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보 3호 서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옆면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 丙子七月 金正喜 金敬淵來讀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진흥왕)의 순수비이다. 병자년 7월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읽고 감.
이 악독한 낙서범은 낙서 한번으로 그치질 않고 다음해에 또찾아가서
丁丑六月八日 金正喜 趙寅永同來 審定殘字六十八字
국보 3호 서울 북한산 진흥왕 순수비의 옆면
此新羅眞興大王巡狩之碑 丙子七月 金正喜 金敬淵來讀
이것은 신라 진흥대왕(진흥왕)의 순수비이다. 병자년 7월 김정희와 김경연이 와서 읽고 감.
이 악독한 낙서범은 낙서 한번으로 그치질 않고 다음해에 또찾아가서
역사적 사료를남긴 낙서꾼들
낙서 자체도 국보급
진흥왕 비라고 밝힌것도 김정희고
문화재 훼손한것도 김정희 ㅋㅋㅋ
추사 김정희?
정확한 문구는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榏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진흥)/ 王挙(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다. 이는 "경진년(560, 진흥왕 21) 6월 X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는 뜻이라고 울진군은 설명했다.
왕도 왓다감 써두고가던 나라임
역사적 사료를남긴 낙서꾼들
낙서 자체도 국보급
새긴겨?
왔다감은 옛부터 존재했구마이
정확한 문구는 "庚辰六月日(경진육월일)/ 柵作榏父飽(책작익부포)/ 女二交右伸(여이교우신)/ 眞興(진흥)/ 王挙(왕거)/ 世益者五十人(세익자오십인)"이다. 이는 "경진년(560, 진흥왕 21) 6월 X일, 잔교를 만들고, 뱃사공을 배불리 먹였다. 여자 둘이 교대로 보좌하며 펼쳤다. 진흥왕이 다녀가셨다(행차하셨다). 세상에 도움이 된 이(보좌한 이)가 50인이었다"는 뜻이라고 울진군은 설명했다.
왕도 왓다감 써두고가던 나라임
당장 진흥왕비부터 나 여기 왔다 감 하는거니 ㅋㅋㅋ
애초에 순수비라는게 왕이 왔다가 한번 둘러보고 나 여기 왔었음ㅋ 하고 남긴 비라는 소리임
ㅋㅋㅋㅋㅋㅋㅋㅋ
추사 김정희?
ㅇㅇ 그분임 ㅋ
나도 학교때 추사가 해석했다고 들은거 같은대..
맞음 우리나라 최고의 고문석학이셨음
악독하지만 깔수가 없군....
원시인 동굴;신라인 어어 시원하다 낙서하고 가야지
문화제 콤보
추사?
내가 트롤은 할꺼지만 이전에 뭐가 써있었는지 알기위해 백업은 해놓는다
저놈이 생각하는 최소한의 선은 어딜까 참신하게 ㅁㅊ놈인데
그래서 저게 몇년인데
낙서한건 1816년 1817년 비석이 세워진건 555년
감사합니다
진흥왕순수비 해독한건 1816년 정축년은 1817년
추사 김정희면 인정한다
아 ㅆㅂ 네임드라서 욕부터 박지도 못하겠고 ㅅㅂ..
진흥왕 비라고 밝힌것도 김정희고
문화재 훼손한것도 김정희 ㅋㅋㅋ
신라 진흥왕도 김정희 기준 1000년전 사람이다보니;;;
진흥왕은 500년대 인물이고 김정희는 거의 1800년대 인물이니
낙서는 해도 백업은 떠 둬야지 하는 심리였던건가...
여윽시 백업의 민족이네....
DB 미러링의 중요성도 알고 있었음
인증의 민족ㅋㅋ
그 사이에 여자 같아탔네
저시대 특 현재 교수급 아니면 낙서도 못남김.
난 뭔가 이런 거 보면 좀 먹먹하다 저 분들도 큰일을 해낸 거 같아 신나서 저기 기록해 둔 거 아냐 마치 우리가 인증샷 찍듯이
같은 사람이면서도 저분은 이미 몇 백년 전에 돌아가셧고..나도 몇 세기 뒤에는 찾기도 힘든 문서에나 몇 줄 적혀있는 걸로만 존재가 나오겠지
수백 수천년뒤에 찾기도 힘든 문서에 몇줄이라도 적혀 있으면 대단히 성공한 삶.
몇 줄 적혀있을 것 같음?
주민등록사항으로 한 줄 적혀있을 듯
띠용
그래도 옆면에 낙서니까 중대한 훼손은 아니라고 해야할까 ㅋㅋㅋㅋㅋ
지금처럼 다른 사람의 연구 내용을 쉽게 확인하기 어려운 시대다 보니
내가 연구하는 시료에 상위 입찰하지 마라는 느낌에 가까울지도 모르겠다.
소정방도 정림사지 오층석탑에 낙서를 하고 갔음
저 김정희가 우리가 아는 그 추사야?
ㅇㅇ 그사람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