샤울라님의 글에서 댓글로 이야기를 주고 받은 이후로 쭉 생각을 했습니다.
처음 사진을 본격적으로 찍기 시작하게 됐을 때는, 그저 내가 본 장면을 내 의도대로 표현할 수 있다는 점이 신나서
시간만 나면 카메라를 들고 여기 저기 돌아다니며 찍곤 했습니다.
마침 컴팩트 디카 열풍이 불면서 여기 저기 인터넷 사진 동호회도 많이 생기던 시기라 새로운 사람도 많이 만나고
그때까지는 생각도 않던 곳을 돌아다니기도 하고, 동호회 사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많은 것을 배웠습니다.
사진학 강의 책을 몇 번을 통독하면서 공부하기도 했고요.
Nikon Coolpix 995 / 사진에 푹 빠지게 된 계기가 된 사진
이 사진을 찍기 전에도 필름 카메라로 간혹 사진을 찍긴 했습니다만, 놀러가서 찍는 관광 사진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이 시기부터 여행의 기록을 남기기 위한 사진에서 사진을 찍기 위해 여행이나 동네 출사를 나가게 됐습니다.
계속 사진을 찍다 보니 필연적으로 필름 카메라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친구의 추천으로 니콘 F100과 24-105 렌즈를 구매합니다.
그리고는 더욱 사진에 빠졌습니다. 한참을 찍고 다니다가 당시 초 고가였던 D100도 할부신공을 펼쳐 구매하기도 했고요.
그때까지 카메라 메이커라고는 올림푸스(집에 있던 필름 카메라가 당시 유행했던 캠코더 스타일의 올림푸스 카메라였습니다) 와
니콘, 캐논밖에 모르고 있다가 점점 새로운 메이커에 대해서도 알게 됩니다.
그렇게 구입한 카메라가 콘탁스 아리아였습니다.
Contax Aria, C/Y Planar T* 50mm f1.4 / 남산 한옥마을 연못에서 찍은 잉어 장노출 사진 (1초)
단순히 노출계에 의지해서 찍는게 아니라 의도적으로 언더/오버로 찍거나
일부러 초점을 어긋나게 하고, 흔들린 사진을 찍기도 하면서 점점 더 공부를 했던 시기였던 것 같습니다.
공부를 계속 하다보니 들어서는 안될 이름을 듣게 됩니다. 독일에서 만든 얼핏 보면 코카콜라로 보이는 마크를 단 카메라의 이름을요.
Leica M4P, Elmar 28mm f2.8 / 지하철 3호선. 노파인더샷.
시름시름 앓다가 질렀습니다. -_-;;
작고 그립감도 좋지 않습니다. 작은데도 더럽게 무겁습니다. 무거운데 그립감이 좋지 않으니 손가락도 아픕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사진을 찍고 있다는걸 잘 인식하지 못합니다. 셔터 소리도 무지 작습니다.
노출계가 없는 바디다 보니 외장형 노출계로 미리 노출을 맞춰두고, 조리개를 적당히 조인 후에
과초점으로 맞춰두고는 파인더를 볼 필요 없이 감으로 프레이밍을 한 후 찍습니다.
역시나 사람들이 사진 찍고 있는 중인걸 잘 모릅니다. 투명인간이 된 듯 합니다.
이렇게 스냅에 빠지게 됩니다.
그리고, 가장 사진에 푹 빠진 시기였습니다.
Leica M4P, Voigtlander Super-Wide-Heliar 15mm f4.5 / 숭례문 시장. 노파인더샷.
단순 스냅샷에서 점차 사진에 의미를 부여하는 법을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컴팩트 카메라와 중형, 대형 포맷까지 시도하고 현상과 인화를 이 때 시도해 봤습니다.
Nikon 35Ti / 교대역 근처. 비오는 날 노파인더샷.
Leica CM / 청계천
Leica R6.2, Summilux-R 50mm f1.4 / 선유도 공원
주머니 사정이 악화되면서 가지고 있던 장비들을 점차 처분하게 됐습니다.
애써 자기 합리화를 하면서 잠시 사진에서도 멀어지게 됐고요.
그러다가 지인이 빌려준 미놀타의 입문용 수동 카메라로 다시 사진의 재미를 느끼게 됐습니다.
Minolta X300, MD Rokkor 50mm f1.4 / 남산 야경
Minolta X300, MD Rokkor 50mm f1.4 / 남산
입문기부터 나름 하이엔드 카메라까지, 그리고 중형/대형까지 경험해 본 이후로 지금의 생각은
플래그십이나 고급 브랜드의 장비는 원하는 이미지를 얻을 확률을 높여주는 좋은 카메라는 분명 존재하지만
나쁜 장비는 없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휴대폰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사진을 찍을 수 있을 만큼 기술이 발전했고, 발매된지 몇 십년이 지난 장비도
그 당시에는 첨단 광학 기술이 집약된 고급 상품이었으니까요.
물론, 머리와 가슴은 사이가 멀어 알고 있다고 실천을 하지 못하는 경우가 여전히 많습니다. -_-;;
인간은 어리석고 끊임없이 같은 실수를 되풀이 한다던가요...ㅋ
어...뭔가 마지막이 애매해 지긴 했습니다만, 제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은..
장롱에 아무리 좋은 장비가 있어도 손에 쥐어져 있지 않으면 찍을 수가 없으니
손에 들고 있는 장비가 가장 좋은 장비다. 그때 그때 가지고 있는 장비로 마르고 닳을 때까지 굴려보자..입니다.
그리고, 역시 사진은 즐겁고 괴롭고 슬프고 아프고 재미있다..입니다.
신입이 오밤중에 뻘소리 했으니 세판 쉬고 돌아오겠습니다 ㅋ
https://cohabe.com/sisa/107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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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너무 멋진 글과 사진이어서 추천에 추천에 추천하고 갑니다..
이렇게 깊고 깊은 말씀과 사진을 볼 수 있게 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감사합니다 ^^
술기운에 뻘글을 남겼습니다 ㅋ
제가 그동안 하여왔고, 하고 싶었던 이야기를 한번에 정리해주셨군요...^^
깊은 동질감을 느낍니다...
올려주신 글 잘 읽었습니다. 상당 부분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이게 되더군요. vahma 님이 갖고 계신 사진에 대한 진지한 사유로 인해 또 다른 담론들이 많이 나오길 기대해봅니다. ^^
바마님처럼 많은 경험을 해보지도 못했고 잘 찍지도 못합니다만 햇수로는 꽤 오래 카메라를 들고 돌아다니다 보니 주제넘게 저도 비슷한 생각을 하곤 합니다.
사진의 결과물은 늘 그 표현에 대한 갈증과 장비와 테크닉 등 여러 조건 사이에서 갈등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것 같습니다. 그래서 장비는 수중에 있는 것으로도 충분하다는 결론에 도달하지만 현실은 아무 고민 없이 신게나 장터나 기웃거리고 있지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