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정성 줄타기
날이 화창했던 어느 날의 저녁이었다.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피로에 찌든 얼굴로 그의 사무실 소파에 대자로 뻗어 있었다.
그래, ‘그의’ 사무실이다. 나름 베테랑 트레이너의 반열에 드는 그임에도 불구하고 여태껏 담당 우마무스메가 그라스 원더 한 명뿐이라는 사실 때문에 베테랑 트레이너의 특권 중의 하나인 개인 사무실이 없었다.
하지만 그것도 어제까지다. 오늘부로 그는 중앙 트레센의 교육동에 개인 트레이너 사무실을 받았다. 엄청나게 크진 않지만, 그래도 책상, 컴퓨터, 책장, 작은 세면대를 비롯하여 소형 냉장고, 휴식 겸 손님 응대용 소파와 테이블 등등…있을 건 다 있었다.
아무래도 교육동의 특성상 트레이너의 개인 사무실로 배정되는 공간이 클 수가 없었기 때문인지, 그의 덩치를 생각한다면 자그마한 사무실임은 분명했다. 하지만 그는 불평할 마음 따윈 전혀 없었다.
지금껏 여러 트레이너와 부대끼며 살아온 사무실―어째 학창 시절에 겪었던 교무실이나 다름없었던―을 생각한다면, 개인 사무실이 있다는 것 자체만으로도 굉장히 굉장하게 편해진 것이니까.
물론 황제의 트레이너처럼 중앙동에 사무실이 있다면 훨씬 넓고 미관마저 수려했겠지만, 그쪽은 중앙동에 사무실이 있는 이유가 있음을 알고 있다. 그 아저씨는 담당 우마무스메도 많고 업무도 많아서 중앙동을 못 떠나는 망령이니까.
아그네스 타키온네 형 또한 비슷하다. 연구동에 있는 그 아저씨의 개인 사무실은, 아무래도 담당 우마무스메가 그 아그네스 타키온이기 때문이라는 불가피한 이유도 있겠거니와, 최근에 담당 우마무스메가 두 명이 더 늘었다. 사무실이 좁으면 모이기도 어려우리라.
그에 반해 이쪽은 얼마나 여유로운가. 담당 우마무스메라곤 그라스 원더 한 명이고, 이 녀석이 졸업할 때까지 다른 우마무스메를 담당할 생각도 없다. 그리고 이 망아지 녀석은 아직 중등부다.
그렇다고 그라스 원더가 아그네스 타키온처럼 손이 많이 가는 우마무스메인 것도 아니다. 물론 엘 콘도르 파사의 배를 상습적으로 갈라버리는 사고를 치긴 하지만, 뭐, 중앙 트레센에 피해가 가는 것은 아니라서 다들 그러려니 한다.
그러니 자연스레 업무량은 적당해지고, 신경 쓸 우마무스메는 그라스 원더 한 명뿐인데, 사고도 거의 안 치고 말도 잘 듣는 편이다. 그런 상황인데 개인 사무실까지 받았다. 물론, 그만한 능력과 실적을 보였기 때문에 얻어낸 것이지만, 아무튼 마음 한구석이 편안해진다.
다만, 그것이 지금 그가 소파에 뻗어 있는 이유는 아니었다.
“내가 왜 그랬지…….”
천장을 올려다보며 자그마한 후회를 곁들인 한숨을 내쉰다. 이미 해는 넘어가서 어둠으로 뒤덮인 창밖으로 잠시 눈을 돌렸다가, 축 늘어진 몸을 간신이 일으킨다.
주변을 둘러보면 더더욱 한숨밖에 안 나온다. 정말로 왜 그랬을까, 심지어 내일은 평일인데. 그냥 돈 쓸걸. 사람 부를걸.
“이거 언제 다 정리하냐고오오오오―!”
반쯤 절규하듯 비명을 내질렀지만, 이미 눈 앞에 펼쳐진 것은 한가득 쌓인 상자들과 그의 여러 개인 물품들이었다.
그래, 당연히 개인 사무실을 배정받았으니 기존에 사용하던 물품들을 들고 와야지. 그냥 가볍게 생각했지만, 당일이 되고 나서야 깨달았다.
아무리 작아도 이사는 이사라는 것을.
기존, 트레이너들이 있던 사무실에서 여기까지 물건을 하나하나 들고 올 수는 없으니, 일단 상자에 대충 포장해서 운동할 겸 들고 올 심산이었지만…예상보다 상자의 개수가 많이 나왔다.
이걸 직접 하나하나 들고 옮기는 것은 현실적으로 무리, 라고 판단했기 때문에 그의 차 트렁크를 살짝 학대하며 서너 번가량 왔다 갔다 하며 옮긴 것까진 좋다.
하지만 상자를 풀고 물건을 정리하는 과정 또한 예상보다 많은 시간이 걸렸다. 그놈의 꼼꼼하지 못한 성격이 이삿짐의 분류를 전혀 안 하도록 만들어버렸고, 상자 안의 내용물을 분류하는 데에만 몇 시간을 소모했다.
그리고 대충 정리, 빈 상자들을 분리수거장까지 버리고 오는 것도 제법 시간을 소모했고, 그렇게 남은 상자들이 삼 분의 일 정도였다.
하지만 이미 시계는 오후 열한 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리를 마저 끝내려면 일을 포기하고 새벽까지 해야 한다. 수당도 못 받는 강제 야근이다.
게다가 내일까지 제출해야 하는 트레이닝 보고서가 하나, 트레이닝 비용 청구서가 하나, 해야 할 영상 분석이 하나. 짐 정리를 미루더라도 일단 이것들부터, 새벽까지는 일해야 한다.
심지어 내일 오전에는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닝 스케줄이 잡혀 있다. 코스 예약을 해 두었기 때문에 미루거나 뺄 수 없는 스케줄이다.
“…….”
이를 악물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이럴 때일수록 하나하나 천천히 일해야 한다. 그나마 소파나 냉장고, 책장 등은 이미 설치가 되어 있는 상태였기 때문에 그런 것까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다는 점이 위안거리다.
그라스 원더에게 도와달라고 할 걸 그랬나, 라는 생각이 잠깐 들었지만, 고개를 흔들어 이내 전부 털어내 버린다. 아무리 우마무스메의 힘이 절실하다곤 해도, 그의 개인적인 일을 중앙 트레센의 학생, 그것도 담당 우마무스메인 그라스 원더에게 도움을 요청할 정도로 타락하지 않았다.
책임을 지는 어른에 대해서 언제나 생각하며 살지 않았던가. 체념한 듯 고개를 푹 떨어뜨리며, 그는 사무실 문 근처에 쌓여 있는 상자들로부터 눈을 돌리며, 컴퓨터 앞에 앉아 키보드를 두드리기 시작했다.
* * * * * * * * * *
그리고 몇 시간이 더 지났을까, 그는 컴퓨터 앞에서 퍼뜩 정신을 차리곤 시계를 보았다.
아니, 사실 시계를 볼 필요도 없었다. 분명 햇빛이라곤 일절 없던 심야의 시간에 일을 시작했지만, 지금은 그의 등 뒤에 있는 창밖으로 햇살이 조금씩 들어오고 있었으니까.
그런데도 시계를 확인하는 것은, 지금 당장 달려가야 하는지, 아니면 조금은 쉴 수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이리라.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닝은 아홉 시 정각에 시작이다. 여기에서 운동장까지는 걸어서 십여 분 정도 걸리니까…대충 샤워라도 하고 가려면 넉넉하게 삼십 분은 필요하다.
“여유네, 여유.”
여섯 시 반이다.
두 시간 정도는 자고 갈 수 있다. 완전 여유만만이 아닌가. 레이스 도중에 스태미너가 회복될 것만 같은 느낌이었다.
바로 휴대폰의 알람을 여덟 시 이십 분에 맞춰둔다. 그리곤 모니터와 사무실의 불을 끄고, 곧바로 소파 위로 점프! 대충 근처에 어질러져 있던 와이셔츠를 이불 삼아 덮는다. 그래봐야 배 정도만 덮을 수 있었지만, 어차피 여름이기에 그거면 충분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에어컨을 트는 것이다. 집에서는 전기세 때문에 마음껏 못 틀지만, 중앙 트레센 근무의 좋은 점이 뭐냐, 여름에 에어컨, 겨울에 난방을 마음껏 틀 수 있다는 것이다.
아, 피곤하다. 그런데 묘하게 행복하다. 그가 추구하는 한량의 삶답지 않게 일에 찌든 어제와 오늘이지만, 뭐, 무릇 한량 또한 근본은 선비이기에, 가끔은 일에서 오는 보람을 느끼는 것 또한 행복이다.
그러니까, 두 시간만.
소파에 머리가 닿는 순간, 그 짧은 생각과 함께 의식이 순식간에 사라졌다.
끼이익, 하고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지만, 착각이리라.
“…….”
그렇다, 어느 순간 잠에 빠져든 그는 모르겠지만,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그러니까, 그라스 원더가 그의 사무실 문을 열고 들어온 것이었다.
꼬리를 살랑살랑 흔들며 들어온 그라스 원더는,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쓴웃음을 짓는다. 잠들어 있는 트레이너 씨는 당연히 모르시겠지만, 지금은 아홉 시보다 삼십 분이 더 지난 시간이다. 트레이너 씨가 안 오시니까, 그라스 원더가 찾아온 것이다.
평소에 원체 기행을 저지르고 다니는 트레이너 씨이긴 하지만, 그래도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닝을 비롯한 그의 업무에서만큼은 진지한 사람이기 때문에 뭔가 사정이 있을 거라곤 생각을 했다.
그다음 머릿속에 떠오른 것은, 개인 사무실로 짐을 옮겨야 한다고, 그렇게 말씀하셨던 것이 기억이 났다. 그라스 원더가 도와드릴까요, 라며 물어보았지만, 트레이너 씨는 코웃음을 치며 거절하셨었다.
그리고 그 거절의 대가가 지금 이것이리라. 문 옆에 아직도 제법 쌓여 있는 상자들, 트레이너 씨는 정리한다고 정리하셨겠지만, 여전히 어질러져 있는 집기들과 책, 그리고 종이 뭉치들. 그리고 소파에 누워 쿨쿨 잠들어 있는 트레이너 씨.
분명 밤늦게까지 짐을 나르고, 정리하고 트레이너 씨의 업무를 보고, 새벽이나 되어서야 잠깐 눈을 붙이려 하셨겠지…안 봐도 대강 사정은 알 수 있었다.
그래도, 그건 그거고 괘씸한 것은 괘씸한 것이다. 담당 우마무스메의 트레이닝은 까맣게 잊어버린 채, 무슨 꿈을 꾸고 계실까.
“후후…모처럼이니 장난이라도 쳐 볼까요.”
조용히 중얼거리며, 그라스 원더는 그가 깨지 않을 선에서 작은 장난이나 칠까 하여 그의 곁으로 다가갔다.
이렇게 보니까 확실히, 트레이너 씨는 남자다. 물론 신체 능력은 테스토스테론 따위와는 비교도 되지 않는 우마소울의 힘으로 그라스 원더가 월등하지만, 근본적으로 남성과 여성의 차이는 분명히 있다.
골격, 키, 근육량과 근 밀도, 탄탄한 복근, 뚜렷한 이목구비, 중저음의 목소리 등등. 그라스 원더에게는 없는, 트레이너 씨가 남자라는 증거들.
그런 것들이 때로는 귀엽지만, 때로는 그라스 원더를 설레게 만드는 것들이기도 했다.
그런 트레이너 씨의 여러 증거에, 그라스 원더의 것, 이라고 작은 낙서라도 해둘까…싶어 마침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던 사인펜을 집었다. 수성이니만큼 나중에 트레이너 씨가 지우기도 쉬울 테니까 좀 짓궂어져도 괜찮으리라.
“그럼 잠깐 실례하겠………………………………엣?”
하지만 사인펜을 들고 트레이너 씨의 곁으로 다가간 그라스 원더는, 사인펜의 뚜껑을 열려던 그 자세 그대로 굳어버리고야 말았다.
그라스 원더의 시야에, 조금 이질적인 무언가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것은, 그라스 원더에게는 없는, 트레이너 씨가 남자라는 확고부동한 증거. 언젠가는 그라스 원더가 감내해야 할, 트레이너 씨의 남성성.
단순히 그것뿐이었다면 그라스 원더가 굳어버릴 이유가 없다. 아무리 중등부라 하더라도 그라스 원더는 알 거 다 아는 우마무스메다. 아니, 애초에 월반한 우마무스메가 아니고서야 모를 리가 없다.
그라스 원더가 상상하던, 그리고 그라스 원더가 알던, 지식으로 접했던, 그런 것들과 너무나 동떨어져 있었기 때문이다. 원초적인 경외, 그리고 그 안에 섞인 약간의 두려움, 새끼손톱 정도의 공포심.
어릴 적 기억에 옅게나마 남아있는 아버지의 것과는 비교도 안 되는…아니, 그라스 원더의 지식―주로 도보메 지로 선생님의 만화라거나 중앙 트레센의 보건 체육 교과서 같은―에 비추어 볼 때 아버지의 것도 분명 작은 것은 아니리라.
그런데 그 어렴풋한 기억 속의 것보다 분명히, 확실하게 더 컸다. 심지어 옷 밖으로 드러난 것도 아니고, 옷을 찢어버릴 듯한 기세로 천장을 향해 그 머리를 치켜들고 있을 뿐이었다.
“우……와, 아……우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흘린다. 왜, 라는 의문을 제기하진 않는다. 배워서 알고 있으니까. 건강한 남성분이라면 매일 아침 일어나는 일이라고, 생리현상이니 불가피한 것이라고.
하지만 배워서 아는 것과 실물로 보는 것은 천지 차이다. 백문(百聞)이 불여일견(不如一見)이라, 트레이너 씨의 위용을 실제로 보니, 제아무리 우마무스메라 할지라도 다리가 살짝 후들거리는 것 같았다.
다른 사람이라면 신경도 안 쓸 텐데, 트레이너 씨라서. 언젠가는 그라스 원더가 저것을 전부…가능할까? 입술이 파르르 떨린다. 평상시에는 저런 느낌이 아니었는데, 트레이너 씨도 그, 엄청나게 커지는 타입인가?
눈으로 대충 봤을 때는 예전, 트레이너 씨와의 작은 결투 때에 맞았던 거대한 화살의 대가 기억 속에서 떠오를 정도였다.
그래, 이러니저러니 해도 그라스 원더는 사춘기 소녀다. 경외와 두려움보다, 호기심이 큰 법이다.
물론 그녀의 요조숙녀로서의 기질은 그녀가 선을 넘는 것을 가로막고 있지만, 다시 말하면 아슬아슬해도 선을 넘지만 않는다면 호기심 정도는 채우도록 너그러이 넘어간다는 뜻이기도 하다.
마침 손에 들고 있는 사인펜―몇 센티인지는 모르지만―이 있으니, 대략, 대략적인 정보는 확인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읏.”
빨갛게 물든 얼굴을 애써 부정하며, 그라스 원더는 트레이너 씨의 트레이너 씨 앞에 다소곳하게 앉았다. 꼬리가 붕붕 흔들리고 귀가 쫑긋쫑긋 정신없을 정도로 흔들렸지만, 아무튼 흥분 기미는 아니라고 자신에게 최면을 건다.
그리고, 천천히 사인펜을, 트레이너 씨의, 트레이너 씨 옆에 살짝 대어본다. 아니, 사실 대어보지 않아도…눈으로만 봐도 사인펜 따위보다는 길다는 것을 알 수 있었지만 그래도…조금 더 정확한 정보를 위해.
“이, 이 정도…군요.”
사인펜의 길이에 그라스 원더의 손바닥 절반 정도를 더하면 대충 비슷했다. 굵기는 굳이 확인하지 않는다. 정확하게 확인하려면 트레이너 씨에게 큰 실례를 해야 하는 데다가, 대충 봐도 어느 정도는 견적이 나오니까. 그라스 원더에게는 조금 버거울 수도 있겠다, 그 생각이 먼저 들 정도니까.
심장이 쿵쿵거리며 혈액이 빠르게 순환한다. 트레이너 씨가 곧 일어날 것만 같았다. 그라스 원더는 나쁜 아이구나, 그렇게 실망할 것만 같았다. 자신이 무엇을 하러, 왜 여기에 왔는지도 잘 기억이 나지 않는다. 호흡이 조금씩 빨라진다. 거친 느낌마저 든다. 더 있으면 안 될 것만 같았다.
조심스레, 트레이너 씨가 깨지 않도록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사인펜을 품속에 집어넣는다. 도망가듯 그의 사무실을 떠난다. 문을 닫을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저, 복도를 쫓기듯 빠른 걸음으로 내달린다.
트레이닝을 하러 운동장으로 바로 돌아가지 않는다. 돌아가긴 하겠지만, 일단 확인해보고 싶은 것이 있다. 기숙사는 조금 멀다. 그리고 엘 콘도르 파사가 농땡이를 피우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화장실로 향한다.
“하아…하아, 후우….”
화장실에 아무도 없는 것을 확인하고, 대충 아무 곳에나 들어가 문을 닫은 뒤에야 그라스 원더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흥분 기미를 가라앉힐 수 있었다. 침착하자, 그라스 원더. 정신일도 하사불성의 자세로, 차분하게 집중하자.
그리곤 품에서 사인펜을 꺼낸다. 거기에 자기 손바닥 반 정도의 길이를 대충 더하여 길이를 확인한다. 사인펜을 집어넣고, 양손으로 대충이나마 그 길이를 맞춰본다.
“…….”
그리고 그 길이를, 아래쪽에 가져다 대어 본다.
“……!?”
배꼽보다도 더 위쪽까지, 이, 이거…가능은 한가 싶을 정도로, 그라스 원더의 예상보다 더…걱정이 될 정도였다.
“이, 이런…게…여, 여기? 여기, 까지…?”
당연한 말이지만 그라스 원더에게는 무리다. 아니, 세상의 누구를 데리고 와도 대부분은 무리일 것이다. 배꼽보다 윗부분에 있는 내장은 당연하게도 생식 기관이 아니다. 복잡하게 얽힌 소화기관이고, 조금만 더 올라가면 위와 간이 자리 잡고 있다.
끝까지 전부, 그라스 원더가 받아들일 수 있을 리가 없다. 굵기야 버티면 된다지만, 길이는…물리적으로 무리, 무리, 절대로 무리다.
조금 더 자라면, 이라는 희망도 없다. 본격화가 끝난 우마무스메이기 때문에 신체가 더 성장하지 않음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다. 걱정과 두려움이 그녀를 지배한다.
하지만, 그런 부정적인 감정들과 더불어, 희열과 기대감 또한 그녀를 조금씩 침식해간다. 그야…작은 것보다는 큰 편이 당연히 좋은걸. 그라스 원더를 채우지 못하는 것보다야, 가득 채우고도 남는 편이 좋은걸.
천천히 손으로 배꼽 부근을 살짝 눌러본다. 그리곤 조금씩 위로, 아주 조금씩, 천천히 올라간다. 뭔가 기분이 이상하다. 그라스 원더 본인의 손으로도 이런 느낌인데, 트레이너 씨의 손…아니, 트레이너 씨의…분명 엄청나겠지.
몸이 살짝 떨린다. 춥다고 느끼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이 더운 여름에 열사병이라도 걸릴 것처럼, 몸이 달아오르고 머리는 어지럽다. 하아, 작게 심호흡을 한다. 후덥지근한 숨결이 뺨에 닿는다.
“읏…….”
순식간에 흥분 기미에 집어 삼켜질 것만 같았다. 사인펜은 이미 바닥에 떨어뜨린 지 오래다. 자연스레 배를 살살 문지르던 손이 아래쪽으로 향한다. 꼭 닫힌 허벅지와 다리가 마지막 저항을 시도한다. 하지만 함락되는 것은 시간문제―
“이건, 아니야…아니에요.”
―일 줄 알았으나, 그녀의 손가락이 하얀 천 쪼가리에 닿기 전에 요조숙녀 사무라이 아가씨의 혼이 그녀의 정신을 붙들어 맨다.
트레이닝, 해야, 한다. 레이스를 위해서도 중요하거니와, 트레이너 씨와의 시간이다. 트레이너 씨가 진중하고 세심하게 그라스 원더를 신경 써 주는 시간이다. 조금 (많이) 늦게 시작하지만, 그래도 그 소중함은 변함이 없다.
그럴진대, 그라스 원더가 이렇게 충동적으로 트레이너 씨를 가지고 그녀의 추잡한 욕망을 푼다면, 오늘 그를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인가. 트레이너 씨와의 시간은 순수해야 하며, 그라스 원더를 더럽히는 것은 그녀 자신조차 아닌, 반드시 그녀의 담당 트레이너 씨여야만 한다.
그것이 이국의 푸른 사무라이가 가진 충심이요, 요조숙녀의 연심이다.
얼마나 부끄러운가, 하마터면 우마무스메의 깊은 욕망에 홀라당 넘어갈 뻔했으니. 수치심을 이기지 못해 양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고개를 떨어뜨리자, 깊은 한숨이 절로 나온다.
하지만 그라스 원더는 아직 깨닫지 못했다.
그녀의 한쪽 입꼬리가 천천히 올라가고 있었음을.
* * * * * * * * * *
그라스 원더의 트레이너는 담당 우마무스메 앞에서 고향의 전통적 사죄 방식인 그랜절을 하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하다. 트레이닝에 한 시간을 늦어버렸기 때문이다.
건장하고 튼튼한 그의 신체로도 그랜절은 제법 버거운 사죄 동작이었지만 그래도 이게 낫다. 일본의 유구한 전통의 사죄 방식인 불판 도게자를 하는 것보다야, 백만 배 낫지.
“최근 들어 자주 늦으시네요.”
“죄송합니다! 담당 우마무스메님의 트레이닝에 다시는 늦지 않겠습니다!”
입이 백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최근 한 달 동안 한 번도 아니고 두 번이나 늦었으면 나기나타의 대로 몇 대 맞아도 할 말이 없는 것이 당연하다.
물론 다른 한 번은 어쩔 수 없는 개인적 사정이 있었지만, 그라스 원더에게 그것을 알아달라고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어서 트레이너 씨의 기숙사로 찾아갔던 적이 있었지요.”
“……모르겠는데.”
그라스 원더의 시선을 회피하며 그는 중얼거린다. 눈 떠보니 침대에 그라스 원더가 있었던 기억을 굳이 떠올리고 싶진 않았으니까.
“기억나게 해 드릴까요?”
“아닙니다, 죄송합니다. 그런데 무단 침입은 범죄야.”
“트레이너 씨가 저를 신고해서 트레이너 씨 자신의 커리어를 망칠 거라곤 생각하지 않아요.”
“…….”
그라스 원더의 입에서 나온 말 치곤 상당히 뱀같이 교활한 말이었다. 황당하다는 표정으로 그라스 원더를 보자, 그의 담당 우마무스메는 싱긋 웃는다.
“아무튼, 트레이너 씨. 요새 좀 편하시죠?”
“쓰읍……왜 심볼리 루돌프네 선배님께서 화가 나셨을 때 하실 법한 말을 네가 하는 거니?”
“개인 사무실로 이사하시니 마음이 좀 편해지셨나 해서요.”
“어, 어라…어어, 음…….”
이상하다, 그의 표정이 기묘하게 일그러진다. 그가 사고를 치거나 뭔가 큰 실수를 해서 선배 트레이너에게 조인트 까일 때 듣는 말들이 왜 담당 우마무스메의 입에서 나오느냔 말이다.
착각이겠지,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그는 그라스 원더에게서 시선을 돌린 채로 입을 열었다.
“그, 그런 건 아니고…어제 늦게까지 짐 나르고 업무 보고 하다 보니까 그만…그렇게 된 거라니까.”
“어제 제가 도와드리겠다고 했을 때는 문제 없을 거라고 하셨잖아요.”
“그렇긴 한데.”
“그리고, 아직 다 정리 못 하셨죠?”
“……그렇긴 한데.”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그는 속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그가 알 리 만무하다. 그가 자는 사이에 담당 우마무스메가, 그의 사무실을 방문했었다는 것을. 그가 그라스 원더에게서 눈을 피하고 있는 것처럼, 그라스 원더 또한 그에게서 시선을 돌리고 있다는 것을.
“그렇네요. 그러면 어서 트레이닝을 끝내고, 같이 정리하러 갈까요?”
“아니, 내 사무실 정리는 내가 알아서―”
“트레이너 씨가…말대꾸인가요?”
“아니, 꼭 도와주면 좋겠다고. 점심은 내가 살 테니까.”
“어머~♪ 그렇다면 아무쪼록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라스 원더가 미소와 함께 양손을 모으며 인사 아닌 인사를 한다. 그제야 작은 한숨을 내쉬며 그는 가져온 트레이닝 차트와 스톱워치를 손에 들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
갑작스럽게 시야에 들어온 트레이너 씨의 건장한 하체에, 불과 삼십 분밖에 되지 않았던 기억이 물밀듯 떠오른다. 순식간에 얼굴이 빨갛게 달아오르고 숨이 턱 막힌다.
“그라스?”
트레이너 씨가 걱정스러운 말투로 이름을 부른다. 조금씩 가까이 다가온다. 반사적으로 고개를 휙 돌린다. 입이 바싹바싹 마른다.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무슨 행동을 해야 할지, 전혀 떠오르지 않는다.
트레이너 씨가 한 걸음 한 걸음 가까워져 올 때마다, 그라스 원더의 심장이 빠르게 쿵쾅거린다. 날이 더워 체육복 반바지를 입은 트레이너 씨였기 때문에, 우마무스메의 예민한 후각은 그의 피부에서 올라오는 옅은 남성의 체취마저 저주스러울 정도로 민감하게 잡아낸다.
“준비운동부터 간단하게 하고……야, 야! 그라스 원더! 어디 가!”
“한 바퀴만 달리고 올게요―!!”
“야, 준비운동 안 하고 갑자기 달리면…!”
반사적으로 그라스 원더는 트레이너 씨의 반대편으로 내달린다. 트랙이라도 돌면 흥분 기미가 가라앉을 테니까. 이런…이런 유혹에 굴복하지 않을 거니까.
하지만 그런 그라스 원더를 보며 트레이너 씨는 조금 상처받았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어차피 늦은 거, 샤워는 하고 올 걸 그랬나.”
그 이유 때문은 아니지만, 그라스 원더의 흥분 기미의 원인을 그가 알 수 있을 리 없었다.
잔디가 무성하게 올라온, 중앙 트레센의 어느 여름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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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살아남을 것인가
쓴이 글이 더 안올라오면 강등당한 것 ㅋㅋㅋㅋ
이미 뾰이한 사이 아니었나요??? 강제뾰이 당한 게 아니었다... 그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