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알기론 저때 귀양이 정해지면 보너스로 무조건 장을 쳐맞아서 절대 휴양개념이 아닐텐데 ㅋㅋ
그리고 지방이라 최소한 달 단위로 소식이 전해지고 그 소식이 사약일 수도 있어서 맘편하게 못 있을텐데 흠
showmethemoney2019/07/13 23:13
그런곳도 있고 그냥 휴양개념도 있었을꺼 같음
세계최초의 라노벨인 구운몽만봐도 귀향갈 때 쓴건데 가면서 이것저것 많이 먹고 잘 놀았다고 하더라
보스트로얀2019/07/13 23:13
도형은 태형 맞고
유형은 장형 맞고
그리고 걸어가야하고 맨날 존나 먼곳으로만 가야함. 그래서 정약용도 해남쪽으로 갔지
ToughZealot2019/07/13 23:14
그게 맞지. 더군다나 저때 귀양은 천주교 박해를 빙자한 개혁파 숙청때 있었던지라 더 힘들었을거야.
원래 장 맞는것도 돈이나 인맥빨로 스킵이 가능하긴 한데, 저때는 돈은 둘째치고
정조 사후 숙청에 가까운 것이라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듯....
덧. 원래 귀양도 권력자가 바뀌면 재량에 따라 복귀도 가능한데,
저때 세도가들이 어지간히 정약용 형제들을 미워했는지, 꽤 오래 못돌아왔다더라.
자산어보로 유명한 그의 형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고...
_Kei_2019/07/13 23:14
돈 내면 안 맞고 넘어갈 수 있었음.
네코카오스2019/07/13 23:15
죄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위급 관리가 귀양가면은 복귀할거 뻔히 아니까
지방 수령이 이것저것 잘 챙겨줬다더라
elder_king2019/07/13 23:15
ㄴㄴ조선식으론 역적과 기망이 아니면 무조건 장형태형은 아님
국문과정에서 할수는 있지만서도
보스트로얀2019/07/13 23:16
그런 경우는 보통 큰잘못이 아니여서 그냥 좀 심기 거슬리게 해서 잠깐 쫓겨난경우.. 곧 복직하기때문에 그냥 고을 수령이 이것저것 잘 챙겨줬다고 함
ToughZealot2019/07/13 23:26
잘 챙기는 것도 한계가 있음. 원래 귀양지가 정해지면 거기다 계속 보내는 경향이 강해서 귀양자가 꽤 많은 편이고,
조정에서 귀양자들 위한 지원을 전혀 안해주기 때문에 고을에서도 지원하다간 기둥뿌리 뽑힐 지경이라 제대로 지원 못해주지.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보면 먹을거는 거의 가족들이 보내준거 같더라만.
그렇게 도르래가 탄생했다
놀면서 쓴것도 아니고
세종이 황희 부려먹듯 정조에게 부려먹히고도 그렇게 쓴거지.ㄷㄷㄷ
정약용은 평생 쓴책만 500권이라던데
ㅅㅂ 난 500권 읽지도 못할거같은데
500권을 쓰고 있네 그것도 한권 한권 명품;
귀양지가 그렇게 책이 잘써진다며
님 도르신?
님 도르신?
정약용은 평생 쓴책만 500권이라던데
ㅅㅂ 난 500권 읽지도 못할거같은데
500권을 쓰고 있네 그것도 한권 한권 명품;
놀면서 쓴것도 아니고
세종이 황희 부려먹듯 정조에게 부려먹히고도 그렇게 쓴거지.ㄷㄷㄷ
심지어 그거도 분야가 다양함
민법 중용강학
정치 목민심서
지리 아강방역고
경제 경세유표
형법 흠흠신서
문학 다수
행정 목민심서
역사 아강방역고
예학 시경논고
의학 우두법에 관한책
개쩌는 인간이었음
괜히 조선왕조실톡에서 정약용을 위키백과 관리자에 비유한게 아님.
아방강역
오타ㅇㅋ 기억나는데로 쓰다보니..
근데 루리웹은 수정이 안돼ㅜㅜ
의학 : 마과회통
근데 저거 우두법 맞아? 위키 가보니까 저거 인두법이고 우두법은 서양에서 전해받은거라던데?
흑산도 유배시 썻던 자산어보도 있음
포켓몬도 아니고 물고기 150종 수록되어있음 ㅋㅋㅋ
자산어보는 정약용의 형 정약전이 쓴거야.
그렇게 도르래가 탄생했다
귀양지가 그렇게 책이 잘써진다며
그. 페미작가지만. 김용이 할머니한테 끌려가서 소설 완결낸 이야기가 생각나네
점프 편집자 : 원래 가둬놓고 쓰면 잘 써지는겁니다.
토가시 : 개새꺄!!!
이도경이 그분야의 피해자면서도 전문가지..
귀향지에서 할게 글쓰는거 말고 뭐가 있겠어...
스마트폰있는시대도 아니고
아크?
내가 알기론 저때 귀양이 정해지면 보너스로 무조건 장을 쳐맞아서 절대 휴양개념이 아닐텐데 ㅋㅋ
그리고 지방이라 최소한 달 단위로 소식이 전해지고 그 소식이 사약일 수도 있어서 맘편하게 못 있을텐데 흠
그런곳도 있고 그냥 휴양개념도 있었을꺼 같음
세계최초의 라노벨인 구운몽만봐도 귀향갈 때 쓴건데 가면서 이것저것 많이 먹고 잘 놀았다고 하더라
도형은 태형 맞고
유형은 장형 맞고
그리고 걸어가야하고 맨날 존나 먼곳으로만 가야함. 그래서 정약용도 해남쪽으로 갔지
그게 맞지. 더군다나 저때 귀양은 천주교 박해를 빙자한 개혁파 숙청때 있었던지라 더 힘들었을거야.
원래 장 맞는것도 돈이나 인맥빨로 스킵이 가능하긴 한데, 저때는 돈은 둘째치고
정조 사후 숙청에 가까운 것이라 그냥 넘어가진 않았을듯....
덧. 원래 귀양도 권력자가 바뀌면 재량에 따라 복귀도 가능한데,
저때 세도가들이 어지간히 정약용 형제들을 미워했는지, 꽤 오래 못돌아왔다더라.
자산어보로 유명한 그의 형 정약전은 유배지에서 생을 마감했고...
돈 내면 안 맞고 넘어갈 수 있었음.
죄질에 따라 다르겠지만
고위급 관리가 귀양가면은 복귀할거 뻔히 아니까
지방 수령이 이것저것 잘 챙겨줬다더라
ㄴㄴ조선식으론 역적과 기망이 아니면 무조건 장형태형은 아님
국문과정에서 할수는 있지만서도
그런 경우는 보통 큰잘못이 아니여서 그냥 좀 심기 거슬리게 해서 잠깐 쫓겨난경우.. 곧 복직하기때문에 그냥 고을 수령이 이것저것 잘 챙겨줬다고 함
잘 챙기는 것도 한계가 있음. 원래 귀양지가 정해지면 거기다 계속 보내는 경향이 강해서 귀양자가 꽤 많은 편이고,
조정에서 귀양자들 위한 지원을 전혀 안해주기 때문에 고을에서도 지원하다간 기둥뿌리 뽑힐 지경이라 제대로 지원 못해주지.
정약용이 자식들에게 보낸 편지 보면 먹을거는 거의 가족들이 보내준거 같더라만.
님도르신?(X500권)
도른마마 도른마마 상소를올리러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