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하면 유교의 영향으로
성교육이 없었을것만같다.
하지만 지금의 초~중학교 과정이라볼수있는
논어를 떼고나면
보정(保情)이라고하는 성교육 과목을 교육했다.
보정(保情)이라함은 '본성을 지키다'
라는뜻으로 성관계에 있어서 인간의 본성과 법도를 지키며 해야한다는것이다.
짐승처럼 성욕이인다고 길가에 아낙네들을 겁탈해서는 안되는것처럼 말이다.
내용은 주로 나이대별 권장 성관계횟수
자식을 많이볼수있는 성관계하기 좋은날
임신하기 좋은자세등
시대상을 고려햇을때 꽤 구체적인 성교육이었다.
여기까지만보면
에이~~~~
그래도 지금처럼 좀 고리타분하네~~
싶을것이다.
지금이랑 비교되는 조선시대 성교육의 가장 큰 차이점!
조선시대 성교육의 마무리는 바로 춘화였다.
그렇다. 왕족 양반 평민 할거없이
성교육의 마무리는 춘화를 통한 교육이었다.
명분은 올바른 성관계를 위한 참고자료였고
모르면 뒷구멍(?)에 삽입을 한다던가하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함이었다.
(특히 왕족은 어려서부터 성관계시 충격을 완화하기위해 춘화를 통해 성교육을 하였다.)
이 그림은 조선의 유명한 화가였던 금흥도의 작품중 하나이다.
무려 여자2+남자1 의 성관계라는 충격적인 그림이다.
김훙도도 그릴만큼 조선시대 당시 춘화는 널리보급된 성교육자료(?)겸 성인물이였다.
한국이 성인물을 불법으로 규정하고 단속하는걸 보고
지금이 조선시대냐 라던가 유교꼰대라던가 X선비 라는 말을 많이 사용하지만
이는 조선을 모욕하는 말이다.
조선시대당시 성기가 묘사된 춘화들은 불법이 아니었다.
심지어 이를 이용해 성교육까지 가르쳤다.
앞으로는 조선만도 못한 한국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도록하자 ^^
유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니까 ㅇㅇ
조선보다 못한 나는 뭐지
원시인인가
이거 한국인 평균내면 저정도 얼추 나오지 않을까?
우리는 20대에 한번도 못하지만 누군가는 하루에 5번도 할거아니야
군바리 새끼들이 다 조져놓은거지
ㄱㅊ 장기하같은 인싸들이 하루에 두번씩 해줘서 균형이 맞음
유교가 문제가 아니라 사람이 문제라니까 ㅇㅇ
군바리 새끼들이 다 조져놓은거지
조선보다 못한 나는 뭐지
원시인인가
고조선인 이요
단군왕검 만세!
이거 한국인 평균내면 저정도 얼추 나오지 않을까?
우리는 20대에 한번도 못하지만 누군가는 하루에 5번도 할거아니야
쟤들은 결혼한 상태를 전제로 하는 거잖아
근데 20대에 결혼한 상태로 3, 4일에 한번이면 진짜 목석급 아닌가
그때는 수명이 짧아서 더 했어
ㄱㅊ 장기하같은 인싸들이 하루에 두번씩 해줘서 균형이 맞음
아니지 짐승이지
야칸 수컷은 암컷을 쳐다도 못보고 죽는 그런 짐승
ㅜㅜ
...마늘과 쑥 먹기 전...;;;
장기하가 왜?
옛날에 자기는 하루에 두번씩 해야한다고 말힌적 있거든. 마녀사냥이란 프로에서 였나? 아이유랑 한창 사귈때얐던걸로 기억함
아이유랑? 아주 개불놈이네
천천히 고려 부터 확인하면서 내려가면 되지 왜 이리 급하게 내려가?
아마 우리는 조선의 개방에 속해있지 않았을까
일단 저때는 10대에 아내를 가졌으니깐 20대부터 열심히 할 수 있지
원시인은 더 많이 했어. 알고보면 먼 미래에서 온 걸수도 있음. 그땐 부랄이 필요없이 출아법을 통한 생식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 아이유랑?
조선시대엔 사지 멀쩡한데 결혼 안하고 있는 백성이 많으면 그 고을 수령 인사고과 감점인 걸로 아는데
금?
하긴이순신 장군도 5썸을 즐기셨으니
근데 성종집권 당시 어우동 죽인건 왜임?
어우동이 고발당해서 잡혀왔을때 관료들은 그냥 어우동을 간통죄로 처벌하려고했음.
유부남들과 관계를 가졌기 때문에
하지만 조사결과 왕족들도 다수가 연관(구멍동... 큼큼;)되어 있자
그 때문인지 성종이 강상죄(삼강오륜을 범했다는 죄인데주로 하극상일때 적용햇던 무거운벌)
를 적용하라고 압박해서 사형을 당했다고함.
단순히 성에 엄격해서 그랬다고 보기엔 어려움
왕조국가라 한계가 있구만
음주가무 여자 좋아했던 임금으로 들었는데 말이지..
남자들도 간통죄가 적용되어 곤장형을 받아야하지만
처벌받지않고 넘어간것 역시 왕족들이 다수 연관되어있어서라고 봐야함.
그들을 처벌하면 왕족들도 처벌해야하니까
왕족이 간통죄로 처벌받는건 성종 자신의 위신과도 관계가 크기 때문에
왕족들도 많이 걸렸잖아....간통죄로 처벌하기에는 왕족 위신이 걸린 문제였기에
사실상 그것만 없었으면 사형까지는 안당했을 확률이 높음
지금의 성적인 것을 금기시하는 풍토는 유교라기보다는 미국으로 건너오면서 변질되고 한반도로 들어오면서 또 변질된 미국식 기독교에 있다고 봐야 함.
포경수술도 마찬가지고.
하긴 그게 유교 문화일리가 없지 그 난리를 거치면서 유교 문화는 다 파괴됫는데 막상 유교유교거리는 ㅅㄲ들 보면 사서삼경이나 아는 사람 드뭄
저때 양반들은 부인이 둘이상이니.. 2:1 자주했을거같다..
국까새끼들이 선비 이미지를 개판으로 만들어서 그렇지
여노비도 무진장 많이 건드렸을꺼 같은데
보니까 사당패 이 마을 저마을 다니면서 매춘도 같이 했다고 들은
글고보니 의외로 당대 재판논의 중에 그거 있더라. 여노비가 겁탈 당하기 직전에 저항하다 칼로 양반 찔러죽인 사건 있었는데 양반이 씹새끼네 하는 식으로 논의가 진행되던.
사노비 같은 경우 관아까지 가는 경우는 많지 않았을거라 보는데 사료가 있나 궁금
이 사례를 조선왕조 실록에서 봄.
가끔 심심하면 뒤적거려서ㅋㅋ
관노임?
기억상 이 때 다른 사유로 재판 받았던 범죄자는 수년만에 탈주한 노비 잡으러 왔다가 아직도 내가 니 노비로 보이냐고 일갈하고 죽을 때 까지 전 주인을 두둘겨 패서 죽인 자도 있었슴. 정확한 년도는 기억 안나네
사노 였을껄? 처벌해야 한다 입장측에선 그래도 주인장인데 어쩌고 했던걸루 기억하는데, 좀 흐릿하네.
관노는 생각보다 인간적인 대우를 해준걸로 아는데 사노비에 비해 적고 다수가 사노비인걸로 암
읽은 부분의 마지막 부분에선 재판결과는 다음 논의에서 진행하는걸로 한다 해서 결과는 몰라.
근데 여성들한테는 정숙을 요구한거 같은
열녀비도 그러한 예같고 ㅇㅇ
과부가 정조 지키는 경우가 흔치 않으니 열녀비 세워줬을테니, 우리 상상 이상으로 개방적이었던게 맞을 듯
조선 후기 기준이라면 맞음
인수대비 "내훈" 보면 초기부터 그러한거 같음
어우동은 왜 죽인건지 궁금하긴 함
상대방은 별다른 처벌이 없었다고 하던데
그건 오히려 유교 선비보다 동네 향리 같은 부류들이 더 요구함. 현대 사회랑 비교하자면 정부 지원금 타먹으려고 마을 단위로 멀쩡한 홀어미 하나 재혼길 막는 꼴이라고 생각하면 됨.
덤으로 조선의 여성 인권은 성리학의 영향력이랑은 별개로 조선의 경제가 발달하면서 약해지게 됨. 초기 조선에선 규모의 경제 개념이 없어서 장자에 재산 몰빵하는 사회 분위기가 없으니 상대적으로 가문 내에서 딸이 받는 대우가 아들에 비해 심하게 나쁘지 않았던 반면, 규모의 경제가 적용되서 장자한테 재산을 몰빵하는 게 이후 재산 유지나 확장에 유리해진 조선 후기 가면 딸이 태어나면 그것만으로 마누라가 죄인이 되는 분위기가 형성됨.
현재 한국에 남아 있는 악습의 대부분은 유교가 아니라 군사독재에서 비롯된 것
가장 대표적인게 연공서열
낮은 사람이 높은 사람을 존중하면 높은 사람은 낮은 사람에게 그 맞는 혹은 그 이상의 대우를 해줌
조선이 명을 사대하여 조공을 보내면 답례품으로 더 많이 퍼줌
현재는 낮은 사람은 걍 노예
웹툰 송곳에서 나온 코리안 스타일이란 군사독재 시절에 완성되어 지금까지 온전히 남아있음
해본지가 3년인 나는...
해보긴 했네
진짜 X도 모르면서
에베베베베 유교 탈레반 국가~~~
아이고 유교 10 선비들 나라 못 살겠다
하는 놈들 개극혐임............
진짜 못 배운 티를 온 몸으로 발산하는게 너무 역함.
조선은 알면 알수록 내가 슬퍼지네 ㅅㅂ...
김홍도한테도 커미션이 갔을까
심사임당만해도 남편하게 자기 죽으면 결혼하지말라고 한거보면...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