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제국 시기 대신들의 수장인 의정 대신은 원래 조병세 라는 사람이었다.
근데 을사조약이 체결될 무렵 조병세의 나이는 79세였다.
(은퇴 좀 시켜 줘요!)
물론 고기를 좋아하신 대왕님 등쌀에 87세까지 은퇴하지 못한 황희 정승이 있긴 했지만 그건 예외고
조병세는 74세 때 의정 대신에서 물러났는데
을사조약 체결 때까지 굳이 새로운 의정 대신을 임명하진 않았음
경애하는 블랙 팬 서께서 최고의 타격감을 선사하며 쫒겨난 뒤에
2인자인 국무총리였던 황 그 분이 잠시 대행을 했듯이,
의정대신이 물러난+공석인 상황이라 대신들 중 2인자인 '참정대신'이 그 대행을 맡게 된다.
을사조약 체결 당시에는 8명의 대신이 있었고
우리 모두가 잘 아는 매국 삼관왕 그랜드 슬램인 '그 쓰레기'를 비롯한 다섯 놈이 찬성을 했다.
장지연은 그 유명한 시일야방성대곡을 써
다섯 쓰레기를 욕했는데, 그 외에도
'명색이 참정대신으로 정부의 수석인 주제에 단지 반대했다는 이유로 책임만 피해 가려는 건가.
무슨 면목으로 2천만 동포를 보려 하느냐.'며 깠다.
(정작 본인은 결국 변절한다.)
그럼 그 참정대신은 대체 뭘 했던 걸까?
고종 42년 11월 17일, 을사조약이 체결된 날, 고종실록의 첫 번째 기사는
'한일 협상 조약을 체결하다'
두 번째 기사는
'의정부 참정 대신을 파면한다'
'의정부 참정 대신은 황제의 지척에서 행동이 온당치 못하였으니, 우선 본 벼슬을 면직시켜라'
왜 하필 '그 날', 참정 대신은 황제의 지척에서 행동이 온당치 못했던 것일까?
매국 3스택 그랜드슬램을 달성한 '그 쓰레기', 이완용의
변명문 겸, 자기를 욕하는 자들을 벌주라는 상소문에서
우리는 참정 대신의 행적을 대충이나마 볼 수 있다.
(물론 이완용의 '변명문'이 출처임을 감안하자.)
참정대신 : 우리 황제 폐하께서 협상하여 잘 처리하라 하셨는데, 우리 8인은 모두 반대한다.
(고종은 승인을 거부하고 '논의해서 처결하라'며 넘긴 상태였다)
안중근 의사의 '과녁'
'그래? 그럼 황제가 협상하라 했으니 된 거 아니냐. 왜 반대하냐? 황명을 어기는 거 보니 넌 꼭 잘려야 겠다. ㅎㅎ'
참정대신 : 그래? 덕분에 기분이 참 불편해졌다. 난 참석 안 할 거다.(참정대신 없이 해보든가)
참정대신이 자리를 뜨려 하니 주변 대신이 말려서 다시 자리에 앉게 된다.
과녁 : '찬성이야 반대야?'
참정대신 : '반대.'
과녁 : '아니 반대하는 이유가 뭔데?'
참정대신 : '설명이 필요하냐? 반대.'
과녁 : (시발) '그래, 반대. 다음 너는?'
탁지부대신 민영기 : '반대'
과녁 : '절대 반대임?'
민영기 : '반대.'
과녁 : 알겠다. 반대. 다음 너는?
법부대신 이하영 : '우리가 외교에 미숙해서 이런 일이 생겼다는 건 알겠다. 하지만 어떻게 이걸 찬성하냐? 반대임.'
과녁 : '니네가 외교에 미숙한 거 인정했으니 찬성임. 아무튼 찬성임.'
과녁 : '아무튼 찬성임.'
대부분의 자료에서 이하영을 '소극적 반대'라고 표현하는 이유가 이것.
나머지 뒤에 다섯 쓰레기는 생략함.
반대하자 약속해 놓고 통수치는
다섯 쓰레기의 트롤링에 어이가 털린 나머지 참정대신은 눈물을 보이고
과녁은 왜 우냐며 조롱한다.
이후 다른 대신들이 조약의 세부사항을 논의하는 과정 중에 참정대신은 탈출을 시도한다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는지 고종한테 직접 알리려 시도한 것.
이완용은 변명문에서
'참정대신이 피신하고자 하여 머리에 갓도 쓰지 않은 채 폐하 계신 곳에
뛰어들어가다가 일본인에게 발각되어 곧바로 다시 들어왔습니다.'라고 적고 있다.
왜 하필 '그 날' 참정대신이 '황제의 지척'에서 행동이 '온당치 못했는가?'
왜 참정대신은 '그 날' 황제의 지척에서 행동이 온당치 못했다는 핑계로 잘렸는가?
(참정대신 한규설)
을사조약을 반대한 민영기나 이하영이 결국 변절하여 일본의 작위를 받는 동안,
참정대신 한규설은 끝까지 일본의 작위를 받는 것을 거절했다.
대신들 중 가장 서열이 높은 의정대신이었었던 조병세는
79살의 노구로 을사조약의 체결에 반대하는 시위를 주동했다.
조병세와 함께 반대 상소를 주동했으나
결국 을사늑약이 통과되자 민영환은 자결했으며,
조병세는 79세라는 나이에도 불구하고 유서를 남긴 채 마지막으로 반대 시위를 하러 한양에 올라왔다가
일본군에게 쫓겨나자 음독으로 자결했다.
이완용은 변명문에서 '조약을 막지 못한 건 여덟 대신들 중 수석인 한규설 때문이다' 라고 적었다.
'조약 종이를 찢지도 못했고 일본인들을 쫓아내지도 못했으니, 찬성한 다섯 사람들과 다를 게 없다'고 한다.
을사조약에 찬성한 건 본인이었으나, 아무튼 책임은 을사조약에 반대했던 참정대신 때문이다.
과연 매국 3스택 그랜드슬램 달성은 보통 멘탈로는 할 수 없나 보다
머리 하나는 존.나게 잘 돌아가네 새끼
한규설이 제일 깨끗한 사람이었단 거네.
현재 나베가 욕하는 사람은 다 정상이고 괜찮은 사람들인것처럼.
뿅뿅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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뿅뿅같다
한규설이 제일 깨끗한 사람이었단 거네.
현재 나베가 욕하는 사람은 다 정상이고 괜찮은 사람들인것처럼.
ㅆ이이이반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