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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기영화 [죄 많은 소녀]를 보고 (1).. 환멸의 세상을 등지다 (스포 포함)
'김의석' 감독의 9월 개봉작,
[죄 많은 소녀 (After My Death)]를 보았습니다.
오프닝과 동시에 섬뜩한 비범함을 느꼈고
영화가 끝나자마자
별 다섯 개 만점을 부여한 이 걸작은,
'나홍진' 감독의 [곡성] 연출부의 일원이었던
김의석 감독의 첫 장편 데뷔작인데다
저예산 독립영화라는 점에서 충격을 더합니다.
어제 새벽, 인생 57번째
별 다섯 개 만점(왓챠 평점) 영화를 만난 흥분에
급하게 글을 써 장문의 리뷰를 약속드렸고
지금 그 약속을 지킵니다.
글은 매우 길어질 것이고
치명적 스포일러를 포함할 것이기에
가능한 한 영화를 보시고 리뷰를 읽어주신다면
더욱 고맙겠습니다.
오늘 리뷰 1부에서는
제 감상을 섞어 이 영화를 다시 읽어드릴 것이고
내일 리뷰 2부에서는
이 영화에 별 다섯 개 만점을 부여한 것에 대한
상세한 이유를 말씀드리겠습니다.
한 편의 영화를 두 번으로 나누어
리뷰를 쓰는 것은 처음입니다만
이 걸작은 그 정도 정성과 수고를 들일 만한
충분한 가치를 지니고도 남습니다.
우선 시놉시스.
"같은 반 친구 ‘경민(전소니)’의 갑작스런 실종으로
마지막까지 함께 있었던 ‘영희(전여빈)’는
가해자로 지목된다.
딸의 실종 이유를 알아내려는 경민의 엄마(서영화),
사건의 진실을 밝혀야 하는 김형사(유재명),
친구의 진심을 숨겨야 하는 ‘한솔(고원희)’,
상황을 빨리 정리하고 싶은 담임(서현우)까지
주변의 모든 사람들이 영희를 의심한다.
죄 많은 소녀가 된 영희는
이제 결백을 증명해야만 하는데..."
담임선생의 간단한 소개와 함께
혼이 빠진 얼굴로 반친구들 앞에서
의미를 알 수 없는 수화로 인사하는 영희,
그 인사에 혼이 빠진 박수로 응답하는 친구들을
보여주며 시작되는 이 영화는
시작과 동시에 영희를 궁지로 몰아 세웁니다.
그리고 이 오프닝은 영화의 후반부에서
다시 한 번 무섭게 변주됩니다.
사건의 중심이 되는 이 여자고등학교의 교실과
그 교실을 둘러싸고 있는 시공간은
지금 우리 사회의 단면을 나타내는
메타포의 시공간입니다.
딸의 자살, 친구의 자살, 제자의 자살에 대해
저마다 죄책감을 안고 있는 공동체 구성원들은
영희를 희생양 삼아 죄책감을 전가시키죠.
우리 모두에게 너무나 익숙한
현대판 마녀사냥이자 폭탄돌리기입니다.
자살한 딸의 사체를 수색하는 한강의 어느 다리로
텐트를 구매해 차에 싣고가던 경민의 엄마는
다른 운전자의 욕설에 운전을 하며 구토를 하고,
경민의 아버지는 학교와 경찰의 설득에
딸의 자살을 실족사로 처리하는 데 동의합니다.
딸의 명예를 위해서라 위장하지만
실은 보험금의 성공적 수령을 위한 것이겠죠.
영희와 경민의 관계를 질투하던 한솔은
결정적 침묵으로 영희를 배신하고
친구들은 영희의 집을 찾아가 집단린치를 가하죠.
영희의 편부는 친구들에게 구타를 당한 딸에게
처신을 잘하라 일갈합니다.
교장의 비위를 맞추는 데만 급급한 담임도
영희의 항변에 끝까지 귀를 닫습니다.
그런 그들 앞에서 영희의 결백은
생리통을 의심하는 보건교사에게
즉석에서 생리혈을 보여줌으로써 반증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었을 것이고
무력함에 절망을 더한 영희는 차츰 무너져 갑니다.
경민의 끔찍한 결단이 있던 그 날 밤,
경민, 영희, 한솔 사이에 있었던 일은
자세히 설명되지 않습니다.
플래시백이 수시로 남용되는 현재의 영화계 풍토에
길들여질 대로 길들여진 관객들은
오히려 그 날의 진실을 알려주는
플래시백을 원했을 지도 모르겠지만
감독은 그럴 의사가 전혀 없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 날, 한강의 어느 다리로 이어지는 듯한
터널을 지나가는 두 소녀들을
완벽한 침묵의 영상으로 묘사할 뿐이죠.
게다가 그 숏은 역설적이지만
너무도 아름답고 신비롭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경민이 왜 죽으려고 했는 지가 아니라
경민의 죽음 후에 어떤 일들이 벌어지는 지를
말하고자 하는 것이
이 영화의 주제이기 때문입니다.
영어 제목이 "After My Death"임을 상기합시다.
결국 경민의 사체가 발견되고 장례식이 치러집니다.
담임은 학생들에게 장례식 예절을 상세히 교육하고
경민의 넋을 달랜다는 명목 하에
장례식장에서는 무당들이 굿판을 벌입니다.
그 굿이 경민의 넋을 달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산 자들의 죄책감을 덜어내기 위한
위선의 의식임은 명백합니다.
영희의 마지막 항거는
김형사의 꾸짖음과 담임의 폭력으로 끝내 묻히고
'경민이는 내가 죽이지 않았어.
너네들이 틀렸어.'라고 적힌,
절규와도 같은 유서를 품에 안은 채
영희는 장례식장 화장실에서 음독합니다.
영희의 사실상 첫 번째 죽음입니다.
그리고 이 지점에서
신랄한 사회비판적 요소들로 가득했던 영화는
사실상의 전반부를 마무리하고
더 신랄하고 더 아픈 후반부로 진입하죠.
다행히(?) 영희의 자살시도는 실패로 끝나고
영희의 목과 배에는 두 개의 구멍이 뚫립니다.
그 두 개의 구멍과 잃어버린 목소리를 대가로
영희는 예수처럼 부활합니다.
영희의 사회적 명예는 극적으로 회복되고
그녀가 입원한 병실은
회개를 원하는 신도들이 찾는 예배당으로 변하죠.
친구들이 힘들게 분 풍선들로 예배당이 장식되고
영희를 저주하던 경민의 엄마는
자기 딸의 몫까지 살 영희의 모습을 지켜보는 건
병원비를 부담한 자신의 권리라고 주장합니다.
그리고 친구들 몰래 늦은 밤 홀로
영희의 병실을 찾은 한솔은
경민의 마지막 모습을 고백하며
자신의 침묵에 대해 용서를 구합니다.
목에 뚫린 구멍 안으로 한솔의 손을 넣는 영희,
격렬하게 영희의 입술을 탐하는 한솔...
자신의 부활을 끝까지 의심하던
사도(使徒) 도마(Thomas)의 손을
자신의 옆구리에 뚫린 구멍에 넣게 함으로써
부활에 대한 의혹을 불식시켰던 예수 그리스도...
사두개인들, 바리새인들과 다를 게 없는
세상 사람들에 의해 희생을 강요당했던 영희는
그렇게 그렇게
자신의 몸에 성서적 메타포를 체화함으로써
비로소 위선의 세상으로 귀환합니다.
그리고는 오프닝 시퀀스의 진실이 밝혀지죠.
영희가 몸으로써 말하는 수화의 진실이
자막으로 깔립니다.
"나는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여러분 앞에서 가장 멋지게 죽고 싶습니다."
영희를 위해 수화를 배운다고 가식을 떨며
인간의 불완전성을 설파하던 담임과
또 다른 죄책감을 마주한 아이들은 박수를 치죠.
소통의 완벽한 단절...
'박찬욱' 감독의 [복수는 나의 것](2002)에서
신부전증을 가진 청각장애인 류의 누나가
고통을 못이겨 쏟아내는 ㅅㅇ소리를 오인해
벽에 귀를 댄 채 ja위를 하던 옆집 양아치들을
혹시 기억하십니까?
대한민국 영화사에
아이러니를 이보다 더 잘 묘사하는 씬은
다시는 없을 것이라 예감했는데
그 예감이 깨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집단린치를 주도했던 '유리(이태경)'는
영희에게 또 다른 제물을 가져다 바칩니다.
또 다른 제물의 뺨을 모질게 내려치고는
다시 꼭 안아주는 영희.
심지어 '다솜(이봄)'은
담임을 모함하는 투서를 교장에게 보내고
자신의 뺨에 스스로 칼을 댐으로써
광신(狂信)에 앞장섭니다.
딸의 이름으로 장학금을 만들고 싶었으나
아이들에게도 치유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교장에게 거부를 당한 경민의 엄마는
영희에게 좋아 보인다며 조소합니다.
영희의 마지막 결단이 다가옵니다.
최후의 증인, 한솔과 함께 경민의 엄마를 찾아가죠.
경민이 평상시 가고 싶어했다는 레스토랑에서의
불편하고 긴장된 최후의 만찬...
죽은 경민을 비난하며 신경을 긁는 한솔의 말에
애써 감추고있던 경민 엄마의 위선은
마침내 그 바닥을 드러냅니다.
"너희들도 빚이 있잖아.
넌 경민이 도움으로 살아난 거야."
남아있던 모든 힘을 다해 애끓는 소리로
영희가 답합니다. 한 줄기 눈물과 함께...
"그 날 경민이가 나한테 다 말해줬거든요.
너무 이해가 돼서 말릴 수가 없었어요.
나만 말릴 수 있었어. 내가 말렸어야 했어.
한 번 죽어봤더니 알겠어요.
내일이면 내가 왜 죽었는지 사람들이 물어볼 거야.
그 이유나 잘 대답해 주세요."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진실의 민낯 앞에서
경민 엄마는 무딘 나이프로 겉옷을 마구 찌르며
자해합니다. 부릅 뜬 두 눈으로...
그 날의 터널을 다시 걸어가는 경민의 뒷모습을
카메라가 숨을 죽인 채 쫓아갑니다.
그 날은 둘이었지만 지금은 혼자입니다.
잠시 멈춰 서서는
돌아볼 듯 돌아보지 않는 경민...
세상이 죄 많은 그녀를 버리는 게 아니라
죄 없는 그녀가
이제 환멸의 세상을 버립니다. 영원히...
(내일 비슷한 시간, 리뷰 2부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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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양한 스틸사진들과 함께 읽고 싶으시다면...
http://m.blog.naver.com/hixxhim/221377038881
죄송한데 2부도 지금 쓰시면 안되나ㅇ...ㅋㅋ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시간이 안맞아서 못보고 있었는데, 어제 11시 40분에 딱 한번 있길래 부랴부랴 영화관가서 봤네요
개인적으론 좀 뻔하다고 생각해서.. 영희와 한솔이 병원씬은 특히요. 5점 준 이유가 궁금해서 2부 빨리 보고싶네요 ㅎㅎ
리뷰 잘 봤습니다
기다리고있었는데 리뷰잘읽었습니다
다시생각해도 수화부분장면은 소름돋네요
쑈쌩크아톰// 그 씬을 뻔하다고 보셨군요... ㅠㅠ 영희와 한솔의 사실상의 O스이자 희생양 영희가 예수로 환생하는 시점을 포착한, 기적의 씬이라 생각했는데... 2부 리뷰도 이만큼 길 겁니다. 죄송하지만 기다려주십시오.
이만희// 그 씬은 2부에서 상세히 말하겠지만 감독의 모든 내공이 집약된 어마어마한 씬이죠. 리뷰 기다려주시고 읽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늘 잘 공유하고 있습니다.
감사합니다.
arong 2// 길고 지루할 수도 있는 리뷰 읽고 공유해주셔서 제가 더 감사드립니다.
나의 죽음을 완성하러 왔습니다 앞에 나는 여러분이 그토록 원하던?이었나요 아무튼 그 부분 수화 마치고 이어지는 학생들의 박수.... 정말 소름 끼치는 장면이었습니다. 리뷰 잘 읽었습니다, 2부 기다리겠습니다:)
[리플수정]정성글 잘 봤습니다. 어리둥절하게 했던 첫 장면이 이후 자막과 함께 그 의미가 드러나는 장면은 오래 기억될 명장면이 아닐까 싶네요. 너희들의 이해는 어차피 기대도 하지 않고 그저 내가 원하는 바를 이루겠다는 주인공의 태도는 섬뜩하면서 안타깝기도 하고요. 2부도 기대하겠습니다~ ^^
동나무// 이런... 치명적인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그것도 가장 중요한 대목에서...ㅠㅠ 정확한 지적 너무도 감사하고 2부 리뷰 열심히 쓰겠습니다;
EnoKid// 항상 응원해주심을 너무도 잘 알고있습니다. 더욱 좋은 글로 보답하겠습니다.
앗앗 아직보지못했기때문에 패스합니다ㅎ 나중에영화보고꼭읽어보겠습니다
좋은글감사합니다
까미유비단// 네. 매우 훌륭한 영화입니다. 꼭 보시고 들러주세요.^^
2부 기다리겠습니다.
다만 영화 보면서 이런 생각은 들더라고요.
'수화를 아는 사람이 이 영화를 봤다면 전반부터 많은 걸 감지하고 보겠구나'라고.
2부까지 한번에 읽겠습니다.
처음 이 영화를 소개해주셨을때 감독 필모를 봤더니 혁명전야님께서 서두에 적어주셨듯이 곡성의 연출부였다라는 것이 젤 먼저 눈에 띄더라구요
일단 서두부분만 읽었고 이 영화를 2부까지 소개할 정도라니...
오프닝부터 섬뜩한 비범함은 느꼈다는 말씀과 인생 57번째 별 다섯개 만점이라니....
와~~진짜 어떤 식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영화일지 궁금함을 넘어 벌써부터 맘이 설레네요
이번주 안으로 봐야 될거 같아요..
근데 iptv는 기간이 넘나 짧아서 아쉽네요...꼴랑 이틀이라니...ㅎㅎ
암튼 또 한번 충격과 설레임의 소용돌이에 빠질 생각을 하니 마냥 행복할 뿐이네요
항상 좋은 영화 추천해주셔서 감사드려요!!!
새롭게 시작한주도 잘 보내시고 일욜 편안한 밤 되셔요!!!
루피&루피// 저도 그 생각해 보았답니다. 오히려 더 섬뜩했을 것 같네요.
flythew// 새벽 1시쯤 2부 올리겠습니다.
안녕요정// 곡성이 주는 분위기가 아주 강합니다. 우선적으로 꼭 보시고 같이 느낌과 생각 공유할 수 있었음 좋겠습니다. 냥이들 보낸 슬픔 잘 극복하시길 바래요...
혁명전야//와~~곡성이 주는 분위기가 아주 강하다라는 말씀에...저정도의 영화일지는 생각도 못했습니다!
아예 무슨 영화인지도 분위기도 모르는데 곡성의 분위기라니!!!
엄청난 충격을 받았네요!!!
아무래도 이게 곡성에서 연출을 맡아서 영향을 받은거인가 하는 생각도 들고요
넵...아깽이들에 대해 걱정과 격려 해주셔서 진심 또 진심 감사드립니다...ㅠㅠㅠ
[죄 많은 소녀 리뷰 2부]
http://m.blog.naver.com/hixxhim/221377580406
영화를 아직 못 본 상태라서 추천만 드립니다.
혁명전야님이 걸작이라고 평가하신 이 영화를 꼭 보고나서 리뷰를 감상하도록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독고탁만세// 안녕하셨죠. 넘넘 훌륭한 영화입니다. 꼭 보시고 들리셔서 리뷰까지 읽어주십시오. 행복하시구요...
혁명전야// 네 알겠습니다.
영화 이야기는 아니지만...요즘 감기 환자가 무척 많아졌습니다.
따뜻하게 지내시고 감기 걸리지 않도록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독고탁만세// 걱정해주셔서 고맙습니다. 독고탁님께도 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