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도 있구요.
만주라 불리던 그 지역을 댓번 가보고 나서 몇가지 상념을 적어 봤습니다.
1.길림성의 수도 장춘의 공항에 내리기 전 창밖에 보이는 너른 들판은
정말 왜 이곳이 만주벌판인지 느끼게 됩니다.
끝없이 펼쳐지는 옥수수밭의 장관도 그렇고 고속철을 타면 지평선과 붉은 밭들의 향연들...
왜 중국의 중앙정부와 일본제국이 그토록 이 땅을 호시탐탐 노렸는지 어느정도 알수 있을 거 같아요.
여진족,만주족의 땅...
2.너무 너무 추워서 미칠 것 같아요.
2월 말에 갔었는데 마이너스 23도. 이런 제길...;;;
난방은 주로 라지에터로 하는데 방에 들어가면 바람이 없어 그런가 따듯합니다.
한편으로는 이 삭풍에 독립운동이며 농사짓던 한민족 생각에 숙연해지기도 합니다.
암튼 너무 추워요.ㅠㅠ
3.침을 너무 뱉으니까 그 고두심 여사 나오던 영화에서 알고보니 해녀였다는 설정이 나오잖아요.
워낙 지저분해 보이고 침을 자주 뱉어 싸니까 거시기했는데
나중에 워낙 먼지바람이 많이 부는 걸 보고 조금은 이해하게 됐습니다.
4.한류 덕에 웬만한 슈퍼에는 한국 소주와 라면이 늘 있습니다.
정말 놀란 건 울나라 커피숍 브랜드랑 제주 찜찔방 뭐 이런 것도 있고
GS25 짝퉁도 봤습니다.
조선족이 하는 한국마트에는 식당도 같이 하는데 짜장면은 영 아니더라는....
5.20대 친구들 빅뱅,여자친구 정도는 기본이고 한국말 몇마디도 잘합니다.
우리가 홍콩영화에 빠질때 따거!! 씨부~ 뭐 이랬던 거 처럼.
6. 저는 칭따오에 양꼬치와 훠궈를 너무 좋아하는데 훠궈도 지역마다 틀리고
꼬치집은 양꼬치 말고도 이 세상 대부분의 먹거리를 모두 구워 주대요.
허어~~~~존맛!!
8.중국사람들이 녹차가 든 물병과 작은 휴지 갖고 다니는 이유를 보름만에 깨달았습니다.
일단 식당에서 물과 차,그리고 냅킨을 안주는데다 화장실에도 휴지가 없는 경우가 많아서 두가지는 저도 필수로 갖고 다녔습니다.
그리고 역시 남방 북방 과일이 모두 모이는데다 너무 싸고 맛납니다.야호!!!
9.백두산 관광 맘에 들게 갔다 온 분들도 계시겠으나
저는 3년전 현지 여행사 싸게 갔는데 처음부터 끝까지 개판이었습니다.
멍멍이 밥에 막장 민속촌까지 다시는 가고 싶지 않은데
'민족의 영산'이 뭔지...
그리고 5월 초에 가도 눈 때문에 천지는 커녕 폭포 앞에서 사진만 찍고 옵니다.
되도록 여름 초가을에 가시길 권합니다.
10.북방은 체면,맛대가리 없다 뭐 그렇게 남방과 비교하지만
뭐랄까 정비되지 않은 날 것의 느낌과 침엽수림과 드넓은 지평선이 아직도 저는 매력적입니다.
더 생각나면 2탄을...^^;;;
이런썰 너무 좋아요 ㅎㅎ
그 평야에서 농사는 주로 어떤작물을 하는지 궁금합니다. 그리고 이러한 개안적 관점에서 여행관찰기 참 좋아합니다.
요거 생각했는데 ㅋㅋ 그래서 한자를 써 놓으셨구나 ㅋㅋ
기본 4~5시간 이동, 침대기차에 지평선 끝까지 심어진 옥수수를 보고 첨엔 감탄했다가 나중엔 중국의 넓이와 인구(요녕성에만 4000만이라고 들었습니다.)에 질리고 공포마저 느꼈죠. 그 다음으로는 이런 중국 옆 반도에서 살아남은 한민족의 대단함을 느꼈구요. 백두산은 백번 올라가면 두번봐서 백두산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운좋게 한번에 봐서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 추억입니다.
진짜 중국 다움? 스러움?은 남쪽보다 북쪽에서
많이 볼수있죠 ㅎㅎ
우리민족과의 유사성은 이제 많이 사라진 지역으로 봐야하지 않을까요?
발해가 926년에 망했으니 우리의 땅이 아닌지 1,000년이 넘었습니다. 고조선~고구려~발해로 이어지던 우리의 땅이었지만 현재 동북3성의 절반정도만 강역이지 동북3성 전체도 아니지요.
또한 한민족이라는 개념도 신라의 삼국통일에 이르러야 만들어지기 시작한 개념이고, 사실 고구려와 발해는 대놓고 다민족국가였죠.
조선족이 많이 사는 이유는 일제때 일제의 박해를 피해서 간 사람이 많아서이고 조선족 자치구라는 연변도 사실 조선족보다 한족이 훨씬 많습니다. 그리고 연변 자체도 동북3성중 아주 작은 일부일 뿐이죠.
만주벌판에 대한 욕심을 숨기지 않는 분들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
이런글 너무 좋아요! 드넓은 땅과 옥수수밭 지평선? 보고싶었는데 사진이없어서 아쉽네요;
생활속의 참 정보 좋아요~
근데 7번은 어디다 흘리셨나요 ㅎㅎ
50대와 20대가 어울려 함께 한류를 즐기는 만주의 모습이 참 정겹네요
40년대 전쟁말기 일본에서도 징집에 다 동원하다보니 식량생산량이 급감하고 그래서 한국에서 나는 쌀은 다 가져가다시피 했습니다.
그럼 한국인은 보리 밖에 먹을게 없는데 그것가지고는 살수가 없죠.
그래서 만주에서 실어 가져온 것이 콩깻묵입니다.
만주에서 나는 콩을 짜서 나오는 기름은 군사용으로 사용하고 남는 찌꺼기를 가져다 한반도에 푼거죠.
그런데 기름만 빼고난 찌꺼기를 그 긴 거리를 실어왔으면 어떤 상태겠어요?
부패하고 상하고 곰팡이까지 나 있었죠. 그래서 일단 훑어내고 무조건 삶아먹어야 했지요.
한국인들은 그걸로 2,3년 정도 먹고 살았습니다.
그래도 베트남 같은 동남아 쪽과 비교하면 그나마 상황이 나았죠.
그 쪽은 식량은 쓸어가면서도 그런 대체식량도 안만들어줘서 수십만명이 아사했으니까.
그리고 한국에서는 일본인들이 손대지 않는 보리가 있었듯이 만주에서도 옥수수가 있어서 콩은 뺏기더라도 그걸로 주식량을 삼았죠.
어느 책에서 읽은 건데....
만주에 일본군으로 끌려간 한국인이 탈영을하고 벌판을 헤매다가 어디서 너무 좋은 냄새가 나서
가보니 집바깥의 아궁이에 노란 죽이 끓고 있더랍니다.
그때 만주 중국인들이 옥수수를 먹는 방법이 옥수수를 아주 장시간 푹 끓여서 죽으로 만들어 먹더랍니다.
그걸 훔쳐먹으려다 중국인 주인한테 들켰는데 그 중국인은 오히려 들어오라 하더니 그 죽을 주더라고...
옥수수죽이 어떻게나 그렇게 달고 맜있는지 그때 처음 알았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