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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보다 나이 어린 아버지의 은혜

군대를 또래들 보다 3년 정도 늦게 가니
좀 불편하긴 했다.  
그래서 구타가 일상인 80년대이니
나이 값 하라고 맞기도 했다.  
겨울 전방은 진짜 추웠다. 마음도 몸도 하루하루 고달펐다.  
요즘에도 있는지 모르지만 신병 적응을 위해
후견인 제도가 있었다.
보통 아버지 아들 이렇게 불렀다.  
내게 배당된 아버지는 소대 최고의
실세인 식기당번이자
만능운동선수 이상병이었다.
전라도 어디쯤 섬사람이고 나보다 한살 아래였다.
실세 아들 이등병에게 아버지는 먹을 거 챙겨주고
마음을 보듬어 주었다.
밤새 별이 쏟아지는 GOP에서 초소근무 콤비로
옛날 이야기하며 밤을 지샜다.
 
나는 적응이 좀 힘들어 사고도 많이 쳤는데
그때마다
나를 감싸고 보호해 줘서 오죽하면 아버지 믿고
까분다고 맞기도 했다.  
휴가 가는 나를 위해 군복에 칼날같은
줄을 잡아주던 그는
결국 나보다 1년 반 정도 먼저 제대하고 나갔다.
연락처를 소중하게 간직했지만 결국 제대 후
그와의 연락은 되지 읺았다.
늘 첫사랑 처럼 보고 싶은 아버지는 제대한지
25년만에 만났다.
지금은 공무원이 된 바로 윗고참이 어떻게 알고
내게 연락했고
나는 제일 먼저 아버지를 찾았다.
착하고 성실한 그는 무얼 하고 있늘까?
두근거린 마음을 안고 부산에서 출장가는 길에
서울 종각 커피숍에서 그를 만났다.
하하하하하. 사람 좋은 그가 구수한 사투리를
써가며 웃었고
우리는 뜨겁게 해후했다.
 그는 목사가 되었다.
가난한 수도권 교회. 역시 그답게 살고 있구나.
착한 공장 노동자였던 그가 어떤 영적부름을 받았는지
무교인 나는 잘 모르겠지만
아직도 사람들의 마음을 치료하는 일을
꾸준히 하고 있다고 느꼈다.  
그날 나는 커피와 밥으로 
은혜에 보답한다고 했지만  
갚을 길은 멀고 멀다.
아직도 세상을 살아가는데 힘이 되는 아름다운 추억이다.

댓글
  • 알파곤 2019/03/10 11:08

    내 아버지 이상병은 나를 처음 본 날 이렇게 말 했다.
    “여동생 있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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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살찐소설가 2019/03/10 11:09

    사람들이 글의 멋짐에 대해 이야기하는 것은 이런 글 덕분일겝니다
    따뜻한 사람 아름다운 마음 향기로운 추억이 이렇게 좋은 글을 통해 다른 사람들에게도 깃드니까요
    일요일 아침 좋은글 감사합니다

    (0n5Fkv)

  • 봄빛한가득 2019/03/10 12:56

    우린 후견인은 아니고 1년 위 고참이 아버지 군번이었는데
    전 아버지가 없었습니다
    첫 혹한기 때 제 밑에 두 명이 있었는데 복귀해서 내무실 정리한다고 청소하려는데
    2달 후임이던 제 아래 녀석들을 아버지 군번이 PX로 데려가고 혼자 남아 걸레를 빠는데 어찌나 서럽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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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칼리소나 2019/03/10 14:01

    제가 선천적으로 아부를 안하는 성격이었음...
    자대 배치를 받았는데 1년 선임...일명 아버지군번....그사람이 딱히 뭐 대단한것도 없었고 지 성질만 드러운 사람이었음..
    근데 아부를 너무 좋아하더군요 ㅋㅋ
    성질이 잘하는건 칭찬하고 못하는건 무덤덤하게 힜는데..
    그 선임 잘하는게 없었습니다...-ㅂ-;;;;;;;도저히 아부를 못해서 찍혔죠 ㅋㅋㅋ....
    그 어린놈들이 모여서 뭐하겠습니까 시기 하고 질투하고 편가르고..
    어른스럽지 못한 행동들이 많이 이루어 지더군요.
    학생때 버릇 어디 못가는지 따돌릴려고 별짓을 다하더군요.
    나중에 안돼니까 폭력에 살해협박까지 ㅋㅋ....
    저도 어렸던터라 세상에 처음겪어보는 개짓거리들이라 놀래서 깨갱 했죠.
    한 몇달 지나니까 별거아니더군요.
    그뒤론 그냥 져줬습니다 그래그래 내가 다 잘못했다.
    근데 제가 일도 잘하고 군생활도 잘하고...
    그러니까 지가 더 스트레스 받아하더라구요 ㅋㅋ..
    제가 유일하게 하나 못했던게 장단지가 두꺼워서 그런지 달리기를 잘 못했음..
    그걸로 갈구더군요. 도저히 빠르게 달려지질 않는데 저도 그건 스트레스 였음...
    자처해서 저녁먹고 달리기 연습하고...
    근데 또 그래버리니 그거말곤 또 없었어요.ㅋㅋㅋ
    애초부터 작전들어가서 퍼지기는 커녕 선임들이랑 같은 페이스 유지하고...
    행군도 아무렇지 않아..
    일은 일대로 잘해...
    결국 전역할때까지 저 깔꺼리만 찾더니
    마지막까지 유치한 짓을 하고 가더군요.
    전역자 선물을 하는데
    그걸 전역날 본부대기 하고 전역하는데 그걸 놔두고 갔더군요 ㅋㅋㅋ...
    그리고 본부대에 있는 사람들한테
    후임병이 너무 ㅄ짓서리해서 군생활 내내 고생했다고 억울하게 영창갈뻔 했다고 ㅋㅋㅋ
    그녀석 돈이 들어간 선물 더러워서 안가져 간다고 ㅋㅋ..
    간부가 듣고있는데도 그리 말하고 진짜 쓰레기 통에 버리고 갔다더군요.
    본부대 간부가 우리소대 간부한테 말했고
    우리소대 간부는 뭘 어떻게 준비했길래 남한테서 그런 소리가 나오냐고 역정아닌 역정을 내고.....
    근데 분명히 간부도 우리가 군생활 참 잘한다는걸 보고 있었거든요?
    그래서 그냥 전역자 선물을 이제부터 하지말자고 내부 정리하고 아무런 문제 없이 넘어갔죠..
    인간이 어떻게 까지 될 수 있는지 참 어린나이에 느꼈던 기간이었어요..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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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옆에앉아도돼 2019/03/10 15:03

    예전 우리 아버지도 군대때 후임 찾고 싶다면서 인터넷에 글좀 올려달라고 하시곤 했는데 ㅎㅎ
    혹시 중앙대 약대 다니셧고, 50년대 초중반생에
    군생활중에 김형X 하사 아시던 분 안계신가요
    지금은 돌아가셧지만 지금이라도 찾아 드리고 싶음 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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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장건달 2019/03/10 20:16

    내 아버지란사람 첫마디가 "가진거 돈밖에없다 필요한거 있음 얘기해 "ㅋㅋ 집이 압구정동 현대아파트에 아부지가 개인병원장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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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뿌뿌 2019/03/10 21:23

    글이 담백한데 몰입감 최고네요;;
    혹시 작가십니까?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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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태평양 2019/03/10 21:43

    전역한지 15년이 지났지만
    아버지라는 놈을 다시만나면 참혹하게 죽여버릴 자신이 있다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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