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마무스메라고 하면 어김없이 떠오르는 이미지는
고증은 칼 같이 지킨다라는 것이다.
물론 복잡한 어른의 사정 같은 이유로
이름이나 지명을 뒤틀거나 바꾸는 경우는 있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칼 같이 고증하려고 노력한다.
정말 놓치기 쉬운 부분도 집요하게 잡아내서
우마무스메라는 IP의 특징이 될 정도.
그런 기조는 신데렐라 그레이 쪽도 다르지 않아서
만화도 그렇지만 애니에서도,
그냥 무시하고 가도 좋을
신잔의 아리마 기념 우승 사진까지도
비슷한 구도로 만들어 놓음.
근데 만화에서도 애니에서도
1화에서부터 가볍게 씹고 넘어간 고증이 하나 있으니
키타하라 죠온즈가 처음으로 나올 때
딴짓하며 보고 있던 일본 더비.
그냥 중앙에서 가장 잘 알려진
가장 유명한 시리즈를 예시로 보여준 게 아닌가 싶지만
고증을 따져보면 시작부터 단단히 잘못 되었다.
오구리 캡이 처음으로 데뷔해서
후지마사 마치, 아니 마치 토쇼에게 석패한
카사마츠 서러브레드 계 4세 신마는
1987년 5월 19일.
만화와 애니에서는 메리 뷰티로 나오는
메리 나이스가 G1을 거머쥔 일본 더비는
1987년 5월 31일.
고증에 집요한 녀석들 치고는 시기가 안 맞는다.
시기를 따져보면 만화에서도 애니에서도
도쿄 우쥰 대신 사츠키 상을 내보내는 게
가장 무난하면서도 고증에 맞는 선택.
물론 우마무스메 자체가
어른의 사정을 중시하는 콘텐츠인 만큼
사츠키 상을 거른 데에는 이유가 있어보인다.
가장 유력한 가능성은,
1987년 사츠키쇼를 거머쥔 녀석이
사쿠라 스타 오라서.
킷카쇼에서도 완치가 안 된 상태로 1착을 거두었지만,
클래식 노선 중 일본 더비 만은 출주를 포기해야 했던 그 말.
비극의 87 세대 중에서도 손꼽힐 만큼
가장 비극적인 마생을 살았고,
저승에서도 더 이상 뛰지 말고 편히 쉬라고
멘코도 묻어주지 않은 말.
우마무스메에서도 가장 실장될 가능성이 낮아보이는,
그래서 가명으로조차도 이름을 안 비춘 것 같은.
뭐 그래서 일부러 일본 더비를 선택했다는 가능성 말고는
다른 이유가 없을 것 같다.
무슨 소리인지 잘은 모르겠지만
안타까운 삶을 산 녀석이라 그대로 쉬게 놔두었다는 이야기인가?
사쿠라 스타 오 찾아보면 마생 초반부터가 비극이 많았고 최후도 고통 받다가 간 게 커서
ㅇㅇ 설명하자면 좀 많이 길고
그렇게 이해하는 게 좋을 듯.
스타오는 다른 의미로 절대로 안나올것 같긴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