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충 세어봐도 학생에 대한 체벌에 관해선 사회 말고도 학생들의 인식부터가 제법 유했던 시절이다
맞는 입장에서도 학생을 안 때리고 수업 갈피 못 잡는 선생님보다
비교적 객관적이고 합리적인 이유로 체벌을 가하고 수업을 주도하는 선생님을 고평가했으니 말이다
나의 2학년 때 담임 선생님 또한 그런 인물이었는데
적어도 자기 주식 떨어졌단 감정을 섞어 따귀를 때리는 선생이나
술마시고 수업 들어오는 선생보단 평가가 훨씬 좋았다
매를 들기는 앞서 말한 주식쟁이나 주정뱅이보단 네곱절은 더 휘둘렀지만
수업도 잘 가르치고 사사로이 매를 들지 않는다는 점에서 말이다
---
사건은 기말고사 전 야자시간에 터졌다
모든 학생들은 하위권 과목에 한해서 무조건 야간 강의를 들어야했는데
나와 같은 야간 수업을 듣는 같은 반 친구 A가 B를 꼬드겨 야자를 째려고 한 것이다
B는 한사코 거부하며 '오늘은 촉이 안 좋다' 라며 도망치기를 거부했고
A는 '오늘 다른 학교 애들이랑 같이 PC방 약속 잡았다' 며 B를 끈질기게 권유했다
A와 B의 의견 차이는 좁혀지지 않았던 차에
평소 A와 B의 꽁트쇼를 직관하며 즐기던 C가 반 쯤 농담으로
"각서라도 쓰던가" 라고 말했다
B는 이를 듣고선 "각서! 각서 가져와!" 라며 흥분하고
그렇게 A와 B는 찢어진 공책에
'A의 주도하에 야간 자율학습을 도망침'
대충 이런 내용을 작성했고
연필을 갈아 흑연으로 둘이서 지장을 찍은 뒤
이 각서를 B가 가지는 것으로 합의를 보고서야
야간 영어수업을 쨌다
영어 선생님은 학생 도망치는게 한 두번이 아닌지라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다
------
그러나 담임 선생님이 그냥 넘어갈 리 없었다
공교롭게도 A와 B둘이서 도망친 날의 야자 순찰 선생님은
그냥 사람 패고 갈구는 걸 즐기는게 분명한 독종이었기 때문에
그 날 2학년 통틀어서 야자 짼게 A와 B 단 둘 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우리 반에서만! 수업 안 듣고 도망친 사람이 있다고 했다! 내가 얼마나 부끄러운지 알겠나?!"
A는 죽을 상이었으나 B는 각오를 결의한 얼굴이었다
"A! 당장 엎드려뻗쳐!"
선생님은 온힘을 다해 5대를 때렸다
"당장 네 자리로 돌아가!"
어기적거리며 A가 자기자리로 돌아가던 중
나는 A가 언뜻 웃는 것을 보았다
과거 몇 차례 섯다나 고스톱, 블랙잭 등으로 걸린 학생들이
'누가 먼저 시작했어요' 등으로 운을 띄워도
다 같이 체벌을 받았던 걸 기억하며
'고작 공책 쪼가리로는 체벌을 피할 수 없겠지' 같은 생각이었을지 모른다
"B 너도 당장 엎드려뻗쳐!"
선생님의 호령에 B는 더욱 큰 소리로 대꾸했다.
"선생님 전 억울해요! 진짜 이거 좀 봐주세요!"
각서의 존재를 알고있는 나와 C는 긴장감이 돌았다
'과연 저것이 먹힐까?'
대부분의 학생은 '저게 뭔데?' 라며 의문을 표하던 중
선생님은 몇 줄 안 되는 글을 고심히 읽었고
흑연으로 찍어 번진 지장도 눈여겨보는 듯 했다
"일리가 있어"
이 말을 들은 나와 C는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
"A! 당장 다시 나와!"
이 말을 듣자 모두 웃어버렸고
A 혼자 웃을 수가 없었다
"너 이 자식... 우리 착한 B는 수업을 듣겠다고 했는데! A 네가 B 성적 책임져줄꺼야?!"
선생님 또한 화를 내면서도 입가의 웃음을 참을 수 없어 하셨다
선생님의 "엎드려뻗쳐!" 한마디에
B가 환호하자 우리 모두 호호우! 하며 같이 환호해줬고
A는 "아니 이게 아닌데..." 라는 말과 함께 엎드려뻗치자
선생님의 회초리와 함께 우리 모두 함께 A의 매질 카운트를 세줬다
"하나! 둘! 셋! 넷! 다섯! 여섯! 일곱!"
이렇게 7대로 끝나자 환호와 박수로 아침조회를 마쳤다
---------
C는 자기가 각서 써준 덕에 이런 개꿀잼 시츄에이션이 생겼다 자랑하고
B는 각서를 품에 한동안 끼고 다녔으며
도합 12대 맞은 A는 보건실에 갔다
각서를 쓸땐 조심합시다
당시의 상상도
황혼의 20세기 말...
C가 B를 살렸네. A는... 뭐 어쩌겠나.
20년 전이면 21세기 초여
20년 전이면 내가 고2 때니 작성자랑 동갑일듯
각서를 쓸땐 조심합시다
당시의 상상도
황혼의 20세기 말...
20년 전이면 21세기 초여
20년 전이면 내가 고2 때니 작성자랑 동갑일듯
나랑 같은학교 나왔나 싶을정도로
곂치는 선생들이 있네 ㅋㅋ
C가 B를 살렸네. A는... 뭐 어쩌겠나.
법에 어긋나는 각서는 가치가 없긴 한데... 저 각서는 법에 부합하는 건가?
황혼의 00년대 초...
나때랑 비슷한땐가.. 하긴 반지빼고 주먹으로 후드려깠던시절이 있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