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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금사랑없는 사람들의 사랑이야기. (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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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막에도 꽃은 피겠지만, 모든 일을 시작하기 전에는 가능성을 따져봐야 한다. 1퍼센트의 확률에도 도전은 가능하겠고 로또를 구입하며 허황된 꿈도 꾸겠지만, 필요한 노력과 한정된 시간의 가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침대에 누우면 보이는 익숙한 천장의 무니들을 바라보며 이런저런 생각들로 시간을 채웠다. 


 그럭저럭 직장생활을 견디며 중간관리자의 입장이 되면, 처리해야 할 일들을 입체적으로 구성하는 일에 익숙해진다. 페이퍼에 나열한 도식이나 그래프로는 도무지 설명하기 어려운 일들이 생기기 때문이다.


 계획하는 일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을 평면에 나타낼 경우 생기는 오해를 최소화하고, 가치의 수준이나 방향 그리고 결과물에 대한 변수를 표현하려면 입체적인 게 좋다. 물론 컴퓨터로도 할 수 있는 일이지만, 타인에게 설명이 필요할 경우에나 사용하는 편이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내가 내릴 결정을 위해서 내 머릿속에 저장해야 할 일이라면, 내 방 천장에 사고를 입체적으로 형상화하는 편이 낫다. 


 쉽게 해결이 가능한 일이나 좋은 아이디어는 천장에 쉽게 형상이 그려졌다.


 필요한 형상을 만드는 대신, 천장의 격자무늬 사이사이에 체스 말을 옮기고 지우기를 반복하다가 작은 자동차들의 레이싱까지 했다. 가끔 떠오르는 민효정의 가슴까지 떠올리고는 침대에서 일어났다.


 아무것도 떠올리지 못했다.



 어느새 캄캄한 밤이었다. 일어나 방에 불을 켜려다 그냥 스탠드의 불만 켰다. 샤워를 하는 것도 좋겠지만, 그냥 간단히 세안만 하고 셔츠를 골랐다. 깃이 짧은 셔츠를 만지작거리다 깃이 긴 셔츠를 골랐다. 자주 입지 않는 스키니 한 바지를 골라 입고, 약간의 포인트가 있어 조야해 보일 수 있는 벨트를 했다. 


 머리칼을 드라이하다말고 왁스를 적당히 발라 넘겼다. 넥타이를 고르다 그만뒀다. 평소에는 차지도 않던 시계를 차고, 회사에는 입고 나갈 일이 없을 재질의 재킷을 걸쳤다. 


 잠시 거울을 바라보며 고개를 이리저리 돌리다가, 약간의 향수를 손목에 뿌려 뒷목에 스쳤다. 조금은 과하다는 기분이 들어 점잖은 스타일의 넥타이를 고르려다, 대신 도수가 없는 안경들 중에 뿔테를 골랐다. 


 휴대폰의 충전상태를 확인하고 모범콜택시를 호출했다.


 서랍에서 현금을 꺼내 지갑에 넣고 카드들을 확인하며 포켓에 넣었다. 재킷의 단추를 잠그고 마지막으로 담배와 라이터를 챙겼다. 라이터의 가스가 충분한지 튕겨보고 주머니에 넣었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내려가니, 이미 콜택시가 도착해 있었다. 



 “기사님. 미터기 눌러주세요. 담배 한 대만 태우고 갈게요.”


 “예. 천천히 태우세요.”



 담배를 다 피우고 탔더니, 기사님이 여태 미터기를 누르지 않았다. 기사님이 출발시키자마자 몇 번 들렀던 클럽의 매니저에게 전화를 걸었다. 젊은 친구들이 드나드는 그런 클럽이 아니라, 가끔 필요한 vip거래처에 대한 영업용 클럽이다. 



 [아니. 부장님 주말에 어쩐 일이세요?]


 [일 때문에 가는 게 아니라. 나 혼자 그냥 놀러 가는 거예요. 조용히 놀려고요]


 [아~ 힐링이 필요하시구나? 어떻게 시작하시겠어요? 대화? 카드? 식사부터 하실래요?]


 [식사는 됐고, 소소한 놀이터 있어요?]



 클럽 매니저는 나를 부장님으로 불렀다. 전에 부장님이 나를 차 부장이라고 소개했고, 나는 사실 과장이라는 얘기를 해줬는데도 그냥 부장님으로 부르고 있다. 매니저가 작은 놀이터는 없고 작은 공원이 하나 있다고 했다. 테마파크 급은 절대로 아니니까 안심하라는데, 직장인에게는 공원도 부담스러웠다. 


 일단 알았다고 곧 도착한다며 전화를 끊었다.


 적당히 늦은 시간이라 길이 막히지 않았다. 요금이 만 원 정도밖에 나오지 않았지만, 현금으로 2만원을 드리고 택시에서 내렸다. 소소한 시작이다. 마중 나온 매니저에게는 5만 원짜리 두 장을 팁으로 건넸다. 



 “택시 타고 오셨어요?”


 “직장인 차로 이런데 오긴 좀 부담스러워서”


 “에이~ 다음부터는 미리 말씀해주시면 차를 보내드려요.”


 “그래요? 그건 몰랐네요.”


 “공원 이용하시는 분들에게는 제공됩니다. 가실 때 말씀해 주세요.”



 매니저를 따라 들어간 방에는 여자 한 명과 남자 둘이 카드를 돌리고 있었다. 이곳의 룰에 따라 딱히 인사를 건네거나 할 필요는 없었다. 그저 조용히 내 자리에 앉아 순서를 기다리면 된다. 한 판에 내 월급이 왔다 갔다 하고 있었다. 


 이곳에 올 때마다 신기한 건데, 사람들이 줄담배를 피우고 있어도 방에 냄새도 고이질 않았다. 환기가 얼마나 잘되기에 이럴 수 있는지 신기했다. 그럼에도 시끄럽지도 않았다. 이 정도의 시설을 갖출 수 있다면 다른 건물들에서도 실내흡연이 가능하겠다. 


 가벼운 칵테일과 함께 내 몫의 칩이 도착했고, 내 앞에도 카드가 놓였다. 


 대화는 전혀 없었다. 카드가 돌고 배팅을 하고 칩이 오고간다. 잔이 비면 누군가 다가와 술을 채웠다. 선글라스까지 쓰고 있는 중년의 여성은 담배를 꽤 자주 피웠고, 내 또래로 보이는 남자는 탁자에 자주 기대는 편이었다. 노년의 남자는 자신의 카드에 시선을 오래두지 않았다. 어느새 내가 가져온 담배를 다 피웠고, 누군가 같은 담배를 조용히 가져다줬다.


 내 또래로 보이는 키 작은 남자가 먼저 일어났다. 키가 작은 건 그가 일어나고 나서야 알았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년의 여성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노년의 남자가 처음으로 말했다.



 “게임으로 갈까요?”


 “신사분과 게임은 부담스러운데요. 손님을 받을까요?”


 “그럼 저는 됐습니다. 젊은 분인데, 좀 즐기셔야죠.”


 “감사합니다.”



 이제부터 좀 잃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노년의 남자가 먼저 일어났다. 그가 나가고 매니저가 들어와 칩을 회수하며 말했다.



 “공원은 될 줄 알았는데, 그냥 좀 큰 놀이터였죠?”


 “내가 월급쟁이라는 게 티가 나나? 신사분이 판돈을 늘리지 않더라고”


 “아. 그분은 원래 그래요. 누가 덤벼야 좀 크게 만드시더군요.”


 “흠. 다들 소소하긴 했어요.”



 세 시간 만에 내 월급의 세 배쯤 벌었다. 이쪽으로 직업을 바꾸는 것도 괜찮겠다. 내가 도박에 재주가 있는 것 같은데, 이곳을 처음 가르쳐준 부장님은 아니란다. 언제라도 멈출 생각을 하고 있는데다 한계를 정해놓고 있기 때문이란다. 그게 얼마나 어려운 건지도 내가 모르니까 따는 거란다.


 어쨌든 나도 그 위험을 알기 때문에 정말 그럴 생각은 없다. 일단은 돈을 벌었으니 좋은 곳에 쓰기로 했다. 


 매니저를 따라간 커다란 홀에는 사람들이 삼삼오오 모여 대화를 나누며 술을 마시고 있었다. 남자들 중에 나보다 어려보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고, 여자들은 전부 젊었다. 아까 그 중년의 여성은 어디로 갔을까. 아마도 다른 층에 있겠지. 그 홀에는 젊은 남자들로 가득할까? 상상을 그만두기로 했다.


 바에 앉아 술을 주문하고 기다리니, 젊은 여자가 다가와 옆에 앉아서 내가 먼저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네. 뭐 안녕하세요.”


 “기분이 별로 좋아보이진 않네요? 전 차준호.”


 “아. 예. 전 강보람. 뭐~ 본명 맞아요.”


 “저도 본명이에요.”



 내가 피식 웃으며 바텐더에게 술을 받아 마셨다. 강보람이라는 여자도 술을 받아 마시고는 나를 물끄러미 바라봤다. 입술을 오물거리는 게 무슨 할 말이 있는 것 같아서 기다렸다. 강보람은 뭔가 생각하는 것처럼 천장을 바라보다 내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여기 뭐하는 곳이에요?”


 “뭐 그냥 술 마시고 대화를 나누고 그런 곳이죠?”


 “흥. 제가 여기서 노는 대가로 얼마나 받는지 알아요?”


 “아~ 네 뭐. 저 같은 남자들이 어디서 젊은 여자 분들을 쉽게 만나지는 못하니까요. 네. 뭐 그런 곳이죠. 처음 나오신 거예요?”


 “아뇨. 두 번째인데~ 사실 지금도 적응이 안 돼요. 뭐랄까~ 참. 그런데 오빠는. 아~ 오빠라고 불러도 돼요? 매니저는 누구누구 씨라고 부르라던데~ 어색해서”


 “편하게 하세요.”


 “아니, 오빠는 이런데 오지 않아도 괜찮을 거 같은데요? 그냥 밖에서 오빠가 나 꼬셨어도 넘어갔겠는데”


 “그런 말을 해주라는 교육도 받나요?”


 “에이~ 진짠데~”



 강보람이 주변의 눈치를 조금 보더니, 내게 속삭였다. 



 “아니. 진짜. 오늘 저랑 놀면 안 돼요? 제가 잘 할게요. 아우~ 진짜 이런 말 하지 말라고 했는데, 지난번에 나왔을 때 완전 변태들한테 걸렸거든요.”


 “어떤 변태들에게 어떻게 당했는지 얘기해주면 그럴게요.”


 “헉. 오빠도 변태에요? 여긴 변태들만 와요?”



 내가 웃으며 술을 마시니까, 강보람이 안심한다는 표정으로 입술을 쭉 내밀었다. 꽤 귀여우면서도 야한 얼굴이었다. 얼굴에 야하다고 쓰여 있는 것 같다. 크고 둥근 눈동자에 코가 조금 낮지만 그래서 더 귀여워 보이고, 입술은 적당히 도톰해서 야했다. 그보다 몸매가 대박이다. 


 지난번에 나와서 무슨 꼴을 당했는지 몰라도, 몸매를 상당히 감추려고 애쓴 흔적이 있었다. 그럼에도 가슴이 상당하다는 게 드러날 정도였다. 민효정을 떠올리게 하는 가슴이다. 



 “보람 씨. 저 6개월 동안 여자랑 안했어요.”


 “헉. 오빠 진짜 변태에요?”


 “아뇨. 하고 싶지 않아서 안했어요.”


 “와~ 어떻게 그래요? 어디 아파요?”



 웃지 않으려고 했는데, 또 웃음이 나왔다.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말했다.



 “네. 아파요. 마음이 아파서요.”


 “아~ 좋아하는 사람이 생겼구나? 그런데 그 사람이 안 해주는 구나? 슬프네요.”



 이젠 그냥 소리 내서 웃기로 했다. 참으려 했더니 배가 아픈 것 같았다. 내가 큭큭거리며 웃고 있으니까, 강보람도 피식 웃으며 다시 말했다.



 “그럼 결국 포기하고 오늘 하고 싶어서 여기 온 거예요? 흠~ 이게 나한테 행운이야. 불행이야?”



 숨이 막힐 것처럼 웃겼다. 웃음이라는 게 일단 터지기 시작하면, 별로 대단한 게 아니더라도 계속 웃게 되는 거긴 해도 지금은 정말 힘들 정도로 웃겼다. 좀 더 웃다가 간신히 진정하며 말했다.



 “아뇨. 오늘도 할 생각은 없어요. 그냥 좀 생각이 복잡해져서 스트레스를 풀려고 왔어요.”


 “그래요~ 그럼 입으로 해줘요? 아~ 죄송해요. 너무 싸보였죠? 하아~ 매니저가 그러지 말라고 했는데~ 오빠가 6개월이나 안했다고 하니까요.”



 내가 너무 크게 웃었나보다. 다른 사람들까지 우릴 보고 있었다. 좀 창피해서 내가 일어나니까 강보람도 같이 일어나며 말했다. 



 “지금 같이 올라가요?”


 “그럴래요?”


 “네! 잘해드릴게요. 아.......또 너무 싸 보이죠?”



 정말 얼마나 잘하는지 궁금했지만, 일단은 좀 더 웃어야 했다. 엘리베이터에서 기다리는 매니저에게 팁을 주고, 매니저에게 키를 받아 매니저가 눌러주는 층으로 올라갔다. 


 좋은 방이었다. 전망도 좋았고 벽에는 엄청 큰 tv가 달려 있었다. 강보람은 방에 들어오자마자 포도를 집어먹으며 말했다.



 “먼저 씻어도 돼요? 아~ 안한다고 하셨지.”


 “씻고 싶으면 씻어도 괜찮은데~ 그냥 여기 와서 좀 한 잔 하실래요?”



 강보람이 와서 앉기에 내가 잔에 술을 따라 건네며 말했다. 



 “그~ 여자한테 사랑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솔직해야죠.”


 “아~ 그렇군요. 그러네요. 그런 단순한 걸 떠올릴 생각도 못했어요.”


 “솔직하게 말해요. 너 때문에 내가 6개월 동안 못했다고요! 그럼 감동할 거예요.”



 다시 웃기로 했다.






 계속.


댓글
  • 쿨케이 2019/01/31 13:24

    강보람이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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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불러용 2019/01/31 13:25

    강보람은 첫 등장인건지...
    재밌게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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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1/31 13:26

    오늘도....... 간신히 시간에 맞췄어요. 뭔가 오기가 생기네요. 시간을 지키고 싶은 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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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Justice 2019/01/31 13:27

    오오 급격히 럭셔리한 장소에서의 전개 ㅎㅎㅎㅎㅎㅎㅎ
    혹시 저기가 승리가 운영하는 클럽인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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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1/31 13:30

    4Justice// ㅋㅋ 그 사건 때문에 이런 내용이 등장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하겠네요. 아~ 이야기하는데 외부 환경에 너무 많은 영향을 받고 있어요. 좀 쓸데없는 거 같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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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린왕자73 2019/01/31 13:45

    결말로 향해 간다면서, 등장인물이 늘어나면....
    너무 좋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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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량 2019/01/31 13:46

    시간 정말 잘 지키시네요...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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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1/31 14:19

    참. 강보람은 첫등장이 아닙니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거 같아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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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Justice 2019/01/31 14:54

    강보람 기억나죠 ㅎㅎㅎ 박해진의 중학교 동창? ㅎㅎㅎ
    26편에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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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4Justice 2019/01/31 14:55

    NorthWind// 아닙니다. 창작의 고통이 얼마나 힘든지 아니까 그 어떤 무언가에서로부터 영감을 얻을 수 없다면 상관없습니다. 그냥 아무 의미없이 언급한 내용이니 편하게 글 쓰시면 되시겠습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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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백살 2019/01/31 15:24

    강보람이 누군지 찾아봤네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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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잔존사념 2019/01/31 17:07

    아... 강보람까지 나오는건가요 ㅎ 흥미진진합니다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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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순수 2019/01/31 18:00

    노량진의 그녀!!
    오늘도 감사히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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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1/31 18:10

    기억들 하시는구나~ 괜한 걱정을 했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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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불러용 2019/01/31 21:32

    이제야 강보람 기억 났습니다.
    차과장 부럽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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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란제리 2019/01/31 23:17

    [리플수정]유예1
    정신을 차려보니 도시의 야경이 한 눈에 보이는 전망 좋은 방이었다. 고개를 들어 뒤를 보니 아까 그 변태넘이다. 그럼 밑에 있는 이 넘은 머지? 생각해보니 내 처음도 이랬다. 전학 온 학교에서 처음 당했을 때부터.. 지금 까지 기억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정상적인 관계는 해진이 밖에 없었나? 아니다 그넘도 변태였다.
    보람이 스토리 기대하겠습니다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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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NorthWind 2019/01/31 23:56

    란제리// ㅋㅋㅋㅋㅋㅋㅋ 아 진짜 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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