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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봉오동 전투]를 보고.. 여전히 진행 중인 전쟁... (스포 포함)


'원신연' 감독의 [봉오동 전투]를
개봉과 동시에 보았습니다.
[구타유발자들](2006), [세븐 데이즈](2007),
[용의자](2013), [살인자의 기억법](2016)이
감독의 대표적 전작들입니다.
한일간 경제전쟁이라는,
제작 당시 예상치 못했을 타이밍에 개봉함으로써
천운(天運)을 타고난 이 영화는
안타깝게도 그 운을 다 누리지는 못할 것 같네요.
1920년 6월 7일 중국 지린성 왕칭현 봉오동에서
홍범도 장군이 이끈 대한북로독군부의
한국 독립군 연합 부대가
일본군 제19사단의 월강추격대대를 무찌르고
크게 승리한 전투를 담은 영화입니다.
봉오동 전투는 중국 영토인 만주지역에서
한국 독립군과 일본군 사이에 본격적으로 벌어진
최초의 대규모 전투로서
이 전투의 승리는 독립군의 사기를 크게 높이고
독립전쟁이 활발히 전개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중요한 역사적 의의를 갖고 있습니다.
원신연 감독은 이 영화에서
대한독립군 총사령관인 홍범도 장군의 존재를
최대한 아끼고 감춤으로써
엔딩에서의 극적인 반전과 카타르시스를
배가시키는 전략을 쓴 것으로 판단합니다.
그러나 그 전략은 얻는 것보다 잃는 게 많았네요.
봉오동 전투의 승인은 유인과 매복의 전략이었죠.
가뜩이나 긴 러닝타임의 90%를 유인에 씀으로써
영화는 자꾸 늘어지게 됩니다.
비슷한 장면이 반복되는 느낌을 주는 것도
바로 그 이유에서겠죠.
이 영화에서 가장 아쉬운 건 동선의 혼란입니다.
촬영지에 대한 완벽한 파악이
처음부터 부족했던 것으로 보이네요.
인물들이 동에 번쩍, 서에 번쩍합니다.
분명 헤어진 인물들이 우습게 다시 만나고
계곡과 평지를 아주 쉽게 넘나듭니다.
드론의 적극적 이용을 포함한 카메라워킹은
역동적이고 다채롭지만
인물들의 동선에 대한 부족한 장악은
훌륭한 카메라워킹의 효과를 반감시킵니다.
홍범도 장군을 대체하기 위해 만든
황해철(유해진), 이장하(류준열), 마병구(조우진),
세 인물도 영화적 매력이 그다지 크지 않습니다.
피를 나눈 형제 이상으로 끈끈한 그들의 연대를
이어주는 연결고리가 그리 설득력이 없네요.
특히, 조우진 배우에게 주어진 대사들은
어쩌면 그리도 엉성하고 안일하게 만들어졌는지.
소리를 지르는 대사들은 잘 들리지 않구요.
각본과 배우들이 스스로 비장해질 수록
영화의 비장함은 되려 깎이는 법입니다.
유키오(다이고 코타로)라는 어린 일본 군인은
시나리오에서 없애는 게 나았습니다.
일본인 스스로의 각성을 촉구하기 위해 만든 듯한
이 인물의 회심(悔心)은 공허감을 줄 뿐입니다.
시공간은 물론,
잔인함과 바보스러움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아라요시 시게루(박지환)의 존재도 억지스럽구요.
무협영화인지 서부영화인지,
그 정체성을 의심케 하는 전투씬들은
배우들의 분투에 비해 쾌감이 크지 않습니다.
한국인과 일본인의 국적을 알아서 비교해
살상력의 차이를 두는 수류탄은 인공지능을 가진 것 같더군요.
몇몇 장면에서는 황당하게도
[쥬라기 공원]의 느낌까지 받았습니다.
무엇을, 왜 말할 것인가,
말하고 싶은 것을 어떻게 말할 것인가에 대한
감독의 확고해야 할 철학이 갈팡질팡하기에
시나리오의 단계에서 편집의 단계에 이르기까지
[봉오동 전투]는 지루하면서 어지럽습니다.
이 영화 못지않게 아쉽고 안타까운 건
이 영화를 둘러싸고 벌어지는 논란입니다.
(환경 훼손 문제를 둘러싼 논란은
사실관계가 정확히 파악되지 않았기에 언급하지 않겠습니다.)
[봉오동 전투]의 관람 여부와 평가의 차이가
애국심과 반일, 극일의식의 잣대인 듯
서로를 헐뜯고 물어뜯는 행태는
하늘나라의 독립군들께 실로 부끄럽습니다.
국가적, 국민적으로 어려운 시기에
성별, 세대별, 신념별로 분열된 우리들을
모처럼 단결하게 만드는 계기가 되어 줄 것이라,
개인적으로 간절히 바랐던 이 영화는
그 기대에 한참을 미치지 못합니다.
5,000년 우리 역사에서 몇 안 되는,
외세를 상대로 한 승리의 역사들 중 하나가
아쉬움과 안타까움을 가득 남긴 채
또 이렇게 영화적으로 소비되고 마네요.
다음은 무엇일까요?
살수대첩? 귀주대첩? 한산도해전? 청산리전투?
십자가를 밟는 듯한 망설임을 전혀 주지 않고
자랑스럽게, 기꺼이 보고 싶으며
똑같은 이유로 후세에게 추천할 역사영화를
우리는 언제쯤 갖게 될까요...
같은 영화를 보고도
누구는 뜨겁게 끓어오르는 감정을 느꼈을 것이고
누구는 그러지 못했을 겁니다.
그게 우리가 서로 싸울 이유는 아닙니다.
우리가 싸우고 이겨내야 할 상대는 분명합니다.
봉오동 전투는, 그들과의 전쟁은
여전히 진행 중입니다...
댓글
  • Drudkh 2019/08/08 05:35

    볼만한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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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08 05:38

    Drudkh// 본문에 제 느낌을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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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deeds 2019/08/08 05:39

    봉복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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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우 2019/08/08 05:41

    와 제가 느낀것과 거의 일치하는 감상평이네요
    추천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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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ellynak 2019/08/08 05:43

    [리플수정]잘 읽었습니다추천합니다
    개봉 며칠 전부터
    봉오동에 대한 가짜뉴스, 그리고 공세적 비토 글이 난무 했는데
    막상 개봉하고 실관람자들이 늘어나니
    호평이 많은 것 같습니다.
    흥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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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08 05:55

    쿠우// '영화'에 대한 '영화적 비판'마저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공감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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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08 05:55

    yellynak// 읽어주시고 추천해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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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08 05:57

    ysr662// 말씀하신 것처럼 충성서약이라도 하듯 비장한 각오가 아니라 조금은 가볍게 영화적으로 접근하셨음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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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풍데쿠 2019/08/08 06:26

    "'영화'에 대한 '영화적 비판'마저 조심스러운 분위기는 위험하다고 생각합니다."
    - 좋은 말입니다. 맞는 말이구요. 그리고 누구에게나 당연시 되는 말이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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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08 06:34

    풍데쿠// 부정적 내용의 리뷰 올리고 걱정 많았는데 공감해주시니 다행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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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선샤인걸 2019/08/08 06:49

    잘 읽었습니다. 제가 영화 보면서 불편하게 느꼈던 부분들을 글로 잘 표현해주셨네요. 공감하는 바가 많아 추천 남기고 갑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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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stel 2019/08/08 07:15

    저도 어제 봤는데 실망만 한 가득..갠적으로 본문에도 언급하셨지만 우리나라에서 괜찮은 역사 영화 나오기가 참 어렵네요..어찌보면 역사 영화 만들기에는 더없이 조건임에도 불구하구요(식민지배, 좌우대립, 군사독재, 민주화).. 특히 일제강점기 보면 다들 반일의식에 기대어 흥행이나 노리려는 심산밖에 안 보여서 참 아쉽습니다..전 그나마 이준익 감독의 '동주'나 '박열'이 일제강점기 배경 영화로서는 참 괜찮았다고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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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stel 2019/08/08 07:21

    그리고 말씀하신 조우진 부분도 진짜 공감합니다ㅋㅋ뭐 배우 잘못은 아닌데..웃기라고 하는 대사같은데 웃기지가 않더라구요..이건 다른 한국영화도 마찬가진데 요즘 우라나라 영화 대본쓰는 사람들 유머감각에 문제가 있는 건지..분명 웃기려고 치는 드립같은데 하나도 안 웃긴 게 엄청 많더라구요ㅋㅋ이게 저만 그럼 또 모르는데 다른 관객들도 반응이 시원치 않은 경우가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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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08 07:25

    선샤인걸// 읽어주시고 댓글 남겨주셔서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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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혁명전야 2019/08/08 07:29

    Pastel// 특히, 역사영화들 중 전쟁영화는 참담하죠.이제 지금의 시대적 분위기에서 역사영화들이 양산될 것 같습니다.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연구와 고증도 중요하겠지만 관객들을 제대로 끌어들일 시나리오의 확보가 더 중요하겠죠. 이 부분에서 비관적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네요. 현재 한국영화의 가장 큰 취약점은 연출도 연기도 기술력도 아니고 바로 시나리오라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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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u152 2019/08/08 07:31

    Pastel// 보통 영화속 유머가 고리타분한 원인은 감독이 자기 생각에는 이게 웃기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밀어붙이는 경우죠. 부장님 개그가 끊이지 않는 이유와 같은....
    강우석 감독의 고산자에서도 삼시세끼 드립 나오고 그러는데, 당시에 스태프들이 만류했다는 글이 있던데 결국 편집 포함이 된걸 보면 영화판도 일반 직장과 다를바 없어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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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astel 2019/08/08 07:33

    isu152// 앜ㅋㅋ그런 사정이ㅋㅋ좋은 말씀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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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isu152 2019/08/08 07:39

    결국 평론가들 한줄평이 대부분 맞았네요.
    최종병기 류준열.....이분법....명량이 아니라 사냥....
    솔직히 요즘 같은 분위기에 봉오동전투 같은 영화가 흥행하는것도 의미있는 일이겠으나....환경문제로 벌금도 물고, 만듬새에 대한 논란도 많은 상황이라....
    차라리 이미 개봉한 주전장이나 오늘 개봉하는 김복동 같은 영화가 좀 흥행했으면 좋겠습니다.
    독립영화들도 분위기타면 몇십만 관객 가능한데 지금 예매율이나 성적보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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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띠옹띠옹 2019/08/08 08:11

    필력이 상당하시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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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망의끝 2019/08/08 18:24

    전문 평론가의 글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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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천탕면 2019/08/08 20:01

    감독이 역량이 안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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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SoreStrong 2019/08/08 21:58

    이분 글 좋아함 추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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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인증은내꺼 2019/08/08 22:49

    선추천 후정독. 시국에 대한 견지를 잃지 않으시면서도 맹목적인 애국주의 혹은 그 무엇이 영화에 대한 영화적 접근과 감상을 방해하는 것을 경계하시는 모습에서 다시금 참된 전문가의 자세를 배우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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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안산조영훈 2019/08/08 23:13

    봉오동 전투가 실제로는 딱히 승리의 역사라고 보기도 힘들죠. 허황되게 과장하지 않아도 독립군의 이야기는 참 감동적인 것들이 많은데... 부풀려서 ja위하는건 좀 그만했으면 좋겠네요. 그 절망적인 상황속에서 싸워나간 것 만으로도 선조들의 위대함은 충분히 표현됩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한데 왜 자꾸 억지로 역사를 왜곡하는지 모르겠어요. 그런 사람들은 우리 조상들이 일본군을 꼭 이겼다고 해야 자랑스러운건지? 패배한 선조들은 부끄럽다고 여기니까 자꾸 허황된 이야기를 재생산하는거 아닌가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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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BornToLG 2019/08/08 23:21

    와이프 하고 보러 가야 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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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송=범 2019/08/08 23:25

    안보신 분들 보시는 것 추천드려요! 잔인했지만 보는 내내 긴장감있게 봤네요. 끝나고 박수 치시는 분들도 있었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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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OANKING 2019/08/08 23:49

    영화내내 총소리 포탄소리가 쉴틈이 없는데 그 와중에 지루함...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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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릭 2019/08/09 00:13

    구타유발자들은 희대의 명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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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길릭 2019/08/09 00:14

    길어서 그러는데 마누라랑 가서 보면 싸다구 안 맞고 잘골랐네.이 소리들은 정도 되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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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동대문구장 2019/08/09 00:52

    아아. 동주를 넘을 만한 항일 영화는 안 나오나요?
    늘 신뢰하는 혁명 전야 님의 비평이기에 더욱 비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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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종훈 2019/08/09 01:12

    역사영화 1987과 택시운전수,암살은 괜찮지 않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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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왕종훈 2019/08/09 01:14

    혁명전야// 태극기 휘날리며가 역사영화이며 전쟁영화중 명작으로 생각됩니다. 강제규는 은퇴한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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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유인구 2019/08/09 03:40

    영화장르에 따라 관람 전의 마음가짐은 늘 다릅니다.
    설렘이나 기대감의 종류가 다르달까요.
    특히 리얼리즘을 생명으로 하는 역사영화는 긴장의 강도가 다른 장르보다 훨씬 높게 다가옵니다
    두시간 전후의 러닝타임에 의도한 영상을 효율적으로 담아내기 쉽지 않겠지만,적재적소의 배치와 배분,때론 과감한 생략이 오히려 여운과 감동을 주는데 그런 부분에서 다소 아쉬움이 있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쨌거나 '안봐도 비디오'와 '백문이 불여일견'이란 갈림길에서 오늘도 야광처럼 빛나는 혁명전야님의 이정표 덕분에 밧데리를 절약합니다.
    깊은 밤 추천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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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지혜야ㅜㅜ 2019/08/09 05:29

    극도의 이분법적인 국ㅃ영화 중국에서 이런 국ㅃ영화 많이만들져 딱 그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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