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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연해?


當 마땅 (당)
然 그러하다 (연)
마땅히 그러한 것.
그래서 당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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맹신하며 사는 말이 몇 가지 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이것.
'세상에 당연한게 어디있어?'
#1.
더러웠던 연애와
더 더러웠던 이별.
네게 전화가 걸려왔다.
술김에, 잠결에 받아도
확실히 알겠더라.
아. 너구나.
성의없이,
무미건조하게,
대충,
짜증난다는 듯,
귀찮다는 듯
대답하는 내게
너는 말했다.
'너 말투가 왜 계속 그러냐?'
'왜?'
'평소처럼 여자답고, 상냥하고, 사근사근하게 못해?'
'내가 왜?'
'네 말투 원래 그렇잖아.'
원래도, 당연한 것도 없다.
네게있어 내 말투와 행동이
상냥하다거나,
여성스럽다거나,
애교가 많다거나,
사근사근했던 건
너와 나의 관계가 '연인'이라
정의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
'감사합니다.'
'안녕하세요?'
'안녕히계세요.'
'맛있게 드세요.'
'잘 먹겠습니다.'
'잘 먹었습니다.'
'최대리는 참 예의있어.
어떻게 보면 기본인데 말이야.'
기본,
'사람'이기에 '당연히' 해야하는 것.
요즘엔
스스로 '사람'이길 포기한 사람이
참 많은 것 같다.
#3.
난 싸움이 싫다.
특히나 '맞춰가는 과정'이랍시고
연애 초반에 싸우는 일은 더욱.
버라이어티한 나의 연애사에서
연인과의 싸움이란
언어를 무기삼아
서로에게 얼마나 더 큰 상처를 낼 수 있는가를
시험해보는 느낌이다.
언어로 내는 상처만큼
깊고, 치료하기 힘든 것이 또 없기에
난 싸움을 싫어한다.
연인,
친구,
가족과 부딪힐 일이 생길 때면
언제나 '미안해'라고 말했다.
나만 잠깐 기분 나쁘면
서로, 또 더 크게 상처받지 않아도 되니까.
그런 내가 네게
참 열심히 쏘아붙였다.
그렇게 한 삼십분을 쏘아댔고,
돌아섰고, 귀가했다.
씻고나오니
휴대폰에 네 카톡이 가득했다.
미안해.
네가 그렇게 기분 나빠할 줄 몰랐어.
당연히 너라면 넘어갈 줄 알았는데
그렇게 네가 화 낼 줄은 몰랐어.
'당연히 너라면..'
내가 너와의 관계를 위해
참고, 삭히고, 넘기는 것이
네겐 그저 '당연히 그런 사람'
마땅히 그런 사람.
나는
마땅히 그럴 생각이 없는 사람인데.
댓글
  • 창천일검 2017/01/04 10:59

    제가 싫어하는 말 중에 하나가  '몰랐니? 나 원래 그래'
    자기자신은 절대로 변할생각도 없고 변하지도 않을테니 너가 변하던가 아님 피하던가 양자택일해.
    나랑 싸우자 .
    이런 느낌이 들어서 최대한 말을 할때 없는 단어인마냥  덜어냅니다.
    그 사람이 '연인'관계이기에 잘해준걸 '원래'성격으로 '당연히' 착각하는 사람들이 많더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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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HappyDesign 2017/01/04 11:12

    '원래'
    원래 그런게 어디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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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밀크티같이 2017/01/04 16:19

    이 글 참 좋네요. 느끼는 바가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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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구시렁구시렁 2017/01/04 16:19

    비슷한 맥락이지만 약간 다른 시각에서
    나는 원래 그런 사람이야
    라는 말 참 싫어해요
    사람은 무릇 어제가 다르고 오늘이 다르고 또 내일이 다른데
    원래가 어딨나요 원래가
    '원래'라는 수식어로 상대방에 대한 무배려를 포장하는 것
    당신이 원래 그랬고 앞으로도 쭉 그럴 거라면 당신 안 만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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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털봄이 2017/01/04 16:21

    나를 위해준 너의 행동 하나하나에 모두 감사해하는 나였으면 좋겠고
    너를 위한 나의 행동 하나하나에 모두 고마워하는 너였으면 좋겠다.
    서로를 위한 행동에 진심이 담겨있고 노력이 담겨있음을 잊지 않는 우리였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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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검은고냥이 2017/01/04 16:21

    최대리님..언능 차단하시고. 말 섞지 마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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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먹스타그램 2017/01/04 16:29

    나를 나답게 나인 모습을 좋아해 줄 수 잇고 그런 나의모습을 보여주는 내가 보기좋으면 좋은연애라할텐데 참 힘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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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마리모모 2017/01/04 16:39

    연인은 아니고 10년지기 친구가 저한테 했던말이 생각나네요.
    [너한테는 그렇게 해도 되는줄 알았어. 미안해.]
    해서는 안될말이 있다고 해도 이해를 못하더라구요.
    참 충격적이었던 말이라 잊혀지지가 않네요. 사람에게 받은 상처는 오래가지요.
    힘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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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토비어스 2017/01/04 16:44

    나 원래 그런 사람이야. 몰랐어?
    -연인 사이에서 가장 정떨어지는 말 중 하나
    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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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ithril 2017/01/04 17:29

    정채봉 선생의 어른들을 위한 동화 중 한 편에, 누구냐고 묻는 질문에 '나' 라고 답하니 상대는 문을 열어주지 않는 대목이 나옵니다.
    '나' 는 고민 끝에 같은 질문에 '너' 라고 대답하고, 이내 문은 활짝 열리죠.
    자신의 일상과 연애는 둘 다 끝없는 성찰이 필요하다는 점에서 언뜻 같아 보이나, 나와 완전히 다른 사람이 대상이라는 점에서 크게 다르지요.
    그런 의미에서 '나는 원래 그렇다'거나 '너는 원래 그런 줄 알았다'는 말 만큼 멈춰 있고 암담한 말은 없을 것 같네요.
    부디 緣이 흐르기를 바랍니다.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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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라피스 2017/01/04 17:32

    우리 와이프에게 연애 초반에 이야기 했던 내용이군요.
    당연한 것은 없다.
    사랑하니까 희생해야하고 사랑하니까 감내해야하며 사랑하니까 이해하는 것은 없다.
    희생에 감사하고 인내에 미안해야 하며 이해에 고마워 할 줄 알아야 진짜 사랑이다.
    이 이야기를 시작하고 서로 공감하며 연애를 시작했습니다.
    다시 한 번 되새기게 되네요. ㅎㅎ
    더불어 말한 것은.. 생활은 셀프다. 효도도 셀프다. 당연히 육아도 셀프다. 니 역활 내 역활 따로 없으니 필요할 때 서로서로 알아서 잘 챙기자. 너 챙기고 나 챙기면 더블로 챙기니 더 잘하겠지. 정도 있네요.
    현실은 나 안챙기고 와이프 안챙기니 가끔은 청소도 2주에 한 번 하고(...) 그러기도 합니다만 싸울 일은 그닥 발생하지 않아 좋습니다. 허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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