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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니콘 프로젝트 4 월드 그레이트 게임 (358)


그렇게 앤은
머다이나의 챔버가를 떠났다.
앤은 밀러 국장을 만나
독립 요원 계약을 맺고,
교육을 받고,
유럽으로 가는 비행기에 탑승한 앤이
바티칸에서 관계자를 만났다는 소식까지는 전해졌지만,
그 이후로
어떠한 연락도, 소식도 듣지 못했다.
신시아 챔버는
그저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것도 하지 못하는
무기력한 자신을 원망하면서,
지옥 같은 하루하루를 보낼 수밖에 없었다.
앤을 떠올리자
다시 고통이 그녀를 감쌌다.
그렇게 고통스러워하던
신시아 챔버의 귓가에
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다시 웃음을 찾은 막내딸이
공놀이를 끝내고
집 안으로 들어온 것이다.
신시아 챔버는
그런 막내딸을 맞이하기 위해
얼굴에 떠올라 있는 괴로움을
재빨리 안으로 갈무리했다.
그리고
슬픔이 묻어나는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 * *
“이 저택입니다.”
유럽 내 부동산 기업 중에서
다섯 손가락 안에 드는 VICI European Properties Inc의 독일 수석 에이전트인
한스 마이네(Hanns Mayne)는
눈앞에 보이는 저택을 가리키며 말했다.
옆에 서 있던
얼굴에 칼 자국이 나 있던
동양인 남자의 미간에
주름이 잡혔다.
한스 마이네는
동양인의 제스처와 눈빛에서,
그가 이 저택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눈치챘다.
그렇다고
쉽게 포기할 생각은 없었다.
부동산 에이전시는
마음에 드는 물건을 찾아주는 사람이 아니라,
마음에 들게 해 주는 사람이라는 것이
그의 직업관이었다.
한스 마이네는
동양인 남자에게 얼굴을 가까이 가져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가 준비한 첫 번째 카드였다.
“클란제 말기의 마지막 작품 중 하나입니다.”
한스 마이네의 말에
남자가 반응을 보였다.
“설마…… 레오 폰 클란제 말입니까?”
한스 마이네는
미소를 지으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 동양인은
클란제에 대해서 알고 있었다.
좋은 징조였다.
“아시다시피
신고전주의의 핵심은
바로크와 로코코의 화려함에 대한 반발입니다.
얼핏 보면 단순해 보일 수도 있지만,
그 단순함 속에 숨어 있는
완벽한 비례의 아름다움은
고대 그리스부터
현재까지 사랑받는 스테디셀러입니다.”
한스 마이네의 말에
동양인 남자는
다시 저택에 시선을 주었다.
마치 새로운 평가 점수를 매기려는 듯.
“모르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단순하고 투박한 오래된 집처럼 보일 수 있을지 모르지만,
심미적 조예가 있는 고객께서는
이 아름다움을 분명 알아보실 수 있으실 겁니다.”
“건축 연도가 언제인가요?”
동양인 남자가 물었다.
“1851년입니다.”
한스 마이네가 말했다.
답을 들은
동양인 남자의 얼굴에 가볍게 미소가 피어올랐다.
나쁜 징조였다.
“제가 알기로는……
그 시기면
클란제가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을 때 아닌가요?”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맞습니다.
역시 잘 아시는군요.”
한스 마이네의 얼굴에는
당황스러움은 담겨 있지 않았지만,
그의 등에는
땀 한 방울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동양인 남자는
실제 구매자가 아니었다.
의뢰를 받아 부동산을 대리 구매하는
일종의 대리인,
브로커였다.
한스 마이네는
많은 동양인 고객들을 만났고,
브로커를 상대했지만,
지금 눈앞의 이 남자처럼 까다로운 사람은 없었다.
18세기,
신고전주의를 대표하는 건축가로
유럽에 명성이 자자했던 클란제는
1839년부터 1852년까지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로마노프 왕조의 겨울 궁전이었던
현 에르미타주 미술관을 개축하는 작업을 하고 있었다.
동양인 남자는
그 사실을 지적한 것이다.
그의 말대로,
1851년이라면
클란제는
상트페테르부르크에 있을 가능성이 컸다.
당황하지 말자.
한스 마이네는
속으로 속삭이면서
두 번째 카드를 꺼내 들었다.
“클란제의 설계입니다.
그리고
제자 중 한 명이
클란제의 설계에 따라 이 저택을 지었고요.”
“클란제의 작품이 아니군요.”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그렇습니다.
‘공식적’으로는.”
한스 마이네는 미소를 지으며
계속 말을 이었다.
“정확한 지적이십니다.
공식적으로
클란제의 작품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만약 클란제의 이름이 붙었다면
절대 지금 가격으로는
이 집을 구하실 수 없다는 사실도 아실 겁니다.”
한스 마이네의 말에
동양인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좋은 징조였다.
“오해의 소지가 있을 것 같아 말씀드리지 않은 부분인데…….
만약 다른 고객님이었다면,
예를 들어
중국 고객님이었다면,
저는 이 집을 소개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분들은
저택이 가진 아름다움보다
얼마나 투자가치가 있는지에 더욱 집중하실 테니까요.”
다른 이를 험담해
상대방을 높인다.
화술의 기본 스킬 중 하나였다.
“귀하께서, 아니,
귀하의 의뢰인께서는
시세 차익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라고 들었습니다.
대자연의 아름다움을 감상하며
휴식을 취하시려는 목적으로
저택을 구매하려 하신다고,
저는 그렇게 들었습니다.
귀하의 의뢰인께서도
분명히
이 저택이 가지는 아름다움을 알아보실 수 있다고 판단했기에,
여기로 모셔 온 것입니다.”
한스 마이네의 목소리는
차분했지만,
그는 필사적이었다.
이 손님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어떤 식으로든 거래를 트고 싶었다.
유럽 부동산 시장에서
일본은 한국과 같이 떠오르는 큰손이었다.
2019년 기준으로
일본과 한국 기업이
유럽에서 사들인 부동산 가치는 132억 달러에 이르렀다.
중국과 홍콩, 싱가포르 투자자들을 제치고,
아시아에서
가장 큰 구매자로 떠오른 것이다.
이 남자와 연을 맺어 둔다면,
앞으로 거래가 계속될 것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었다.
“물론 가격 조정도 가능합니다.”
한스 마이네의 말에
동양인 남자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또 한 번의 좋은 징조였다.
동양인 남자가 입을 열었다.
“솔직히 말하면…….”
한스 마이네의 몸에 힘이 들어갔다.
경험적으로
고객들이 ‘솔직히 말하면’이라는 말은
좋은 징조였다.
“저는 마음에 듭니다.
마음에 드는데…….
제 의뢰인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실지 모르겠군요.
가격은
제 의뢰인에게
첫 번째 고려 대상이 아니라서요.
다른 무언가가 더 있다면,
저도 이야기를 꺼내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한스 마이네는 고개를 끄덕였다.
감춰 둔 카드를 꺼낼
타이밍이었다.
“말씀드렸다시피,
이곳,
보덴호는
유럽의 부호들이
휴양목적으로 사용하는 별장들이 많습니다.
귀하의 의뢰인께서
이 저택을 선택하신다면,
좋은 이웃과 인연을 맺으실 수 있을 겁니다.”
그 말에
동양인 남자가
고개를 돌려
한스 마이네를 바라보았다.
“……그 부분은 작용하겠군요.
예를 든다면?”
“저기 저 집 보이십니까?”
한스 마이네가
손으로 300여 미터 정도 떨어진
구릉 위의 저택을 가리켰다.
동양인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크레디트 에우로파의 소유입니다.”
한스 마이네는,
마치 비밀을 이야기하는 것처럼 말했다.
“……크레티드 에우로파.”
동양인 남자가 말했다.
“유럽 최대 벌지 브래킷.
더 이상의 설명은 안 드려도 될 것 같습니다만.”
동양인 남자,
일본 대기업 회장의 의뢰를 받아
유럽의 별장을 대리 구매하는 브로커로 위장한
전 이가 닌자였던
카가 토키사다는
저택을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댓글
  • 사이보그 탐색자 2025/02/21 06:02

    상트페테르부르크... 표트르 대제가 보입니다.

    (ISYmGh)

(ISYmG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