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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딸,괴문서) 엔딩 크레딧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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꽤나 재미있는 영화였다.


예전부터 스포츠 장르를 좋아하기도 했지만


자주 보던 언더독이 고생 끝에 탑독을 이긴다는 스토리가 아니라

유명 가문의 유망주로 각광 받는 주인공으로 시작하여 여러 라이벌들과

겨룬 끝에 최강의 자리에 오르게 되었다는 신선한 스토리가

매력적이게 느껴져서 가산점을 더 붙였다고 할 수 있었다.


"예고편도 안 봤던 영화였는데 의외의 보물이었네. 안 그래 맥퀸?"


"후후, 정말이네요. 이런 영화가 있었을 줄이야."


"그런데 엔딩 크레딧이 나오는데 조명이 안 켜지다니 뭔가 이상하네."


"듣고 보니 정말 그렇네요. 직원 분이 실수라도 하셨나."


비상등의 조명 만으로도 계단까지 이동하기엔 충분했으나
안전을 위해서 엔딩 크레딧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렇게 멍하니 검은 화면에 돌돌돌 올라오는 흰 글씨들을 바라보고 있자니

이상하게도 뭔가 가슴 속에 복받쳐 오는 듯한 느낌이 울컥울컥 솟아올랐다.


툭. 투둑.


"어라...? 나 왜 눈물이..."


어느새 얼굴을 타고 떨어진 눈물이 바지에 얼룩을 만들고 있었다.

이유도 모른 채 흐르는 눈물을 소매로 몇 번이고 닦아냈지만

마치 고장 난 수도꼭지 마냥 계속해서 천천히 눈동자에 눈물이 고여갔다.


"...트레이너씨."


"아, 미안 맥퀸. 나 오늘 따라 갑자기 왜 이런담.

뭔가 슬픈 일이 있던 것도 아닌데..."


담당을 옆에 앉혀두고 혼자 울고 있는 건 여러모로 모양 빠지니까.

어떻게든 쓴 웃음을 지으며 얼버무리고 있었는데.


"그게 아니에요, 트레이너씨."


맥퀸은 인자한 표정으로 나를 쭉 바라보더니

내 볼에 손을 올리고 엄지 손가락으로 눈동자에 고인 눈물을 닦아냈다.


"맥...퀸?"


"혹시 이 영화의 제목이 기억나시나요. 트레이너씨?"


아무리 예고편도 안보고 본 영화지만

티켓 살 때 제목을 봤을 텐데 설마 기억 못 할 리가.


"당연히 기억...하..."


제목이 떠오르질 않는다.

마치 머릿속에 짙은 안개가 낀 것처럼.


"물론 당연히 그러실 거에요.

하지만 크레딧을 잘 확인해 보시면

그 답을 알 수 있으실 거랍니다."


그 말을 듣고 글자가 흐르고 있는 크레딧을 바라보니 

익숙한 이름들이 서서히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메지로 맥퀸 역: 메지로 맥퀸.


토카이 테이오 역: 토카이 테이오.


메지로 라이언 역: 메지로 라이언.


.

.

.


크레딧에 적혀있는 이름들은 모두 트레센에서 본 적 있는,

그것도 메지로 맥퀸과 관련된 주변인들의 이름이었다.


트레센에서 영화를 찍은 적이 있었던가...?

아니, 저렇게 출연자가 많은데 트레이너들이 모를 리가.


그보다 나 언제 영화를 보러 온 거지?


머리가 지끈거려.


안개 낀 것 같던 기억이 신호 없는 텔레비전의 노이즈처럼
불규칙적으로 지직거리며 무언가를 뱉어내려 하고 있다.


-!-


그래.


내가 보고 있는 건, 


"나와 메지로 맥퀸이 지금까지 걸어온 길." 이다.


"...이제 눈치채신 모양이시네요.

상당히 긴 내용이라 조금 지루하셨을지도 모르겠어요."


"...아니야. 맥퀸과 함께한 시간은 언제나 지루할 틈이 없었으니까.


사츠키상, 더비라는 3관 노선 중 2개를 건너 뛰는 과감한 결심을 했을 때도


인내하고 갈고 닦은 끝에 국화상에서 마침내 첫 성과를 거두었을 때도.


타카라즈카 기념에서 라이언에게 졌을 때도.


토카이 테이오라는 운명의 라이벌을 만났을 때도.


이 외에도 수많은 일들이 있었지만

정말, 하나하나가 소중한 보석 같은 기억들이야."


"확실히...메지로 가문에도,

제 마음에도 여러가지를 남긴 시간이었죠."


"그런데...이제 끝난 건가?"


"..."


맥퀸은 대답하지 않았다.


엔딩 크레딧이라는 건, 영화가 모두 끝나고 올라오는 것.

이 영화를 만든 사람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끝매듭을 짓는 절차.


그렇다는 건 나는 아마...


"...출구 쪽으로 가셔서 계단을 내려가시면

그대로 끝이에요. 하지만...!"


"솔직히, 나는 내 삶이 언제든 끝나도 좋다고 생각했어.

그렇다고 자살이나 누군가에게 살해 당하고 싶다는 건 아니지만.

그냥 단지 어느 날 죽어서 이게 끝이라면 뭐 어쩔 수 없나. 그런 생각이 들 뿐,"


"트레이너씨는...저와 일심동체시잖아요...!"


그래. 그랬었지.


메지로 맥퀸.


내 담당 우마무스메.


내 마지막 미련.


"그럼 일심동체 관둘까?"라고는 못하겠네.
아마 나랑 얘기하고 있는 건 내 기억 속의 맥퀸이겠지만.

본인이 아니더라도 차마 그런 말을 꺼내고 싶지 않다.


"언제든 끝나도 좋다는 건, 바꿔 말하면

그 언제가 지금이 아닐 수도 있다는 거겠지.

그럼...어떻게 하면 될까?"


만약 여기가 끝이라면

만나고 싶은 사람은 몇 분 계시지만 그건 조금 미루도록 할까.

정말 끝이 되었을 때 만나서 실컷 떠들면 그만이니까.


"...그렇다면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 주세요."


어느새 내 얼굴이 아니라 맥퀸의 얼굴에 눈물이 흐르고 있었다.

맥퀸이 우는 얼굴은 자주 보고 싶진 않았기에 최대한 귀를 쫑긋 세웠다.


"...씨!....레이...너.."



어렴풋한 목소리가 어디선가 들려온다.



"트레..."



아아, 나를 부르고 있어.



"...이너씨!"



오냐, 지금 가마.





- - -


"트레이너씨!!!"


눈을 뜨자, 전신에 강렬한 통증이 엄습해왔다.


그리고 이리저리 정신 사나운 모니터들도 잔뜩.


하지만, 그 무엇보다도 내 손을 잡고 있던

메지로 맥퀸이 내 눈에 선명히 들어왔다.



"그렇게 크게 말 안해도 다 들려...

미안해. 혼자만 남겨 둬서."


"트레...이너씨...우으..."


말을 더 이상 이어가지 못한 맥퀸은 눈물을 잔뜩 쏟아내기 시작했다.

그 작은 머리를 쓰다듬자, 이제서야 다시 이곳에 돌아온 실감이 났다.


후일 듣기로는 택시를 타고 돌아가던 도중

과속 차량과 추돌 하는 사고였다고 한다.


택시기사 분도 중상이셨지만 어떻게든 의식을 되찾으셨는데

나는 의식을 되찾지 못해 의사도 회복을 장담할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고.

그런 와중에 내가 기적적으로 깨어나게 된 것이다.


시간이 흐르고 무사히 퇴원하게 된 나는 병원을 나서며 생각했다.


아직 끝이 아니라면 나와 메지로 맥퀸의 이야기는 더 이어나가도 되는 거겠지.


언젠가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그날까지.



---


원안은 맥퀸이랑 또레나가 사고로 생과 사의 입구에서 주마등 겪다가

너랑 같이 가는게 나여도 괜찮은거야? 라는 말을 트레이너가 꺼내고

맥퀸이 아니요, 트레이너씨랑 같이 간다고 하니 두렵지 않은걸요. 하면서

둘 다 저 세상으로 가는 결말이었는데 좀 너무 심한 것 같아서 드리프트

댓글
  • 린성신관알타 2025/02/20 14:00

    옳게 된 드리프트다

    (ymstSv)

  • 메에에여고생쟝下 2025/02/20 15:26

    크으 이거거덩

    (ymstSv)

(ymstS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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