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타닉호의 기관사들)
(타이타닉호의 화부들)
보통 여객선에는 배 위에서 주로 일하는 갑판부, 배 안에서 주로 일하는 영업부, 그리고 배 밑바닥에서 주로 일하는 기관부 세 부서가 있고 1912년 침몰한 RMS 타이타닉 호도 마찬가지였다.
이 중 침몰 당시 가장 고생한 부서는 아무래도 선원 1125명 중 영업부 다음으로 많은 316명으로 증기선 밑바닥에서 동력을 책임지는 기관부였을 것이다. (다만 사망율은 세 부서에 속하지 않은 외부 파견직 선원들이 제일 높았다.)
배에 물이 들어오는것을 처음으로 목격하고 현장에서 허겁지겁 빠져나온 것도 배의 보일러실에 석탄을 떼우던 화부들이었으며 다른 선원들과 승객들이 대피하는 와중에도 기관부원들은 동력을 유지하기 위해 목숨을 각오하고 배 밑바닥에서 일했다.
전기가 계속해서 보급되어야 물을 빼는 펌프가 작동되고 무선으로 구조신호를 보낼 수 있으며 (이걸 의식했는지 무전사들은 통선에서 기관실이 침수되고 있다는 사실을 강조했다) 배에 불빛이 유지되어 다른 승객들과 선원들이 대피할 수 있기 때문이었다.
기관실과 전기실에서 기관사들과 전기공들은 계속 엔진을 유지했고 보일러실에서 화부들은 계속해서 석탄을 퍼나르며 보일러를 떼웠다. 또한 침수되는 구역에서는 침몰을 최대한 늦추고 보일러와 물이 닿아 폭발하는 것을 막기 위해 목숨을 각오하고 펌프로 물을 빼야 했다.
침몰에서 알려진 처음으로 죽은 사람들도 부하들이 물 빼는 것을 돕다가 격벽이 터져 익사한 기관사 두 명이었다. 기관사 한명이 다리가 부러진 상태였는데 물이 새어가면서 터지기 직전 동료가 이를 차마 못 본 척 할 수 없어 구해주려다가 같이 물길에 휩쓸렸다고 한다.
더 이상 할 수 있는 것이 없어지자 이들도 탈출 명령을 받고 하나 둘 씩 빠져나왔지만 이미 구명보트 대부분이 떠난 뒤였다. 가까스로 살아남은 화부들은 제대로 껴입을 시간도 없어 얇은 옷만 입고 추위를 감수해야 했다고 한다.
기관장을 포함한 기관부의 희생 덕분에 침몰을 1시간 가까이 늦춰 배가 침몰하기 전 대부분의 구명보트를 진수할 수 있었으며, 침몰 2분 전까지도 배의 불빛이 유지되고 있었다.
최근에 타이타닉 잔해를 조사해 본 결과 침몰 직전까지 전력이 공급되고 있었던 것을 보여주는 열린 증기 밸브가 발견되었다.
(열린 증기 밸브)
기관사 (기관장 포함) - 24명 전원 사망
전기공 - 8명 전원 사망
보일러공 - 2명 전원 사망
배관공 - 1명 사망
사무원 - 1명 사망
화부장 - 13명 중 3명 생존
화부 - 163명중 45명 생존
석탄 운반수 - 73명 중 20명 생존
조기수 - 33명 중 4명 생존
선원 식당 조리수 - 6명 중 1명 생존
기관부 총 316명 중 72명 생존 (23%)
1914년 세워진 기념비의 모습인데 세워질때 10만명이나 인파가 몰렸다고 한다. 다음과 같은 비문이 새겨져 있다.
사람이 친구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버리면 이에서 더 큰 사랑이 없나니.
요한복음 15장 13절
1912년 4월 15일 자리에 남아 높은 직업정신과 영웅심을 보여준 R.M.S 타이타닉호의 기관사들을 기리며.
전세계의 동료 기관사들과 친구들에 의해 세워짐
타이타닉호의 기관부원들은 비록 여객선이었지만 제1차 세계대전을 포함해 언제 격침될지 모르는 군함 기관부원들에게도 모범이 되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난리통에서 살아남은 화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