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재미교포 "윤원영" 씨가 아주 특이한 그림을 매입해 한국에 입국합니다.
그림은 2미터 가까이 되는 병풍이었고, 거북선 4척과 판옥선 1척, 보조함대들이 그려진 조선수군의 모습을 담았습니다.
당시 언론에선 "임진왜란 당시의 거북선이다! 거북선 3층설을 증명했다!" 등의 대서특필을 했습니다. 특히 소장자 윤원영 씨가 "미국 조지아 대학에 연대측정을 의뢰했더니, 서기 1640~1760년쯤 작품이라 추정된다"라고 밝혀 화제가 되었습니다.
하지만 정조 임금의 이충무공전서(1795)에 등장한 통제영/좌수영 거북선을 좌우로 반전시킨 모습과 정말 비슷하고, 2004년 보도 후 소식이 없어 17세기 그림이라는 주장을 개인적으론 안 믿었습니다.
그런데 아주 의외의 장소에서 뜻밖의 발견을 했습니다.
이 그림은 4월 4일 금요일에 낙찰된 1940년경 엽서이고, 화가는 오오타 텐요太田天洋라는 사람입니다.
윤원영 씨의 거북선과 수상할만큼 닮았는데요.
그렇다면 오오타 텐요가 누구인지가 중요한데...
알 수 있는건 생몰년도, 학력, 병역여부 뿐이었습니다.
우선 그는 1884년 태어나 1946년 사망합니다.
그의 어릴 적 이름은 오오타 후쿠조 太田福藏였으며, 1905년에 제15사단 제58연대 제3대대에 배속되어 평양에 복무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20살 때 이미 한국에 왔단거죠. 그가 평양에서 한 일은 우리가 굉장히 잘 알고 있는데요.
1912년, 우리가 잘 아는 고구려 사신도 벽화를 모사한 것이 바로 오오타 였습니다.이후 그는 1913년 도쿄 미술대를 무사히 졸업하고 많은 그림들을 남긴 것으로 보입니다. 이후 이름도 오오타 텐요로 바꿨죠.
그리고 일부 역사, 군사 애호가들이 알고있는 조선역해전도 역시 오오타 텐요의 그림입니다.
물론 두정갑을 입은 수군의 모습이라거나 불랑기포의 거치 문제 때문에 고증논란에서 자유롭진 못하지만 적어도 구한말 때 수군들의 모습을 어느정도 반영했을것으로 보입니다. 구한말 땐 두정갑도 있고 불랑기포도 있있으니까요.
2005년 7월 플래툰 기자로 활동했던 김세랑 작가에 의하면 "원균의 경상우수영군을 상대로 한 칠천량해전의 모습이며, 일본학자들이 한국에 공개하지 않은 구한말 판옥선 등의 정보를 바탕으로 그렸다."라고 소개했지만, 말씀드렸듯이 안택선에 매달린 불랑기포라던가 조선 군선들의 나무못 마감처리가 일본식인 이유를 들어 고증이 안지켜졌다고도 주장하는 인물들도 있죠. 김세랑 작가의 말이 사실이라면 아직도 구한말 군선들의 자료를 일본 학자들이 왜 공개 안하는지 궁금하네요.
암튼 1942년 그는 이라는 제목으로 전통 조선 배를 그림으로 남깁니다. 이것만큼은 도쿄 국립박물관에 전시되었다고 하네요. 오오타가 조선인들을 상대로 어떤 가치관을 가졌을진 모르지만 적어도 조선 배들을 좋아한건 맞아보입니다.
정말 아까운게 이 엽서는 4월 4일 낙찰됐습니다. 그것도 단돈 6만원에요. 이 정도 가격이면 알바 하루만 뛰어도 거스름돈이 남는 장사인데요.
거북선들이 지나치게 둥글고, 위로 높아 불안정하게 생기긴 했는데요. 왼쪽 구석의 만들어지는 거북선이 정말 신경쓰입니다.
첫번째는 한미일에 남아있는 거북선 그림 중 유일하게 내부를 묘사했어요. 서까래가 먼저 세워져있고 그 위에 판자가 덮어지고 있죠. 상상이라면 저렇게 구체적으로 그려낼수 있을까요?
두번째는 덮어지고 있는 개판(거북선 지붕)의 형태입니다. 이충무공전서에 따르면 "위는 고기비늘처럼 덮어져 있으며"라는 구절이 있는데요. 사진처럼 서로 겹쳐가며 개판이 덮여있다고 해석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근데 건조 중인 거북선도 마찬가지입니다. 이거 정말 골치 아프네요.
조선 수군이 혁파된건 1895년, 오오타 텐요가 조선에 입국한건 1905년이니 당시 수군 소속 조선장들도 연로하셨더라도 살아계셨을겁니다. 오오타가 조선장들을 만나는 것도 가능은 했겠지만, 군국주의였던 일본에서 아직 생도인 오오타가 "조선 수군 그리게 외출 좀 갈게요" 같은 한가한 소리를 했을거 같지는 않단말이죠. 김세랑 작가의 취재처럼 자료 자체는 일본 학자들에게 받은걸까요?
참고로 이 윤원영 씨의 거북선 말입니다. 드디어 행방을 알아냈습니다. 4월 4일 어느 이순신 단체 관계자 분에게 들을수 있었는데요. 20년이 지난 현재에도 윤원영 씨가 소장 중이라고 합니다. 행방이 묘연해진 이유도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앞으로 거북선을 복원할 때 윤원영 씨의 거북선을 바탕으로 해야한다고 본다. 그의 거북선 그림이 진짜 거북선이다. 사실 윤 씨가 거북선 그림을 갖고 한국에 입국했을때 각종 방송국과 박물관, 문화재단 등이 협조를 구했는데 윤 씨의 입장은 단호했다."거북선을 만든 최초의 지역이 여수이니, 여수시청의 요구가 아니면 이 그림을 제공할 수 없다."그리고 나(관계자)에게도 1:1 크기로 거북선 그림을 복사해서 기증해주었다.그러나 정작 여수시청은 이렇다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았고, 결국 윤원영 씨도 그림을 갖고 미국으로 귀국했다. 지금은 내가 바쁘기도 하고 윤 씨도 사업 중이라 20년 가까이 연락을 못했지만 가까운 시일 내에 윤 씨의 그림을 바탕으로 거북선을 복원하겠다.]
저번에 말씀드렸듯 윤원영 씨의 거북선이 임란 거북선이란 의견엔 동의하지 않지만, 적어도 오오타 텐요가 그린 유작이며 19세기 구한말의 모습일거라고는 생각합니다. 사실상 포기하고 있던 윤원영 씨의 행방도 알았으니 윤 씨가 동의만 한다면 연대측정도 다시 하고 싶네요.
재미써요
오오타 텐요 그림 뒷부분의 좀 괴상한(?) 거북선 3척은 나중에 따로 그려넣은 것일지도
제작중인 거북선과 높낮이 비율도 다르고, '몽고습래회사'라는 후대 수정/가필된 그림자료 사례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