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봉창
한국말이 어눌하고 일본말에 능숙했으며 일본식 행동양식을 보이고 이후 중국에서도 일본인 군경과 친하게 지내는 등 엄청 의심받음
사실 그 일본식 행동양식도 모던보이,모던걸이라 부르던 근현대 양식을 일본식 양식으로 오해했을 가능성도 있긴 한데
뭐 이봉창 본인이 일본인 양자로 들어가고 진심으로 일본 황국신민이 되려고 했지만 조선인은 어디까지 조선인이라고 차별받은 것으로 생각이 바꼈다고 말했을정도로
이봉창 본인에 대해선 일본의 문화말살정책 효과를 받은 사람인건 맞다고 봐야 할거임
이봉창 의사도 깨달은걸
지금 해방 이후 당시 겪어보지도 않은 세대가 천지분간 못 하고 황국신민 자처하는 일베나 그 버러지들이 아직도 있다는게 웃기지만
진짜 근현대사 독립투사분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영화로 만들면
이봉창씨 역은 유해진씨가 낙점이네
유해진씨가 아니었던고야 ?
물론 명예황국시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본유학생들이 일본좋아해서 일본갔다가 반일로 무장해서 한국으로 돌아온다.
아.. 애국노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다들 황국신민이 되고싶어했겠지...독립운동이 효과ㅓ가 없는게 아니야
쨉머니
유해진씨가 아니었던고야 ?
진짜 근현대사 독립투사분들의 독립운동 역사를 영화로 만들면
이봉창씨 역은 유해진씨가 낙점이네
다른 배역은 생각도 안 난다
근데 30대 초반에 순국하신 이봉창 의사를 50을 바라보는 유해진이 연기하기엔 좀...
듣고보니 인상이 비슷하네
요즘 기술이 좋아져서 늙게나 젊게나 50살도 가능 함
그 아저씨 웃는 상은 젊어서 괜찮을 걸
나는 류준열 생각남
난 김동현 생각나네.
독립운동이 없었다면 다들 황국신민이 되고싶어했겠지...독립운동이 효과ㅓ가 없는게 아니야
물론 명예황국시민이 많은 것도 사실이지만
생각보다 많은 일본유학생들이 일본좋아해서 일본갔다가 반일로 무장해서 한국으로 돌아온다.
일본은 놀러 가면 참 좋은 나라처럼 보이지만 살아야 하는 순간 지옥도가 됨. 심지어 유학생 근로비자같은 비국민이면 더욱 끔찍해지고
아.. 애국노 생각하고 들어왔는데
누구보다 일본인이 되고 싶어서 일본 본토에 갈 정도였는데
재일 취급 받았으니.
그거 생각난다.
한국 극우랑 일본 극우가 서로 의견은 같을지언정.
한국 극우들은 일본 극우한테 가면 조센징 소리듣는다는거.
이 분 일대기 들어보면 진짜 쾌남아라는 생각이 들더라.
안중근, 윤봉길 열사와 같은 비장미 같은게 없고 어차피 한 세상 폼나고 멋있게 살다가겠다는 생각을 하고 그 방법 중 하나로 무장 투쟁을 고른 분 같어.
사실 털털한 이미지긴 한데 (실제로도 발이 넓어서 상하이에선 일본 순사랑도 친구로 지냈다네...)
의거 당시에 굉장히 치밀하게 움직이긴 했다더라.
일왕 행렬식때 주변 여관을 검문한다는걸 알고는
첨에 근처 여관에 있다가 검문 직전에 다른 여관으로 가서 검문을 피했다고 나옴.
그 근간이 내한몸 희생시켜 나라를 어찌해보겠다가 아니라, 그저 한세상 좀 잘살아보려고 노력했음에도 좌절할수밖에 없는 현실에 대한 분노표출이 가장 컷던것 같음.
거사를 치르기전에도 김구가 보내준 여비를 순식간에 해치울만큼 유흥으로라도 불안감을 잊고싶었던 거라고 보여져서 가장 인간적으로 와닿고 애잔함
뭐 안그런 독립투사가 어딨겠냐만은
시발 애써 던졌던 수류탄마저 불량품인데다
운좋게 도망쳐서 후일을 도모할수도 있었을텐데, 다른사람이 범인으로 오해받고 구타당하는걸 보다못해 자수한거라고 하니 거 사람 참....
영웅적인 관점으로만 바라보기엔 너무 인간적인 분이셨던지라 안타까웠음
저게 현실임 일뽕들은 자기가 어디 있어야 그나마 사람 대우를 받는지 알아야함..
1. 일본 본토 가서 일왕을 만나보자는 생각에 갔는데, 한글 편지 있다고 수감소에서 일왕 행렬식때까지 감금
2. 이러려고 돈들여서 일본까지 간게 아니라며 독립으로 전향
3. 일본인 인상을 많이 풍겨 주변에서도 다 의심했지만 폭탄만 있으면 일왕에게 터트리고 싶다는 진담이 통하게 됨
4. 폭탄과 돈을 받으면서 백범 김구에게 '지금 대사관에 갇혀 있는 몸이라 내가 이 돈 가지고 도망쳐도 아무것도 못하실텐데
이렇게까지 날 믿고 의지해주기 기쁘기 그지 없다' 라고 함.
5. 헤어지기 직전 슬퍼하는 백범 김구에게 '이 나이 되도록 지상의 쾌락은 실컷 누렸고 이제 영원한 쾌락을 누리려 독립운동한것이니 슬퍼하지 마라' 라고 함.
비록 의거는 실패했지만 당시 일왕 신격화에 한창이던 일본인들은 정신적 충격이 컸다고 함.
이봉창의 사례로 보면 독립운동가들이 뭔가 엄청난 소명이나 사명이 있어서 모였지만
그들 또한 어디서나 볼 법한 옆집 아저씨 아줌마 정도였단 점임.
시대가 날 알아주지 못하니, 시대를 바꾸기 위해서 온 사람, 시대가 암울하니 무엇 하나라도 바꾸기 위해 온 사람
참 여러모로 생각이 많이 들게 하는 인물
이봉창의 의거가 일본에게 충격적이었던것도 그런 이유였겠지.
감히 자기들이 신처럼 모시는 일왕을 죽일뻔한 놈이 망국의 왕족도 아니고 정예 훈련 받은 군인도 아니고
그저 의지 하나뿐인 민간인A에 불과했다는거 말이야.
더군다나 그때가 3.1운동 이후에 총독부 교체되서 조선인을 일본인화 시킨다는 계획이 한창이었던 시기인데
자기들은 통했다 생각한 융화가 이 의거로 1%도 도움이 안되었다는걸 증명해버렸어.
뒤이어 윤봉길 의사의 의거로 중국 장제스의 지원까지 받게 되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