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호랑이가 없는 이유

현재 일본에는 야생의 호랑이가 없다.

적어도 기록된 일본의 역사상 야생의 호랑이가 일본 열도에서 발견된 적이 없다.

하지만, 일본어에는 호랑이를 뜻하는 고유의 단어(토라)가 있다.

이 '토라'라는 단어는 일본 주변의 언어들과의 유사성, 연관성이 없고, 굳이 말하자면 고대 중국어와 조금 닮아있는 정도다.

그렇다면, 더 먼 옛날에는 일본 열도에 호랑이가 살고 있었을까?

결과부터 말하자면, 그렇다.

일본 열도 각지에서 호랑이의 화석들이 발견되고 있다.

정확히 어떤 종인지까지는 모르지만, 우리에게도 익숙한 시베리아 호랑이의 아종으로 추측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호랑이가 섬나라인 일본까지 건너가서 생식할 수 있었던 걸까?

아는 사람들은 알겠지만, 빙하기 때 일본은 섬이 아니었다. 대륙과 육지로 이어져 있었고, 수많은 동물들이 대륙과 일본을 오가면서 다양한 동물상을 이루고 있었다.

그리고 당시 호랑이가 일본에서 포식하던 동물로는 매머드, 바이슨, 메갈로케로스(큰뿔사슴), 나우만코끼리 등등의 대형 포유류들이 있었다. 대형 육식동물이 큰 몸을 유지하기 위해 대형 피식자가 필요했던 건 당연한 이치다.

이렇게 호랑이는 일본 열도에서 잘 먹고 잘 사나 싶었으나, 첫 번째 위기가 찾아온다.

약 2만년 전, 최종빙기극대기(LGM)는 각지의 동물들에게 영향을 끼쳤으며, 일본 열도의 호랑이들도 주요 먹이감 중 큰 비중을 차지하던 나우만코끼리와 메갈로케로스를 잃는다. 

하지만, 호랑이는 이 두 먹이보다 온도 변화에 더 잘 적응했고, 무엇보다 매머드 또한 추위에 강했던 덕에 여전히 호랑이의 먹이로서의 역할을 충실히 이행했다.

더 큰 문제는 추위가 가신 뒤에 찾아온다.

길고 맹렬했던 빙하기가 끝나고, 따듯한 날씨는 일본 열도가 대륙에서 분리될 정도로 수위를 상승시켰다.

호랑이는 추위는 물론 후덥지근한 열대우림에서도 서식할 정도로 따듯한 기후에도 끄떡 없지만, 호랑이들의 먹이인 대형포유류, 매머드는 사정이 달랐다.

매머드는 따듯해진 날씨에 체온 조절이 어려웠는데, 설상가상으로 따듯한 날씨에 갑자기 번성하기 시작한 동물들이 매머드를 멸종의 절벽으로 내몰았다.

다름 아닌 인간이다. 

호랑이는 먹이감인 매머드는 서식지를 크게 넓혀가던 조몬인들에게 빼앗겼고, 이 밖에 먹을만한 다른 피식자조차 늑대들에게 빼앗겼다. 심지어 활동을 위한 서식지는 호랑이보다 더 적응력이 뛰어나고 먹이 스펙트럼이 넒은 곰에게 빼앗겼다.

이리하여 약 1만년 전쯤, 호랑이는 변화된 일본 열도의 치열항 생존경쟁에서 도태되고 말았다.

그렇다면 이후로 일본인들은 1만년 동안 호랑이를 보지 못했을까?

이는 반은 맞고 반은 틀린 말이다.

일본 열도에 살던 선주민들은 호랑이가 절멸한 뒤로 그 모습을 못 봤겠지만, 현재 일본인들의 조상인 일본어 화자 집단은 중국의 동남부에서 발생하여 약 5~7천 년에 걸쳐 산둥반도와 한반도를 지나 일본 열도에 들어왔으니, 가장 늦어도 1,500년 전까지는 호랑이와 함께 생활을 해왔을 것이다. 

그 일본어 화자 집단들이'토라'라는 어휘와 함께 일본 열도에 들어온 결과, 8천년간 호랑이가 없던 땅에도 호랑이를 뜻하는 단어가 퍼지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