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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분 사진강의 노트 | 작가노트 쓰기 연습

작업의 주체자는 자신의 작업이 완성될 즈음 그것이 관객들에게 어떻게 받아들여 질까를 고민하게 된다. 왜냐하면 작업의 근원적인 출발점은 나(작업자)의 할 말이며 그런 이유로 인하여 만들어진 작업을 선보인다는 것은 당연히 타자에게 그것에 대한 반응을 구하는 행위이기 때문이다.
작업은 아무런 설명 없이도 보는 것, 듣는 것, 느끼는 것 등 감각의 자극에 의해 작업자와 감상자 간의 공명이 이뤄질 수 있으며, 나는 나를 비롯한 많은 작업자들이 그렇게 되기를 원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예술의 형식을 빈 작업이란 언어-문자-를 사용해 접근하는 방법에 비해 그 직관성에 한계가 있게 마련이며(물론 그렇기 때문에 예술은 그 직관성을 아득히 초월한 공명을 일으킬 수 있다.) 때문에 가끔 혹은 필수적으로 작품에 대해 글과 말로 어느 정도 설명을 해야 하는 상황이 요구된다. (물론 요구되지 않을 수도 있고, 아예 거부할 수도 있다.)
그렇게 작업자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설명을 해야 한다는 일종의 사회적 책임을 요구받는데, 그에 대한 대답으로 작업자가 내놓는 이야기 서류뭉치를 우리는 작업노트라고 부른다. 혹은 Artist Statement, 작가의 변, 한 마디. 등등등. 그리고 그것을 쓰는 것은 대체로 고역이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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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업노트를 쓰는 것이 어려운 이유를 말해보라 한다면 나는 흥분해서 얘기한다. "애초에 말(글)로 할 수 있는 거라면, 굳이 이렇게 하지 않지 않았을까요?"라고. 그리고 또 이런 생각을 한다. '내 작업에 대한 이성(?)적 생각을 내 머릿속에서나마 일목요연하게 정리라도 할 수 있다면!'. 하지만 이것은 쉽지 않다. 왜냐하면 나와 작업 사이에 가장 거리감이 없는 '작업을 하는 순간'에는 이성이 나를 지배하지 않기 때문이다.
헌팅 개념의 사진 작업을 많이 하는 편인 나로서는 "찍는 순간에 무슨 생각 같은 거 하나도 안 들어요."라고 당당히(?) 말할 수 있다. 후반 작업을 하는 동안에도 다른 사람에게 어떻게 보일 것인가가 기준이 되지 않고 나 스스로 '이것이다'라고 말할 수 있는 지점을 찾아간다고 할 수 있다. 작업이 99%가량 끝나갈 때쯤 되어서야 '그런데 이게 다른 사람들에게 어찌 다가갈지?' 하는 생각이 스윽하고 밀려 들어온다. 그 시점에서 동료들과 혹은 큐레이터들과 크리틱에 들어간다.
어떤 경우에는 준비가 필요한 파밍 스타일의 작업을 하는 경우도 있다. 이 경우에 대해 설명하자면 이렇게 말할 수 있을 것 같다. 전체적인 작업의 뼈대를 만드는 사전 설정 과정에서 어렴풋이(혹은 아주 확실하게) 원하는 개념과 이미지가 머리에서 그려지긴 하지만, 막상 그것에 대한 작업을 하는 순간엔 분명 아무 생각이 없는 트랜스 비슷한 상태가 된다고. 헌팅 개념과 비교해 보아도 별반 다를 것이 없다.
이런 이유 때문에, 작업이 만들어진 이유에 대해 작자로서 설명하는 것에는 (적어도 내게는) 어려움이 생긴다. 언급한 것처럼 작업을 하는 가장 중요한 순간이 백지와 같은 형태로 남기 때문이다. 이런 현상(?)에 대해 토론할 때 누군가가 핑크 플로이드 노래 가사를 인용했던 기억이 난다.
"There's someone in my head but it's not me." - Brain Damage by Pink Floyd, 1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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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이 사진을 찍은 순간 나는 어떤 감정을 느끼고 있었는가? (그리고 이런 형태의 작업을 하는 것은 어떤 의미인가?). 나는 이에 대해 말하는 연습을, 이렇게 구체적인 것에서 시작하는 방법을 사용해 본다. 구체적으로 차분히, 왜 찍었는가 하고 되뇌는 것.
왜냐하면 나는 그 순간의 나의 마음을 어렴풋이 알고 기억하기에 그 근원을 말해보려는 시도를 할 수 있으며, 그것을 해낼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 와중에 나는 스스로를 속일 수도 있으며 또한 속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것을 아는 것은 오직 나뿐이며 때문에 나는 나를 속이지 않으려고 노력한다. 왜냐하면 스스로를 속이기 시작하는 순간 정말로 모든 것이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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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eries | o r p h e u s, HODO LEE / 110cm x 76cm
"하늘에 뜬 달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고요히 그리고 광대하게 펼쳐진 수페리어호는 그 달을 떠받들고 있었고 사방은 고요했다. 길 옆에 간신히 주차시킨 차는 자전거 교통 표지판에 헤드라이트를 뿌리고 있었다. 호수와 자작나무들은 주변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킨 것 같았다. 엔진의 예열음 까지도 모두 다. 나는 차 안에서 나를 기다려주는 친구들에게 감사했다. 그들이 왜 밖으로 나와 나와 함께 이 장면을 보지 않는지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 안타깝다는 생각 또한 들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것이 내가 친구들을 무시하거나 한다는 혹은 나 혼자만 이 강렬한 무엇(아름다움이라고 해 두겠다)을 누렸다는 비뚤어진 기쁨도 아니었다. 그저 이 순간은 이렇게 되어야만 했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기 때문에 달에게도, 나무들 에게도 그리고 친구들 에게도. 모든 것에 감사하고 벅찼던 것이라고, 나는 기억한다. 나는 계속해서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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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감정에서 출발해 조금 더 나아가면, 나는 나에게 있어 거의 완벽에 가까운 이 황홀한 감정이 결코 오래가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이 장면을 찍지 않을 수 없었다고 말할 것이다. 이 사진만이 아니라 실제로 내 작업들 대다수의 핵심에는 그 생각이 깊숙하게 박여있다. “나는 이 경험이 온전하게 나의 것으로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렇게 사진화할 수밖에 없다.”라고, 지금 이 순간 간단히 줄여 말하겠다.
이 지점에서, 이 사진 이미지를 통해 내가 무얼 말하고자 하는지를 분리해 볼 수 있게 된다.
나는 내가 눈으로 (몸으로) 느낀 이 황홀함을 타자에게도 느끼게 하고 싶은 것인가? 그게 아니라면 사실은 이렇게 내가 느끼는 황홀경이 부질없기에 너무나 허망하다는 것을 말하고자 하는 것인가?
맥 빠진 결론이라 할 수 있겠지만 결국은 이 둘 모두라고 말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하지만 내게 둘 중 어느 것이 먼저 오느냐고 묻는다면 나는 아름다움(혹은 황홀함)에 대한 것이 먼저라고 말할 것이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가지고 있는 사진술로 내가 느낀 아름다움에 가장 근접한 감각을 연성하기 위해 고민하고 노력했다고 말하겠다. 여기에서, 이 현상에서 나는 내가 말로 할 수 없는 무엇을 경험했었다고. 그것은 내게 있어 이만큼 강렬했기에 나는 그것을 이 방법을 통해 말하지 않을 수 없었다고.
그렇다고 해서 이 부분에서 내가 또한 항상 함께 가져가는 “나는 이것이 온전하게 나의 것으로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그것이 너무나 안타까워 이렇게 사진화할 수밖에 없다.”라는 생각이 부차적인 것으로 낮추어(?) 여겨질 이유는 없다. 왜냐하면 바로 이 생각이 나로 하여금 이 이미지를 만들게 한 것의 바탕임은 변함없기 때문이다.
때문에 나는 (비록 그것은 나의 바람이 만들어낸 착각이라고 할 지라도) 내가 느꼈던 그 감정들을 조금이나마 비슷하게 느낄 수 있는 지점에 다가가는 것을 목표로 사진을 다듬어 완성해 간다. 내게도, 내 이미지를 보게 될 관객들에게도. 그리고, 그 옆에서 스테잇먼트도 스멀스멀 형태를 갖추기 시작한다.
댓글
  • 백화 2019/07/19 09:56

    좋은 글과 사진 감사합니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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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doLee 2019/07/19 10:50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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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Lv7.이노 2019/07/19 10:08

    멋진 사진과 글에 감탄하고 갑니다. 좋은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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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doLee 2019/07/19 10:50

    감사합니다! 이노님도 좋은 하루 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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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amisuri 2019/07/19 10:33

    아프고 예민한 곳을 예리하고 시원하게 짚어주셨습니다.
    관찰하는 자의식을 드러내는 과정, 그것을 언어로 표현하는 건 참 쉽지 않고 아린 곳인데...
    느끼셨던 황홀경이 결코 허망하지 않았습니다. 적어도 저에게는요.
    사진도 글도 많이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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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doLee 2019/07/19 10:51

    감사합니다 나미수리님!
    말씀해 주신것 처럼 그것이 허망한 것인지, 아니면 무엇인지 그걸 어떻게 못해 발을 동동 구르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도 하게 됩니다. 말씀 너무 감사하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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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Y.Jonah 2019/07/19 11:04

    좋은 강의들 잘 보고 있습니다^^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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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odoLee 2019/07/19 11:16

    감사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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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zure78 2019/07/19 11:38

    와... 저도 저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어쩜 선생님의 설명이 없어도 비슷한 감정을 느꼈을듯 합니다.
    저도 언제나 머리속으로만 맴돌고 그걸 표현하는 방법도 미숙하고 그 감정선을 정리하기도 너무 미숙한거 같아 참 어렵던데.. 이리또 글로 그 걸 잘 표현해주시네요 ^^
    늘 좋은 글 잘 보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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