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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목숨을 구할 때마다 젊어지는 계약

나이 서른, 사내는 자살하기로 했다.

불어난 사채를 감당할 수가 없었고, 인생에 미래가 보이지도 않았다. 
사내는 시내에 높은 건물 아무거나 돌아다니다가, 옥상 문이 잠기지 않은 어느 건물 옥상으로 올라갔다.
난간 위에 올라선 사내는 생의 마지막 순간을 망설였다. 마지막으로 심호흡한 뒤 몸을 던지려던 그 순간,

" 잠깐만! "

급히 옥상에 나타난 한 급히 나타난 중년인이 사내를 말렸다.

" 드디어 찾았어! 잠깐만요! 잠깐만! 뛰지 마세요! 죽으면 안 됩니다! "

중년인은 양손을 내저으며 사내에게 다가갔고, 돌아본 사내는 경고했다.

" 가까이 오지 마요! "
" 예! 예! 안 갑니다! 잠시만 얘기만 합시다 얘기만! "

중년인은 사내를 안심시키는 자세로 침착하게 이야기했다.

" 침착하시고, 다시 한번 생각하세요. 죽으면 안 됩니다. "
" 말려도 소용없어요. 저는 이미 마음을 결정했습니다. "

사내의 태도는 단호했지만, 중년인은 필사적으로 고개를 흔들었다.

" 아이고 제발! 가족과 친지를 생각하십시오! "
" 어차피 가족이라고는 할머니밖에 없습니다. 친구들도 그렇고, 제가 죽는 것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겁니다. 그럼 전 이만.. "
" 아이고 아이고! 잠깐만 잠깐만! 진정 좀 하시고! 제발요! 지금 정신적으로 너무 지쳐서 그런 겁니다! 어디 가서 식사라도 하시죠? 제가 소고기 사드리겠습니다! 제발 죽지 마세요! "
" ... "

사내가 보기에 중년인의 간절함은 진심 같았다. 조금이지만 미안한 감정이 싹텄다. 

" 죄송하지만, 저는 이미 마음의 결정을 내렸습니다. "
" 아이고 왜 이러십니까! 사람 목숨이 그렇게 쉬운 게 아닙니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
" 죄송하지만.. "

사내는 사과하며 뒤돌았고, 화들짝 놀란 중년인이 크게 외쳤다!

" 잠깐만요! 아니, 무슨 일 때문에 그러십니까? 왜 죽으려고 하시는 겁니까? 사연 정도는 들려줘야 하지 않겠습니까? 예? "

다시 돌아본 사내가 미간을 찌푸렸다.

" 어차피 죽을 건데 그게 다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 "
" 아닙니다 아니요. 제가 도움이 될 수 있을지 어떻게 압니까? 예, 무슨 일인지 모르겠지만 제가 도울 수 있는 일이라면 뭐든지 돕겠습니다! 억울한 일이십니까? 무슨 사연이 있길래 목숨을 버리려고 하십니까! 일단 얘기나 해보시죠 예? "
" ... "

사내는 망설이다가, 간략하게 말했다.

" 누구 탓할 것도 아니고 다 제 잘못입니다. 방탕하게 쓴 사채를 감당할 수가 없어서 죽는 겁니다. 그러니, 저 같은 사람 살리자고 그렇게 애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

사내는 다시 돌아서 뛰어내릴 자세를 잡았다. 한데,

" 잠깐잠깐! 얼맙니까?! 그 빚이 얼마입니까?! "
" ? "
" 제가 그 돈 해결해드리겠습니다! 얼마입니까?! "

다시 돌아본 사내의 얼굴이 묘하게 찡그려졌다. 

" 아니요. 그렇게까지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그 마음은 감사하지만, "
" 제가 갚아드린다니까요! 진짜! 그러니까 죽지 마세요 예?! "
" ... "
" 얼마입니까? 얼마인지만 말씀해 보세요. 얼마입니까? "

사내는 우물쭈물하다가 금액을 말이나 해봤다.

" 8천만...입니다. 신경쓰지 마세요. "
" 제가 드리죠! "
" 네? "
" 8천만 원 이라고요? 제가 갚아드릴게요! 그러니 죽지 마십시오! 예? 제발 죽지 마세요! "
" ... "

미간을 찌푸린 사내는 중년인을 가만히 바라보았다.

"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하지만 이미 저는 모든 결정을 내렸습니다. "
" 거짓말 아닙니다! 진짜로 갚아드린다니까! "

중년인은 필사적이었지만, 사내는 고개를 흔들었다. 사내의 상식으로는 중년인이 8천만 원을 대신 내줄 이유도 뭣도 없었다.
말없이 돌아서는 사내. 그 순간, 중년인이 소리쳤다!

" 자, 잠깐! 지금 이체합니다! 저 지금 핸드폰 꺼냈습니다! 지금 계좌이체합니다! "
" ?! "

돌아선 사내의 눈에, 정말로 핸드폰을 꺼내는 중년인의 모습이 보였다.
중년인은 이때다 싶어 얼른 말했다.

" 계좌번호 불러주세요! 8천만 원 바로 보내드리겠습니다! 예? "

사내의 눈빛이 흔들렸다. 정말인가? 저 모습은 정말일까? 

" 아이, 정말입니다! 일단 계좌번호 좀 알려줘보세요! "
" ... "

흔들리는 눈으로 망설이던 사내가, 믿거나 말거나 하는 마음으로 계좌번호를 불러주었다.
그러자, 얼른 스마트폰을 조작하는 중년인.

" 잠시만요! 잠시만! "

그 모습을 지켜보던 사내는 얼마 뒤,

" 아! "

주머니 속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에 놀랐다. 설마 하는 모습으로 확인해보니, 8천만 원 입금 문자들이 들어와 있었다!

" 이럴..이럴! "
" 됐습니까? 예? 그 돈으로 사채 갚으시고, 죽지 마세요! "
" 어떻게, 어떻게 이럴 수가...! "

사내는 믿을 수 없는 눈으로 중년인을 바라보다가, 난간에서 내려왔다. 

" 정말, 정말로 이 돈을 써도 된다는 말입니까? "
" 아 그럼요! 얼마든지요! 저 돈 많습니다. 부담 없이 쓰세요! "
" 아..아..어떻게..아.. "

사내는 격정에 떨었다. 중년인은 마지막 회심의 말을 던졌다. 

" 혹시 제가 나중에 돈을 돌려달라 한다 생각할지도 모르니, 저는 지금 바로 돌아가겠습니다! "
" 아...! "

중년인은 정말로 곧장 뒤돌아 달려갔다. 사내는 중년인의 마음이 모두 진심이라는 걸 확신하며 떨었다.

" 세상에! "

중년인이 옥상을 떠나는 모습을 바라보던 사내는 퍼뜩! 정신을 차리고 달렸다!

" 선생님!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 "

사내는 은인에게 제대로 감사 인사를 드려야만했다. 
한데? 앞서가는 중년인은 한사코 소리쳤다.

" 아뇨! 괜찮으니까 따라오지 마세요! "
" 아니요 선생님! 이 은혜를 도대체 어떻게, 선생님 감사합니다! "
" 따라오지 마세요! 괜찮습니다! 따라오지 마세요! "

계단을 내려가는 중년인은 계속해서 따라오지 말라고 했지만, 사내는 그럴 수 없었다. 당장 큰절이라도 올려야 했다.

" 괜찮다니까요! 따라오지 마세요! 괜찮아요! "

중년인은 슬슬 이상할 정도로 거부했다. 격정에 빠진 사내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중년인의 태도는 확실히 이상했다.

" 선생님! 부탁드립니다! 밥이라도 대접을 하겠습니다! "

기필코 중년인을 붙잡고자 한 사내가 계단을 날듯이 뛰어내렸고, 기어이 중년인을 붙잡았다!
한데?

" 헉?! "
" 이런... "

사내는 경악했다! 
글쎄, 나이 오십은 되어 보이던 중년인이, 앳된 청년이 되어 있는 게 아닌가?!

" 이, 이게 어떻게 된...?! "
" 으.. "

곤란한 얼굴이 된 중년인-,청년은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 들켜버렸군요. 어쩔 수 없이 설명해 드릴 수밖에 없겠군요. "
" 무슨...? "
" 저는 얼마 전 '생명의 신'과 계약했습니다. "
" 예? "
" 생명의 신과 계약한 저는, 누군가의 목숨을 구하면 그 사람의 나이만큼 젊어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
" 예?? "

도저히 믿을 수 없는 황당한 이야기였지만, 사내의 눈앞에 보이는 증거가 그랬다. 실제로 젊어지지 않았는가? 그러고 보니 딱 자신의 나이 서른 살 만큼은 젊어진 것 같았다.
그제야 중년인이 그렇게까지 애썼던 이유도 이해가 갔다. 30년의 젊음에 비하면 8천만 원쯤은 아무것도 아니겠지.

" 누군가의 목숨을 구할 기회는 정말로 흔치 않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옥상 난간에 올라선 모습을 보자마자... "

청년의 이야기를 듣는 동안 사내의 흥분이 점점 가라앉았고, 한가지 결론에 다다랐다.

" 저도 그 생명의 신과 계약을 하고 싶습니다! "
" 으음... "

청년은 곤란한 얼굴이었지만, 어느 정도는 이런 결과를 예상한 듯했다.

.
.
.

사내는 그의 소개로 생명의 신과 계약을 맺었다. 몇 가지 주의사항이 있었지만, 감수했다.

" 생명의 신은 절대적인 생명력을 줍니다. 다만 반대로, 목숨을 살리는 게 아니라 목숨을 죽이면 그만큼 나이를 먹게 될 겁니다. "

그는 어차피 평생 살인을 할 생각 따위 없었으니 상관없었다.

사내는 가슴이 두근거렸다. 한순간에 그의 인생이 특별해졌다. 
게다가 중년인이 내주었던 8천만 원도 그대로 있었다. 사채를 갚고 난 뒤에는 제2의 인생을 누구보다 제대로 시작할 수 있었다.
한데 문득,

" 아니 잠깐만. 어차피 제2의 인생을 살 거라면... "

사내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만약 10대로 젊어진다면, 사채업자가 어떻게 알아보겠는가? 굳이 돈을 갚을 필요가 있을까?
진짜 자신은 자살, 실종으로 처리하고, 10대가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도 전혀 상관없지 않은가!
굳이 8천만 원을 낭비할 필요가 없어 보였다.

그렇다면 사내가 할 일은, 사채업자들이 자신을 찾기 전에 얼른 누군가의 생명을 구하는 일이었다.
20대는 안 된다. 자신의 나이가 서른이니까, 최소한 10대를 구해야 했다. 

" 어디 가서 10대의 목숨을 구하지? "

막상 사람의 목숨을 구하려니 막막했다. 영화처럼 차에 치일뻔한 사람을 구하는 그림은 로또 확률이나 마찬가지다. 중년인이 자신을 찾고 그렇게 기뻐하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막연하게 중고등학교 주변을 배회해도 방법이 없었다.

" 빌어먹을! 우리나라 청소년 자살률이 1위라더니, 도대체 어딜 가야 찾을 수 있는 거야? "

하교하는 아이들을 괜히 관찰하고 쫓아다니던 사내는, 방식을 바꿔 인터넷을 이용하기로 했다.
자살 글을 죄다 뒤지고 다녔지만, 대부분 '자살하고 싶다'였지, 당장 자살하겠단 글은 찾을 수 없었다.

그 와중에 사채업자의 협박 전화가 계속 울렸다. 일단 안 받고는 있었지만, 사람 찾는데 귀신인 작자들이니 언제 쫓아와도 이상할 게 없었다.

" 미치겠네 진짜! 그냥 8천만 원을 줘버려야 하나? "

그러기엔 너무 아까웠다. 애초에 원금은 반도 안 됐었는데! 
진짜 어디 옥상에 나처럼 자살하려고 하는 놈 하나가 없을까? 한강에 빠져 죽으려는 놈 하나 없나?

전전긍긍하던 사내는 문득 생각했다.

" 잠깐만...굳이 죽을 위기에 처한 사람을 찾아다닐 게 아니라, 내가 만들면 되는 거 아냐? "

발상의 전환이라기엔 뭣하지만, 어쩌면 이라는 생각은 들었다.
혹시 생명의 신이 그 정도의 융통성이 있을까?

계속 울리는 사채업자의 전화는 사내의 마음을 급하게 했고, 합리화하게 했다.

" 어차피 살릴 거야. 해도 손해 볼 건 없잖아? "

사내는 바로 계획을 짰다. 어떻게 해야 할까?
단순하게 자신이 죽이려다가 마는 건 인정되지 않을 것 같았다. 상대방이 스스로 위험에 뛰어들 수 있도록 하는 걸 생각해야 했다.

" 아! "

사내는 어릴 적 시골집에서 자랄 때, 농약을 먹고 죽은 동네 형이 생각났다. 그리고 한가지 계획을 떠올렸다.

먼저 이온 음료 페트병에 농약을 탄다. 학교 운동장에서 축구 하는 아이들을 구경하면서 옆자리에 내려놓는다. 그리고 잠깐씩 자리를 비우거나 잠이 든 척을 할 때, 땀을 흘린 아이 중 하나가 와서 농약이 든 이온 음료를 훔쳐먹으려고 하면, 다급히 말려서 생명을 구한다!

" 이거면 되지 않을까? "

사내는 단지 농약이 든 병을 들고 다녔을 뿐이고, 그 아이 스스로가 훔쳐먹으려다가 죽음의 위기에 처한 거니까 말이다. 그거면 목숨을 구하는 것이 인정되지 않을까?
애매하긴 했지만, 도전해볼 만한 가치가 있었다.

사내는 며칠간 준비해서 중학교 운동장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생각만큼 되지 않아 속이 탔다.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사채업자 때문에 집에 못 들어간 지도 오래였다.
그 사이에 인터넷으로도 계속 자살하는 아이를 찾아 헤맸지만, 찾을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8천만 원을 포기해야 하나 싶은 그때,

" 응? "

드디어 한 아이가 페트병을 놓아둔 벤치로 다가가는 모습을 발견했다!
잠깐 자리를 비우고 감시하던 사내는 가슴이 뛰기 시작했다.

당장 달려가면 안 돼! 좀 더 확실하게 목숨의 위협이 갈 때! 

사내는 몹시 긴장했다. 만약 조금이라도 늦는다면 아이의 목숨은...그렇지만 너무 빠르면 지금까지 기다린 시간이 아깝다.

쿵쾅거리는 심장으로 아이의 모습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사내! 아이가 손을 뻗어 페트병을 집어 들고, 뚜껑을 돌리면서 페트병이 얼굴께로 올라가던 그 순간!

" 야 이 새끼야-! "

벼락처럼 소리를 지른 사내가 아이를 향해 달려갔다!

" 헛! "

깜짝 놀란 아이가 페트병을 떨어뜨리고, 사내는 가슴을 쓸어내리며 안도했다.

" 너, 너 인마! 누가 남의 페트병 집어먹으래?! 이 안에 농약 들었다고! "
" 네? 네?? "
" 너 죽을 뻔했다고 인마! 어휴! 내가 너 목숨 구해준 줄 알아라! "
" 아..? "

아이는 영문을 몰라 그저 당황하고 겁먹은 형상이었다. 조금 미안해진 사내는, 아이에게 오만원권을 지어주며 급히 자리를 떠났다.

" 이걸로 친구들이랑 시원한 거 사 먹어! "

사내는 달렸다. 저번에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중년인이 그랬던 것처럼 달렸다. 
그리고, 몸이 변화하고 있는 것을 스스로 느꼈다!

" 됐다! 됐어! 몸이 가벼워! 가벼워!! "

환희에 찬 사내는, 운동장을 빠져나가자마자 급히 핸드폰 카메라를 켰다. 이윽고, 10대 후반으로 변해있는 자신의 모습을 확인했다!

" 으하하! 됐어! 됐다고! 생명의 신이 융통성이 있네! 으하하하! "

청년이 된 사내는 환호했다. 이 정도면 절대로 사채업자가 알아챌 리가 없었다.

돈도 있고, 젊음도 있다. 사내는 제2의 인생을 준비했다. 우선 미리 준비했던 유서를 사채업자에게 보냈다. 원룸 방에도 그런 흔적을 남겨놓고, 모든 걸 버리고 왔다. 컴퓨터, 핸드폰, 옷, 신발, 가구, 가전, 이름까지 몽땅.

이후로는 무적자 행세를 하며 취적 과정을 밟았다. 생각보다 복잡했기에 변호사의 도움을 받긴 했지만, 새로운 이름을 얻는 데 성공했다.

다시 태어난 사내는 뭐든지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자살까지 결정했었던 험난한 인생 경험과 10대 후반의 젊음이 합쳐지니 대단한 무기가 되었다. 게다가 영원한 젊음을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니! 무슨 일을 해도 자신감이 붙었다.

일단 새로 방을 구하고, 국가에서 지원하는 청소년 창업 지원 프로그램을 알아보러 다녔다.
그러는 동안 혹시나 해서 전에 살던 곳을 방문해보니, 사채업자들이 혈안이 되어 찾아다닌다는 소식을 들었다. 
사내는 그 소식을 듣는 자체만으로도 통쾌했다. 찾을 수 있을 리가 없지! 

그러다 문득, 유일한 핏줄이었던 시골에 계신 할머니가 생각났다. 설마 사채업자들이 거기까지 갈까? 하긴, 간다고 해도 할머니에게는 뜯어낼 만한 돈도 없지만...

혹시나 걱정된 사내는 시골로 향하는 표를 끊었다. 일단은 멀리서 보고만 올 생각이었다.

가는 동안 청년의 마음은 가벼웠다. 혹시 할머니가 자신의 얼굴을 알아볼까? 만약에 말을 한다면 믿을까 안 믿을까?
장난기 어린 얼굴로 차에서 내린 청년은, 곧바로 할머니의 시골집으로 향했다.

한데? 할머니네 집 대문 앞에 다른 할머니 한 분이 주저앉아 서럽게 울고 있는 게 아닌가?

" 아이고~ 아이고~! 이렇게 가면 어쩌누! 찾아오지도 않는 손주 놈이 뭐라고! 그놈이 뭐라고! 형님이 그렇게 가면 어쩌누! "
" ?! "

깜짝 놀란 사내는 곧바로 그 할머니에게로 달려가 물었다!

" 무슨 말입니까?! 이 집에 무슨 일이 일어났는데요?! "
" 서울에서 손주 놈이 자살했다는 소식을 듣더니, 글쎄! 글쎄! 으허어엉! "

충격에 눈이 흔들리는 사내! 곧장 대문 안으로 달려가 방문을 열어 닥쳤는데,

" ...! "

스스로 목숨을 끊은 할머니의 모습에 다리가 풀려 주저앉아 버렸다.
부들부들 떨면서 기어가 할머니의 식은 몸을 만지는 사내. 
그 충격이 진정되기도 전에 갑자기,

" ?! "

사내의 몸이 급속도로 변하기 시작했다!

" 억..어..억..?! "

한순간 90대의 노인이 되어버리는 사내!

두 눈을 부릅뜨고 쓰러지던 사내는, 중년인이 알려주었던 주의사항이 떠올랐다.

[ 생명의 신은 절대적인 생명력을 줍니다. 다만 반대로, 목숨을 살리는 게 아니라 목숨을 죽이면 그만큼 나이를 먹게 될 겁니다. ]

" 커헉..안돼..! 이럴 순 없어...이럴 순 없어..! "

할머니를 잃은 슬픔도 슬픔이지만, 사내는 너무 억울했다! 자신이 할머니를 직접 죽인 것도 아닌데! 생명의 신은 왜 이런 융통성을 발휘한단 말인가?!
한순간에 쇠약해진 사내의 몸은 움직일 기운조차 없이 바닥에 무너져내렸다.

가쁜 숨을 내쉬던 사내는 할머니를 바라보며 눈물을 흘렸다. 다 허탈하고, 다 피곤했다.
할머니의 근처에, 스스로 목숨을 버릴 때 쓰셨던 농약병이 보였다.

사내는 떨리는 손을 뻗어 병을 들고 입으로 옮겼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날 그냥 뛰어내릴 것을...

" ... "

고통과 죽음을 기다리던 사내. 한데, 다음 순간

" 컥?! "

사내의 몸이 또다시 급변했다! 미라와 같이 급속도로 말라가는 사내!

" 뭐...야...! "

그 모습은 마치, 한순간에 90살의 나이를 더 먹어버린 것 같았다.

[ 생명의 신은 절대적인 생명력을 줍니다. 다만 반대로, 목숨을 살리는 게 아니라 목숨을 죽이면 그만큼 나이를 먹게 될 겁니다. ]

이미 밀랍에 가까워진 사내는 설마 하는 공포에 떨었다.
목소리조차 낼 수 없어, 마음속으로 '아니야! 아니야!' 부정하던 사내는, 있는 힘을 다해 농약을 끝까지 들이켰다. 하지만,

" ! "

사내의 몸은 밀랍을 넘어, 사람이라고 부를 수 없을 정도의 몰골로 변해갔다. 움직일 힘도 없었고, 새하얘진 눈으로 보이는 것도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내의 생명력은 살아 있었다.

이윽고, 구급대원들이 달려 들어오는 소리가 사내의 귓가에 희미하게 들려왔다.

" 헉! 뭐야?! 이 미라는 뭐야?? "
" 자, 깐만! 조용히 해 봐! 이 미라, 숨을 쉬는 것 같은데...? 들것! 들것 가져와! "

사내는 손가락 하나 까딱할 수 없는 몸으로, 마음으로 간절히 빌었다.

' 제발 죽여줘...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1/15 00:14

    책 표지랑 디자인도 완성되어 가고, 슬슬 책이 나올 때가 되니까 마음이 불안해지네요.
    제가 뭐라고, 출판사에서 정말 최고로 좋은 조건으로 배려해주시고 계약 해주셨습니다. 계약금도 첫날 바로 넣어주시고;
    그런데 책이 망하고 출판사에 엄청난 손해를 입히게 될까 봐 두려워지네요.. 정말 대단하시고 유명하신 분께서 출판해주시는 건데.. 명성에 먹칠하는 건 아닐지..두렵습니다.. 으으..
    책이 잘 팔리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최소한 제가 할 수 있는 모든 노력은 해야 할 것 같은데..흐하
    항상 잘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야기 재밌게 보고 오셨는데, 싱숭생숭한 댓글 죄송합니다 흐하하핫;
    행복하세요!

    (GNhcHL)

  • 해리포터리포터 2017/11/15 00:26

    책이 완성되어간다니 덩달아 두근두근하네요
    이번 편도 너무 재밌습니다
    그나저나 좀 더 자신감을 가져주시죠! 제가 복날님 글을 처음 본게 푸르스마 푸르스마나스 인데 아직도 그 반전의 충격이 생각납니다. 사람들한테도 말해주면 다들 재밌다곸ㅋㅋ
    복날님은 오유 공포게의 보배세요!

    (GNhcHL)

  • 히옷스 2017/11/15 00:48

    어서 책이 나와서 구매하고 싶어요!

    (GNhcHL)

  • 노잼이면때림 2017/11/15 01:41

    소름보소 영원히 못죽는다는거네

    (GNhcHL)

  • 공게덕후 2017/11/15 02:23

    아 이런 몇중(?) 충격 구조 넘 좋아요. ㅋㅋ
    중년 사내의 정체부터, 생명의 신과의 계약, 계약 원리, 좋은 융통성, 넘나 잘 풀려서 찝찝한 전개ㅋㅋ, 기분 더러운(주인공에 감정이입했을 때) 전개(는 '나쁜 융통성'), 더러운 계약원리(는 불멸... 이걸 왜 안 알려준 건데ㅋㅋㅋ)
    오늘도 힐링 잘하고 갑니다 넘 감사해요!!

    (GNhcHL)

  • 공게덕후 2017/11/15 03:04

    아 근데, 뭔가 사소하지만
    "자살 글을 죄다 뒤지고 다녔지만, 대부분 '자살하고 싶다'였지, 당장 자살하겠단 글은 찾을 수 없었다."
    이 부분 넘나 깨알공감이라 괜히 빵터졌어요. ㅋㅋㅋ
    사실 웃을 일만은 아니지만, 우리가 '자살하고 싶다, 죽고싶다'는 말은 많이 해도 진지하게 죽겠다는 얘긴 잘 안 하죠.
    이미 그런 마음 먹었으면 말을 안 해서 더 위험한 거기도 하고... 겉으로 말해봤자 듣는 말은 솔직히 듣는 입장에선 더 기운빠지기도.. ('힘내라 그럴 용기로 살아라' 같은..?)
    암튼 근데 심각해도 넘나 깨알 같이 와닿아서 웃긴 그런 부분이었네요. ㅋㅋ '당장' 자살하겠다는 사람이 없었다는 부분도.. 역시 심각하고 슬프지만 웃퍼요ㅠ
    일단 자살 단어가 들어간 글은 수두룩한데 정작 화자가 필요한 글은 없는 그 답답함이 전해져서 웃기고ㅋㅋ
    솔직히 죽고 싶어도 '당장' 죽을 생각도 용기도 없어서 안(못) 하다 보니 또 열심히 나름 재밌게 살게 되고..의 반복인 일상이 공감돼서 웃프기도ㅠ
    그리고 화자가 농약 덫 놨다가 덫에 걸린(?) 아이 구하면서 발연기하는 부분도.. 발연기가 상상돼서 웃겼어요. ㅋㅋㅋ 복날님 소설들은 문체와 묘사력이 찰져서 항상 장면이 상상되고, 인물들 감정전달이 잘 돼서 더 재밌어요.

    (GNhcHL)

  • 설렘사 2017/11/15 07:40

    항상 잘 보고 있어요. 재미있는 글을 써주셔서 감사합니다.

    (GNhcHL)

  • 공치열 2017/11/15 09:01

    저런 이야기 볼 때마다 화남 ㅠㅠ
    8,000만원 받았으면 그냥 빚 갚고 끝내란 말야...ㅠㅠ

    (GNhcHL)

  • 간지나 2017/11/15 11:07

    근데 만약 중병이라도 걸린다면 영원히 중병에 걸린채로 살아햐 한다는 ㅎㄷㄷ

    (GNhcHL)

  • 맛빠CK 2017/11/15 11:12

    전 우리가 모르는 사이에 죽이고있는 벌레나 미생물들 때문에 급격히 늙을줄알았는데 예상실패네요 ㅋㅋ

    (GNhcHL)

  • ScapeGoat 2017/11/15 11:15

    농약 파트에선 흥부전의 놀부가 생각나기도 했어요
    제비다리 부러뜨리려다 마는 느낌
    언제나 글 잘보고 있어요 책나오면 살게요!

    (GNhcHL)

  • 고래의노래 2017/11/15 11:19

    세상에....누군가를 죽여 나이먹게 되는 엔딩은 예상했지만 본인까지....
    산게 산게 아니게 됐고 저모양이니 누굴 구할수도 없겠네요
    끔찍합니다
    결말 충격적임ㄷㄷㄷㄷ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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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엑셀전개 2017/11/15 11:36

    항상 잘 보고 있습니다.
    긴장감이 넘치는 전개, 예상치 못한 반전. 책이 곧 나온다니 꼭 사겠습니다.
    다음번엔 영화나 드라마 시나리오를 노려보시는게 어떨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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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서울지앵 2017/11/15 11:46

    책 대박날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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