 귀요미 따님분 사진 보며 치유중입니다. 넘 이뻐요. ^^
오~ 저도 양산 덕계삽니다 ㅋㅋ 연화리에 드라이브 삼아 가기도 하는데 ^^ 사진 잘 보고 갑니다. 가족사진이라...훌륭하네요.
덕계 참 살기 좋죠? 서창에서 신혼 시작해서 덕계로 이사해서 벽산아파트에서도 몇년 살았어요. 지금은 부산에 살아요.
양산 살았을때 알았더라면 차라도 한잔 했을텐데 ^^ 기회가 되면 부산에서 뵐일 있겠죠 ㅎ
그러게요. 양산에서만 근 10년 가가이 살았었는데 그 땐 주변에 사진하시는 분이 아무도 없었어요. ㅠㅠ
슬라이드 필름인가 보네요 저거 인화 해주는데 별로 없어서 인화 힘들듯요
맞긴다면 네가와 흑백은 아직도 아날로그 인화하는 업체가 있는데 아무래도 슬라이드는 아날로그인화를 하는 업체가 이젠 없는 것 같아요. 저도 흑백만 확대기에 물려 인화해요.
참 좋습니다.
감사합니다.
읽다가 저도 추억속에 한참동안 빠져있었습니다... ㅎㅎ
감사합니다 ~~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생각해보니 치유가 어울리는 것 같네요. 몰랐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