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두개골에 단단히 보호된 기관이기 때문에, 불과 백여 년 전까지만 해도 그 구조와 작동 방식은 미스터리에 가까웠다.
궁금하다고 해서 두개골을 열어볼 수도 없는 것이, 뇌를 직접 들여다보면 사람이 죽어버리니, 당시의 뇌신경학자들은 두개골 밖에서 다음과 같은 방법으로 뇌의 기능을 연구했다.
1. 사고나 질병으로 뇌의 일부가 손상된 환자를 관찰하며, 특정 부위가 사라졌을 때 어떤 기능이 상실되는지를 분석한다.
2. 뇌종양으로 두개골에 구멍이 뚫린 환자의 뇌에 전극을 삽입해 뇌를 자극한 뒤, 뇌전증(간질) 발작과 유사한 반응을 관찰한다.
(Robert Bartholow, 참고로 이 실험을 당한 환자는 며칠 후에 죽었다.)
3. 일단 전두엽을 절제한 후 환자의 변화를 추적하며 뇌 기능을 연구한다.
(Egas Moniz, 전두엽 절제술. 수많은 환자를 폐인으로 만든 수술로 악명이 높다.)
이러한 노력 덕분에 뇌의 주요 부위가 대략적으로 어떤 역할을 하는지 파악할 수 있었지만, 인간의 복잡한 정신 작용을 제대로 이해하기에는 한계가 있었다. 마치 장님이 코끼리를 더듬으며 형태를 유추하는 것과 비슷한 수준이었던 거다.
그러나 시간이 흐르면서 의학은 점점 발전했고, 보다 정밀한 연구가 가능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 인물이 바로 와일더 펜필드이다.
펜필드는 1930년대 몬트리올 신경학 연구소에서 활동한 신경외과 의사였다. 몬트리올 신경학 연구소는 맥길 대학에 록펠러가 뇌신경 연구를 위해 기부한 100만 달러를 바탕으로 설립된 기관으로, 특히 약물로 치료가 어려운 중증 뇌전증 환자들을 연구했다.
당시 연구자들은 뇌전증 환자들이 발작 전에 특정한 예감을 느낀다는 점에 주목했다.
"그렇다면, 발작이 시작되기 직전에 반응하는 뇌 부위가 뇌전증의 원인이 아닐까? 그 부분만 정확히 제거하면 되는 것 아닐까?" 라는 가설이 나온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당시 지식으로는 뇌의 어느 부위가 발작을 일으키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다.
예를 들어, 환자가 발작 전에 "눈앞에서 뭔가 번쩍이는 게 보인다"고 한다면, 그 부위가 시각 피질일 가능성이 높았다.
그런데 시각 피질을 통째로 잘라버리면? 환자는 장님이 되어 수술 전보다 훨씬 나빠질 것이 뻔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펜필드는 뇌 전기 자극술과 국소 마취 수술법을 결합한 ‘몬트리올 프로시저’라는 혁신적인 수술 절차를 개발했다.
절차는 다음과 같다.
1. 환자를 전신 마취시킨 뒤, 두개골을 열어 뇌를 노출시킨다.
2. 부분 마취로 바꿔 환자의 의식을 깨운다. (뇌 자체는 통증을 느끼지 않기 때문에 가능한 방법)
3. 전극으로 뇌의 여러 부위를 자극하면서 환자의 반응을 관찰한다.
- "손끝이 저려요."
- "이상한 냄새가 나요."
- "어린 시절의 기억이 떠올라요."
(몬트리올 프로시저 중 뇌 기능을 표시한 부분과 깨어있는 환자 사진)
4. 환자의 답변을 토대로 뇌의 각 부위가 담당하는 기능을 하나하나 확인하면서 뇌전증의 원인이 되는 부위를 정확히 찾아내어 절제한다.
5. 다시 전신 마취를 한 후, 두개골을 봉합한다.
이 방법을 통해 엉뚱한 부위를 잘라낼 위험이 대폭 줄어들었고, 뇌전증 수술의 성공률도 크게 향상되었다.
그런데 몬트리올 프로시저는 단순한 뇌전증 치료법을 넘어, 뇌 연구에 엄청난 기여를 하게 된다. 뇌의 여러 부분을 이리저리 자극하면서 감각 및 운동신경의 기능을 체계적으로 알게 된 것이다.
(펜필드의 '대뇌피질 호문쿨루스'. 뇌에서 신체 부위별 담당 영역의 크기를 시각화한 그림이다)
펜필드는 이를 바탕으로 뇌에서 각 신체 부위 감각과 움직임을 담당하는 영역을 상세한 지도로 만들어 냈다.
또한, 측두엽을 자극하면 환상이 보이거나 기억이 떠오른다는 사실을 발견하며 측두엽이 기억과 꿈을 담당하는 영역이라는 점도 밝혀냈다.
펜필드는 단순한 연구자가 아니라 교육에도 헌신한 인물이었다. 말년에는 캐나다 정부로부터 훈장을 받을 정도로 존경받았으며, 1976년 위암으로 사망해 가족 묘지에 안장되었다. 모범적인 인생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아, 과학이 더 발전하면서 몬트리올 프로시저는 점점 쓰이지 않는다.
지금은 MRI, fMRI, EEG(뇌파 검사) 등의 기술을 이용해 두개골을 열지 않고도 뇌 기능을 분석할 수 있다.
또한, 약물 치료나 비침습적 전기 자극법이 발전하면서 외과적 절제술은 최후의 선택지가 되었다.
하지만 여전히, 다른 방법으로는 도저히 답이 나오지 않는 환자들에게는 뇌 절제술이 필요할 때가 있다. 다만 지금은 수술 없이도 전극을 머리 밖에 부착해 뇌전증의 원인을 찾는 방법이 일반적이다.
어찌 되었든, 뇌를 연구하기 위해 의식이 있는 상태에서 두개골을 열어야 했던 시대를 생각하면, 과학의 발전이 참으로 다행스럽다는 생각이 든다.
- 끝 -
출처
와일더 펜필드 위키백과
https://en.m.wikipedia.org/wiki/Wilder_Penfield
몬트리올 프로시저
https://pediatricbrainfoundation.org/montreal-procedure/
https://www.sciencedirect.com/science/article/abs/pii/S1525505018301677
https://www.vox.com/science-and-health/2018/1/26/16932476/wilder-penfield-brain-surgery-epilepsy-google-doodle
삼성서울병원 간질 수술법
https://www.samsunghospital.com/dept/medical/healthSub01View.do?DP_CODE=EPI&MENU_ID=003&content_id=1325&ds_code=D0004200
지금도 뇌수술하면 의식 있는 상태에서 하더라
존나 무서울듯
이것이 당신의 뇌입니다
어렸을적 기억이 나요
왜 마지막이 앗앗이야 ㄷㄷ
사실 앗앗을 올리고 싶어서 쓴 글이기 때문!!!
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