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승부'에서 이병헌이 연기한 조훈현 9단.
영화에선 자기가 키운 내제자 이창호한테 패배하고 무관에 그쳐서 그 이후로 슬럼프에 빠지고, 제자한테 진 걸 가장 굴욕적으로 느끼지만...
사실 이건 영화적 각색이고, 진짜 조훈현이 굴욕적으로 생각한 경기는 따로 있음.
중국인 여자 바둑기사 루이나이웨이, 한자 음차로 예내위.
1985년 중국기원에 입단한, 여자 바둑기사임.
중국 내에서도 여류 기사로 유명했는데, 사진에 나온 남편 장주주 역시도 바둑기사.
그런데 남편 장주주가 천안문 시위에 참가하고, 그로 인해 중국 공안에게 장주주-예내위 부부에 체포령이 떨어짐.
당연히 중국 내에서 천안문 시위에 참여한 인물은 제거대상이고, 예내위 부부는 대만을 통해 미국으로 도망가고, 해외에서 활동함.
이후 중국기원을 벗어나 일본기원에 입단을 하려 했는데 일본이 거부, 그래서 한국 기원으로 가게 됨.
한국기원: 아 그래도 '반상의 마녀'라 불리는 중국 최고의 여류기사라는데 잘해봅시다.
한국기원은 당시 남자바둑 말고도 여자바둑도 크게 키워보고 싶다는 생각에 멘토 식으로 예내위를 초빙함.
그리고 예내위는 중국인이지만, 한국기원에서 활동하는데...
이분이 한국기원에 '국수'칭호를 얻을 수 있는 국수전에 여성으로 참가함.
그게 뭐 문제냐면....
혼성대결에서 예선전에 유창혁 9단을 이기고....
그 바둑의 신 이창호를 이기고...
나이먹고 제자 이창호 이기고 올라간 국수 타이틀의 조훈현을 결승에서 잡아버림.
한국 바둑 역사상 최초로 여성기사가 남자기사들 다 이기고 국수 타이틀을 차지함.
조훈현은 인터뷰에서 '다른건 몰라도 루이나이웨이(예내위)에게 국수 칭호 빼앗긴건 진짜 치욕적이었다.' 라고 인터뷰 할 정도.
바둑은 여성기사와 남성기사 역량차가 굉장히 큰 종목으로 유명함.
그리고 예내위가 세계랭킹 5위 3위 1위인 유창혁-조훈현-이창호를 차례차례 격파하고 우승함.
여기까지 보면 조훈현이 안타깝긴 한데 왜 인생 가장 치욕적이냐고 하냐면....
원래 예내위는 중국 바둑의 신이라 불리는 오청원(우칭위안)의 제자였음.
참고로 오청원과 조훈현의 스승은 똑같은 분인데...
바로 세고에 겐사쿠 선생.
영화에도 나오는 조훈현의 스승, 9살인 조훈현을 내제자로 들인 바둑계의 대선생이자 조훈현이 세고에 마지막 제자.
즉, 조훈현은...
여성기사에게 진 거고
자국에서 정치문제로 탄압당해 망명생활하다 한국기원으로 온 외국기사에게 진거고
자기 스승님인 세고에 겐사쿠의 제자이자 사형인 오청원의 제자에게 진거고
가장 굴욕적인건 사숙에게 자국 최고기사 타이틀인 국수(國手)전 타이틀을 진 거임.
조훈현 입장에서 제일 멘탈 나간 패배라고 말한게 이해가 되나...?
참고로 제자가 최강이니까
제자가 혼내주면 되는게 아?닐까 싶겠지만...
이창호처럼 돌부처가 아니면 누구라도 멘탈 깨지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