괌에서 있었던 일 1 - 들어가며
괌에서 있었던 일 2 - 사건 당일
괌에서 있었던 일 3 - 내가 경험한 괌의 사법절차
괌에서 있었던 일 4: 밝혀진 사실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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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 글을 올리면서 반성의 말과 후회하는 심정을 담았지만, 아이들을 두고 내린 사실에 대해서는 질타를 받을 각오를 했습니다. 용서를 받고 말고 할 일이 아니라 제 자신이 먼저 저를 용서하지 못합니다. 사건 직후 이 곳에 올렸던 글에서도 “대한민국 및 법조계에 오점을 남긴 점 죄송하고 또한 모든 분들께 죄송하다, 행위를 하기 전에 아이들을 먼저 생각하지 못한 점, 안전불감증이었다는 점 인정하고 반성한다”고 썼습니다. 제가 저지른 잘못에 대한 비판을 비껴가고자 하는 마음은 당시에도, 지금도 없습니다. 가능한 일도 아닙니다.
그래도 여전히 국민에게는 사과를 하지 않느냐, 법조계에만 미안하느냐 하는 내용의 비난이 존재했고, 언론에도 이런 내용의 칼럼이 실렸습니다. 사과와 반성의 말마저도 신중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바로 공항으로 갔어야 한다거나, 하나는 포기했어야 한다거나, 아내에게 화를 내지는 않았어야 한다거나… 사건 당일 순간순간의 잘못된 선택들에 대해 누구보다 후회하고 반성하고 있습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이라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10분이건, 1분이건 잠시라도 아이를 혼자 두면 안 된다는 안전의식이 부족했습니다. 5세 미만은 15분 이상 두면 안 된다는 현지의 경범죄 처벌기준을 숙지하지 못했습니다. 급한 사정이 되니 이 정도는 괜찮겠지 타협했고, 제 생각을 아내에게 강요했습니다.
하지만 다시 욕먹을 각오를 하고라도 사실관계를 밝히고 싶었습니다. 틀린 이야기들이 사실로 굳어져 퍼져버린 인터넷 공간에 한 곳이라도 사실을 남겨 두고 싶은 마음 뿐이었습니다. 몇 분이라도 인내심 있게 읽고 사실관계를 알아준다면 그걸로 충분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제 마음을 치유하고 싶은 이기적인 욕심도 부인하지는 못합니다만, 무엇보다 컴퓨터를 만지작거리기 시작한 아들이 걱정되었고, 아이들이 인터넷을 접하기 전에 잘못된 정보와 비난의 말들에서 보호하고 싶었습니다.
사건에 대해 잘못된 정보가 너무 많아 증거와 상황설명을 자세히 제시해야 해서 글이 길어지고 장황해졌습니다. 주변의 충고대로 긴 글을 꼼꼼히 다 읽고 이해해 줄 사람이 몇이나 될지, 비겁한 변명만 늘어놓는다고 욕하지 않을 사람이 얼마나 될지, 걱정과 두려움 속에 글을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분들이 끝까지 읽어주시고 공감해 주셨습니다. 정말 눈물 나게 감사 드립니다. 작년에는 개인 메일 뿐 아니라 회사 메일로도 비난의 글을 많이 받았습니다. 이번에는 격려해 주시는 쪽지를 3개나 받았고 수많은 위로와 이해의 댓글을 달아 주셨습니다. 따끔한 질타와 비판 남겨 주신 분들께도 고맙습니다. 염려하시는 부분 겸허하게 받아들이고 잊지 않고 있습니다. 장황한 변명이 불편하셨을 수도 있고, 공감하기 어려웠을 수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겨주신 댓글들 모두 하나하나 꼼꼼히 읽었고, 다시는 이런 일이 일어나지 않도록 조심하겠습니다.
이번 일로 느낀 점이 많습니다. 돌이켜 보니 제가 아동보호에 대해 변화된 인식을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저는 당시 아들나이 때부터 동생들 데리고 우뢰매 영화 시리즈를 보러 극장에 다녔고, 초등학생 때부터 신문배달도 하며 자랐습니다. 간섭이나 잔소리 없이 믿고 키워주신 부모님 덕분에 독립적이고 책임감 있게 컸다고 생각해서 늘 감사했습니다. 아이들을 과도하게 보호하는 게 오히려 아이를 망치는 일이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아들이 초등학교 고학년이 되면 어릴 때 저처럼 스스로 일해보도록 격려할 계획이었습니다. 그런 지점에서 아내와 의견이 달랐는데 이번 일에도 평소 제 인식이 작용해서 심각함을 인식하지 못했다고 생각합니다.
초등학교 입학 이후 한동안 등교길을 바래다 주는 아내가 못마땅해서 학교가 코앞인데 그렇게 매일 바래다 주는 것은 비교육적이라며 핀잔을 주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그러한 구시대적 사고조차도 반성합니다.
인생 멘토와 같은 형님께서 정신과 상담을 예약해 놓고 안 가면 다시는 보지 않겠다고 해서 병원에 간 적이 있습니다. 살다보면 커다란 정신적 고통을 겪는 일이 3번은 있는 것이고 아직 겪지 않았다면 운이 좋았거나 예비되어 있는 것일 뿐이라고 하시더군요. 그때는 와닿지 않았는데, 이제는 두 번 겪었으니 한 번만 더 겪으면 되겠네 하며 마음을 다잡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의 도움 덕에 조금 더 단단해졌습니다.
이번 사건을 겪으면서 여러분들께 크고 작은 도움을 많이 받았습니다. 남을 돕는 직업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그 동안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겪는 일에 관심을 가졌었는지,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들에게 얼마나 귀 기울여 왔는지에 대해 깊이 반성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앞으로 순간순간 과정마다 제게 도움을 주셨던 분들처럼 곤경에 처한 사람을 도우면서 살도록 하겠습니다. 무엇보다 많이들 걱정해주신 것처럼 아이들을 잘 보살펴 건강하게 자라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마지막까지 긴 글 읽어 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