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건 괴담도 아니고 진짜 제 할머니 얘기입니다.
제가 태어났을 때 계셨던 조부모는 친할머니가 전부였습니다.
할아버지는 돌아가신지 오래되셨고 외할아버지랑 외할머니도 안 계셨죠.
할머니는 첫인상이 별로 안 좋습니다.
어머니도 처음 시집와서 할머니를 뵙고는 강건한 인상에 앞으로 고되겠다는 생각이 바로 들었다고 하셨으니까요.
제 기억에도 할머니의 웃는 얼굴은 잘 기억이 나지 않습니다.
항상 담배를 피시면서 인상을 쓰시던 진한 눈썹이 아직도 제 머리속에 할머니로 그려집니다.
하루는 구정 때 가족들이 모두 할머니댁에 모였습니다.
아버지 형제분은 모두 6명인데 서울이며 지방에 뿔뿔히 살고 있어서 다 모이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멀리서 올라온 친지분들은 좁지만 어쩔 수 없이 할머니댁에서 자고 가기로 했죠.
그런데 유독 둘째 큰아버지만 밤 10시가 넘었는데도 억지로 집에 가겠다고 하는 겁니다.
제가 어린 나이에도 기억이 날만큼 이상해 보였죠.
어쩌피 다음 날은 휴일이고 아침에 천천히 가면 될 것을
어렵게 아침에 모여 놓고는 당일날 밤에 곧장 다시 돌아가겠다고 하니 친척분들은 자고 가라면서 계속 권유를 했죠.
어쩔 수 없이 둘째 큰아버지는 자고 가기로 했지만 할머니댁이 아닌 근처 여관으로 향했습니다.
그리고 그 날 밤에 왜 그토록 둘째 큰아버지는 할머니를 어려워하는지 알게 됐습니다.
아니 바꿔 말하면 할머니를 무서워했던 겁니다.
둘째 큰아버지가 어렸을 때 그러니까 중학생 정도였을 때,
하루는 천둥이 치고 비가 엄청 쏟아지는 날이였답니다.
그 날 어찌하다보니 둘째 큰아버지는 할머니와 아직 애기였던 작은 고모하고만 집에 남아 있게 됐는데
아무래도 60년대 지방 시골 마을이라 불도 없던 시절 비도 오고하니 일찍 잠에 들었답니다.
얼마를 잤을까 천둥이 하도 많이 쳐대서 잠에서 깨어 났는데
앞에선 할머니가 흰색 소복을 입고는 등을 돌리고 앉아 뭔가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둘째 큰아버지는 할머니에게 뭐하시는 거냐고 계속 물어봤지만 대답이 없었고
결국 앞으로 엉금엉금 기어 가서 뭘 하는지 봤는데, 가만히 허리를 세우고 앉아서 먹을 갈고 있더랍니다.
아니 밤 중에 촛불도 안켜고 간간히 쳐대는 천둥에만 살짝살짝 비추는 시커먼 먹을 갈고 있으니
너무 무서워서 큰아버지는 다시 돌아가서 자는 척을 했답니다.
자는 척을 하면서 가만히 생각해 보니 할머니는 글도 쓰고 읽을 줄 몰라서 붓 한 번 들어본 적이 없었는데
갑자기 오밤 중에 할아버지 먹을 갈고 있으니 갑자기 소름이 확 솟아서 도저히 잠을 잘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몇 분이 흘렀나 먹 가는 소리가 끝나고는 할머니는 아무 말도 없이 갑자기 흰 치마 폭을 쭉 펼치더니
붓을 들고 생전 듣도 보도 못 한 한문과 한글을 막 써 내려 갔답니다.
천둥에 간간히 보이는 할머니 모습은 예전에 보아왔던 얼굴이 전혀 아니였고
마치 어떤 기풍 넘치는 남자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고 하네요.
그 모습을 보고 기절하다시피 잠에 들었는데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났을 땐
이미 할머닌 다른 옷을 갈아입고 집에는 글을 썼던 흔적도 먹을 갈았던 흔적도 전혀 안 보였다고 합니다.
그 날 뒤로 아무리 그것을 물어봐도 할머니는 모른다는 말만 하셨지만,
그 밤이 실제인 것을 부정할 수 없는 점 하나는 이후로 배운 적도 없는 글을 읽고 쓰신다는 겁니다.
확실히 할머니는 지방 중에서도 완전 시골 출신이시라 소학교도 나오지 못한 걸로 아는데,
그 연세에도 신기하게도 모든 한자와 한글을 보고 쓰신다고 생각했는데
이런 일화가 있었다는 걸 알고 많이 놀랬습니다.
둘째 큰아버지는 할머니가 무서워서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바로 집을 나와 상경을 했다고 하는데
나이 50이 넘어가는 지금까지도 그 날이 잊혀지지가 않아 아직도 할머니가 무섭다고 합니다.
실제로도 할머니와 대화하는 모습을 거의 본 적이 없습니다.
아버지도 하시는 말씀이 할머니가 실제로 배운 적도 없는 한글을 어느 날 갑자기 쓰기 시작해서
이상하다고는 생각했지만 그 일에 관해서는 모르고 계셨다고 합니다.
그리고 둘째 큰아버지는 제일 큰 고모와 첫째 큰아버지 그리고 자기까지 그렇게 고등학생이 되자마자 부랴부랴 집을 떠난 이유가
한 가지씩 할머니와 무서운 에피소드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하면서 얘기를 마쳤습니다.
이번 얘기는 이걸로 줄이겠습니다.
괜찮으면 내일 다른 에피소드를 꺼내겠습니다.
2.
그래도 읽어주시는 분들이 계신 거 같아 오늘 다른 에피소드를 꺼내기 위해 왔습니다.
또 쓰지만 괴담이나 그런 게 아니고 지금은 돌아가신 진짜 우리 할머니의 이야기입니다.
할머니는 키가 그 연세에 안 맞게 크십니다.
키가 약 160대 후반이니 젊었을 땐 170이였다 해도 믿었을 겁니다.
동네에서도 키 큰 할머니라고 하면 모두가 알 정도였죠.
그리고 돌아가시기 전까지 지팡이를 짚지도 않으셨습니다.
가족이 돈을 모아 고급 목재로 된 지팡이를 사 드렸지만 어느새 집에 가보면 항상 구석에 박혀서 먼지만 쌓이고 있었죠.
풍채가 좋은 편은 아니셨지만 힘이 좋으셔서 말도 없이 장도 항상 혼자 보시고
양손으로 가득 봉지를 들고 그냥 걸어 다니시는 일이 매번이셨습니다.
아직도 저에게 직접 기른 옥수수를 쪄 준다고 한 손엔 보자기 가득 옥수수를,
다른 한 손엔 압력 밥솥을 들고 갑자기 집에 찾아 오신 기억이 납니다.
오늘은 제 고모와 큰어머니가 할머니와 겪은 일화를 적어보려 합니다.
둘째 큰아버지에게 그 얘기를 들은 지 얼마 안되서 저는 큰 고모댁에 방문할 일이 생겼습니다.
간 김에 저녁을 함께 하면서 은근슬쩍 할머니에 대해 여쭤봤죠.
왜 갑자기 그런 거 물어보는지 이상하게 생각은 하시면서도 얘기를 해주셨습니다.
예전 고향에서 할머니와 살고 있었을 때 시골 마을에선 굿판이 많이 벌어졌다고 했습니다.
마을도 작은데 굿판이 벌어지면 온 동네 사람들 구경이였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할머니는 절대 굿판 근처에는 가지도 않았다는 겁니다.
굿이 끝나면 떡이라도 나눠주니 갈 법도 한데 말이죠.
하루는 고모가 할머니와 읍내에 나갔다가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길목을 막아서고 굿을 벌이는 집이 있어 어쩔 수 없이 통과해야할 일이 있었답니다.
결국 구경하는 사람들을 밀치면서 지나가는데 갑자기 굿판이 조용해지면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나더랍니다.
그래서 무슨 일인가하고 살펴 보니 굿을 하면서 춤을 추던 무당이
어느 순간 갑자기 뒤로 돌아 무릎을 꿇고 앉아서는 할머니에게 머리를 조아리고 있던 겁니다.
그걸 본 할머니는 급하게 고모 손을 잡고 그 곳을 빠져 나갔다고 하지만
고모는 그 때 할머니를 쳐다보던 구경꾼들과
그 무당의 마치 금방이라도 자지러질 것 같던 무서운 표정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는다고 합니다.
이후에도 바로 옆집에서 굿을 하던 무당이
갑자기 찾아와 할머니 다리를 잡고 미칠 듯이 통곡하던 적도 있었다고 하니.
이제와 생각해 보면 할머니는 신내림을 받았어야 했나 생각한답니다.
이 얘기를 듣고 바로 집에 가서 어머니에게 전해드렸더니 전 또 다른 일을 들을 수 있었습니다.
큰어머니는 가끔 사주와 점을 보러 다닙니다.
하지만 아무 데나 가는 건 아니고 정말 유명하다는 점집만 찾아가죠.
제 부모님은 그런 데에 돈을 쓰는 큰어머니가 별로 마음에 안 드셨지만
사주볼 때 저희 가족까지 신경 써 줄 때가 있어서 가끔 소식을 듣고는 했습니다.
한 번은 2000년 경에 큰어머니가 가족 모두의 점을 보러 간 적이 있었답니다.
그리고 가는 김에 요새 연로하신 할머니의 점도 보려고 자료를 챙겨 갔었다고 합니다.
그 점집은 유명하다고 해서 일부러 몇 달 전부터 예약까지 해서 찾아갔던 곳이라고 하는데
정말 신기하게도 가족들의 문제나 과거까지 모두 들어 맞혔다고 합니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할머니의 점을 봐 달라고 부탁을 했는데 거기서 문제가 있던 거죠.
지금까지 막힘없이 술술 풀어가던 무당은 할머니에 대해서는 아무 말도 못 했던 겁니다.
되려 큰어머니에게 대체 이 분이 누구시냐고 되물었답니다.
우리 시어머니시라고 대답하자 무당은 꼭 좀 뵙고 싶다고 하면서
이 분은 이렇게는 점을 못 본다고 가능한 아무 날이나 모시고 와 달라고 하더랍니다.
그러면서 그 날 점을 본 복채를 받지도 않았다고 합니다.
마지막까지 꼭 좀 모시고 와달라는 말만 부탁했답니다.
그 일이 있고 이상하게 생각한 큰어머니는 다른 유명 점집에 찾아가서 할머니의 사주를 또 부탁했는데
마찬가지로 돌아오는 답은 이 분이 누구시냐는 되물음이였다고 합니다.
그래서 결국 할머니를 모시고 처음 갔던 점집으로 찾아 갔답니다.
이상한 건 예약까지 하고 찾아가야 했던 점집인데
그 날은 무조건 오라는 말만 했고 맨날 북적이던 점집 앞에는 아무도 없었다는 겁니다.
그렇게 할머니를 모시고 문을 들어서는데 원래는 그냥 가만히 앉아서 쳐다 보지도 않고
'이리오라' '앉으라' 이런 식으로 말했던 무당이
큰 눈을 하고선 갑자기 일어나서 헐레벌떡 다가와 할머니를 모시고는 손님이 앉는 자리가 아닌 자기 자리에 앉게 했답니다.
뒤에 화려한 병풍이 있고 큰 방석과 여러 장신구들이 있는 곳인데 할머니에게 전혀 위화감이 없었답니다.
그러고는 큰어머니는 서 있게 하고 자기가 손님이 앉는 자리에 가서는 큰절을 올리는데,
그 절을 아무 소리 않고 그냥 받고 계시는 할머니가 정말 무서웠다고 합니다.
마치 원래 그래야 된다는 거 마냥 양반 다리를 하고 앉아 무당을 내려 보는데 뭔가 달랐다네요.
그러고선 큰어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해 달라는 말을 하고 한 10여 분을 계속 혼자 떠들었다고 하는데
중간중간에 '장군님' 이라는 호칭을 계속 불렀답니다.
예를 들면 '왜 이제 오셨습니까 장군님' 이런 식으로 말이죠.
한 10여 분 뒤에 무당이 한참 떠드는 걸 멈추고 문을 열고 나와서는
큰어머니는 쳐다보지도 않고 어디론가 가더니 금방 돌아 와서 할머니를 잘 부탁한다는 말을 했답니다.
그리고 할머니를 천천히 부축해서 문 밖까지 모시고 나가서 모범 택시를 불러 택시값까지 지불해주고
코너를 돌아 떠날 때까지 엎드려서 절을 하는데 너무 섬뜩해서 할머니에게 아무 말도 못 했다는 겁니다.
할머니는 뒤로 집에 도착할 때까지 한 마디도 하지 않으시다가
도착해서는 큰어머니가 이제 돌아간다고 하자 '고맙다'라는 말을 했답니다.
아직 그 고맙다라는 의미를 모르겠다고..
이번 이야기는 어찌 하다보니 무당관련된 얘기로만 맞춰졌네요.
괜찮으면 내일 또 다른 에피소드로 찾아오겠습니다.
3.
안녕하세요.
재미있으셨는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3번째까지 오게 됐네요.
아마 이번 글이 우리 할머니 이야기의 마지막이 될 거 같습니다.
그럼 간단한 인사를 마치고 마지막 에피소드를 꺼내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실 것만 같던 할머니께서 어느 날 고통을 호소하셨습니다.
급한 마음에 병원에서 진찰을 받고 자궁암 말기 판정을 받으셨죠.
연세도 여든이 다 되어가시는지라 수술도 불가능한 상태에서 항암 치료만 가능하다고 했습니다.
사실 거의 시한부 선고를 받았다고 보면 됐었습니다.
곧 병원에 입원을 하셨고 어느 날 찾아뵈러 갔을 때
예전의 강건한 모습이 아닌 수척해진 얼굴을 보고는 저는 적잖은 충격을 먹었습니다.
왜냐하면 예전에 무당과의 일이 있고
큰어머니가 후에 다시 한 번 그 점집을 찾아가 할머니의 사주를 간단히나마 부탁했을 때,
그 무당은 할머니의 명은 누군가 정하는 게 아니고 그 분의 명이 따로 있다고 하셨으니까요.
전 그 얘기를 듣고 정말 만수무강하실 거라 생각했었습니다.
하지만 앞에는 금방이라도 쓰러지실 거 같던 할머니가 누워 계셨으니까요.
그렇게 입원을 하신지 약 반 년 정도가 흘렀습니다.
항암 치료도 중간에 받으시다가 이제 싫다는 할머니의 말씀에 그만 둔 지 시간이 꽤 되었었죠.
그리고 할머니께서는 이제 집으로 가고 싶다고 하셨습니다.
의사도 항암 치료를 거부하시는 마당에 병원에 계실 이유는 없다고 했죠.
가끔 통원 치료나 더 상황이 악화되면 오시라는 말만 했습니다.
가족들 모두가 걱정을 했지만 완강한 할머니의 의지를 막을 순 없었습니다.
신기한 일은 할머니께서 집으로 돌아 가신 뒤였습니다.
자궁암 말기면 암이 퍼질대로 퍼져서 허리가 매우 아프다고 합니다.
걸을 수도 없고 누워 있어야만 합니다.
하지만 할머니께선 집으로 오신 지 이틀만에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바람을 쐬신다고 나가셨습니다.
그 뒤에도 몇달이나 그렇게 아프다는 말 한 마디 없이 평소와 다름 없는 생활을 지내셨죠.
전 그렇게 쾌유하신지 알았지만 정기 검진 때마다 나아진 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을 알았죠.
하지만 어떻게 그렇게 지내셨는지..
1년을 아무 일 없이 보내셨습니다.
도저히 시한부 인생을 사시는 분처럼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아버지가 해외근무를 해 집에 없는 관계로 할머니는 혼자 사는 막내 삼촌과 지내셨는데,
할머니는 매일 아직 노총각으로 있는 막내 삼촌을 걱정하셨습니다.
얼마 안 지나 막내 삼촌에게 드디어 배우자가 생겼고 곧 독립하게 되었죠.(하지만 돈이 없어서 결혼식을 못 했습니다.)
그러자마자 할머니는 이제 공기 좋은데서 여생을 보내고 싶다고 하셔서
경기도 구석, 이제는 은퇴한 선교사인 어머니의 지인의 집에서 머물게 되었습니다.
위치도 멀지않고 산속이라 공기가 좋아 알맞을 것이라는게 가족의 의견이였죠.
문제는 그쪽으로 간 뒤로부터 생겨났습니다.
할머니께서 선교사분 집으로 들어가신 지 한 달 뒤에 어머니에게 전화가 왔다는 겁니다.
전화의 내용인 즉 이러했습니다.
일주일 전부터 할머니께서 새벽만 되면 고함을 지르면서 화를 낸다는 겁니다.
그렇게 새벽 내내 고함을 지르고 나면 아침이 되서 진이 빠져 쓰러지고
다시 오후가 되면 일어나서 산책을 하고 오시고는
또 새벽 내내 고함을 지르면서 화를 내고, 이러는 게 반복된다는 겁니다.
어머니는 너무 아프셔서 그러는 거라고 죄송하다는 말과 곧 찾아뵙겠다는 말을 했지만
돌아오는 선교사의 답변은 다른 말이였습니다.
처음엔 그 고함이 자기도 너무 아파서 그러시는 거 같아 진통제를 들고 찾아갔는데
방문 앞에서 들리는 말은 그런게 전혀 아니였답니다.
마치 누군가를 쫓아내려는 듯이 화를 내면서 대화를 하시는 거였는데, 대충
"아직 아니다 이놈아!!"
"어찌 네놈이 벌써 나를 데려가려 하느냐!"
"내가 부르거든 오라 하지 않았냐."
이런 식의 호통이 절반이고, 나머지 절반은 울음이 섞인 통곡이라는 겁니다.
그래서 도저히 겁이 나서 밤에는 못 들어가겠다고 얘기를 했답니다.
그렇게 새벽이 새고 고함이 멈춰 살짝 문을 열어보면 쓰러져 계셔 놀래서 부축하기를 몇 번,
이제 너무 무서우니 안 될 거 같다는 전화였습니다.
어머니는 전화를 끊고는 바로 큰어머니에게 알렸고 다음 날 큰아버지 가족과 함께 할머니를 찾아뵈었습니다.
전 그 때 시험기간이라 가지 못했지만 할머니와 대화한 내용을 간추려보면
막내삼촌이 너무 불쌍하다는 식으로 얘기를 했다는 겁니다.
무슨 이유인가 가만히 생각해 보니 늦장가에 돈이 없어 아직 결혼식을 못 올린 삼촌 때문인 거 같다면서
그 날로 바로 형제 가족 모두가 돈을 모아 막내 삼촌의 결혼식을 잡게 되었죠.
그 날로부터 딱 이틀 뒤 아침에 할머니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선교사 부부가 말하기론 그 전날은 아무런 고함이 없이 조용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아침 날 가보니 소복을 차려 입고 곱게 누워 주무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깨워 드리려 했더니 이미 돌아가신 뒤였다고.
이걸로 우리 할머니 얘기를 줄이겠습니다.
사실 작은 에피소드가 몇 개 더 있지만 그건 나중에 기회가 된다면 다시 찾아 와 풀어보겠습니다.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어르신들이 돌아가실때가 되면
정말 다 아신다는게
너무 신기해요
저도 제 주변에 그런 경우를 봐서 그런진 몰라도
사실 제 눈에 보이거나 느끼진 못해도
영혼이나 귀신...? 뭐 저승사자..
있다고 믿어요~^^
어딜오냐고 호통치신건 저승사자였을지도
삼촌분 결혼식을 못보셨으니
할머니 천둥빛으로 글공부하셨나보네
저희 상할머니도 돌아가시 몇달전부터 그렇게 자기가 모아놓으신 옷이며, 책같은것들을 태웠다고 하시더라구요.
천계 장군이 인간세상 구경하다 갔나 ㄷ
저희 할아버지도 돌아가시기 전에..하얀 옷을 입은 사람들이 집 밖에 서성인다고 하셨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