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세기에 벌어진 스웨덴의 '비스비 전투지'에서 발굴된 2000여구의 유골로 만든 부상 데이터.
1361년 7월 여름
현 스웨덴 고틀란드 섬에 있는 '비스비' 도시는 세금문제로 인하여 덴마크의 왕 '발데마르 2세'의 군대와
충돌하게 된다. 왕의 군대에 맞서 가난한 농민들은 집 창고에 꿍쳐둔 바이킹 시절 조상님의 찰갑과 검,
방패로 왕의 군대에 맞서 싸워야했다.
물론 결과는 농민군의 대패배로 끝난다.
발굴된 유골의 상태를 보면 투구와 갑옷으로 보호되는 머리와 몸통에는 상처가 없지만
갑옷으로 막지못하는 팔과 허벅지, 다리, 정강이를 집중적으로 베여 사망한 걸 알 수 있다.
'비스비'의 농민병들은 전쟁의 전문가인 왕의 상비군과 계약 용병들에게 허벅지의 동맥 부위를 주로
공격당했고 매우 깊숙히 베인 것을 알 수 있다. 이정도 상처면 그자리에서 쇼크로 사망할 수 있는 수준이다.
이는 중세시대 갑옷과 방패로 무장한 군대들이 어떻게 싸웠는지를 알 수 있는 자료라 할 수 있겠다.
그러니까 팬티라인 드러내는 여성용 갑옷은 쥐약이라는거구만...
무기에 인분 발라놓으면 파상풍으로 스쳐도 뒈짓
기사들은 갑옷연결부로 검 찔러 넣으려 졸라 개싸움했겠네
그러니까 팬티라인 드러내는 여성용 갑옷은 쥐약이라는거구만...
갑옷과 투구의 필요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