클장삐의 검지는 봄철, 때아닌 노루 사냥에 깊숙이도 뻐근했다.
우묵한 눈두덩이를 짚는 손가락은 방금, 3회차 동안 흙먼지를 구른 동료의 이름을 지운 참이었다.
저격할까?
몇 번이나 해왔던 고민을 재차 떠올린 클장삐의 마음은 수오미의 묭묭이처럼 차갑게 얼어붙었다.
박제는 잠깐만 참기로 했다. 지금은 급한 일이 있었다.
5명이나 비어버린 자리를 채워야 한다는 급한 일이었다.
왼손으로 F5를 누르며, 갱신된 게시글 목록을 훑는다.
혹은, 친구/구직 탭의 알람을 기다린다.
신호가 오면, 클장삐는 클립보드에 눌어붙은 명함을 빠르게 털어냈다.
탭 설정을 잊은 이력서 글엔, 클장삐보다 몇 발짝 앞선 클장삐들이 있었다.
"아깝네."
같이 지루함을 배설하고 있었으면서, 어쩜 저리들 빠른지.
"하아-"
3월 말. 늦봄 차가운 공기가 클장삐의 한숨 자국을 선명하게 그렸다.
그 자국은 클장삐의 딱지가 채 파랗던 시절, 전 클장삐의 것과 겹치는 듯했다.
까짓 명함 하나 대신 돌려준다고
고맙다는 말을 연거푸하며 호바밧 능숙한 펠라 실력을 보여주던 옛 클장삐.
그는 클장삐의 딱지를 조금 더 익혀둔 채, 조용히 사라졌다.
30일 전.
아직 읽지 않은 그의 메시지는
미안하다는 말과 새빨간 점으로 끝맺혀 클장삐의 로비에 지금껏 남았다.
"마감이군."
이번에도 선택 받지 못했다.
유쾌한 경쟁자들은 이력서에서 만큼은 서로 말을 걸지도, 농담을 하지도 않았다.
그 예민함과 엄숙함을 뒤늦게 이해한 클장삐는
누군가 데려간 이력서의 클원삐가 노루가 아니길 빌어주었다.
이력서의 아래엔 클장삐들이 빠르다며 놀라는 유게이들의 잡담이 뒤늦게 올라왔다.
으레 그렇듯, 클장은 할게 못된다는 이야기가 뒤따랐다.
클장은 왜 클장일까?
클장삐는 등받이에 몸을 기대며 오랜 고민을 떠올렸다.
그것은 아릿한 사향내를 풍기며 삐죽삐죽한 뿔을 가졌다.
그것은 네 발 짐승의 형태를 한 고민이었다.
그것은 클장삐가 클장삐가 아니었을 적 한 질문이었다.
-클장삐는 클장을 왜 해?
그 시절, 순진무구한 표정으로 옛 클장삐에게 던진 질문에
그는 화를 내지 않았다.
그저, 자상하게 웃으며 클장삐에게 물었다.
'버거 먹을래?'
그 시절의 클장삐는 환하게 웃으며 댓지처럼 고개를 끄덕였다.
"오늘은 탈유게할까."
명함도 돌릴만큼 돌렸고, 유게떡밥도 ㅈ토피아로 가득했다.
클장삐는 미뤄둔 고민을 가져왔다.
전우가 노루로 변해버린 일을 처리해야했다. 이 정겨운 노루새끼를 저격해야할까.
아니면, 영영 볼 수 없는 깊은 숲으로 걸어갔으리라 믿고 방생해야할까.
클장삐는 이 당연한 질문에도 고민을 했다.
대다수에겐 쉬운 문제가 클장삐에겐 어려웠다.
그건 클장삐가 묭묭단처럼 너그럽고 훌륭한 인품을 가져서는 아니었다.
클장삐는 단지, 남들은 모르는 노루의 과거를 알 뿐이다.
노루의 사정을 기억할 뿐이었다.
노루는 야근에 치이면서도 3타 꾸준히 치던 클원삐였다.
챈질도 점점 줄어서 깡계나 다름 없는 몸이 되었어도, 흙먼지는 꼭 치던 사나이였다.
클원삐도, 뉴-파딱들도 모르는 과거를 클장삐는 알았다.
그 고마운 기억이 클장삐를 망설이게 했다.
"바뀌었구나, 나도."
클장삐는 손으로 눈을 덮었다.
좁은 동굴이 있었다.
동굴은 아주 비좁지만 먹을 것이 풍부해, 노루와 사람이 한데 몰리기 마련이었다.
노루의 뿔은 날카로워서 게으름 피우는 작은 몸짓에도 사람들이 다치고 아파했다.
사람들은 상처를 입어가며 노루를 죽이고 또 죽일 수 밖에 없었다.
우중비모라는 넉 자가 만든 서클 시스템이란 그런 것이었다.
그리고 한 야생 서클원이 있었다.
때릴 수 없는 우중이 대신 흙먼지 보스를 매일같이 치던 서클원이었다.
누구보다 목 말랐기에, 발버둥이 상처를 부른다는 것을 모르는 자였다.
노루에 상처 입은 그는 유게에서 정보를 찾다가, 루리웹서클이라는 울타리를 찾았다.
인 5%, 인 1%의 클원삐가 되어서도, 그는 노루에 대한 공포를 잊지 않았다.
노루는 종종 그가 있는 울타리까지도 침범했다.
그럴 때마다, 클원삐는 자신의 피 나는 상처를 더듬었다.
그런 나날이 계속되었다.
어느날, 노루가 나타났다.
클원삐는 버릇처럼 상처를 더듬었다.
-아.
상처는 없었다. 그 자리엔 주황색 딱지가 붙어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스모시크가 있었다.
클장삐는 마우스를 움직여 빨간 점을 지워냈다.
메시지는 다음과 같았다.
-개인적인 사정으로 게임을 접어야 할 것 같음ㅜ
-모바일로도 접속이 어려울 것 같아서
-그냥 공지하고 서클 해산시킬까 하다가
-네가 고생 많이 했는데 내 마음대로만 하면 안될 거 같아서
-일단 너한테 맡길게.
-서클 해산할 지 말 지는 너가 결정해ㅇㅇ
-주딱 너무 부담갖지 말고ㅇㅇ 파딱들이랑 말했으니 그냥 폭파해도 괜찮음.
-이때까지 고생많았고, 고마웠다!
-말도 안하고 주딱 넘겨서
파딱할래?
4명은 예약되어있고, 2명은 내 더미로 일단 채워 넣어도 됨(다음 흙먼지부터 3타 투입 가능ㅇㅇ)
독이든 성배와 같은 서클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