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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어떤 배우의 누드 사진

배우 '임여우'의 고양이가 납치됐다.

소속사는 난리가 났다. 범인으로부터의 요구 때문이었다.

[ 고양이가 죽는 모습을 보고 싶지 않다면, 내가 요구하는 자세들로 누드 사진을 찍어서 보내달라! ]

한참 잘나가는 대세 배우의 누드사진을 요구하다니? 
임여우의 뜻은 둘째치고, 소속사에서 절대 허락하지 않았다. 그러자, 범인은 인터넷에 이야기를 풀어 버렸다.

[ 임여우의 고양이를 납치했다. 만약 임여우가 누드 사진을 보내주지 않는다면 이 고양이를 처참하게 죽일 것이다! ]

범인이 올린 글은 급속도로 퍼졌고, 네티즌 수사대들의 추리를 통해 모든 것이 사실이라는 것이 밝혀졌다.
이렇게 되자, 사람들은 몹시 궁금해졌다.

과연 임여우가, 범인에게 누드 사진을 보낼까??

사람들은 두 패로 나뉘어 떠들기 시작했다. 

" 아무래도 보내지 않을까? 고양이를 죽인다는데 어쩔 수 없잖아? "
" 아니지! 배우가 누드 사진이 유출되는 게 얼마나 큰일인데! 그냥 범인을 잡을 때까지 기다리던가, 고양이를 포기하겠지! "
" 동물 안 키워본 사람들이나 그렇게 말할 수 있는 거지! 고양이는 가족이라고! 가족의 목숨이 달려 있는데 당연히 보내야지! "
" 사람도 아닌 고양이 한마리 때문에 배우인생을 망친다고?! 그건 아닌 것 같은데! "
" 오히려 그러니까 더 보내야지! 이걸 쌩까면, 배우 이미지가 얼마나 나빠지겠어?? "
" 그건 어쩔 수 없는 거지! 이해해줘야 하는 부분이야 그건! "

임여우 측은 정말로 곤란해졌다. 아직은 범인의 요구를 들어주지 않는단 방침을 지키고는 있었지만, 여론의 눈치를 봐야 했다. 임여우를 피도 눈물도 없는 독한년이라고 말하는 악플들이 심심찮게 보이기 시작했던 것이다.
한데, 사건이 인터넷에 알려진 지 하루 만에, 더 복잡해지는 일이 생기고 말았다!

[ 나도 '홍혜화'의 강아지를 납치했다. 내 요구도 마찬가지다. 나도 홍혜화의 누드사진을 원한다. ]

모방범죄가 일어난 것이다! 그것도 임여우의 라이벌로 불리 던 배우 홍혜화에게.
사람들은 이 사태에 더욱 흥미를 느끼며 떠들어댔고, 이제 임여우 측은 더욱 골치 아픈 상황에 부닥쳐졌다.

만약, 홍혜화가 누드 사진을 먼저 선뜻 줘 버리면 어쩌지? 그럼 비교되는 임여우의 이미지가 어떻게 될 것인가?
그렇다고 그냥 먼저 누드 사진을 줘 버리기엔, 홍혜화 측에서도 보낼 생각이 아예 없었다면?

임여우 측 소속사는 당장 홍혜화 측과 연락을 시도했다.

[ 어떻게 하실 겁니까? 설마 보낼 생각은 아니시겠죠? ]
[ 저희야 물론 절대 안 된다며 막고 있긴 하지만... 홍혜화 씨가 워낙에 울고불고 난리 치고 있는 상황이라~ 어떻게 될지 모르겠습니다. ]
[ ... ]

상황이 이렇게 되자, 임여우 측 소속사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리기 시작했다.

" 그냥 보냅시다! 차라리 홍혜화보다는 먼저 사진을 보내는 것이 낫습니다! "
" 절대 안 됩니다! 일부 사람들에게 욕을 먹는 건 잠시 잠깐 지나가겠지만, 한 번 유출 된 사진은 영원히 남습니다! "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던 토론 끝에, 누군가 한 가지 방법을 떠올렸다.

" 제게 계획이 하나 있습니다. 그 계획에는 홍혜화 측의 동의가 필요합니다. "
" 그게 무엇인가? "

그의 계획은 사람들을 수긍하게 하였고, 곧장 홍혜화 측에 연락까지 이어졌다. 홍혜화 측에서도 그 계획에 반색하고 나서서, 일사천리로 일이 진행되었다.
그날 저녁 황금 시간대에 홍혜화와 임여우의 공동 기자회견이 열렸다.
유례없을 화제를 일으키고 있던 이 사건은 전 국민의 시선을 집중시켰고, 그 중심 무대에서 그녀들의 눈물이 빛을 발했다.

" 저희는... 절대 사랑하는 가족을 버릴 수 없습니다. 저희는 그들의 요구를 들어주기로 했습니다. "

울면서 말하는 그녀들의 모습은 사람들에게 감동과 동정심을 일으켰다. 그녀들의 이미지는 전에 없을 정도로 최고가 되었다.
사람들은 한결같은 목소리로 그녀들을 찬양했다.

" 배우로서 진짜 힘든 결정이었을 텐데, 대단하다 정말! "
" 와~ 애완동물을 얼마나 사랑했으면... 정말 이번에 다시 봤어. "
" 진짜 그 새끼들이 쓰레기들이지! 저렇게 착한 배우들을.. 어휴! 만약에 사진이 유출되더라도 절대 보지도 말고, 공유하지도 맙시다! "

기자회견을 통해 임여우와 홍혜화, 양측 다 아주 만족할만한 결과를 이끌어낸 상황이었다. 오히려 위기가 기회가 된 셈으로, 전보다 더 많은 작품이 들어오고, 더 많은 CF가 들어오고 있었다. 그녀들이 사진을 보낸 뒤에는 고양이와 강아지까지 무사히 돌아왔다.
모든 것이 잘 풀린 지금, 만약 사진이 유출되지만 않는다면 그녀들에게 이 사건은 아주 큰 행운으로 남겨질 상황이었다.
한데,

" 야야야! 임여우 사진 유출됐다던데? "
" 뭐? 진짜?! 어디서 볼 수 있는데?! "

인터넷에 임여우의 누드 사진이 유출되고 말았다!
몇몇 정의롭던 주장과는 달리, 사진은 빠른 속도로 인터넷에 퍼졌다.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사진을 구하기 위해 노력했고, 안전하게 저장해놓고, SNS와 메신저로 공유하려고 난리를 치고, 심지어는 프린터로 출력을 한 사람들도 많았다.
물론, 일각에서는 절대 이런 사건의 사진을 봐서는 안 된다며, 부도덕함을 토로하며 맞서 싸우는 사람들이 있었지만, 사진은 어쩔 수 없이 빠르게 퍼졌다.

아닐 줄 알았지만, 그것은 임여우의 이미지에 큰 타격을 줬다. 범인의 요구에 따라 다양하게 야한 자세들을 취했던 사진들은,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리기에 충분한 소스였다.

" 세상에! 이거 너무 야한데? "
" 와~ 몸매 장난 아니네... "
" 이런 사진들을 어떻게 찍었데? 캬~ "

사진을 본 사람들은, 이제 배우 임여우를 바라보는 시선이 달라질 것 같다는 것을 인정해야만 했다. 배우 임여우의 스펙트럼에 제한이 걸리는 순간이었다.
 
한데, 마치 이 순간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이 기자회견이 열렸다!

[ 유출된 사진 속 인물은 임여우가 아닙니다! 에로배우 '백장미' 씨의 몸에 임여우의 얼굴을 합성한 것입니다! ]

" 뭐야?? "

[ 그 증거로, 아직 유출되지 않은 홍혜화의 누드 사진도, 임여우의 사진 속 몸매와 똑같을 겁니다! 그게 다 임여우, 홍혜화, 백장미, 세 분이 같은 날 같은 스튜디오에서 합을 맞춰 만들어낸, 정교한 합성 사진들입니다! ]

곧이어 유출된 홍혜화의 사진을 통해, 기자회견의 주장이 모두 사실이라는 게 밝혀졌다.
사람들은 충격에 빠졌다. 

" 뭐야? 그럼 임여우랑 홍혜화의 누드 사진은 존재하지 않는 거잖아? "
" 젠장! 임여우 인 줄 알고 좋아했더니, 이름도 모르는 에로배우였어?! "
" 어쩐지! 몸매가 너무 야하더라! 에로배우였구만! "

사람들은 이런 기지를 발휘한 그녀들을 향해 감탄하기도 하고, 조금은 실망하기도 하면서 떠들어댔다. 떠들어대다가, 조금씩 잊혀갔다.

이제 인터넷에 남겨진 건, 한 무명 에로배우의 누드 사진뿐이었다. 얼굴 없을 무명 에로배우의 전신 누드 사진.
사람들이 필사적으로 구하지도 않았고, 한 번 보고 나면 쉽게 삭제들을 하고, 공유한답시고 난리를 치지도 않았고, 
그 누구도 이런 사건의 사진을 봐서는 안 된다며 맞서 싸워주지도 않았던, 한 무명 에로배우의 누드 사진이었다.

댓글
  • 뿌쁍 2016/12/31 19:39

    항상 잘 읽고 있습니다^^

    (MW75Bn)

  • 복날은간다 2016/12/31 19:40

    항상 감사합니다. 오늘이 가기 전에 꼭 해야만 하는 말이 있었더군요, 그래서;;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새해에는 더욱 더 행복하세요!

    (MW75Bn)

  • 글라라J 2016/12/31 19:51

    다사다난한 병신년이 몇시간 안남았네요. 다음해는 정유;;;년??왠지 심상치 않아보이긴 하네요 빨리 독일에서 잡혀왔으면;;; 새해 복 많이 받으시고 멋진 작가로 이름 널리 떨치시길 바라요 스토리텔러로서의 복날은간다님은 이미 세헤라자드 수준입니다. 글읽고 각자 자신의 모습을 비춰보고 투영하며 생각유도하게되는 ...어른을 위한 동화랄까요.  건강하세요  ㅅ.ㅅ

    (MW75Bn)

  • 강아지귀여워 2016/12/31 21:46

    와.. 님은.아이디어 뱅크신거 같아요.
    짧은 시간내에 여러가지 소재의 이야기들이
    나오시네요. 매번 감탄하고
    즐겁게 보고 있습니다!!
    이번것도 굉장히 재미있게봤어요.
    그리고 제가 저세계의 대중이라고 생각을 해봤는데
    저도 저 에로배우를 가엾다 생각하지.않았을거 같아요.
    원래 자신의 몸을 상품으로 돈을벌던 사람이었고.
    이번일도.. 각 소속사에서 거액의 돈을 받았겠거니.. 생각할거 같아요.
    만약 백장미양이 강압에 의해 찍었다면
    에로배우였다 하더라도..
    동정여론이 있어야 하는게 맞는거지만.
    백장미양의 경우는 비지니스였을거라고
    생각할거 같아요.
    오히려 무명의 배우였지만.
    임여우와 홍혜화를 대역했던 몸이니..
    백장미가 누구야? 하고 사람들에 찾아봤을지도 모르겠단 생각이 들어요.
    백장미양에게도 홍보가 되는 기회였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들고요.
    아! 그리고 혹시 제글보고..
    자신을 낮추는 말씀하지.말아주세요..
    좋은글 써주시고
    가끔 그런말씀  하시는 댓글을 봐서 ㅜㅜ...
    그냥 이런 생각의 방향성도 있구나..
    하고 넘겨주셨으면 ㅎㅎㅎ....
    항상 재미있고 기발하고 오싹한글 감사합니당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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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불로동휘발유 2016/12/31 21:52

    잘 보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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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XI우민 2016/12/31 22:18

    고양이 납치됐다고해서 섬뜩했는데 냥이도 멍이도 살아돌아와서 다행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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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스트라포트 2016/12/31 22:20

    제목만 보고 냅다 들어왔다가 잘 읽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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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사과양 2016/12/31 22:48

    글 잘읽었습니다
    근데 이글만 조회수가 다른 베스트 글의 4배네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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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신이내린미모 2016/12/31 22:48

    늘 잘 읽고 있습니다 복날님! 너무 창작 스트레스에 시달리지 마셔요 애독자로서 복날님이 쓰고싶은 글이 제일 좋습니다ㅎㅎ 새해 복 많이 받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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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쥬쥬홀릭 2016/12/31 22:49

    애완동물이 돌아왔는지가 궁금하네요 두여배우가 진심으로 누드사진을 보내려고했다면 사진을찍고 서로의 얼굴을 바꿔서 합성할수도 있었겠다 생각이드네요 그렇게하고 기자를 매수해서 아무도모르는 애로베우와 합성했다는 기자회견을하면!! 아 합성이구나 역시... 라면서 대중은 신경을 쓰지않을것이니...  그뒤에 범인들?은 진짜가 아니니 돌려주지않겠다 라고 할수도 있지않았을까 그럼 그뒤에 두여배우들은 서로바꾼것뿐이다 라고 말하고 엄츠엉난 심리전...!!
    하지만 글속에선 무명의 애로배우가 맞는거니까...
    동물은 돌아오는걸까요 이미지는 나빠졌을까요
    매번 많은 뒷이야기가 떠오르게만드는 좋은글 감사합니다 덧글이 의식의 흐름이라 가독성이 안 좋을수 있어서 죄송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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