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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도 토박이에겐 선이라는 없소이다


[말딸,괴문서]에도 토박이에겐 선이라는 없소이다_1.png




현역일 때와 물러났을 때의 이미지가 판이해지는 우마무스메가 종종 있다.
“아저씨! 여기 덜 다듬어졌는데, 이러면 애들 다치기 딱 좋은 거 아십니까!”
“아이고, 여길 놓쳤네. 고맙구먼, 이나리 양.”
그리고 현역일 때, 여우라는 이름에 걸맞게 날뛰던 모습과 달리 이제는 후배들이 마음 편히 훈련하는 건 물론이오, 쉬는 것도 마음 놓고 할 수 있도록 몸소 트레센 구석구석을 둘러보며 손보거나 지적하는 역할이 된 이나리 원은 딱 그 부류에 속했다.
한때 오구리 캡, 슈퍼 크릭과 더불어 3강이라 불릴 정도로 강력함을 선보였지만, 이제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교내를 돌아다니며 후배들의 앞날을 정리해 주는 그 모습에선 과거의 흔적을 찾기 힘들었다.
다만, 그녀에게도 다른 모습이 한 가지 더 있었으니.
“나리-! 나 왔어!”
“오, 오늘은 공강이냐?”
“헤헷, 그렇다네, 그렇다네, 보기 드문 공강 날이라네! 이런 날엔 나리랑 같이 있어야지!”
그녀는 3강 중 가장 먼저 부뚜막에 오른 이였다.
다만, 졸업이 늦어져서 마지막 쐐기를 못 박고 있을 뿐.
타마모 크로스가 본다면, ‘그라체, 한 놈쯤은 먼저 부뚜막에 올라야 정상 아이가’라고 했을 것이 분명했다.
-⏲-
에도 토박이.
그리고 오이에서 온 천하를 얻은 자.
다른 의미로 여우 같은 우마무스메에게는 별명이 여럿 있었다.
그런데 저런 이름을 얻기 위해 걸어온 인고의 시간은, 결국 다리의 문제로 끝났다.
맹수 같던 저돌적인 성향은, 그렇게 불이 꺼지며 사그라졌다.
“아이고, 이제 여름이 다 갔네, 다 갔어. 짧은 옷은 이제 보내줄 때가 되었네.”
대신 그녀는, 다리의 문제를 포기하지 않고 끝끝내 붙잡아 해결해 주며 일생의 마지막 커리어인 드림 트로피로 넘어갈 가교가 되어준 트레이너와 아주 찰싹 달라붙게 되었다.
그 사이에 룸메이트도 몇 번 인가 바뀌어, 이제는 트윈 터보라는 말괄량이 꼬마가 들어와 학창 시절의 마지막은 나름 보람차게 보내고 있었다.
“에어컨도 이제 끌 때가 왔지. 선풍기만 틀어도 추울 때가 있으니까.”
그리고 그건 말을 받아치는 트레이너 또한 마찬가지였다.
3강의 트레이너들은 대체로 팀이라 부르고, 전속이라 읽는 형태로 각자 담당을 지도했다. 오구리의 트레이너는 벨노 라이트도 같이 담당해서 서포트를 지도하긴 했지만, 슈퍼 크릭이나 이나리 원의 트레이너에게는 그런 인재를 영입할 기회가 없었으니까.
사실상 트레이너 혼자서 뒷바라지하고, 지원해 주던 트윙클 시리즈의 기간은 여성 호르몬 왕성한 시기의 우마무스메들에게 있어선 유사 연애처럼 느껴지는 것이 일반적.
팀 단위는 보다 저런 인식에서 자유롭지만, 가끔 광인으로 이루어진 팀이 나와서 상식을 갈아엎곤 했다.
그 왜, 메지로 라모누와 그녀의 트레이너가 짝짜꿍해서 창단된 팀이라던가.
이름부터 제정신이 아니더만.
아무튼 잡설이 길어졌다.
이나리 원 또한 팀의 탈을 쓴 전속 트레이너와 오랫동안 함께 한 셈이었고, 보통 이러면 그 기간을 연애 비슷하게 인식해야 했다. 하지만 그녀가 누구인가, 털털하기로는 타마모 크로스와 쌍벽을 이루는 우마무스메 아닌가.
머리 스타일만 남성미가 느껴지지, 속내는 소녀스러움이 가득한 메지로 라이언 같은 경우와는 궤가 다르단 말이다.
그 결과는 그냥 트레이너와 친구를 먹었다.
여자 친구, 라고 하기에는 힘들었다.
여자 ‘사람’ 친구라면 맞다.
근데 선… 없다?
“귀찮으니 여기서 옷을 갈아입고 가야겠어, 저녁 바람 너무 쌀쌀해져서 탈이니.”
“어, 그래. 창 가리는 건 잊지 말고.”
그래 진짜 선이 없다.
옷 그냥 훌렁훌렁 벗어도 서로 상관 안 하고 각자 할 일 하고, 별 신경 안 쓰는 소 닭 보듯 하는 사이.
“근데 나리는 진짜 눈길도 안 주는구려, 거 남자구실은 하는교?”
“우리가 뭐 하루 이틀 봤냐, 건강하다 건강해.”
“에헤이, 매일 체크는 일상이어야 하거늘.”
근데 그 무신경함의 레벨이 좀 많이 높다.
대체 어디까지 갔는지 감이 안 올 정도로.
“오구리는 졸업하면 카사마츠로 돌아간다고 지방 트레이너 자격 공부한다더라.”
“오호라, 괴물이 마침내 결심하다니.”
동기의 결단에 감탄하듯 한 말에 트레이너는 다소 어이가 없다는 듯이 답했다.
“오이로 가서 지방 트레이너 할 거 빤히 아는데 놀란 척하지 마. 이미 다 알고 있어.”
“하핫, 이거 또 나리 손바닥 안에 있었구료.”
머리를 긁적거리며 말한 이나리는 이내 자그마한 트레이너실의 의자에 기대앉았다.
“난 고향을 벗어날 수 없으니까 말이지, 물고기가 물을 벗어나면 죽는 것처럼 에도토박이는 에도를 벗어나면 안 되는 것이야.”
“후학 양성도 겸사겸사하면서 말이지.”
이미 속내를 훤히 꿰뚫어 보듯 그가 하는 말에 이나리 원은 이를 드러내며 웃었다.
“헤헤, 그렇게 되지. 솔직히 중앙에 터프에서 뛰는 애들은 많은데 더트에서 뛰는 애들은 적은 거 나리도 동의하는 사안 아닌감?”
“하긴, 더트가 은근 경시되긴 하지.”
더트는 경주도 적고, 이름 날린 우마무스메도 적다.
이러면 새로 들어올 후배들, 그것도 더트의 후배들을 위해 오이에서 양성하는 것도 나쁜 결정은 전혀 아니다. 오구리 캡이 자기 고향인 카사마츠에서 중앙으로 보낼 원석들을 찾아본다면, 그녀는 자기 고향에서 더트의 원석들을 찾아보면 되는 거니까.
“그러고 보니 나리는 제가 졸업하면 어쩔 생각이신교?”
그러던 중 문득 중요한 것이 떠올라 이나리 원은 물었다.
“나? 너 따라서 오이 가야지.”
“엑, 그럴 필요는 없는데.”
그리고 곧바로 나온 답은, 에도의 호걸을 다소 당황하게 했다.
아니, 아무리 그래도 너무 즉답인데.
“애들 가르치다 옛날 성질머리 나오려 하면 눌러줄 사람이 나 외에 누가 있냐.”
아, 그쪽 문제?
“그리고 나 없으면 외로움 타서 매일 같이 전화해 댈 텐데, 차라리 같이 가는 것이 낫다.”
“앗.”
그리고 정확한 앞날 예측 추가.
너무 오랫동안 봐와서 이제 어떻게 행동할지 훤히 예측이 되다 보니, 예방주사 맞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다.
“핫하, 그러면 막을 수 없겠구료. 나리랑 함께라면 안심이오, 안심!”
호쾌하게 웃는 이나리 원의 목소리에는 그의 이러한 일련의 결단에 마음을 푹 놓은 기미가 역력해 보였다.
“다만-.”
그런 그녀의 말을 주먹으로 뺨을 받치며 듣던 트레이너는 말했다.
“트레이너 과정이라는 거, 녹록지 않다. 이미 2년 과정 후반이니 알겠지만, 한 번에 합격하는 건 어려울 거야.”
그렇게 말한 후, 그는 평소와는 달리 진지한 눈으로 담당을 쳐다봤다.
“그래도 한방에 통과하는 걸 목표로 해라. 너라면 할 수 있다, 이나리.”
“맡겨만 주소, 나리. 그 정도는 당연히 해낼 테니!”
비장한 결심과 함께, 이나리 원의 귀가 쫑긋거렸다.
현역일 때, 그리고 한창 드림 트로피에 나서던 시기와는 다른 목표가 세워진 이상 이번에도 호쾌하게 돌파할 때였다.
그녀를 멈춰서게 한 건 현역에서도 결국 다리 문제 아니었던가.
트레이너 시험에서도 이나리 원을 멈춰 세우려면 그만한 무언가가 들이닥쳐야 할 것이지만, 그럴 일은 없었다.
그걸 알고 있는 트레이너의 입가는 슬쩍 올라갔다.
과연 담당 하나는 잘 키웠다는 생각과 함께.

“나리, 타마모의 트레이너가 나리한테 편지를 보냈어.”
“엉? 그 야빠 놈이 어째서?”
그렇게 두 사람이 오이로 간 해.
가을.
“나한테는 타마모가 편지를 보냈구료. 대체 뭔 내용인지 감도 안 오는데.”
“동시에 보냈다고? 그 둘이?”
트레이너는 타마모 크로스와 그 트레이너가 동시에 보낸 우편물에 무언가 수상함을 느꼈다.
“줘 봐, 한번 내용을 보게.”
“여기 있소이다.”
받아 든 봉투를 빠르게 열어 본 그는 내용물을 꺼내서 훑어보다가 이내 멈칫했다.
“내가 먹어야 할 약을 안 먹었나, 아니면 먹지 말아야 할 약을 먹고 있나?”
“이게 말이 되는 게 맞소? 징조가 없었는데?”
도저히 말이 안 되는 걸 본 듯, 두 사람은 머리를 싸매고 끙끙 앓았다.
그도 그럴 만했다.
폭풍1호 하얀 번개의 청첩장이 오이에 상륙하고 말았으니.





마침내 붓싼 또래나-팀 옥좌-팀 티아라가 하나로 다 엮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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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b5Cd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