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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프로젝트 4 월드 그레이트 게임 (368)


완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얀 베르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실제로
완은 그의 말을 믿을 수 없었다.
얀 베르그만이라는 이름으로 불리는 이 남자가
2200년 전부터,
전설로만 내려오던 고대 시대부터 살아왔다는 사실을
믿을 수가 없었다.
얀 베르그만은 완의 표정에서
그녀가 어떠한 생각을 하는지 읽어 낼 수 있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의 말을 믿지 못하는 완에게 실망하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왕위에 오르고,
캄비세스 2세(Cambyses II)라는 왕호를 얻고,
선친의 정복 전쟁을 계속 이어 갔다.
그는 죽지 않았고,
그래서
언제나 전장의 선두에 서서 군사를 이끌었다.
전장의 선두에 서서 돌진하는 왕에게는
جاودانه(Immortalem : 불멸자)이라는 찬사가 뒤따랐고,
그의 군대는
키프로스와 이집트를 정복해
동으로는 이란 고원에서부터,
서로는 아나톨리아 반도,
남으로는 아프리카 북부에 이르는 대제국을 완성했다.
그는 불멸과 대제국을 얻었지만,
그 대가로
주변 인물들을 떠나보내야 했다.
궁내 암투로 아들이 죽었고,
원정으로 인해 발생한 전염병으로
왕비와 공주를 잃었다.
항상 그의 뒤를 든든하게 받치던
그의 전우들은 하나둘씩 전장에서,
또는 전장에서 입은 상처로 죽음을 맞이했다.
캄비세스 2세는
죽음이 자신의 곁에 머물고 있음을 알게 되었다.
어미의 목숨을 앗아간 것으로 시작한 죽음의 행보는
그의 주변을 맴돌면서
천천히 소중한 것들을 하나씩 빼앗아가기 시작했다.
괴로웠다.
사랑하는 이들을 떠나보내는 것이 두려웠고,
모두에게 찾아오는 죽음이
그에게만 허락되지 않는 것이 고통스러웠다.
축복이라고 생각했던 불사의 능력이
저주라는 것을 깨닫게 된 순간이었다.
저주임을 알게 된 그는
공식적으로는 신하들의 찬탈로 인해서 죽은 것으로 가장하고
실제로는
모든 것을 버렸다.
왕좌도, 권력도, 명예도,
그가 이룩한 모든 업적을 뒤로하고
여행을 시작했다.
죽기 위한 방법을 찾는 여행이었다.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죽음을 시도해 보았다.
하지만 죽지 못했다.
고통스러울 뿐 죽을 수 없었다.
아무리 엄청난 고통이라고 해도
그 끝에 죽음이 있다면 감내할 수 있었다.
하지만
어떠한 고통도
그에게 죽음을 안겨 주지 못했다.
죽음을 찾고,
고통을 받고,
죽지 못한다는 사실에
더 큰 고통을 느끼면서,
그렇게 셀 수도 없는 많은 날들이 지나갔다.
그렇게 2천 년이 흘렀다.
* * *
“태양이 점점 커지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
얀 베르그만이 물었다.
완은 대답 없이,
그저 공포에 잠식당한 눈으로
얀 베르그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태양은 조금씩 커지고 있지.
온도도 올라가고 있고.
학자들은
대략 7억 년 이후에는
뜨거워진 태양 때문에
지구상에 생물이 살 수 없다고 예측하더군.”
얀 베르그만은 이상한 기분을 느꼈다.
마치
지금껏 감춰 두었던 비밀을
누군가에게 털어놓을 때의 후련함,
그렇게밖에 설명할 수 없는
그런 기분이었다.
“7억 년.
긴 시간이지.
일반인들에게는 상관없는 이야기지.
어느 누구도
그 시간의 10만 분의 1도 살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 이야기를 처음 들었을 때,
나는 공포를 느꼈지.
그때까지 살아 있으면 어떻게 하지?
지구상의 모든 생명체가 사라지고,
지구상의 모든 수분이 증발하고,
태양풍에 의해 모든 대기가 날아가고,
적색거성화되어 버린 태양에 지구가 잡아먹힐 때까지.
그때까지 살아 있다면 어떻게 하지?”
완은 목이 타오르는 것을 느꼈다.
그녀가 들고 있는 찻잔에는
식어 버린 차가 담겨 있었지만,
완은
그 찻잔을 입으로 가져갈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저 얀 베르그만을 바라보다
천천히 입을 열었다.
“그 소년이........
사쿠라바 잇토키 그 소년이
당신의 목숨을 끊을 수 있나요?”
완이 물었다.
얀 베르그만의 입가에 미소가 떠올랐다.
“북한에서 그 소년을 만났지.
그리고
그 소년의 가슴에 칼을 찔러 넣었을 때,
문장을 보았지.
2천 년 만에 보는
두 번째 문장이었지.”
“……왜 잇토키 그 소년을 만나러 가지 않았죠?
당신 말대로라면,
그 소년은.......
당신이 원하는 것을 들어줄 수 있을 텐데…….”
완이 다시 물었다.
얀 베르그만은
천천히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완에게 천천히 다가와
한쪽 무릎을 꿇고 눈높이를 맞추며 말했다.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지.
죽고 싶지 않다는 것이 아니라,
죽음이 예정된 삶을 한 번은 살아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군.
아니, 이해할 수 없겠지.
그 누구도.”
거기까지 이야기하던
얀 베르그만은
뭔가 생각이 난 듯한 모습으로
그녀를 바라보다가
킥킥거리면서 웃더니
".......과거에
내가 죽기 위해서
100년동안 광야를 헤멜 때
그곳에서 신 아니
그의 말로는
성령에 이끌려 광야로 가셔서 시험을 받기 위해서
6주간의 단식을 하는
한 사람을 만난 적이 있었지.
그가 나에게 묻더군.
'당신은 신이라는 존재를 믿냐고.'
그래서
나는 그에게 이렇게 대답을 해 주었지.
'신?
믿고 있지.
그래서 문제야.

나에게 이런 심심한 인생을 강요하는 신을
용서해야 할지
어떨지......
그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으니까.....
앞으로도
이런 벌레같은 것들과
이런 재미없는 인생을 보내야 한다면
나는
도무지
그런 신을 용서할
그런 관대한 마음이 들지 않으니....'
그렇게 그에게 말한 뒤
한 번 재미삼아서
그와 말장난 식으로 대화를 나누었지.
아마
이런 말로 알려져 있을거야.
실상은 그게 아니지만,
내가
먼저 광야에 있던 돌을 들고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한 번
이 돌들을 떡으로 만들어서
너와 내가 같이 먹을 수 있게 해 보지.”
라고 말하니까
그가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고
내 말을 받아치니까,
내가 죽지 않는다는 것을 보이면서
"나와 같이 이 세상을 지배해보지 않겠나?
그 잘난 신 따위는 버리고 말이야."
라고
반 장난 식으로
한 번 꼬셔봤더니
그는
사탄에게 시험을 받는다고 하면서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라는 말을 끝으로
내가 그 곳을 떠날 때까지
나를 외면하더군.
마치 진짜 사탄이라도 본 것 마냥...."
그 말에
완은
자신도 모르게
지금까지 겪어본 적이 없는
순수한 공포와
진정한 두려움으로
자신의 몸이 떨리는 것도 모자라서
본인의 이빨이
자기도 모르게 따닥따닥 거리는 것을
막을 수 없었다........
그의 말을
정확하게 이해하자면
과거에
얀 베르그만이 광야에서 만난 존재가
바로 그......이고
성경에서 그 상황을 묘사한
마태복음 3:13-4:11절에 나오는 구절이라고
할 수 있는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후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서
40일을 밤낮으로 금식하신 후에
주린 채 마귀가 시험을 하자
예수께서 대답을 하십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명하여
이 돌들로 떡덩어리가 되게 하라.”
“기록되었으되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마귀는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말합니다.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거든 뛰어내리라
기록되었으되
그가 너를 위하여
그의 사자들을 명하시리니
그들이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치지 않게 하리로다.”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하지 말라 하였느니라.”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이며 말합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예수께서 답합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바로
마태복음의 그 구절이
설화나 전설
아니
단순한 성경구절이 아닌
진정한 역사적 진실이라는 것이니......
그렇게
완은
얀 베르그만의 목소리가
마치 뱀처럼 자신에게 감겨든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가 느꼈던 절망과 희열,
자신이 느끼는 놀라움과 공포가
마치 뱀처럼
그녀의 몸에 감겨드는 그런 느낌이었다.
얀 베르그만은
괴로워하는 완을 잠시 바라보다가
다시 자리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고는
자신의 자리로 돌아가 앉으며 말했다.
“한달 전,
그날을 기억하나?
그 소년과 전화 통화를 했던 그날을?”
완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이후,
그 소년은 몸을 감추어 버렸지.”
완의 눈이 다시 커졌다.
“밀항선을 타고
중국으로 간 것까지는 확인되었지만,
그 이후로
어떠한 흔적도 찾을 수 없었지.
무슨 생각으로 몸을 감춘 것일까?”
완은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아무런 말도 해서는 안 될 것 같았다.
“오고 있을 거야.
이리로.”
얀 베르그만이 대신 답했다.
“아주 오랜만에 고민이라는 것을 해 봤지.
이 저주받은 삶을 끝낼 것인지,
아니. 조금만 더,
아주 조금만 더
죽음이 예정되어 있는 이 삶을 즐길 것인지.”
“…….”
“어느 쪽이든 상관없지.
이 저주받은 삶을
조금 더 살아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나를 위해서,
그리고
그 소년을 위해서.”
얀 베르그만의 말에
완의 눈에
다시 감정이 떠올랐다.
경악,
그리고 공포.
그렇게 설명되는 감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죠?”
완이 물었다.
얀 베르그만은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작게 웃음 지을 뿐이었다.
“그 소년을 위해서라는 것이 무슨 말이죠?”
얀 베르그만은
완의 얼굴에 떠오른 놀라움과 초조함이
다시
얀 베르그만의 마음으로 스며들었다.
얀 베르그만에게
살아 있다는 느낌을 주었다.
“전수자로부터
다시 죽음을 돌려받을 때,
능력을 상실한다.
2천 년 만에 본 문장의 내용이지.”
“돌……려……받을 때?”
“내가 죽으면
그 소년도 살아남지 못해.
내가 먼저
그 소년에게 죽음을 선물했으니까.”
얀 베르그만이 말했다.
완의 손에 들려 있던 찻잔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러나
완은
그 사실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제안을 하지.”
얀 베르그만이 말했다.
제안이라는 말에
완의 눈에 초점이 다시 돌아왔다.
“……무슨 제안을…… 하겠다는 거죠?”
“홍콩에서 꾸던 꿈을 계속 이어 가라는 제안.”
“……홍콩에서 꾸던 꿈……?”
“10년 넘게 지켜봤지.
그 시간 동안
사쿠라바 잇토키가
그의 어머니였던
그리고 내가 죽게 만든
사쿠라바 유미카 그녀를 제외하고는
새로 만난 사람 중에서
의미를 가진 사람은 네가 유일했다.
그와 같이 살 수 있도록 기반을 마련해 주지.
다른 사람들처럼,
그렇게 살 수 있도록.”
얀 베르그만의 말을 들은 완의 표정이 천천히 바뀌었다.
놀라움에서 분노로.
얀 베르그만은
그런 완의 표정 변화를 여전히 무감정한 얼굴로 바라보고 있었다.
얼굴에 완전히 분노를 드러낸 완이
무언가를 말하려던 그 순간.
멀리서 무언가가 부서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완의 고개가 움직였다.
처음 들어 보는 소리였다.
아니,
처음 들어 보는 소리는 아니었다.
하지만 이곳
장크트갈렌에서는 들어 보지 못한 소리였다.
무슨 소리지?
완이 그렇게 생각하는 그 순간에
또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가 찢어지는 듯한
고주파음.
조금 전 들렸던 소리와는 달리,
고주파음은
아주 가까운 곳에서 들려왔다.
지상층,
현관이 있는 방향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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