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한번 올렸었는데
좀 부족한거 같아서...
사진을 좀더 추가하고 설명을 더 상세히 붙여서
다시한번 올려봅니다!
용산에 위치한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실경산수화전] 를 구경하고 왔습니다.
겸재 정선, 지우자 정수영(제 책에도 나오는 분), 진재 김윤겸, 표암 강세황, 단원 김홍도 등등...
정말 멋진 그림들이 있었구요.
또, 많은 실경 산수화가 있었지만,
제일 눈에 띄던 그림은 [동유첩]이었습니다.
동유첩은 1825년 이풍익이라는 선비가
금강산을 유람하면서 제작한 화첩인데요.
당시, 이풍익의 나이는 21살!!
정말 앳띤 나이였습니다.
아기아기하죠.
조선 선비들의 머리 속에는' 관천하'라는 관념이 있었습니다.
관천하는 노자에 나오는 말이지만...
천하를 둘러보며, 견문을 넓히고 큰 사람이 되기 위한
대장부의 마음이었던 거 같습니다.
근데, 이풍익에게는 여행의 이유가 또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산수유람의 방랑벽이었습니다.
여행 다니는 것을 너무 좋아했지요.
이런 사실은 동유첩 서문에 자세히 적혀져 있어요.
동유첩 가운데 [해금강 전면]
해금강은 세상에 알려진 지 300년밖에 되지 않았는데,
숙종 24년(1698년) 고성 군수로 있던 남택하(南宅夏)가 찾아내고
“금강산의 얼굴빛과 같다.” 하여 해금강이라 이름 붙였다.
주위에 삼일포하는 호수가 있는데, 전설에 따르면
화랑들이 경치가 너무 좋아
3일 동안 머물고 갔기 때문에 삼일포라 한다
[실제 금강산의 해금강 사진]
이풍익은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화엄경을 읽어보니,
부처님이 사는 동해에는 금강산이라는 진산이 있는데
참으로 살만한 곳이라고 한다...
또, 서역의 책을 읽어보니 우리나라 동해가
서역에서는 몇 천리나 떨어져 있는지 모르지만,
금강산이라는 산 이름만은 능히 알고 있으니
천하에서 금강산의 유명함이 이 정도다"
라고 말이죠!
[금강산 환선정 (신선을 불러온다는 정자)]
환선정(喚仙亭)은
강원도 통천군 고저읍 총석리 바닷가에
있었던 조선시대의 누정이다.
총석정(叢石亭) 맞은편에 있는 정자이다.
환선정 주변의 현무암 용암이 오랜 세월 비바람과
파도에 부딪혀 6각형 혹은 8각형 등의
여러 가지 모양의 돌기둥을 이룬 주상절리가 신기하고
아름다워 금강산 유람에 빠지지 않는 명소이다.
[금강산 환선정의 실제모습]
이풍익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좁은 견문을 이렇게 질타합니다.
"중국인들도 조선땅에 태어나,
금강산을 한번 보는 게 소원이라고 하는데...
우리나라 사람은 해외여행과 같은 먼 곳만을 돌아다니길 좋아할 뿐,
국내 여행은 하찮게 여기는 것이 병폐다.
금강산이 코 앞에 있는데,
여행하려는 생각은 치맛자락 사이에서 1도 나오지 않으니
우리나라 사람은
우물안의 개구리와 같고
연자방아에 메인 나귀와 같다."
라고 말이죠.
이게 21살 먹은 소년(?)에게서 나올 수 있는 말인지
신기합니다.
예순 살 할아버지 말씀 같아요...
[동유첩 가운데 금강산 비봉폭]
하늘에 구름이 떠돌 때면 폭포수는
구름 속에서 쏟아져 내리는 것만 같고
햇빛이 비치면 은빛 물안개가
눈이 부실정도로 아름답다.
[실제 비봉폭 사진]
이풍익은 자신의 6대조 할아버지였던
월사 이정구 선생이
금강산을 유람한 일을 떠올리면서
이 산을 한번 여행하는 것은 믿을만하다며
다시한번 여행의 이유를 끄집어 냅니다.
그리고선 직접 나귀를 타고 금강산으로
떠났습니다.
[금강산 해산정의 모습]
21살의 이풍익은 배를 타고 금강산을 여행하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 바닷가 상인들은 순풍을 만나면,
득의만만해져서 풍악을 울린다.
바닷길이야 순풍을 만날 수도 있고,
역풍을 만나 지체될 수도 있다.
순풍을 만났다고해서 기뻐할 일도 아니고,
역풍을 만났다고해서 성내는 것도
올바른 태도는 아니다.
대체로 세상 모든 일이 이와 같을 것이니
그저 기록해두고 웃음 한번 짓는다."
동유첩 중 [금강산 진주담]
구슬처럼 알알이 흘러내리는
진주담의 맑은 물은
금강산이 얼마나 아름답고
수려한가를 보여준다.
[실제 금강산 진주담 사진]
이풍익은 금강산 어느 바위에 올라,
이풍익이라는 세 글자의 이름을 새겨 놓고는
시 한수를 멋드러지게 지어냅니다.
이름바위에 이름을 새기며..
-이풍익
이름 바위 영원히 이곳에 있을테지 /
숲나무 연못 용(龍)도 나를 기억해 줄까? /
먼 훗날 후배님들이 내 이름을 보게 된다면/
나를 두고 설리홍을 말하지는 않겠구나! /
*설리홍: 우연한 만남.
동유첩 가운데 [명경대] 그림
명경대의 바위면이 갈아낸 것처럼
반들거려서,
마치 큰 경대를 세워 놓은 것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강산의 실제 [명경대] 사진
꼬불꼬불 비탈길에 나귀타고
금강산을 가던 중에
이풍익이 어느 여인에게 말을 걸었나봅니다.
하지만 돌아오는 건 역정이었습니다
말을 걸자, 돌아서는 저 여인네여! /
어이해 나에게 화를 내는가? /
당신에게 수작하려 함이 아니라오 /
꼬불꼬불한 이 산길, 물어볼 사람 아무도 없기에... /
동유첩 중 [흑룡담에서 보덕굴을 바라본 광경]
흑룡담(黑龍潭)은 만폭동에 있는 깊이 7.5m 정도의 소(沼)로
일명 만폭8담으로 불리는 내금강 팔담(八潭)의 첫 시작이다.
옛날에 검은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있고 물이 검푸른 색을 띠고 있다.
기슭의 바위에 흑룡담이라는 글이 새겨져 있다.
[흑룡담의 실제 모습]
해금강에서 시작하여 외금강으로
외금강에서 다시 신금강과 내금강으로,
이리저리 돌아다니다가 지칠때면
이풍익은 유람 중간 중간에 시를 지어
풍류를 즐겼지요.
비낀 것은 피리요, 묶인 건 비파라! /
들어가는 뱃전에서 보내고, 또 맞이하노라 /
억만겁의 변화무쌍한 네(금강산) 형상은 /
아마도 부처님 힘인가보다 /
동유첩 중 [구룡연]
이 폭포는 구정봉에서 뻗어내린
구정대의 깎아지른 듯한 바위 벼랑의 두 봉우리 사이에서
폭포벽을 따라 물안개를 이루며 떨어진다.
폭포벽과 그 바닥은 하나의 웅장한 화강석으로
되어 있는 보기 드문 폭포이다.
옛날 금강산을 지키는
아홉 마리의 용이 살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실제 구룡연의 사진
이풍익은 또 이렇게 노래했습니다.
비스듬한 바위에 이름 석자 새겼으니 /
성난 폭포, 우렁찬 여울에 하나 하나 씻겨지겠지 /
세속의 티끌로 묻힌 이몸도 여기에 남아 /
오늘부터 이름바위처럼 맑고 깨끗해지길.../
[금강산 삼불암]
삼불암은 강원도 금강군 내강리 동래동 내금강에 있다.
높이 8m의 대형 마애불로 길이는 9m이고 바위모양은 삼각형이다.
세 부처의 조각은 굵직하면서도
부드러운 선으로 표현한 수법이 독특하며
잘 짜인 균형에 소박하면서도 장중한 맛을 내고 있는데,
거대한 체구, 굵고 시원시원한 선처리 등으로 미루어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실제 금강산 삼불암의 모습 [출처: 연합뉴스]
이풍익은 19세기를 살다간 사람입니다.
19세기는 고증학의 영향으로 성리학은 쇠퇴하고
천주교,불교,도교 등등의 제가백가가 조선에서도 유행했어요.
그래서 그런지, 이풍익의 글에는
부처님에 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옵니다.
부처님 법당에서 자며...
-이풍익
늙은 부처 외로이 앉아 있는 곳에서 /
나그네는 한참이나 말이 없었다 /
부처 뼈에 스미는 낮은 종소리... /
등불 그림자에 시인의 시름만 깊어지네 /
패엽경은 이리저리 떨어져 나갔고, /
감실 느릅나무 뿌리 다 드러났다네 /
벼룩 빈대 하나 없는 편안한 잠자리 /
새벽에 일어나 부처님께 고맙다고 인사했지 /
이풍익이 지금 태어났다면,
자신의 페이스북이나 인스타에
여행 사진을 한껏 찍어 놓을 21살 청년이었을 겁니다.
불행하게도(?)
조선시대에 태어났기 때문에
사진을 그림으로 남길 수밖에 없었지만,
어쨋든 여행을 다녀온 뒤에
이렇게 멋진 동유첩을 완성하고서는
금강산을 다녀왔던 추억을 언제나 회상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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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유첩'은 조선조 말기의 문신이었던 이풍익이 1825년 그의 나이 21세 때 금강산의 명승지를 두루 유람하고 지은 시문에, 금강산의 여러 명승지를 화공을 시켜 그린 실경산수화 28점을 하나의 서화첩으로 묶은 것이다.
문인들의 풍류와 멋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작품으로, 기행시와 기행문과 그림을 모아 시서화첩으로 꾸며 소장했던 당시 문인문화의 단면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료이기도 하다. 또한 이풍익의 글은 당대의 뛰어난 기행문학으로서 연구의 가치를 지니고 있다.
이풍익(1804-1887)
본관은 연안(延安). 자는 자곡(子穀), 호는 육완당(六玩堂). 아버지는 이존우(李存愚)이며, 어머니는 풍산홍씨(豊山洪氏)로 홍경안(洪景顔)의 딸이다. 작은아버지 우의정 이화우(李和愚)에게 입양되었다.
25살인 1829년(순조 29) 춘당대시에 병과로 급제하여 권지승문원정자가 되었고, 1838년(헌종 4) 병조정랑, 1847년 대사간, 1873년(고종 10) 대사헌·이조판서 등을 역임하였다.
1844년 경상좌도의 시관으로 있을 때 감식에 밝고 공평하였으므로 영남사람들의 칭송을 받았다. 1866년(고종 3) 동지상사(冬至上使)로 중국의 수도인 연경(燕京, 북경)을 여행하였다.
뭔가요.. 이 게시판에 어울리지 않는 고퀄은..
추천해두고 있다가 보겠습니다 ㅎㅎ
추천 과 스크랩을 부르는 글이군요.
잘 봤습니다 .
금강산 관광 빨리 뚫렸으면 좋겠네요.
잘봤습니다
1+1=귀여미// 감사합니다! 기회가 되서 국박을 방문했는데 실경산수화전이 있어서 둘러보았습니다. 그중에 동유첩이 가장 맘에 들어서 감상평을 남겨보았어요...
비나리// 고맙습니다!
올바른꿈// 감사합니다...
minjure// 저두 동유첩을 보고 금강산이 가보고 싶어졌습니다...
병살싫어// 감사합니다!
오아 진짜 잘봤습니다.
금강산은 미니장가계 느낌이나네요.
좋은 글 잘봤습니다.
류헨진// 감사합니다...저도 좋은 경험이 되었어요
미라클양// 금강산이 이북에 있는게 아쉽네요...감사합니다.
잘봤습니다..
정성글은 추천.. 그림이 참 좋네요 ㅎㅎ
와아.... 정성글 감사합니다.
누구신가 했더니 역시 장수찬님! 잘 봤습니다.
10 여년 전 길 막히기 직전에 운좋게 다녀온 금강산 정경이 마구 생각나는 그림들이군요.
우와... 평소 게시판 보듯 대충 슥슥 내려보다가 이건 그냥 그렇게 볼 글이 아닌 고퀄이네요....
댓글 먼저 달고 다시 정독 들어갑니다.... 정성글 감사 드립니다.
와...추천을 안할수가 없습니다
추천 및 스크랩 감사합니다
추 ㅊㅊㅊ 추천!
그리고 스크랩!
이 전시회 갈까말까 고민했는데 ㅋㅋ 엄청나네요. 이풍익님은 저때가 인생 2회차였나봐요. 저 나이에 저런 생각들을 했다니 ㅠㅠ
진경산수화하고는 어떻게 다른가요?
조선 전기면 실경, 조선후기면 진경인가요?
Vajra// 넵! 익명의 화가가 그린 그림인데요. 단원 김홍도의 제자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룩킹삼진// 고맙습니다...
나는나대로// 부럽습니다. 언젠가 다시 그 길이 열리겠죠? 감사합니다...
한량// 넵! 고맙습니다...
칼의노래// 감사합니다!
김일균세법// 넵! 감사합니다
쿨// 고맙습니다ㅎㅎ
Hannn// 유료 관람이지만, 여러 곳에 산재한 실경 산수화를 한 곳에 모아서 전시 중에 있습니다. 지금 아니면 볼 수 없는 작품도 있는 거 같습니다. 이풍익님은 다재다능한 사람이었어요. 거문고도 잘 연주했고요. 그림과 글을 수집하는 게 취미였다고 하네요! 감사합니다...
근데 금강산 멋있네요..
해금강도 저렇게 멋있을 줄이랴
윙스탑// 실경 산수화 안에 진경 산수화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조선 중화주의에 입각해 그려진 실경 산수화가 진경 산수화거든요. 그렇니깐 중국이 청나라에게 점령당하자, 중화의 진짜 풍경(진경산수)은 조선 밖에 없다는 인식에서 진경산수의 개념이 나온 것이죠... 그런 까닭으로 조선 전중기의 실경을 그린 산수화는 실경산수화, 조선중화주의가 만개한 17세기부터 18세기까지 나타난 실경산수화는 진경산수화로 구분되는 거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쌤님]// 조선후기에 금강산 유람 열풍이 장난 아니었다고 합니다.당시 유람열풍으로 인해 해금강도 발견된 거라고 해요...감사합니다!
정성글 정독했습니다!
정말 훌륭한 글 감사합니다.
와 아름답다...
강추!! 감사해요
ㅊㅊㅊ 덕분에 눈호강
유익한글 감사합니다
[리플수정]시화에 능하고 풍류를 아는 선비였지만
그래봤자 여자한테 말걸고 까이는 불페너였군요
잘봤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이런 전시가 있는걸 몰랐는데 이번 주말에 가봐야겠네요.
예전에 간송문화전 때 겸재 정선이 그린 산수화를 본 적이 있는데 참 좋았던 기억이 나는군요.
바위에 이름 새기는게 전통이구먼
정성글은 추천
그림도 예쁘네요.
대단하십니다
저도 어제 삼각지에 일때문에 갔다가 박물관 뭐하나 궁금했는데 한번 가보고 싶네요~~좋은글 추천드려요
정성글 추천합니다.대단하네요
좋은 글 감사합니다 ^^
좋은 정보와 정성글 감사합니다 보러 가야겠어요
이 글을 보니 빨리 통일이 되어서 금강산에 가보았으면 좋겠네요.
넘넘 잘 봤습니다 정성글 감사합니다
이풍익의 지적이 눈이 가네요
일본만 해도 에도시대에 다이묘들이 정기적으로 에도에 있는 쇼군을 알현해야 했기 때문에 이들이 이동하는 길을 따라 도로 정비와 인력 이동이 잦았고 일반 국민들의 신사 참배 여행도 굉장히 활발했다고 하더군요 결과적으로 지역간 교류와 경제도 활발해 지구요.
좋은사진 잘 보고 추천드립니다
뮤지엄샵 가면 이에 관한 굿즈 살수 있습니다.
http://www.museumshop.or.kr/kor/product/product_li2.do?str_gbn=1
조선시대 선비들에게 금강산은 뭔가 인스타 핫플같은 곳이었나봐요. 저도 이 전시회 봤는데 진짜 재밌더군요. 그림 속 쪼꼬미 유람 선비들이 넘 귀여워서 뱃지도 사 왔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