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양옥/秦良玉
(생몰 1574년 ~ 1648년)
만력제 즉위 원년인 1573년에 3남 1녀 중에 셋째로 출생하였으며 유일한 딸이었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하며
당시 봉건사회에서는 드물게 여성의 몸임에도 학문과 무예를 닦았는데 그 성취가 남달랐다고 한다.
由來巾幗甘心受
유래건괵감심애
何必將軍是丈夫
하필장군시장부
아녀자도 고난을 기꺼이 하려는데
어찌 장군이 장부여야만 하리오
진양옥/秦良玉
(생몰 1574년 ~ 1648년)
만력제 즉위 원년인 1573년에 3남 1녀 중에 셋째로 출생하였으며 유일한 딸이었기 때문에 사랑을 받고 자랐다고 하며
당시 봉건사회에서는 드물게 여성의 몸임에도 학문과 무예를 닦았는데 그 성취가 남달랐다고 한다.
由來巾幗甘心受
유래건괵감심애
何必將軍是丈夫
하필장군시장부
아녀자도 고난을 기꺼이 하려는데
어찌 장군이 장부여야만 하리오
70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장수로서 활약하여 사병 3천을 이끌고 반란군의 공격으로부터 사천성을 지키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며 성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들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늙어서 병약해졌기 때문에 낙향하였으며 1644년에 이자성이 명의 수도인 북경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북경을 방어하였지만 명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으며, 이후 남명 정권에 망명해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반란군과 싸움을 계속하다 1648년에 사망했다.
오긔누나 조아양
참고로 진양옥과 관련된 유적도 있는데
문화대혁명때 조각만 남아버림
명나라가 말하고 남명정권의 융무(隆武) 2년(1646)에 청군(清軍)이 베이징을 함락시키고 남하할 때에 진양옥의 나이는 이미 70세를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명 융무정권에서 태자태보(太子太保), 충정후(忠贞侯)로 봉해지고 명나라를 지키기 위해 계속 힘썼다. 그러나 정지룡이 반란을 일으켜 융무제마저 잡혀가자 더 이상 나라를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베이징 교외의 완서우산(萬壽山)의 만수채(萬壽寨)를 거점으로 삼아 항거하다가 1648년 5월 21일에 병사하니, 향년 75세였다.
참고로 싸우다 죽은거 아님
당시 기준으로 겁나 장수하다 죽음
그래서 뭘 했음?
그래서 뭘 했음?
70세의 나이가 될 때까지 장수로서 활약하여 사병 3천을 이끌고 반란군의 공격으로부터 사천성을 지키는 등 연전연승을 거두었으며 성도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이들을 토벌하였다.
그러나 늙어서 병약해졌기 때문에 낙향하였으며 1644년에 이자성이 명의 수도인 북경을 공격한다는 소식을 듣고 상경하여 북경을 방어하였지만 명나라가 멸망하는 것은 막을 수 없었으며, 이후 남명 정권에 망명해 칠순의 노구를 이끌고 반란군과 싸움을 계속하다 1648년에 사망했다.
참고로 진양옥과 관련된 유적도 있는데
문화대혁명때 조각만 남아버림
명나라가 말하고 남명정권의 융무(隆武) 2년(1646)에 청군(清軍)이 베이징을 함락시키고 남하할 때에 진양옥의 나이는 이미 70세를 넘었다. 하지만 여전히 남명 융무정권에서 태자태보(太子太保), 충정후(忠贞侯)로 봉해지고 명나라를 지키기 위해 계속 힘썼다. 그러나 정지룡이 반란을 일으켜 융무제마저 잡혀가자 더 이상 나라를 지키기 어렵게 되었다. 하지만 그녀는 굴하지 않고 베이징 교외의 완서우산(萬壽山)의 만수채(萬壽寨)를 거점으로 삼아 항거하다가 1648년 5월 21일에 병사하니, 향년 75세였다.
참고로 싸우다 죽은거 아님
당시 기준으로 겁나 장수하다 죽음
ㅋㅋㅋ 홍위병 아니었음 잔다르크급 인기였을듯
진짜 저정도 전과면 뽕찰만 하겠는데, 명의 마지막 장군 이러면서
심ㅈ어 낙향했다가 노구에도 나라 지키려고 오고 ㄹㅇ 멋지네
홍위병이 이것도 날렸대? 걔들은 진짜 눈에 뵈는 게 하나도 없었구만
곧 페그오 전신타이즈짤 올라오겠군
그럼 안올려야지
하...새끼 천잰데?
오긔누나 조아양
량누님 조아
그렇구나
간혹 저런 여성 장군들이 나오긴 하는구나
한편으론 여성의 공적을 인정해준 왕도 대단하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