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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편] 음주운전 면책특권

" 거기서 음주 단속을 왜 하냐고 진짜! "

지구대를 나서는 사내의 발걸음이 거칠었다.
그는 너무 억울했다. 통행이 거의 없는 도시 외곽에서 왜 음주단속을 한단 말인가? 정말 딱 한두 잔 먹었을 뿐인데, 그것도 이해를 못 해준단 말인가?
씩씩대던 남자는 발에 채는 대로 땅바닥의 무언가를 차버렸다. 한데 갑자기, 눈앞이 번쩍하며 세상이 하얀 공간으로 변했다!

" 뭐, 뭐야! "

몹시 당황한 사내가 주변을 둘러볼 때, 어디선가 목소리가 들려왔다.

[ 나를 불렀느냐. ]

" 헉! "

사내는 그 목소리에서 어떤 신성함을 느꼈다.

" 혹시 시, 신 입니까? "

[ 그렇다. ]

사내는 부들부들 떨었다. 만약 종교인이었다면 감격으로 기절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무교였다.

" 제, 제가 죽은 겁니까? "

[ 아니다. 네가 우연히 소통의 문을 열었을 뿐이다. ]

" 아...! "

놀람은 잠시, 사내의 머리가 빠르게 회전했다. 말 그대로, 하늘이 주신 기회를 맞이한 게 아닐까?
사내는 넙죽 바닥에 엎드려 빌었다.

" 저, 저에게 100억 원만 내려주십시오! "

그러나, 

[ 불가능하다. ]

" 예? 아..예... 그러면 강남에 아파트 한 채만 주십시오! "

[ 불가능하다. ]

" 잉? "

[ 나는 너희 인간 세상에 간섭할 수 없다. 오직 내 목소리만이 그곳에 존재할 수 있다. ]

사내의 얼굴에 노골적인 실망이 떠올랐다. 

" 뭐야? "

[ 대신, 네 죽음에 대해 궁금하다면 알려주겠다. ]

" 아니 그런 건 알고 싶지 않은데... "

사내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일이라고 생각했다. 목소리만으로 뭘 한단 말인가? 신에게 사기 치는 걸 도와달라 할 것도 아니고.
그러다 문득,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

" 혹시 그 목소리를 다른 모두에게도 들려주실 수 있으십니까? "

[ 가능하다. ]

" 아! 그럼 일단 먼저, 제가 혹시 평생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는지 어떤지 알 수 있습니까? "

[ 너는 평생 음주운전으로 교통사고를 내지 않는다. ]

" 그렇지요?! 그렇죠?! 내가 이럴 줄 알았어! 내가 술 좀 먹는다고 운전 못 하고 그런 사람이 아니라니까! "

기어코 딱지를 끊던 경찰관의 얼굴을 떠올리며 씩씩대던 사내는, 이렇게 말했다.

" 부탁드립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 좀 해주세요! 이 사람은 음주운전을 하더라도 평생 교통사고를 내지 않으니까, 이 사람은 음주단속을 할 필요가 없다고, 술 먹고 운전해도 봐주라고요! "

[ 알겠다. ]

" 감사합니다! "

사내가 기뻐하는 사이, 새하얀 공간이 정상적인 길거리로 돌아왔다. 
그리고 순간, 밤하늘에서 신의 음성이 들려왔다.

[ 들으라. ]

전 세계의 모두가 그 음성에 반응했고, 그것이 신의 목소리라는 것을 자각했다. 

[ 이 자는 평생 교통사고를 일으키지 않는다. 그러니 술을 먹고 운전하더라도 내버려 두어라. ]

사람들은 아연했다. 처음으로 전해진 신의 말씀이 고작, 음주운전의 보증이라니? 
그들은 머릿속에 떠오른 사내의 얼굴을 보며 황당해했다.

다음 날, 사내는 바로 매스컴에 출연해 주장했다.

" 신이 제 무사고를 보증했습니다. 저는 이제 음주운전을 해도 됩니다. 저를 단속하지 마십시오! "

당황스러운 사건이었다. 허락하기도 애매했고, 허락하지 않자니 신의 말씀을 거스르는 듯하여 마음에 걸렸다.
이 사건에 대한 많은 토론이 시작되었다. 생각보다 단순한 문제가 아니었다.

" 신의 말씀을 따릅시다. 음주운전이 금지인 이유는 사고의 위험 때문입니다. 그 사고의 위험이 없다면 굳이 막을 이유도 없습니다. "
" 아니요! 법에 예외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자만 단속하지 않는다면 반드시 사람들의 불만이 나올 겁니다. " 
" 그렇다고 신의 말씀을 무시할 순 없지 않습니까? 이해해야 하고, 이해할 수 있는 범위의 문제입니다. 그가 술을 마시고 운전을 한다고 해서 피해를 보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존재하지 않습니다. "
" 직접적인 피해만이 피해가 아닙니다! 그를 따라하는 음주 운전자들의 변명이 벌써 그려지지 않습니까? 자신의 인생에도 교통사고가 없어서 술을 마셔도 괜찮다고 하겠지요! "
" 그것은 그냥 그들을 벌하면 될 문제입니다. 그러기 위해 법이 있습니다. 하지만, 법보다는 인간의 자유가 더 위에 있어야 합니다. 인간은 하고 싶은 걸 뭐든지 할 자유가 있습니다. 그것이 남에게 피해를 주지 않는 게 확실하다면 그 자유를 존중해줘야 합니다. "
" 무슨 말인지 원! 일반인들이 바라보는 시각은 그렇지가 않다니까! "

워낙에 특이한 사태라, 이것을 계기로 많은 이야기가 뻗어 나갔다.

" 사형제도는 어떻습니까? 만약 100% 진범인 게 늘 확실하다면, 사형제도가 있어도 되는 겁니까? "
" 만약, 언제일진 몰라도 무조건 한 번은 교통사고를 낼 사람이 있다고 칩시다. 그러면 그 사람은 평생 운전을 금지해야 하는 겁니까? "
" 마트에서 도둑질을 해도 그 혼자라면 마트에 전혀 손해를 끼치지 않는 누군가가 있다고 칩시다. 그럼 그 사람은 마트를 공짜로 이용해도 됩니까? "

별별 이야기들이 나왔지만, 사내를 어떻게 할 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모이지 않았다.
사내는 그냥 음주운전을 저질러버렸다.
경찰은 그를 붙잡긴 했지만, 어영부영 처벌하지 못했다. 결국, 사회가 그의 음주운전 면책권을 인정해버린 꼴이었다.
당연히 사람들은 못마땅했다.

" 누구는 대리비가 남아돌아서 대리를 하나? 참 나! "
" 나도 술 먹고 멀쩡히 운전할 수 있다고! "

그럴 때마다 사내는 대답했다.

" 나는 신이 보증한 사람입니다! 술을 마셔야 사고 예방이 100%란 말입니다! "

사내는 마치 보란 듯이 술을 마시고 운전했다. 어차피 사고를 내지 않을 걸 알기에 완전히 만취해서도 운전대를 잡았다.
그는 사실, 우월감을 느끼고 있었다. 혼자서 자유롭게 음주운전을 할 때만은 세상 모든 사람이 자신의 아래에 놓인 듯한 기분이었다.
유명세를 타고 방송까지도 출연했다. 방송국에서도 화제성이 있어 괜찮은 소재였다.

[ 제가 방금 소주 1병을 마시는 걸 보셨습니다. 조금 취기가 올라오는데요? 흐흐. 지금부터 강남을 한 바퀴 돌아보겠습니다! ]

신이 보증한 사내의 음주운전!
그것은 단발성에 그치지 않았다. 술의 종류를 바꾸고 코스를 바꾸는 식으로 정규 방송이 되었다.
이 자극적인 방송이 생각외로 시청률을 끌었기 때문이다. 특히, 그가 운전하는 차에 함께 탄 연예인들의 반응을 보는 재미가 컸다.
아무리 신이 보증했다고 해도, 만취한 운전자가 조종하는 차에 타는 건 무서운 법이었다.

[ 이, 이분 지금 눈이 감겨요! 눈이 감긴다고요! 방송 중단해야 하는 거 아니에요?! 진짜로! 악! ]
[ 꺄악! 속도 줄여요! 속도 줄여요! ]
[ 앞에 똑바로 보라고! 장난 아니라고! 앞에 똑바로 보라고-!! ]

그는 소주를 2병 마시고 운전하든, 퇴근길 강남대로를 운전하든, 절대 교통사고만은 내질 않았다. 얼마나 훌륭한 방송 아이템인가?
물론 수많은 비판이 있었지만, 그에 비례해 시청률은 높아져만 갔다. 올바른 비판들은 대비되어, 사람들은 역시 자극적인 것을 좋아한다는 증거로만 쓰였다.
점점 더 강한 자극을 위한 특집이 이어졌다.

[ 자, 오늘은 주량돌파 특집입니다! 제 주량 최대가 소주 2병인 거 아시죠? 오늘은 4병에 도전합니다! ]

사내는 소주 4병을 마시고 운전대를 잡았다. 주행 코스는 주말 저녁의 홍대에서 건대까지.
게스트는 늘 그렇듯이 비명을 지르며 겁을 먹었고, 사내는 정신을 못 차려 하면서도 꾸역꾸역 음주운전을 했다. 
그러면서도 정말 놀라운 것은, 기어이 무사고로 목적지까지 도착했다는 점이었다.

" 으아아! 살았어-! "

게스트는 목적지에 도착하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탈출했다. 방송 스텝들은 그 모습에 웃으며, 이번 방송도 잘 녹화됐을 거라며 기뻐했다.
한데? 운전대를 잡고 있는 사내가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차로 다가간 PD 놀라 엉덩방아를 찍었다.

" 주, 죽었어?! "

사내는 무사히 결승점을 통과한 뒤, 차를 세우고 조용히 죽었다. 과연, 사내는 신의 보증대로 평생 교통사고는 내지 않았다.  
사망 원인은 아주 깔끔했다.

[ 혈중알콜농도 0.5% 정도가 되면 호흡곤란이 올 가능성이 높습니다. 고인은 혈중알콜농도가 매우 높아져 있는 상황에서, 운전에 집중까지 해야 했기에 몸의 긴장을 풀 수가 없었습니다. 그 결과 호흡곤란으로 사망하게 된 것이죠. 아마, 운전대를 잡지만 않았어도-. . . ]

댓글
  • 복날은간다 2017/10/27 23:51

    감사합니다. 너무 자주 말하지만, 사실입니다. 행복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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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코아의꿈 2017/10/27 23:53

    언제나 재밌는 얘기 감사합니다!저는 종교를 믿고 있는 입장이지만 동시에 신을 너무 맹신하면 안된다는 주의인데 만약 저런 신의 목소리가 들려온다면 제 신념에도 혼란이 올거 같습니다...멘붕와서 모든 행동을 멈출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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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게덕후 2017/10/28 00:15

    우와 우와!! 일단 이거 텍스트 리더에 붙여서 들어야겠어요~~ 읽는 것도 좋지만 오디오북처럼 듣는 것처럼 듣는 것도 넘 좋더라고요. 그나저나 추천은 언제쯤이나 할 수 있을까요ㅠㅠ 신규회원은 언제까지 신규회원인지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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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똥글이☆ 2017/10/28 00:17

    늘 신박하고 새로운주제로 잼나는글 써주셔서 감사해요~^^잘보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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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공게덕후 2017/10/28 00:29

    오오~ 신선하네요!
    음주'운전'으로 죽지 않는다는 말을 맹신한 나머지, 결국은 '음주'로 죽는군요ㅋㅋ
    그래서 저 사내는 김남우인가요?ㅋㅋ
    지난 소설들 보다보니까 다들 김남우가 죽길 바라길래. 전 남우씨들 좋던데 어쩌다 그런 신세가 되신 건지..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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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PrideChicken 2017/10/28 01:03

    깔끔하게 혼자 죽었으니 개이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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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포도맛바람 2017/10/28 01:09

    ㅋㅋㅋㅋㅋㅋㅋㅋㅋ나였으면 신에게 무슨 말을 했을까.
    어떻게든 이성이랑 잘 되게 해달라고 빌었을 것 같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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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치즈치즈치즈 2017/10/28 01:20

    사내 자신은 사고를 내지않았지만,
    사내의 음주차량을 피하려던 차가 다른차를 들이받아 연속추돌사고를 내버린다면,
    사내에겐 책임이 있을까요? 없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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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몽몽애비 2017/10/28 01:32

    잘가라 김남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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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재즈피아노 2017/10/28 01:58

    다음주 로또번호를 알려 달라고 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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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rubbish 2017/10/28 02:08

    항상 좋은 글 감사드립니다!!
    복날님도 더더더 행복해 지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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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클로이173 2017/10/28 13:32

    베오베 우웩 욱......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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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배긴ㅈ으디 2017/10/28 13:42

    처음에 수명을 알려달라했으면ㅋㅋㅋ 알려줄때 듣지 그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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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나바나나 2017/10/28 13:42

    와아 옛날에 읽었던 베르나르 단편 읽는 기분이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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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브하 2017/10/28 14:08

    재밌게 잘읽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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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잠자는숲속 2017/10/28 14:39

    결말이 정말 맘에드네요!!ㅎ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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