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필 왜 지금 이 싯점에서 2천년도 더 지난 포에니 전쟁이 머리에 떠오를까?
그것도 언제 읽었는지 기억조차 가물가물한 그 책의 이야기가, 마치 지금 우리의 이야기를 읽는 것처럼, 선명하게 기억속에 자리를 잡는 연유는 무엇일까?
역사는 반복한다더니, 혹시 무슨 기시감이라도 든 것일까?
2차 포에니 전쟁에서 카르타고의 명장 한니발이 로마의 잔머리꾼 스키피오에 말려 패배한 이후 로마와 카르타고는 한 동안 평화를 유지하는 듯 했다.
전쟁이 끝나고 약 반세기의 세월이 흘렀을 때, 카르타고는 다시 부강한 나라였으나, 정작 자신들은 자신들이 부강함을 똑바로 인지하는 못하는. 그런 나라였다.
카르타고의 부강은 로마의 고민이었고, 그 고민은 곧 3차 포에니 전쟁의 씨앗이 되었다.
로마는 카르타고의 인접국인 누미디아를 꼬들겨 카르타고를 도발케 하지만, 정작 2차 포에니 전쟁 패배의 결과로 로마의 허락 없이 군대를 동원할 수 없었던 카르타고는 이를 감내해야 하는 상황이 된다.
견디다 못한 카르타고가 마침내 누미디아를 응징했을 때, 3차 포에니 전쟁은 피할 수 없는 카르타고의 운명이었건만, 오호라, 카르타고는 왜 이를 피하고자 했던가!
피해가는 길목에 몰락이라는 더 무서운 운명이 그들을 맞이하고 있었던 것을!
로마의 군과 마주한 카르타고인들은 선택의 갈림길에 놓이게 된다. 싸울 것인가?
아니면 화친할 것인가?
결국 화친을 결정한 그들의 방식은 누미디아를 응징했던 애국용사들을 불순분자로 몰아 죽임으로써 로마의 비위를 맞추는 것으로 시작됐다.
약자의 입장에서 화친은 화친이 아니다, 어디까지의 굴종일 뿐. 로마의 요구는 이어진다.
화친을 원한다면, 카르타고의 모든 병기를 내어 놓으라.
카르타고에게 또 한번의 고민이 시작된다.
고민의 끝은 로마의 요구를 들어주는 것.
그리고 모든 무기를 내어 놓았을 때, 카르타고의 역사는 이제 더 이상 다음 페이지를 기록할 수 없는 운명이 되고 말았다.
성을 비우라는 로마의 다음 요구가 떨어졌다.
이는 카르타고인은 모두 죽으라는 뜻의 외교적 언사일 뿐이다.
아무런 무기도 없이 로마의 군대와 맞서 성을 지켜야하는 것이 그들의 마지막 운명임을, 그들은 너무도 늦게 깨달았던 것이다.
로마는 놀랐다.
깜짝 놀랐다.
카르타고가 내어 놓은 무기는 창과 칼, 갑옷 등 10만벌에 이르렀다.
이 무기로 카르타고가 전쟁을 결정했더라면?
우리의 세계사 교과서가 로마의 역사가 아닌 카르타고의 역사가 될 수도 있었건만, 정작 카르타고인 자신들은 이를 깨닫지 못했던 것이다.
아니 좀 더 정확하게 그것은 내부의 적이었다.
최소한 로마의 라이벌인 카르타고에 왜 일사항전을 외치는 이들이 없었겠는가?
문제는 전쟁 없는 50여년의 세월 동안, 카르타고의 내부에는 강한 로마에 약한 카르타고가 맞설 수 없다고 설파하는 내부의 적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있었던 것.
이들이 카르타고의 여론을 지배했을 때, 세계사 교과서에 실릴 그들의 역사 이야기는 고작 몇 줄의 할당을 받아야만 했다.
지중해 최강의 로마 군대와, 무기없는 카르타고 군대의 싸움은 하지만 쉽게 끝나지 않았다.
카르타고의 성 안에서는 먼저 화평을 주장하던 자들의 목들이 모두 베어 떨어졌다.
무기없는 카르타고의 병사들은 로마 군대와 맞서 무려 3년을 견디어 냈다.
전쟁의 마직막에 남은 것은 굶주린 사람들, 노인과 어린 아이, 부녀자들 뿐이었으나, 로마의 깃발은 쉽게 카르타고의 성에 꽂힐 수 없었다.
3년 후 패전의 결과는 참혹했다.
카르타고의 저력에 놀란 로마는 카르타고를 더 이상 그냥 두어서는 안될 곳이라 생각했다.
성과 집, 숲은 모두 불에 태워지고, 논과 밭에서는 소금이 뿌려져 아무 것도 소출할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목숨을 부지한 자들은 아프리카의 어느 한 구석으로 쫒겨나 카르타고의 영화는 이제 그저 한낱 옛 이야기가 되고 말았다.
로마와 대등했던 나라, 비록 앞선 두 번의 전쟁에서는 졌지만, 충분히 로마와 다시 싸울 수 있을 만큼 실력을 갖추었던 나라, 그러나 정작 자신의 강함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강했던 옛날의 적을 극복하지 못했던 나라, 그래서 지구상에서 영원히 사라져버린 나라, 카르타고의 역사는 그래서 지금 우리의 상황을 반추케 하는 교과서이다.
그것도 서술이 매우 정확한...
일제의 강점기에서 벗어난지 50여년, 충분히 강해질만큼 강해진 나라,
그러나 더 강한 일본에 맞서서는 안된다는 내부의 적들이 독버섯처럼 자라나 있는 나라, 강대해진 우리에게 불안감을 느끼는 일본, 하여... 없는 명분을 만들어 도발을 하는 일본, 이런 일본에 화친해야 한다는 우리 내부의 적, 우리의 대통령 하야를 운운하는 일본, 끝이 없는 이 리스트를 얼마나 더 오래 적어 나가야 우리는 카르타고의 교훈을 뼈저리게 느낄 수 있을까?
로마와 카르타고, 두 나라 사이에 있었던 짧은 이야기만으로도, 일본을 극복하고자 하는 우리 노력의 당위성은 더 이상 논할 필요가 없을 만큼 자명하다.
기시감이 들었던 것은 ‘역사는 반복한다’는 명제가 잠시 참인 것처럼 여겨졌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그것은 여기까지. 여기에 우리의 할 일이 분명해졌다.
우리 내부의 독버섯을 제거해야 한다는 것.
그럼으로써 역사가 반복한다는 구태의연한 명제 대신, 역사는 발전한다는 새로운 명제를 입증할 수 있다는 것.
- 이것이 지금 우리가 조중동의 목을 베어 떨구어야 하는 이유이다.
역사는 말한다 ? 조중동의 목을 베어 떨구라
(WWW.SURPRISE.OR.KR%2F%3Ffbclid%3DIwAR0feQ4_P4qBxwfD-61n6mjhBxcWHeSRfrOZ-y51A5flRYcK67wYohuBN9E&h=AT1XUOHbBONvcCx0_nF6Tj8p3IsCMlzDXy-X3fOLHxAlZ7tKYELDF5tKKlJyjIucxGWsQwTquHqtHY8GSPEHOY0BxW72f36jFsUXT7HZcbs2wY4xDKL_hJKsDKotHSmZUOHViPL4nRoUe6aZZ2b0lfYpFQmWhYqSNg" target="_blank" data-ft="{" tn":"-u"}"="" rel="noopener nofollow" data-lynx-mode="asynclazy" style="color: rgb(56, 88, 152); cursor: pointer; text-decoration-line: none; font-family: inherit;">WWW.SURPRISE.OR.KR style="font-size: 12pt;"> / UncleJo.co.kr / 2019-07-24)
출처
https://surprise.or.kr/board/view.php?table=surprise_13&uid=117242&mode=search&field=nic2&s_que=%BF%BE%BC%AD%C6%CE&level_gubun=all
추천합니다
캬아.
갑자기 역사주제를 논하다니, 역사빠로서 즐겁군요.
카르타고의 한니발, 로마의 스키피오 전략은 감탄할만한 것이었죠.
<요약>
1. 내부의 적을 경계하자.
2. 국방력을 키우자.
3. 먼저, 평화를 주장하는 사람을 의심하자.
4. 지금 불안정한 한일 관계를 제대로 인식하지 않으면 과거의 카르타고와 로마의 관계를 답습할지도 모른다.
5. 일본 불매하고자 하는 그 강한 마음이 총선까지 이어지자.
난 그리스 로마신화 이야기로 2박3일 토론할수있음.
전쟁이다 계엄을선포하고
나부의 적인 정치 언론
쓰러버리고
이렇게 적고싶었지만
이제 온 국민이 강한
목소리를 내서
국가에 힘을보태고
내부적들이 소리를 못내게
국민이 강력한 규탄과
불매운동으로 보여줘야
할때 입니다.
카르타고의 성 안에서는 먼저 화평을 주장하던 자들의 목들이 모두 베어 떨어졌다.
통진당 해산의 전례를 들어 자유당을 해산시키고 왜국의 부역한 종자들 다 사형시키자... 법위에 국민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