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켈트족을 생각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건 아마 푸른 색의 대청 워페인트 혹은 문신일 것이다.
켈트족은 제각기 다른 페인트칠이나 문신을 해왔으나 지금은 아주 극소수만 그 의미가 확인되었고, 중세 초부터는 야만의 상징으로 기피되어왔다.
(네 모습 다 고증으로 볼 수 있다, 1/2번은 갈리아의 여성 드루이드 조각상에서, 3번은 스코틀랜드의 토탄지대에서 발견된 천에서, 4번은 여성 드루이드를 묘사한 로마인들의 기록을 따옴)
하지만 당대엔 워페인트나 문신보다 더 아이코닉한 켈트족의 상징이 있었는데 바로 목에 채운 금 초커(torc)이다.
전투중 부상을 입고 죽어가는 켈트 전사를 묘사한 로마 시대의 조각상
실제로 금이나 은, 구하기 힘들면 청동, 철 등으로 만든 목 초커가 켈트족 문화권 전역에서 수백 수천개씩 출토된다.
기원전 3~4세기경까지 이 초커는 지체 높은 여성의 장신구로 쓰였지만, 기원전 3세기 말엽부터 켈트 남성, 특히 전사들에게 거의 모든 성인들이 착용하는 유니섹1스한 장신구가 되었다.
아마 여성인권이 높은 사회였어서 여자 유행이 남자쪽으로도 퍼진듯 하다.
@Yosinsis님이 그린 픽트족 마녀(위험하대서 딱지붙임)
위 그림처럼 반지는 안끼고 초크, 팔찌를 많이 차는게
초기 픽트족 여성들의 패션이었다.
생김새 그대로 한번 목에 맞춰서 차면 구부려서 빼기 어려웠기 때문에 한번 차면 거의 안벗는 반영구적인 장신구였어서, 로마군이 켈트족과 싸워 이긴 뒤 수급 대신 이 금 초커의 숫자로 노획품을 계산한 적도 있다.
물론 빼면 안된다는 금기가 있거나 한건 아니라서 위의 유물처럼 계속 뺏다 꼈다 하면서 두번, 세번씩 부러진 탓에 고친 흔적이 있는 유물도 있다. 아일랜드 신들도 몇개씩 갈아꼈다는 설화가 나온다.
대충 기원후 5세기까진 쓴 기록이 있고 이후 중세초 암흑기쯤부터 착용을 멈춘듯 싶다.
11세기쯤 되면 영국의 역사가들이 '왕가나 성자들이 쓰고다닌 목걸이같긴 해서 보물창고에 보관중인데 뭔지 잘 모르겠음'하고 고대 유물로 취급했다고 한다.
위의 유물처럼 무게가 수 kg씩 나가는 거대 초커들도 있고, 마르쿠스 퀸틸리아누스같은 로마인이 기록한 바로는 최대 33kg짜리 초커도 존재했다고 하는데, 실제 이걸 목에 달고댕겼다기보단 신들에게 바치거나, 신성한 떡갈나무들에게 채워준것으로 추정된다.
알몸에 퍼렁칠하고 댕기던 픽트족을 그렇게나 까던 로마인들은 이 금 초크는 힙하다고 생각했는지 켈트족들에게 노획하거나 자체제작을 하기 시작했고, 순혈 로마인임에도 노획한 금 초커(토크)를 차고 다니며 후손들에게 물려줘서 '토르퀘투스'라는 이름이 붙은 사람도 있었다.
위의 그림처럼 기독교가 전래된 기원후 6세기경에도 경량화되었지만 목에 차기엔 더 편해진, 목걸이화된 토크를 차고 다니는 묘사가 있다.
casete
2024/11/25 10:52
마비노기 나오가 목에 차던 그것
유동닉사학도
2024/11/25 10:53
오 마비노기에도 토크 찬 캐릭터가 나옴여??
casete
2024/11/25 10:54
마비노기가, 그래도 아일랜드 신화. 그러니까 켈트 신화를 기반으로 만든 게임이라 이리저리 그 요소들이 있긴 해요
ColonelLonghena
2024/11/25 10:53
일종의 패션느낌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