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략) 광증 다스리겠다고 효혐있다는 아무 약이나 얻어서 처먹다가 15일 혼수상태 후 깨어남
호접지몽 상태: 내가 사도세자의 기억을 가진 고시합격생인가, 고시합격생의 기억을 가진 사도세자인가
내시 김한채의 절룩걸이는 그 걸음걸이가 영 마음에 걸려, 가던 도중 물었다.
"무릎은 많이 걸리적거리느냐?"
"모두 이 천한 몸의 구업(口業)으로 인한 것이니 누구를 감히 탓하오리까."
"오늘의 대면이 어찌 끝나든, 승언색 네게 더 이상 손찌껌할 일은 없을 것이다."
크게 숨을 들이마시니 마음은 오히려 홀가분해졌다.
저벅저벅 마당을 걸어 저승전에 오르려던 차, 잔잔한 마음에 딱 하나 걸리는 것이 있으니 여전히 절뚝이는 김한채의 걸음걸이라.
어쩌면 오늘부로 작별일지도 모르는데, 뭐라도 해주고픈 마음이 들었다.
"여기서 기다려라."
"저하?"
날래게 움직여, 구들장 아궁이 옆에 쌓인 장작더미로 향했다.
장작더미를 덮어둔 천을 슬쩍 들어 올리곤, 그럭저럭 쓸 만한 장작 몇 토막을 건졌다.
크기는 적당히 각지고, 너무 둥글지도 않은 것이, 임시 섬돌로 쓰기는 딱 좋았다.
후다닥 가지고 돌아와, 저승전 오르는 왼쪽 섬돌을 골라, 각 섬돌 사이에 나무토막 몇 개씩, 후손들이 그 유명한 덴마크산 블록 맞추듯 짜 맞춘다.
무릎 불편한 사람도 쉽사리 밟고 오르내릴 수 있도록.
"무릎도 성치 않은데, 이 높은 섬돌 오르내리기가 여간 고역이 아니었을 터."
"저하...!"
"불효하고도 불손한데, 안색은 지극히 밝으니, 이 어찌 된 일이냐."
조건반사라고 했던가, 그 신경질적인 옥음이 귀청을 때리자마자 몸이 움츠러든다.
아니, 그러나 이겨내야 한다.
"국상을 당한 중 처신을 경솔히 하여, 주색도 아니요 고작 약 처방을 잘못해 혼절하였다니, 이것이 내 너를 가르친 공효功效더냐?
종묘사직의 돌봄이 있어 네가 겨우 의식을 되찾았다지만, 어찌 그것이 네 덕망 때문이겠느냐?
백 번 자성하고 천 번 뉘우쳐도 모자란데, 대죄待罪하였다는 말은 들리지 않고 통곡하는 음성도 울리지 않으니, 이 것이 과연 내 귀가 어두운 탓이더냐?
답해 보아라. 늙은 아비가 그 답을 들으려 여기까지 행차했느니."
추상같이 몰아치는 헐뜯음.
언성은 높지 않되 정 한 점 없고, 전혀 상스럽지 않은 어투지만 자식 가슴 후벼 파기로는 보검보다 예리하다.
그러나 아득해지는 정신을 애써 부여잡으며 준비한 말을 꺼낸다.
머리를 조아리고, 이를 갈면서.
"실로 그렇습니다! 이 아들이 참으로 무도하고 부덕하니, 어찌 이 두 어깨로 사백 년 종사를 짊어지겠습니까?
신이 청컨대, 세자의 위를 거두어 주소서."
"뭐, 뭐라?"
무엇을 해도 불효라 불린 끝에, 드디어 정면으로 행하는 불효.
사관의 붓은 멈추고, 내시들은 들이마신 숨을 차마 내쉬지 못하고 속절없이 좌우만 살폈다.
부왕께서는 차마 대야에 손도 못 가져다 대시곤 말씀하셨다.
"네가 의식을 되찾았다 하였건만, 이제 다시 보니 실성한 듯하구나.
네 어찌 그런 망발을 내뱉느냐? 그것도 이 국상의 와중에?"
그 말을 하고 나서야 본인 뒤에 대령한 대야 물로 귀를 씻는 부왕이셨다.
짜증이 가시지 않는지, 대야를 들춰 아들에게 흩뿌린다.
"내관은 어디 있느냐! 속히 물을 채워 오라!"
"신이 천성을 잃어, 신하 된 도리와 자식 된 도리를 공히 못 다하니, 바라건대 세자의 보위에서 쫓아내는 처분을 내려주시옵소서!"
나를 내려보던 그 매서로운 눈빛이, 장탄식과 함께 잠시 누그러지는 듯 했다.
"네 이 광패함이 어디서 말미암은 것이더냐. 내 어디서부터 잘못하여 종사에 죄를 짓기에 이르렀단 말이냐.
내 너를 엄하게 다스렸다 하려 비뚤어진 것이냐, 사랑하지 않는다 여겨 엇나간 것이냐."
그러나 그나마 누그러진 말투로 나오는 언사는 오히려 더욱 서운하고 섭섭하였다.
"아들을 아들로 보시지 아니하니, 어찌 탈이 없으오리까."
"무어라?"
"이 부덕한 아들이 부왕 보시기에 언제 아들이었습니까?
그저 부왕 떠나신 뒤에도 부왕의 뜻을 따라, 오직 부왕께서 세우신 법도로써 이 땅을 다스릴 기기.
그것을 만들어낼 재목에 불과했습니다.
가르침이라는 것은 그 목석을 칼과 끌로써 파내고 저며내는 데 불과했습니다."
"...!"
"허나 목석마저도 차마 마음은 끊어낼 수 없으니,
칼날 한 번에 마음이 상하고,
칼날 두 번에는 심정이 비뚤어지고,
세 번에는 광증이 도졌습니다."
감정이 격해, 정곡을 찔러버렸다.
그러나 폭주하는 기차처럼 한번 터져나온 속내는 도저히 주워 담을 수 없었다.
"내관! 대야! 대야는 어디에 있느냐!"
"만사가 오직 부왕의 뜻에 따라야 하겠지요.
그리하여야만 이 나라가 백척간두에서 재차 개벽하는 지경에 이를테지요.
아들로 태어나 그런 뜻을 받들지 못하고,
차마 이 머릿속에서 내 살고픈 대로 살고 싶다는 그 사람다운 마음 한 줄기를 못 끊었습니다.
하오니 그저 이 모자란 것을 내치소서.
그러지 아니하려면, 바라건대 아들을 아들로, 한 사람으로 보아 주옵소서."
고개를 드니, 순간 아버지의 눈과 정면으로 마주쳤다.
흔들림이 보인다.
그러나 아무리 동공이 흔들린다 한들, 가운데를 굳건히 지키고 있는 것은 지난 수십 년의 집착.
이 세상을 반드시 더 낫게 만들겠노라, 그리고 그 방도는 오직 자신만이 알고 있고, 이룰 수 있노라는 아집.
"이런 불공함이, 불충이 어디 있느냐?
네가 이제는 부자의 정리조차 끊으려 하는구나! 실성하여도 보통 실성한 것이 아니야!
내 이런 적자賊子를 키워놓고 어찌 열성조를 뵙겠는가!
네가 정녕 그것을 바란다면, 어찌 이루어주지 못할까!
좋다! 내 너를 서인으로 낮추마!
아들이 아비를 아비로 섬기지 않는데, 아비가 어찌 아들이 있노라 여기겠느냐!"
폐세자를 뛰어넘는 폐세인의 뜻.
옆에서 벌벌 떨리는 손으로 붓을 놀리던 사관들마저도 초서 휘갈기기를 멈추고 그대로 얼어붙었다.
그러건 말건, 신경질적으로 귓가에 손을 가져다 댄 부왕은 밖을 향해 고성을 질렀다.
"내관! 내관! 대야! 대야는 멀었느냐! 저승전 앞뜰에 바로 우물이 있거늘 어찌 이리 늦느냐!
되었다! 내 그리 가겠다!"
부왕 마음같아서는 벌떡 일어나고 싶었겠지만, 이미 쇠하였고 운동도 부족한 노구는 뜻대로 되지 않았다.
아직 남은 혈육의 정과 폭탄의 도화선 불 끄려는 생각으로 부축하려 했더니, 돌아오는 것은 차디찬 손사래.
"되었다, 되었어! 아들도 없는 내가 부액 따위 받아 무엇 하겠느냐! 썩 물렀거라!"
그러고서는, 허둥지둥 뒤따르는 사관들은 개의치 않은 채, 불편함 무릅쓰고 성큼성큼 걸어 마루에서 내려가신다.
그제야 내 머릿속을 스치는 불길한 예감.
부왕은 항상 전각을 떠날 때는 왼쪽 섬돌을 쓰신다.
그리고 지금 이 저승전 왼쪽 섬돌에는, 눈여겨보거나 부액해주는 사람 없으면 자칫 큰일 날 수도 있는 임시 섬돌,
나무토막이, 내관 김한채를 위한 사소한 마음 씀으로 내가 가져다 놓은 그것들이 놓여져 있고...
"엇, 어어?"
"아버지!"
마치 영겁처럼 늘어지는 촌음.
내가 섬돌 사이 가져다 놓은 나무토막을 밟고 발이 접질린 부왕의 몸이 기우뚱하더니,
단말마 비명과 함께 옆으로 거꾸러진다.
머리는 하필 오른편 섬돌 모서리에 부딪히고, 피는 금방 흥건히 돌바닥을 적시는데,
누구 하나 선뜻 나서지 못하고 한참을, 누구는 우두커니, 누구는 엉거주춤, 그 모습 그대로 얼어붙어 잇었다.
멀리서 대야 떨어뜨리는 소리가 비명과 더불어 들려왔다
그 순간, 나는 진심으로 이 모든 게 꿈이기를 기원했다.
허접한 공익과 다르게 영조를 '레고사' 시키는 고시합격자
편살 재밌지 나도 좋아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