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미에 허덕이는 딜레마 (부제: 잘 찍은 사진 한장만)

아침 눈 뜨면 회사, 집에 들어가면 육아.
밥 먹듯이 반복하는 삶을 살아가는 평범한 30대 끝나가는 아재 입니다.
그래도 그나마 다르다면, 남들보다는 취미로 사진생활 20년 정도 해 오고 있는데, 실력은 미천하여 말할 것이 없으나 열정 하나만큼은 놓칠 않고 있지요.
허나 생각해보면 여기에서는 이정도 사진에 대한 열정은 또 평범한 아재로 전락 ㅠㅠ
"잘 찍은 사진 한 장"
극히 공감하는 철학입니다.
카메라 후면 LCD로 잘 나온 사진에 기분 실~ 좋아졌다가,
컴퓨터로 옮겨 모니터로 봤더니 또 만족!
욕심나서 디테일 살려보려고 부단히 애쓰다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혼자만의 인생샷을 만들었다며 뿌듯해 하는 그런 소소함이 좋네요.
이렇게만 하면 좋으련만.. 현실은 1~2년째 사진 찍고 저장장치에 백업만 해 두는 것도 버겁네요.
철학으로 따지자면 양보다 질. 현실은 질보다 양.
카메라 든 제 모습을 발견한 저희집 아이들은 일단 아빠와의 장난을 '도망가기', '얼굴 안 보여주기'로 시작합니다.
얼마나 애들이 카메라를 안 봐주냐면... (중략, 눈물 나려구 그래서...)
그래서 찰나를 놓치지 않기 위해 거금을 들여 SONY A9을 샀습니다.
칼초점, Eye-AF, 초당 20연사... 쥑입니다. 캬~
분명 이 카메라는 아빠용 카메라 맞습니다.
스포츠용, 프래스용보다 하이레벨... 아빠용!
컴퓨터로 사진 Select 하는 것도 기분 좋습니다.
다만, 이게 하루이틀 쌓인게 아니라 1~2년치가 쌓이니 이제는 감당이 안 됩니다.
한달에 찍은 장수는 보통 3000~5000컷.
수십 장 중에 한 장 골라내는듯 합니다.
그렇게 선택된 사진이 한 달에만 300장은 족히 넘어갑니다.
그걸 또 나름 A컷과 B컷으로 구분하고 하나하나 라이트룸으로 보정 들어갑니다.
나름 A컷은 포토샵을 넘나들면서 보정하고, B컷은 라이트룸으로 대충 밝기랑 화밸만 손보고 후딱 넘어갑니다.
참.. 동영상이 빠졌네요. 영상은 컷컷 잘라내고 이어붙이기만 합니다.
이제 대망의 Export.
그리고 구글포토에 업로드 하고 와이프랑 지인들에게 공유합니다.
A컷 중에 A컷(=S컷)은 한 달에 한 장 나올까말까 합니다.
즉, 철학을 들이대면 저는 99%는 "잘 못 찍은 사진 수백장"을 위해 시간을 허비합니다.
그래놓고 시간 없다고 말하고 있죠.
수년째 열어보지도 못한 사진이 버겁게 느껴집니다.
누굴 위해서 하는게 아니고 저 취미로 제가 좋아서 하는데도 부담을 느끼고 있는거죠.
제가 말한 저 Process로 사진을 창조해 내고.... 제일 중요한 것, 느긋하게~ '잘 찍은 사진 한 장을 꺼내 커피 마시면서 미소를 머금고 과거를 회상하며 낭만을 즐긴다"는 감상 시간은?
아, 이쯤되면 주객전도 된 느낌.
B컷과 A컷의 Select 기준을 낮추면서 과감히 버릴건 버리는 마인트 컨트롤을 했음에도 그 버리지 못하는 욕심 때문에...
저를 이리 비참한 사진가로 만드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무겁지만 짐을 버리지 못하고 걸어가는 배낭여행가의 그런 모습.
저와 같은 분 계시면 만나뵙고 쐬주나 한잔 캬~ 하고 싶네요.
혹 누군가 저의 고민을 해결해 주신다면, 또 만나뵙고 절이라도 할지 모르겠네요.
사진을 본격적으로(?) 관심 가질 즈음에 같이 의견을 주거니받거니 하신 분들 중에 몇분은 이제 다들 스타 사진강사로 유명해지셨네요.
그 분들이나 찾아가면 저 기억도 못 하실텐데..
잠시 이야기가 샜네요.
그런 분들 사진 오랜만에 찾아보니,
제 사진은 잘 찍은 '한 장' 없는 것 같아 유독 시리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