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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

정기문|서울대 서양사학 박사. 군산대학교 교수
서양사 입문서. 수메르•이집트문명부터 서로마제국멸망까지
칼로 흥한 자는 칼로 망한다. 잔인했던 아시리아는 자신들이 한 만큼 보복을 받았다. 앗수르바니팔 치세 말에 스키타이인이 쳐들어온 데다 제위 계승을 둘러싼 내분까지 일어났다. 이렇게 제국의 지배력이 약해지자 그동안 포악한 지배를 받던 메디아인과 바빌로니아인이 반란을 일으켰다. 기원전 612년 메디아 왕국과 신바빌로니아 동맹군이 아시리아의 수도 니느웨를 함락했다. 아시리아의 전 국토가 철저히 약탈당했고, 아시리아인은 모두 노예가 되거나 처형당했다. 약탈과 보복이 어찌나 철저했던지, 아시리아가 그 후 역사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 찾아내기 불가능할 정도였다. 이에 대해 2세기 그리스 시인 루키아노스는 “여보게 사공, 니느웨는 그토록 흔적조차 남기지 않고 파괴되었으니, 당신이 예전에 있던 곳을 어찌 알겠소?”라고 말했다.
아시리아의 위상은 19세기 중엽 앗수르바니팔의 도서관이 발굴되면서 새롭게 부각되었다. 이 도서관에서 수메르 시절부터 메소포타미아인이 발달시킨 문학과 과학 분야의 점토판 3만 개가 발견되었다. 이 가운데 하나가 이다. 앗수르바니팔은 도서관을 조성한 후에 “나는 에아Ea의 지혜, 박식한 제사장들의 기술, 성인들의 지식 그리고 위대한 신들에게 드리는 위로를 아시리아와 바빌로니아의 책을 따라 점토판에 기록했고, 그 내용을 직접 검토하고 감수했다”라고 말했다. 앗수르바니팔의 이 말은 아시리아가 학문과 문화발전에도 큰 관심이 있었음을 보여준다. 아시리아가 잔인한 정복자로만 알려진 것은 아시리아 왕들이 그들의 업적을 선전하는 비문을 많이 남겼고, 역사가들이 그런 기록에 너무 의존했기 때문일 수 있다.
처음부터 다시 배우는 서양고대사 | 정기문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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