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지를 읽어본 사람은
삼국을 사마씨의 진나라가 통일한거는 알고 있을거임
그런데 통일을 하자마자 사마염은 삐뚤어질테야 하면서
사치를 부리기 시작했고 상황은 더욱 개판이 됐음.
게다가 기후변화까지 있어서
백성들은 진나라에서 살아남기를 하고 있던 상황이었음.
이런상황에서 사마씨 황족들은 서로 권력을 잡으려고
최대 8촌사이의 사람들끼리 죽고 죽이는 내전을 벌여
그것이 바로 위의 링크로 걸어둔 팔왕의 난임.
이 팔왕의 난은 여차여차 사마월이라는 사람이
사마치(회제) 를 옹립하면서 끝나는가 싶었음.
그러나 진짜 문제는 이제부터 였지...
팔왕의 난 당시에 사마씨들은 본인들의 세력을 유리하게 가져갈려고 이민족도 끌어들였었음
이때 흉노족의 유연도 같이 들어왔는데, 어느순간 독립하더니만
본인이 유씨라는 점을 들어 한(漢) 이라는 나라를 세우더니
호시탐탐 기회를 노리고 있었음.
팔왕의 난을 어느정도 수습했던 것은 동해왕 사마월임.
사마월은 본인의 동업자였던 사마치를 황제로 앉히고(회제)
본인 스스로 승상이 된 후
중신과 황제의 측근을 죽이면서 공포정치를 시행함
본인의 수족을 잘라버리는 이러한 행태에 회제(사마치) 는 개빡쳤고
위에서 나온 유연의 아들 유총이 침입한 틈을 타서
사마월을 암살하려 했음.
물론 이러한 암살시도는 걸렸지만
사마월은 빡세게 팔왕의 난을 수습하는 똥꼬쇼를 했지만
본인이 앉힌 황제에게 암살당할뻔 했다는 사실에
열이 심하게 뻗쳐서 죽어버림
사마월은 분사했지만, 그는 그의 권리를 태위였던 왕연(죽림칠현 중 한명인 왕융의 동생)에게 넘겨줌.
황제와 나라를 지키라고 권리를 넘겨준 사마월이었지만
왕연은 그 권한을 이용해 동해왕 사마월의 장례를 치른다는 명분으로 황족, 귀족, 백성, 호위병 등 총 10만명을 이끌고
낙양에서 동해로 빤스런함.
문제는 이 빤스런 행렬이 흉노족에게 오지게 깨짐 ㅋㅋ
이 왕연의 병크짓덕분에 낙양, 즉 회제 사마치를 호위할 병력이 없었음.
이렇게 주력군을 잃은 상태였지만 사마치는 ㄱㅊ ㅋㅋ 이러면서 지방에 구원요청을 보냄.
하지만 팔왕의 난과 사마월 분사 등으로 중앙에 대한 충성심도 사라진 상태인데다가 팔왕의 난 등을 거치면서 상황이 개판이 되버린 바람에 보낼 병력이 없어서 낙양에는 한명도 안가버림 ㅋㅋ
이렇게 낙양이 비어버리니까 기회다 싶었던 유연의 후계자 유총은 유요, 석륵등과 함께 낙양을 포위함.
이때 사마치는 빤스런 계획을 가지고 있었지만 방법이 없었고
결국 1달만에 낙양성이 함락되어버리고 불에 타버림 ㅋㅋ
바로 이때 빤스런에 실패했던 서진 황제 사마치(회제)는
유총에게 포로로 잡혀서 가버림.
그리고 이게 바로 중국사 최초로 황제가 이민족에게 포로로 잡힌 사건인 '영가의 난'임
결국 사마씨 소수만 살아남있다고 했던가?
결국 삼국지에서 이어진 난세의 종결은 당나라때가 가서야....라고 생각함
쌈마이 소설 후삼국지의 배경이지
사마의가 자식농사 실패한 것도 아니고 그 후손들이 걸물들이었는데 이렇게 빨리 망한건
사마의부터가 충의가 없었는데 그 아래로 충의가 있었겠냐는 해석이 마음에 들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