때는 바야흐로 2004년 풋풋한 복학생신분으로 취미로 배우던 중국어를 좀 더 심도있게
배우고자 교양으로 초급 중국어회화를 듣고 좌절하여 방학동안 중국행을 결심했음
거기서만난 사람, 에피소드를 일기장에 적으려다 이곳에 남김
2004년 12월
- 출국 -
설레면서도 겁이나는 첫 해외행이었다. 공항도 처음이고 비행기도 처음이다.
다니던 중국어 학원의 원장님 소개로 서울에 있는 유학원(?)을 통해 6주간 중국에 공부를 하러 가야했다.
솔직히 뚜렷한 목표도 없었다. 그냥 경험하고 싶었다.
새벽에 인천공항행 리무진을 타고 공항에 내려 유학원 일행과 만났다.
낯설고 출국하기 바빠 정신이 없었다. 그래도 담배 두보루는 살 정신은 있었나보다.
- 북경 공항-
처음 겪어보는 공항에서 어찌어찌 가방까지 다 찾아서 일행들과 합류했다.
스스로 뿌듯했다. 그리고 거의 문맹임에도 잘 찾게해준 시스템에 감탄했다.
밖으로 나와서 어학원으로 갈 버스앞에서 인솔인(조선족)에게 간단한 설명을 듣고난 후
운전기사분과 인솔인이 와서 가방 넣는걸 좀 도와달라고 부탁하길래 흔쾌히 수락했다.
학생들이 케리어를 주고 차에 타면 나는 그걸 들어서 버스 트렁크에 실었다.
12월이라 꽤 추운 날이었는데 얇은 자켓과 베레모?를 쓴 한 남성이 다가오더니
마치 김무성의 노룩패스처럼 발로 캐리어를 밀고 버스에 탔다.
어이가 없어 '저양반 저거 뭐지?' 라는 생각과 '한소리 하까' 라는 생각이 교차하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대학교안 숙소겸 어학원에 도착하여 방 배정을 받았는데
아까 그 노룩패스가 하필 나의 옆방이었다.
짐을 들고 계단을 올라가면서 나를 보고 흠칫 놀라던 눈치였는데
그 날 오후에 내게 오해를 한 부분이 있었다며 사과를 했고 나는 OK했다.
그리고 친하게 지내자는 제안 역시 OK 했다.
(아마 그때부터 중국 패치가 진행 됐던 모양이다.)
나는 그를 장선생이라 불렀다.
- 룸메이트 -
룸메이트는 선해보이는 인상의 대학생이었다. 서울의 명문대 경영학과를 다닌다고 했다.
503이 졸업한 학교였고, 서연고 다음을 다투는 명문대라는 것도 귀국해서야 알았다.
룸메는 절실한 기독교 신자였다. 중국에 오자마자 교회를 찾았다.
집에도 통화를 하면서 잘 도착했다는 소식 다음으로 교회이야기를 나누었다.
중국은 공산당국가라서 내국인교회는 허락하지 않는다. 외국인은 가능하지만 소수라서 교회 찾기가 쉽지 않다.
라는게 그의 설명이었다.
가끔 잠이 오지않으면 불을끄고 서로 각자의 침대에 누워 기독교와 성경에 관한 얘기를 새벽까지 한 적이 있었는데
항상 논쟁으로 끝났지만 기독교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던 뜻깊은 시간이었다.
그로 인해 [교회사람]에 대한 편견을 많이 떨쳐 낼 수 있었다.
한 살 적었던 룸메는 나를 형이라 부르며 잘대해줬고 나는 그에게 반말하지 않고, ~~씨라고 불렀다.
그게 편했다.
- 중국 패치 -
식사는 옆의 학생 식당에서 했다. 가격도 저렴하고 볶음밥인 차오판은 내입에 잘 맞았다.
중국 대학생들도 많이 이용하는 식당이었다.
중국사람들은 항상 손에 물병을 들고 다녔다.
룸메랑 토의한 결과 음식이 느끼하기때문에 차는 필수라는 의견을 모았고
식당밑에 있는 마트에서 고급스러워 보이는 물병과 꽃잎 모양의 차를 몇 봉 사고서는 마치 중국인이 된 듯 한 뿌듯함에 취했다.
우리는 밥을 먹고나면 자주 지하의 마트에 들러 2게에 1원짜리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
마트를 나서면 입구에 소쿠리에 과일을 담아 파는 아주머니가 계셨는데
중국의 귤에는 씨가 있는게 있어서 씨가 있는지 꼭 물어보고 사야 했다.
생김새는 비슷한데 다른나라 말 하는 사람들이 신기한지 이런저런 얘기도 많이 했다. 단골이 된거지.
약 2주 후에 후발대(?) 학생들이 왔다. 아마 4주 커리큘럼으로 온 학생들이다.
그 날도 여느때처럼 밥먹고 아이스크림 먹으면서 과일을 사려고 아주머니랑 얘기중인데
뒤에 지나가던 신입생(?) 여학생 두명이 "중국사람들은 겨울에도 아이스크림 먹넼ㅋㅋ"
라길래 웃으면서 "와예? 겨울에는 하그 먹으면 안되능교?" 라고 웃으며 물으니 죄송하다하고 달아났다.
우리는 한참 웃었고 그 여학생들과는 자주 웃으며 인사하고 지냈다.
식당은 교통카드처럼 충전을 하고 음식 주문하면서 차감하는 시스템인데
방학임에도 아침에는 사람이 많아 늘 줄을 서서기다리고 주문했다.
그 날도 평소와 마찬가지로 룸메랑 줄서서 기다리는데 뒤에 후발대로 보이는 여학생 둘이 뭔가 서로 미루듯 얘기하더니
우리에게 다가와 이런 얘기를 한다.
여학생 : "어..뚜이부치....칭원....어...쩌거....카...어...쩐머....마이...어....."
룸 메 : "아, 이거요? 이거 저기서 충전해서 저기 아주머니한테 드리고......"
여학생 : "어? 한국분이세요? 죄송해요..중국사람인지 알고...."
솔직해서 놀랐지만 한편으로는 신기했다. 벌써 패치는 끝난것인가..
그도 그럴것이 아침에 일어나서 세수만 대충하고 골땡바지에 맨발에 쓰레빠를 끌고 갔으니
누가봐도 그럴 수 밖에. 그래도 여름에 난닝구만 입고 다니는 패치는 정말 시도조차 할 수 없었다.
- 과외 선생 -
하루에 1시간씩, 월-금까지 과외 커리큘럼이 있었다.
나의 선생님은 네이멍구출신 우리또래 본교 여대생으로 키가 크고 볼이 빨간게 인상적이었다.
말 앞에 자주 "워더이쓰쭈스..."를 습관적으로 써서 내가 가끔 놀리기도 했다.
어학원에서는 교재같은걸 상의해서 구하고 그걸로 공부를 하길 권했지만
나는 그런게 싫어서 그냥 1시간동안 얘기하고 놀자고 했다.
룸메 과외선생님은 남자였는데 학교앞에서 친구랑 자취를 하고 있었다.
마침 우리 선생님과 친분이 있어서 가끔 룸메 선생님 집에서 마작도 치고, 저녁도 해먹고
뒷산(이라해봐야 낮은 언덕이 있는 공원)에 산책도 다녔다.
한번은 내가 선생님한테 정말 무례하게 군적이 있었다. 그때는 사과를 못했는데 그게 자꾸 신경이 쓰이다보니 좀 서먹해졌다.
어느날 수업을 왔길래 나가자고 했다. 마침 기타줄도 한 벌 사야했고 저녁도 먹을겸 우다코에 갔다.
본인도 잘 몰라 물어물어 찾아간 악기점에서 줄도 사고 기타도 치고 놀다가 밥 먹으러 갔다.
맥도날드에 가서 이것저것 주문하려고 보니까 금액이 60원인가 나왔는데 자기가 사고싶어했다.
근데 수업 1시간 페이가 10원인데 식사 한끼에 60원, 그것도 패스트푸드는 좀 아닌 것 같아 내가 사고
지난번의 무례한 행동에 대해서는 진심으로 사과했다.
지금 생각하면 정말 잘 한 일 같다.
그 선생님 이름은 기억이 안나는데 아직도 한 번씩 생각이 난다. 그리고 그 무례했음이 부끄럽다.
- 왕푸징 거리 -
초급 중국어 교재에는 베이징 카오야 이야기가 꼭 나왔다. 북경에는 그게 유명하다 들었다.
왕푸징은 북경 중심에 천안문, 자금성, 북경반점 옆에 있다.
나포함 5명이서 그 유명한 베이징 카오야 전문점 '전체덕'이라는 곳에 갔는데 '덕'이 'duck'인가보다.
(교재에 상호가 그대로 나옴)
큰 오리 한마리를 통으로 거꾸로 달아놓은 것 보고 오리가 그렇게 튼지 첨 알았다.
뭐 특별한 것은 없고 얇은 쌀전병?, 그리고 달달한 춘장소스? 그것만 생각난다.
가격은 그리 비싸지 않았고 한국에서 김천보다 조금 비싼 한끼 식사를 하는 금액이었다.
오리는 그냥 소금만 쳐서 숯불에 굽는게 진리라는 생각을 다시금 했다.
왕푸징에는 포장마차 행렬이 대단했는데, 진짜 신세계를 보는 듯 했다.
스뎅으로된 긴 꼬치에 식재료를 막 꽂아놓고 파는데 비쥬얼만해도 신이 났다.
예전에 한국에서 한 여자 중국인이 매미를 보며 혼잣말로 맛있겠다 하길래 이상하게 생각했는데
여기에는 그야말로 없는게 없었다.
딸기, 키위, 사탕, 매미, 전갈, 개구리 뒷다리, 양고기 등등 보는것만 해도 신이 났다.
꼬치 하나에 딸기는 5개, 개구리 다리는 4개, 매미는 큰 거 3개 정도에 5원(?) 정도 했던 것 같다.
나는 양고기를 사서 먹었는데 양고기 특유의 냄새인지 향신료의 냄새인지 암내같은 역한 향에 한점 씹다 말았다.
룸메이트는 개구리 다리 맛있다며 내게 권하는데 정중히 사양했다.
돌아와서 룸메는 자기전에 개구리다리 하나 더 먹을걸 하고 후회했다.
- 만리장성, 롱칭시아 -
2005년 새해를 중국에서 맞게 되었다.
중국도 신정 해돋이 관람 문화가 있는지 모르겠는데 어학원에서 빠다링에 해돋이 보러 가자고 했다.
빠다링 갔다가 근처의 롱칭시아를 묶어 다녀오는 나름 호화 패키지였다.
출발전 그 이른시간에 부모님께 전화드리고, 출발 준비를하고 관광버스를 타고 빠다링으로 갔다.
날씨가 너무 추워서 그런지 명소치고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아마 영하20도 정도 됐던 것 같은데 코와 입을 덮은 두꺼운 목폴라에 얼음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
러시아 장교 스타일의 털모자를 파는 상인 발견했다. 내가 무엇을 그렇게 탐냈던 적은 꽤 오랫만이었다.
모자는 20원에 팔았다. 근데 아무리 추워도 20원은 좀 무리라는 생각이 들었다.
룸메가 흥정을 시작하더니 결국 일행은 5개를 50원에 샀다. 물건도 사고 돈도 번 듯한 기분이 들었다.
(흥정이라는게 별거 없었다. 숫자, 씽, 뿌씽, 커이, 뿌커이 만 알면 됐다.)
1월 1일의 빠다링은 너무 추웠다. 정말 숨에서 나오는 습기가 옷위로 얼어붙었고 디카의 배터리는 방전이 되어 사진도 못 찍었다.
올라가는 길에 전망좋은 곳이 있었는데 거기에 "부따오창청, 페이하오한(?)" 이라는 문구가 적힌 돌이 있었는데
거기서 사진찍는데 돈을 받고 있었다. 배경을 빌려주는 비용이다.
근데 오늘은 너무 추워서 카메라도 먹통인데 괜한 고생을 하시는게 아닌가 안쓰러웠다.
만리장성의 첫인상은 생각보다 장엄하지 않았고, 날씨가 좀 더 좋으면 어떨까 기대가 있었지만 그저 그랬다.
(여름의 만리장성은 그 나름대로 헬이었다고 한다--;;)
내려와서 롱칭시아(용경협)으로 가는 버스에 올라탔다.
인솔자겸 가이드가 우리가 샀던 모자를 쓰고 있었다. 본인도 추워서 샀다는데
30원 달라는거 깎아서 20원에 샀다고 '너무 따뜻해. 나 부럽지?'라는 표정으로 얘기했다.
차마 우리는 10원에 샀다는 말은 못했다. 한편으로는 본인도 중국인인데 가격흥정을 좀 더 하실 수 있지 않았나 좀 안타까웠다.
사실 내려오던 길에 그 모자를 5원에 파는걸 본 사실을 나 스스로 부정했다.
(정찰제가 필요한 이유)
롱칭시아에 갔다. 산사이를 막은 호수라는데 겨울이라 다 얼어있어 볼 게 없었다.
매표소에 화장실을 쓰려고 갔더니 유료다. 중국은 화장실이 유료였다.
비싼건 아닌데 그냥 기분이 그랬다. 외출전에는 항상 화장실을 다려오는 습관을 들였다.
내려오는 길에 승마체험 같은게 있었다. 한 번 타는데 1원이라고 엄청 호객을 했다.
말을 타면 말 주인이 말을 끌고 저기 밑에까지 가는 코스인데 노동력에 비해 너무 싸다는 생각이 들어서
몇번이나 물어봤다. 1원이라고 했다. "이콰이치엔!!!" "이콰이치엔!!!" "이콰이치엔!!!"
말을 탔는데 재미를 느낄 겨를도 없이 엉덩이가 너무 아파 빨리 내리고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래도 미안해서 내릴때 팁으로 1원 더 드릴까 어쩔까를 고민하는 순간 도착해서 내렸는데
5원을 달라며 우디르급 태세변환을 했다.
"님아, 1원 이래매?"
"응, 타는 데만. 여기까지 오면 5원"
딥빡침에 한국말로 따졌으나 진정한 우이독경이었다.
억울한 마음에 가이드에게 내 의견을 전달해달라고 했으나 20대 도시 여성의 기백으로는
시골의 40대의 아저씨를 감당할 기백이 없어보여 의견피력은 포기했다.
괜히 홧김에 가이드에게 곤란한 부탁을 해서 미안했다.
녹초가 되어서 돌아와서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고 이른 저녁을 먹고 잤다.
2005년 1월 1일은 그렇게 지나갔다.
- 일본 여학생 -
숙소의 꼭대기층에는 어학원생을 위한 사무실이 있었는데 공지사항을 확인차 자주 들렀다.
하루는 거기에 있던 학생들이랑 교과서 얘기를 하는데 탁자에 앉아서 공부를 하던 한 여학생이
"쿄콰소노?" 라는 얘기를 하길래 '네. 교과서요. 왜요?' 라고 대답하니 본인이 일본 사람이라고 소개를 했다.
발음이 한국어랑 비슷해서 신기했다. 서로 유치하게 쿄콰소, 교과서를 주거니 받거니 하다가
서로 성명과 간단한 소개를 하고 인사를 했다. 본인은 일본에서 온 '카미xx 레x'이라고 했고
나는 그녀를 '카미상'이라 불렀다.
카미상은 거기서 공부를 했던 학생인데 숙소가 밖에 있어 어학원에 일주일에 서너번씩 공부하러 왔다.
카미상은 나의 룸메랑도 친분이 생겨 시간이 남으면 간간이 우리방에 잠시 들렀다 갔다.
방에는 개인용 냉장고가 없어 음료수등을 비치할 수 없었고, 손님이 오는데 딱히 대접할 것도 없어
나는 카미에게 520을 한 개피씩 권했다. 중국담배치고는 순하고 여러가지 향에 필터에 하트그림이 있어 카미상이 좋아했다.
그냥 담배 하나씩 피면서 이런저런 얘기하다 수업들으로 갔다.
룸메이트는 비흡연자였으나 카미상과 나랑 함께 이야기 하는걸 제법 재미있어 하는 것 같았다.
그 당시 박효신의 눈의 꽃이라는 노래가 한국에서 히트였는데 카미상은 한국사람이 그 노래를 아는걸 신기하게 생각했다.
카미상은 중국에 온지 꽤 된 학생이었는데 북경 사투리를 잘 알아들었다. 신기했다.
중국와서 첨에 당황을 했던게 한국에서 배웠던 중국어는 현실 필드에서 적응이 잘 안됐다.
티비나 선생님이 하는 말은 부통화라고해서 발음이 깔끔한 느낌인데 북경 사람들 말은 안그랬다.
꼭 입에 사탕을 하나 물고 말하는 느낌은데 '얼'화가 너무 심해서 처음에 알아듣질 못 했고, 적응하는데도 시간이 제법 걸렸다.
한번은 카미상이 어디 같이 좀 가자고 해서 택시를 타고 가는데 택시기사와의 막힘없는 대화에 놀랐다.
'일본 여자'하면 떠오르는 외모였는데 항상 당찬 여성이었다.
어떤 일로 카미상에게 작은 신세를 진 적이 있었는데 보답의 의미로 점심을 먹기로 했다.
학교 길건너 작은 파스타집 비슷한 곳이었는데 거기서 피자랑 음료랑 커피를 마시면서 식사를 끝내고
내가 계산을 했는데 100원이 조금 안되는 금액이었다. 96원인가 그랬던 것 같다.
식당에서 나오는데 카미상이 조금 불편한 표정으로 왜 내가 사냐며 물었다.
일전에 도움 받은것도 있고 여차저차해서 내가 샀다고 하니 그러면 안된다면서 정확하게 반을 돌려줬다.
100원이 아니었던게 확실한게 그 때 2원짜리, 1원짜리 지폐를 받으면서 이렇게 까지 해야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이러쿵저러쿵 설명을 했지만 자기네들은 안그런다고 앞으로 그러지말라고 부탁했다.
그런 에피소드가 그저 소문인지 알았는데, 실제로 겪어보고 조금 놀랐다.
함께 수업을 듣던 누나가 카미상이 오늘 같이 저녁을 먹자고 했다면서 같이 가자고 했다.
룸메랑 누나를 포함한 우리 일행은 식당앞에서 카미상 일행을 만났다.
택시를 타고 제법 멀리 갔던 곳이었는데 신장지역 음식을 파는곳이었다.
가끔 공연을 하는데 마침 그날이라고 부랴부랴 약속을 잡은것이었다.
카미상은 함께온 남자친구를 소개시켜줬는데 프랑스인이며 흑인이었는데 인물이 좋았다.
키도 엄청나게 컸으며 몸도 호리호리해서 눈에 띄는 체형의 소유자였다.
인상도 좋았고 우리에게 친절했다. 그런 남친을 둔 카미상이 대단해 보였다.
그리고 3주정도 지나고 카미상은 일본으로 돌아갔다. 나는 520 한 갑을 선물로 줬다.
그리고 나의 전화번호를 묻길래 종이에 적어줬다.
나도 방학이 끝나갈 무렵 한국으로 돌아왔는데 봄인가? 조금 더울때였는데 카미상에게 전화가 왔다.
일본에서 계속 학교를 다니고 있다는 얘기와 함께 나의 안부를 물어왔다.
그때 내가 뭘 하고 있어 통화를 오래 못했는데 다음에 또 연락한다는 말을 남기고 끊은 후로는 연락이 없다.
- 진정한 트래블러 -
아랫층에 충청도에서 온 남학생이 있었다. 나와 취향도 비슷해서 가깝게 지냈다.
쾌활하면서도 거볍지 않은, 붙임성이 좋으면서도 선은 넘지않는 굉장히 매력있는 친구였다.
여행을 참 좋아하는 친구였는데 진짜 어디 다니는걸 굉장히 좋아했다.
주말이면 꼭 어디를 다녀와서 보기가 힘들었다. 상하이도 다녀오고 네이멍구, 루오양 등 진짜 먼 거리인데도 주말 혹은 조금 더 걸려서라도 다녀오는거 보고 정말 대단하다 생각했다.
예전에는 꽤 자구 연락하다가 요 몇년 사이에는 아주 가끔 카톡만 주고받고 있는데
이 친구 프로필 사진보면 본인이 꼭 등장하는데 배경이 정말 세계일주하는 여행자 같다.
사막, 산, 도시, 건축물, 설원, 밀림,바다, 강 등등 마치 언챠티드의 드레이크를 보는 듯 한 느낌이고
정말 놀라운건 이방인으로서의 이질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현지 패치가 정말 빠르고 적응력이 탑클라스다.
관광지를 가는게 아니고 진짜 여행다운 여행을 다닌다는 느낌이 드는 사람이다.
정말 사람냄새 나는 좋은 친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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짬이 나서 옛날생각 나서 적다보니 시간이훌쩍 지나가네요
아직 쓸거 많은데 쓰다보니 재미가 없어서 일단 마무리 하고 밥이나 먹어야겠어요
읽어주셔서 감사해요
긴글인데 길게 느껴지지 않네요
막 그런건 아닌데 중국 가고 싶은 그런 맘이 들게하네요
예정에 중국갔을때 가이드가 용경협 옵션으로 가지고 이야기 하면서 꼭 가봐야 할 곳이라고 했는데
단체 의견이 안가는 방향으로 흘러서 못갔던게 지금 아쉽네요 ^^
비슷한시기 회사 출장을 처음 간 곳이 선전이었는데 그때 생각나네요 뭐 중국은 낙후된 그런 이미지였는데, 일단 크기는 미친드시 크고 서울만큼 발전이 되어 있어서 두번 놀랬었어요. 그때 만난 유럽애들은 서로 영어로 대화 안하고 중국어로 대화하더라구요. 일때문에 중국어 공부 하는데 자국어 쓰면 빨리 못배운다고.. 부끄럽더라구요.
역서도 가끔 중국인 와이프와 같이 다니는 하얀머리 백인아저씨 만나는데 만나면 중국말로 인사함... ㅠ. 북경은 가을에 한번 가보고 싶어지네요.
전 작년까지 북경에 있다 왔는데 ㅋㅋ 심지어 사는 동네도 같았네요. 오도구.. 잊고있던 중국 처음가서의 기억들이 새록새록 떠오르고 좋네요.. 2편 기대할게요 ㅎㅎㅎ
중국어를 하나도 모르고 배낭여행을 갔다가 고생 많이 했었던 기억이 있네요ㅠ
중국 여행은 중국어를 알고 가는 걸로..
북경은 중학교 때 가족여행으로 가보고 안가봤는데 궁금해지네요
글 재밌네요 ㅎㅎ 감사합니다
와 흡입력 좋은 글이네요 잘 읽었습니다. 중간 중간 러브라인이 그려지나 하며 기대했는데 역시 오유네요
와아 잘 읽었습니다 러브라인은 언제 나오나요?
저 지금 상해에 여행왔는데 음식때문에 고생함 ㅠㅠ 무슨 향신료인지는 모르겠지만 대부분의 음식에 들어가있더라고요. 근데 그 냄새만 맡으면 토할거같아서 못멋겠더라고요. 방근전에도 새벽에 출출해서 호텔 미니바에서 중국라면 하나먹자 해서 물올려서 먹을라했는데 라면에도 그 향신료가있어서 한젓가락도 못먹음 ㅠㅠ 라면이 20위안 생수 6위안인데 ㅠㅠ
저 진짜 음식안가리고 잘먹는데 여긴 힘드네요. 먹을수 있는게 볶음밥 ㅎㅎㅎㅎ
재밌게 읽었어요. 소설책 읽는 기분 ㅎ 또 써주세요 ㅋㅋ
북경에 도착 직전 하늘에서 내려다본 북경은 저한텐 쇼킹이었음...산이 하나도 안보였음...헐헐...이래서 대륙대륙 하는구나 했었던...
같이 중국 갔다온 기분이네요
글을 참 잘 쓰십니다 ㅎㅎ
저도 20대 초반에 짧지만 3개월간 광저우에서 어학원 다니며 생활했던 때가 참 추억이 많은 것 같아요.
독한 중국 담배맛도 그렇고, 해지면 제가 살던 아파트 앞에서 풍기던 양꼬치 냄새며 밤낮 어딜가나 엄청난 바퀴벌레들도 참 잊을수가...
글 정만 재미있게 잘 쓰셔서 시간 가는줄 모르고 읽었어요! 후편?기대할께요!
카미카제 레고.
재미있게 읽었습니다. 중국은 여행 성수기가 언제일까요? 한중 유학생이 왔다갔다 하는 시기일까요?
하루키 책 읽는 느낌이 났어요. 담백하게 적어주셔서 부담없이 쭉 읽혔어요! 재미난 글 감사합니다 ㅋㅋ
관광호텔에서 잠깐 근무할 때 중국손님들 땜에 힘들었는데, 느낌이 묘합니다 ㅋㅋ
재밌게 잘 보았습니다.^^
2004~2005 겨울의 베이징이 그대로 묻어나네요.^^
당시와 지금이 크게 다른 건,
2008 올림픽을 앞두고 있었기 때문에 곳곳에 공사중이었고,
그 땐 지하철이 1,2호선만 오픈한 상태였죠. 공항도 작았고..
지금은 16호선에 지선만 9개 노선에 이르죠....어질~ 어질~
* * *
그리고 520은 대만 담배입니다.~^^
저는 작년 12월에 북경이랑 산서성 갔는데 중국은 음식은 진짜 좋았어요. 아쉬운 점은 인터넷 통제와 교통무질서 ㅠㅠ 오토바이때문에 죽을뻔한적도 있었어욬ㅋㅋㅋ 그래도 개인적으로 흥미를 가지고 지켜보고 있는 나라라서 재밌게 다녀왔던 것 같네요. 한국사람들 요즘 중국 많이 가는데 15일~30일 무비자 입국 되었으면 더 자주 갔을 것 같아요. 그리고 북경을 위시한 북중국 vs 상해, 항주, 홍콩 등의 남중국 문화 차이도 재밌었구요. 여담으로 저는 만약 중국에 살게 된다면 항주가 날씨가 좋아서 괜찮을 것 같아요ㅋㅋㅋ
지난 번에 작성하신 댓글은 일종의 예고편이었군요!!!
지난번 댓글에 이런 얘기가 있었을줄이야! 재밌게 읽었습니다!
썸탈까봐 조마조마하게 봤네요... ^^
북경이 북쪽의 도시라는 의미로, 실제 중화인은 명나라 초기까진 황하의 남족이 수도였죠... 춘추전국시대엔
삼지창을 심벌로 하는 중산국이란 존재가 북경 근처에 있었고... 당연히 오랑캐 이족으로 구분되었죠..
태행산이나 시안이나 영하회족자치구.. 오르도스... 하란석의 돌은 무슨 색일지도 궁금하고..
그러나 가지못하니 다녀오신 분들 여행기를 자주 읽어봅니다
저도 북경에 어학연수 갔을 때(02년도) 생각이 절로 납니다ㅋㅋㅋ중국인들 차우려서 가지고 다니는 거 저도 따라했는데ㅋㅋㅋㅋㅋ
그리고 학생식당이 가격도 저렴하면서 이것저것 맛볼 수 있어서 참 좋았던 것 같아요
초반에 식당에서 먹기 그래서 기숙사로 가져가려고 따이조우 이 말을 선배에게 배워 수십번 연습했던 기억이 납니다ㅋㅋㅋ
덕분에 모처럼 추억을 되새겼습니다 감사해요^^
전 2007년도에 갔었는데 그때 분위기가 느껴질 정도로 글 잘 쓰셨어요! 옛날 생각 나네요~
저도 2004년 1년을 베이징에서 어학연수 했었는데 작성자님 글 읽으며 추억 여행 했네요. 그 당시의 우다코와 왕푸징, 후통거리, 학교 식당의 싸고 맛있었던 음식들...지금은 우다코도 왕푸징도 너무 많이 변해서 예전모습이 거의 남아있지 않아 더 아련하네요
동왕장 한 귀퉁이에서 2원짜리 지단삥 먹으며 행복해했던 그 시절이 참 그립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