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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제의 마지막 왕인 의자왕의 진실.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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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23번5선생 2018/09/11 16:41

    신라가 백제 정복 후 정당성을 내세우기위해 의자왕을 3000이나 되는 궁녀를 둔 호색한으로 기록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 헬조선명탐정 2018/09/12 16:40

    사비성이 함락될 당시 궁녀를 비롯한 수많은 아낙들이 투신자살을 선택했을 거고
    그 수를 3천으로 과장한 것.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3천으로 과장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삼천갑자, 비류직하삼천척(폭포높이) 등등.

  • OldGuy 2018/09/12 17:05

    의자왕 즉위 초인 642년, 당시 선덕여왕 통치 중이던 신라 대야성을 공격해서 대야성 성주(김품석)와 그 부인(고타소)이 죽는데 성주의 부인인 고타소가 바로 김춘추의 큰 딸이었습니다. 사서에 따라 기록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김유신의 동생인 문명왕후(문희)와 결혼하기 이전 원래 부인에게서 얻은 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김춘추가 매우 총애한 딸이었는데, 윤충 장군의 백제군 공격으로 죽었습니다. (대야성주 김품석이 부하 중 검일이라는 인물의 부인이 용모가 출중한데 욕심을 품고 강제로... 그래서 열받은 검일이 대야성 성문을 엽니다.) 이 일로 김춘추가 백제, 특히 의자왕에 대해서 이를 갈게 됩니다. 삼국의 통일을 향한 대의.. 어쩌고 하지만 실은 이 이유가 중요한 배경이 아닌가 추정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결국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무열왕(김춘주)은 다음해인 661년에 죽지만 뒤를 계승한 아들 문무왕과 그 후손들에 의해 의자왕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 평가가 가해진게 아닌가.. 하는 거죠.
    뭐, 그런데 사실 의자왕 본인의 잘못도 있긴 있습니다. 본문 글에도 나오듯 '해동증자'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성품이 바르고, 즉위 초에는 신라를 압도할 만큼 능력이 뛰어나고 내정개혁과 군제의 정비를 이루어냈지만.. 멸망 5년전인 655년에 은고라는 젊은 여인을 왕후로 맞이하면서부터 의자왕이 많이 망가집니다. 이전의 총명과 재기 대신 아들 20명이 넘는 아들들을 모두 백제 최고위 관직인 좌평에 임명시키고 나중에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비판할 정도로 상당히 사치향락으로 망가져요. 국방과 국사는 내팽겨치고.... 그렇다고는 해도 3천 궁녀를 둘정도로 아주 심각하게 망가진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역사 기록은 승자가 유리하게 쓰여지지요. 그런 영향이 좀 있습니다. 재위기간 총 20년 중 15년은 좋은 군주였으나 후반 5년 동안의 문란을 많이 부각시킨 사례지요.

  • 혠바보 2018/09/13 16:39

    근데 이름부터가 의자왕이라 몬가 야해보이는건어쩔수가읍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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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쌀떡 2018/09/13 16:49

    주로 의자에서 O스하나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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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그래서장자연은 2018/09/13 17:01

    ㅇ동 장르좀 바꾸세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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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혼술마니아 2018/09/13 17:02

    그럼 박혁거세는 불쌍한 왕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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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쿠로사키23 2018/09/13 17:48

    @혼술마니아 아놔,,, ㅋㅋㅋ 님 좀 센스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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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헬조선명탐정 2018/09/14 16:40

    사비성이 함락될 당시 궁녀를 비롯한 수많은 아낙들이 투신자살을 선택했을 거고
    그 수를 3천으로 과장한 것.
    동양에서는 전통적으로 3천으로 과장하는 것들이 많습니다.
    삼천갑자, 비류직하삼천척(폭포높이) 등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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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흑법사 2018/09/14 18:08

    키는 9척 장신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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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부안군수 2018/09/15 16:40

    단순하게 부러웠는데 진실을 알고나니 존경해야될 인물이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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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23번5선생 2018/09/15 16:41

    신라가 백제 정복 후 정당성을 내세우기위해 의자왕을 3000이나 되는 궁녀를 둔 호색한으로 기록했다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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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멍청이 2018/09/15 18:10

    저도 그 설을 조금더 신뢰하는데요. 무왕때 부터 신라와 전쟁을 많이 한걸로 알아요. 때문에 의자왕이 즉위하자마자 신라의 성이란 성은 다 함락시키고있었고, 겨우 당나라와 연합으로 백제를 함락시키면서 의자왕을 개쓰레기로 만들어야 했지 않았을까 싶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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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달려라개구리터보 2018/09/16 16:41

    식민사관이 박정희를 만나 국사로 업그레이드..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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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쪽빨차사면개쉑 2018/09/16 16:42

    쪽발이 쉑들 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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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티모볼 2018/09/16 16:43

    식민사관. 한민족이 조상과 역사를 부끄럽게 생각하고 조선은 망할만했다고 비하하고 스스로 왜놈이되게 하려는 세뇌작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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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타OI 2018/09/16 16:44

    개쪽빠리친일파차주는 쪽빠리친일파 현재진행형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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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궁화의눈물 2018/09/16 16:45

    백제의 제31대 마지막 왕 의자왕(義慈王)의 성은 부여(扶餘)이고, 이름(諱)은 의자(義慈)입니다.
    백제 31대 왕으로서 의자(義慈)는 휘(諱;임금의 이름)로서, 그는 왕의 시호가 없습니다. 무왕(;재위600-641년)의 맏아들로 태어나 632년(무왕33) 태자로 책봉되었습니다. 641년 3월 무왕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즉위하였습니다. 효성과 형제애가 지극하여 해동증자(海東曾子)라 일컬었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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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한가로운영혼 2018/09/16 16:53

    백제 역사중 350년 도읍지가 한성입니다.
    그 한성의 위치를 못 찾는게 말이 안된다 생각합니다.
    왕의 계보는 다 있습니다. 다만 수도의 정확한 위치를 모르는게 이상할 따름이죠.
    누구는 풍수지리가 좋은 서울 경복궁, 누구는 경기도 광주, 누구는 풍납토성.
    충남 천안에 백제 왕들의 무덤이 많아서 여기도 후보로 올라가 있죠.
    백제의 수도 한성의 위치는 어디일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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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주마니드림 2018/09/16 17:18

    지금은 한강유역이 위례성이라는 것이 거의 정설로 굳어지고 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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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폼롤러데굴데굴 2018/09/16 17:24

    풍납토성으로 거의 확실시 된걸로 아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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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8센티안되면 2018/09/17 16:55

    삼천궁녀가 사실이면 시호를 정자왕이나 정력왕으로 했것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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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봉지속꽁치 2018/09/17 16:56

    식민사관은 아니지만, 솔직히 궁예도 뭔가 이상해.. 왕건의 쿠테타 명분을 위해 우리가 아는 폭군 궁예가 됐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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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유베다 2018/09/17 17:46

    역사는 승자가 왜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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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도적고월급도적고 2018/09/18 16:57

    안마의자 cf 때문에 의자왕하면 바디프렌드가 먼저 생각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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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파한조각 2018/09/18 18:06

    ㅋㅋ 그러게요 그럼 거기는 식민사관을 근거로 cf를 만들었군요 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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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ldGuy 2018/09/19 17:05

    의자왕 즉위 초인 642년, 당시 선덕여왕 통치 중이던 신라 대야성을 공격해서 대야성 성주(김품석)와 그 부인(고타소)이 죽는데 성주의 부인인 고타소가 바로 김춘추의 큰 딸이었습니다. 사서에 따라 기록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으로는 김유신의 동생인 문명왕후(문희)와 결혼하기 이전 원래 부인에게서 얻은 딸로 알려져 있습니다. 그래서 김춘추가 매우 총애한 딸이었는데, 윤충 장군의 백제군 공격으로 죽었습니다. (대야성주 김품석이 부하 중 검일이라는 인물의 부인이 용모가 출중한데 욕심을 품고 강제로... 그래서 열받은 검일이 대야성 성문을 엽니다.) 이 일로 김춘추가 백제, 특히 의자왕에 대해서 이를 갈게 됩니다. 삼국의 통일을 향한 대의.. 어쩌고 하지만 실은 이 이유가 중요한 배경이 아닌가 추정하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결국 660년 백제를 멸망시킨 무열왕(김춘주)은 다음해인 661년에 죽지만 뒤를 계승한 아들 문무왕과 그 후손들에 의해 의자왕에 대해서는 상당히 부정적 평가가 가해진게 아닌가.. 하는 거죠.
    뭐, 그런데 사실 의자왕 본인의 잘못도 있긴 있습니다. 본문 글에도 나오듯 '해동증자'라는 별명을 들을 만큼 성품이 바르고, 즉위 초에는 신라를 압도할 만큼 능력이 뛰어나고 내정개혁과 군제의 정비를 이루어냈지만.. 멸망 5년전인 655년에 은고라는 젊은 여인을 왕후로 맞이하면서부터 의자왕이 많이 망가집니다. 이전의 총명과 재기 대신 아들 20명이 넘는 아들들을 모두 백제 최고위 관직인 좌평에 임명시키고 나중에 김부식이 삼국사기에서 비판할 정도로 상당히 사치향락으로 망가져요. 국방과 국사는 내팽겨치고.... 그렇다고는 해도 3천 궁녀를 둘정도로 아주 심각하게 망가진 건 아닌데, 기본적으로 역사 기록은 승자가 유리하게 쓰여지지요. 그런 영향이 좀 있습니다. 재위기간 총 20년 중 15년은 좋은 군주였으나 후반 5년 동안의 문란을 많이 부각시킨 사례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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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제헌아빠 2018/09/19 17:26

    김부식의 삼국사기 신뢰성이 상당히 떨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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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OldGuy 2018/09/19 18:03

    @제헌아빠 그게... 일제에 맞서기 위해 민족 정신을 고취시키고자 자주성을 중시한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평 때문에 상당히 부정적인 평가가 그동안 있었습니다만, 최근엔 김부식의 삼국사기와 김부식의 가치관에 대해서 재평가가 활발합니다. 김부식은 여진족의 금나라에 의하여 송나라가 멸망당하던 시기에 중국을 직접 다녀왔던 인물이고, 그래서 이자겸이 죽고난 다음 서경파들이 금나라 연호 사용을 중단하고 금나라와의 전쟁을 주장할 때 반대입장을 취합니다. 애초에 금나라 연호를 사용 안했다면 모르지만(1126에 금나라가 자기네 연호를 사용하라며 친금사대를 요구했을 때, 사실 김부식은 금나라의 요구에 대해서 반대입장이었습니다.) 이미 한번 사용해 버린 연호 사용을 단지 자존심 때문에 중단하고 전쟁 일으켜서 백성들이 고통을 당하는 것 보다는 그깟 연호사용 해주고 평화를 얻는 쪽이 실리라는 주장이었죠. 사실 고려는 초기 태조와 광종 때를 제외하고는 계속 송나라나 요나라의 연호를 사용했는데, 그거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지 않았습니다. 단재 신채호 선생님의 '조선사 연구초' 평가 때문에 김부식이 많이 욕을 먹는 것도 사실이고, 「삼국사기」가 주로 신라의 기록을 많이 인용하고 신라 계승의식을 뚜렷하게 보이는 것도 사실이지만(김부식이 경주김氏) 그렇다고 「삼국사기」의 신뢰성이 많이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요근래는 「삼국사기」와 「삼국유사」를 거의 대등하게 교차 연구하는게 정석으로 인식돼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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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다스 2018/09/19 18:15

    많은 아들들을 좌평으로 임명한 건은 성왕전사 이후 위덕왕부터 의자왕까지 이전보다 왕의 힘이 많이 약해져 반대파글과 정치싸움 때문에 그렇게 했을거라는 설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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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폼롤러데굴데굴 2018/09/20 17:21

    삼천궁녀가 그당시부터 흔히하는 과장이지 그걸 식민사관이라 보는건 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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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르유베다 2018/09/20 17:47

    일제가 악용.왜곡.거짓선동하면 식민사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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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루미즈 2018/09/21 17:23

    역사는 승자의 기록입니다. 대부분의 패망한 국가의 마지막 왕은 폭군의 방탕한 생활로 나라를 말아먹은 걸로 묘사됩니다.
    그래야 이긴 나라에 정체성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죠. 이걸 식민 사관하고 연결하는건 심한 비약 같네요.
    대부분 망한 왕이나 정권을 빼앗긴 왕은 주색에 빠지고 방탕했기 보다는 왕권이 약하고 국가에 힘이 없어서 찬탈 당한 경우가 많죠. 쿠테타에 의해 권력을 뺏겨도 쿠테타를 정당화 시키기 위해 집권자를 쓰레기로 만들어야 합니다. 제조명을 받아야할 권력자들은 많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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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삑크리 2018/09/21 17:32

    저건 좀 무리수 같은데
    삼천궁녀이야기가 의자왕의 방탕과 삼천궁녀의 절개도 나와있기때문에
    양날의 검일텐데?
    저거보다 차라리 한국을 빛낸 100명의 위인들 노래때문이라는게 더 무게가 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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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곧휴가철이당 2018/09/21 17:33

    패배자는 악당이고 승리자는 영웅이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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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의를보면콩닥콩닥 2018/09/21 17:44

    중학교때 박혁거 역사선생님께서 삼천궁녀는 잘못된 역사라고 가르치셨던게 아직도 떠오르네요.
    벌써 25~26년전 이네요..잘 계실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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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주희야안녕 2018/09/21 17:48

    낙화암? 거기 가보면 답나옴
    완전 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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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양보배 2018/09/21 17:50

    -구당서-
    무왕이 죽자, 아들 의자왕이 당에 사신을 보내어 무왕의 상을 고하자,
    당태종 이세민이 소복을 입고 통곡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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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음은봄 2018/09/21 18:04

    의자왕 하면 날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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