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사 세금 떡밥이 나오니까 하는 얘기인데

'세금을 많이 걷지 않으니까 항상 좋다'라는 관념은 좀 위험한 발상일 수 있음.

당장 동시기 조선 말고도 동시기 중국도 이렇게 낮은 세율을 가졌고 신민의 세금부담 자체는 의외로 상당히 적은 편이었음. 근데 이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정부가 세금이 적게 들어오다 보니 할 수 있는게 적어짐.

대역물 많이 본 사람이라면 이런 상황을 두고 '양자화'라는 표현을 좀 많이 봤을건데, 정부조직이 재원이 없다보니 형해화 되어서 제 역할을 못하게 되는 상황을 뜻하는 말로 많이 봤을거임. 실제로 명청의 경우엔 신사층에 지방통치를 상당부분 위임해야 했고 조선 같은 경우에도 관청이 들어오는 세금으로 뭘 할수가 없으니까 '자력갱생' 모드로 관청이 원래 해야 할 일에 전념하지 못하는 상황이 오는거지.

예컨데 그 유명한 영조가 박문수 갈궈서 이순신처럼 알아서 자력갱생하라고 지시한 일화도 단순히 보면 후대 지방수령이 이순신보다 못했다라는 식의 이순신 띄워주는 일화로 보이지만, 깊이 파보면 박문수나 이순신 같은 '국가연금술사' 레벨이 아닌 지방수령들은 꼼짝없이 '아니 재원이 없는데 저희가 어쩌라구요, 저희는 이순신, 박문수가 아닙니다'라고 행정의 중요사항을 배째버리는 경우가 훨씬 많다는 일화로 볼 수 있는 거지.

결국 이렇게 재원이 없으니까 정부가 제대로 할 수 있는 일이 줄어들고, 이는 19세기 서구의 침입때 동아시아 국가들의 중앙정부가 외세의 침입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서 무력화 되는 결과물을 초래함. 거기다가 재원이 없어서 정부가 반쯤 식물화 되는 기간이 길어지다보니 정부 주도로 뒤늦게서야 서구의 근대화를 따라가려고 해도 제대로 된 재원이 없으니 쩔쩔 매는 결과까지 낳음. 당장 한중일 3국 가운데 가장 세금을 빡세게 거둔 일본도 근대적인 관세에 대한 개념이 없다가 관세주권 서구한테 빼앗겨서 근대화 재원 마련에 쩔쩔 매기도 했고.

결국 세금을 왕창 걷고 또 왕창 민간에 뿌리는 근대 재정국가로 동아시아가 발전하지 못했기 때문에(동아시아권에서 그런 종류의 재정국가를 극혐하는 유교사상의 문제가 있기도 했고) 서구 침탈에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근대화에 어려움을 많이 겪었으며, 정부조직은 갈수록 형해화 되었다...이런 면에서 '조선을 비롯한 동아시아의 저세율 국가가 세금 빡세게 걷는 국가들보다 훨씬 낫다'이렇게 무조건 단정하면 안된다는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