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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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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날씨좋네요 2018/03/30 14:58

    틀린말 한개도 없네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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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무슨닉무슨닉 2018/03/30 15:19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아 야알못인 저도 확 공감됩니다 ㅋㅋㅋ
    역시 해설은 인간미(?)가 있어야 잘 와닿는걸까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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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확한게좋음 2018/03/30 15:26

    스타 유닛도 아니고 10분마다 한명씩 나와 ㅋㅋㅋ엌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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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5emo 2018/03/30 15:43

    어디 잘 찾아보면 아직도 날아가고 있대 ㅋㅋ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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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보르보르 2018/03/30 15:44

    아잌ㅋㅋ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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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낮낯낱낫낳 2018/03/30 17:30

    유쾌한 자학이네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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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추천은1초 2018/03/30 17:52

    한 5년전쯤에 빵 떴는데 오랜만에 보니 잼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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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양이가멍멍 2018/03/30 18:18

    그래서 이 분 이름이 뭔가요. 왜 아무도 안알려줘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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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녹색정원 2018/03/30 18:22

    일단 이 분은 유머를 떠나서 정상적인 국어 표현이 되죠.
    최근 데뷔한 스타 출신 해설들은 그게 안되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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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아무말대참사 2018/03/30 18:35

    야알못이고 야안본인데, 이 분(이름도 모름)께서 해설하는 경기는 보고싶어졌어요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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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소씨 2018/03/30 18:36

    성남고등학교와 건국대학교 야구부를 거쳐 1992년 2차지명 1라운드에서 LG의 지명을 받아 입단했다. 덧붙여 그 해 1차 지명 선수는 휘문고등학교의 임선동.
    초기에는 주로 선발로 등판했다. 그러나 공이 빠른 것도 아니고, 컨트롤이 좋은 것도 아닌 그에게 선발이라는 보직은 버거웠던 듯. 그대로 가면 존재감이 안습인 선수인 채로 아무도 모르게 은퇴의 길을 걸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김용수가 한국프로야구에서 마무리 투수의 선구자였다면, 차명석은 중간계투의 에이스, 즉 셋업맨의 선구자였다고 말할 수 있다. 이전까지의 패턴이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 충족 → 최대한 이닝을 길게 끌고 간다 → 7~8회에 마무리를 올린다'였다면 차명석은 주로 선발 투수의 승리 요건이 충족된 상황에서 등판하여 셋업맨으로써 1~2이닝을 책임지고, 그 후 마무리 투수에게 마운드를 넘기는 역할을 수행했다. 물론, 이전에 그러한 역할을 수행했던 선수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차명석 이전에 팀 선배인 차동철과 후배인 강봉수, 해태 타이거즈의 마당쇠 송유석 등이 있었지만, 이들은 어디까지나 노예처럼 마무리 투수를 불러내기 애매한 상황에 나와서 마구잡이로 던지던 승리조 투수에 가까웠지 메이저리그 식의 프라이머리 셋업맨 개념은 아니었다.
    이런 시스템이 도입되고 정착한 것은 투수 분업 시스템을 최초로 도입한 이광환 당시 LG 트윈스 감독의 영향력이 지대하다. '6~8회에 공을 던지는 투수'와 '전문 셋업맨'을 본격적으로 분리시킨 것이 바로 이광환 감독이 도입한 라루사이즘식 투수 분업화이기 때문. 차명석은 이런 시스템에서 '전문 셋업맨'이라는 역할을 잘 해 내면서, 한국프로야구 최초로 성공한 투수로 평가받을 만한 선수다. 그덕에 중간계투 투수로서 최초로 억대 연봉자에 이름을 올렸다. 즉 이 성공이 이동현, 안지만, 정현욱 등을 있게 해준 뿌리인 셈. 이처럼 이광환 감독의 체계적인 투수분업화 도입은 한국프로야구에서 보직도 없이 마구잡이로 혹사당하면서 사라졌을 수많은 투수들의 선수 생명을 10년 이상씩 연장시키는 효과를 가져왔다.
    커리어 하이는 11승을 기록했던 1997년이다. 그 해 1군 68경기에 등판해 119⅓이닝이라는, 중간계투로서는 파격적으로 많은 등판을 해서 11구원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2.79를 기록했다. 이 당시의 뛰어난 활약상 덕분에 그에게 붙은 별명이 바로 차덕스였다. 1990년대 후반 LG 트윈스 마운드의 대표적인 셋업맨으로 활약했다. 그가 비록 그가 A급 선수라고 부르긴 힘든 성적을 남기긴 했지만, 그가 2001년에 방출되어 은퇴한 이후 2000년대 LG 마운드에서 이동현을 제외하면 그에 버금가는 활약을 해준 셋업맨은 전무했다는 점을 생각하면 안습.
    2001년에는 부상으로 1군에서 9경기밖에 등판하지 못하고 재활하다가 시즌 후 방출되어 현역에서 은퇴했다. 그것도 결혼을 며칠 앞두고였다. 32세라는 비교적 이른 나이에 은퇴한지라 차명석 본인으로서는 후회도 물론 많지만, 처음 본인이 하고자 목표로 세웠던 선수 생활 10시즌, 억대 연봉, 300게임 출장을 모두 달성해서 나름대로 만족하고, 특히 대한민국 야구계에서 중간계투 최초의 억대 연봉 기록은 그로서도 의미가 깊은 듯. 1990년대 트윈스 프랜차이즈 계투 중에서 가장 뛰어난 성적을 거둔 것이 아마 그일 것이다. 김용수, 이상훈 등 엄청난 성적을 거둔 투수들이 있지만 그들은 선발, 마무리 가리지 않고 출전했기에 이름 넣기에는 애매하다. 해설자로서 워낙에 자학드립을 많이 쳐서 그 시절 야구를 보지 않은 사람들은 별 볼 일 없는 선수로 생각할 수 있지만, 실제로는 그렇게 만만한 투수가 아니었으며 LG 트윈스와 KBO 리그 역사에 이름 석 자 정도 남길 수 있는 괜찮은 투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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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일하기싫어 2018/03/30 22:20

    차명석 말은 저렇게해도 엘지 불펜에서 엄청 잘했었어요ㅋ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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