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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 역사학자 페이스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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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오유와더불어 2017/10/22 23:19

    원전반대하신분들중 원전에 대한 반대보다 "내집위에 또는 내가사는동네에 송전탑이 지나가는것때문에 반대한다"라는 분들이 있습니다.
    원전에 대한 반대보다 나의 이익과 손해의 계산에 따른 반대가 더 많았던것이죠.
    대표적으로 사드의 경우 성주성산포대에 설치한다고 할땐 성주의 많은 분들이 반대하다 골프장쪽으로 옮기니 많은 분이 조용해졌죠.
    나의 득실을 따져서 반대하는것은 찬성하는것과 같죠.   지금 원전을 찬성하는 쪽도 자신또는 자신의 세대의 득실을 계산해서 찬성하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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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척사광 2017/10/22 23:28

    투쟁이 합법적인 방법이면  찬성합니다.
    내 생활이 걸린 일이라면 저도 어떨지 모르겠어요.
    그런데 법을 벗어나면 스스로 동력을 잃을 거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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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간츠프리마 2017/10/23 09:28

    어후,
    이분 정말매력적이네,
    치명적인 글 솜씨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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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따뜻한별들 2017/10/23 10:25

    트위터를 싫어하지만, 유일하게 전우용씨의 글을 보려고 깔아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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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어둠의오유인 2017/10/23 10:34

    전우용 선생 말씀은 언제나 배울 게 많아요. 이 글에도 민주주의의 본령에 대한 명쾌한 철학이 담겼네요. 이 시대의 참지식인이라 할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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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趙雲 2017/10/23 11:23

    개인적으로 원전반대의 입장이지만
    이번 결정은 인정해야한다고 본다.
    민주적 절차와 토의 끝에 도출된 결론에도 불구하고
    계속 뜻을 굽히지 않는다면 누가 민주적 절차에 승복하겠는가??
    길게 볼때 결코 사회가 건강해지는 방향은 아닐 거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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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루치에윌데™ 2017/10/23 12:02

    어떻게 보면 민주주의가 성숙하는 과정은 '나한테 아니꼬운 것을 받아들이는 방법을 익히는 과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권력을 잡았을 때, 특히 그 집권방법이 깨끗하지 못할수록 자기 권력에 아니꼬운 말과 행동을 참지 못하고 충돌하는데 이게 독재죠.
    한편 권력층이 아닌 일반 시민층으로 내려와서 보면 내 이익, 우리 가족 이익, 우리 지역 이익을 양보하는 지점을 찾아야 할 때가 자주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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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누굴까? 2017/10/23 12:15

    소위 숙의적 방법이 민주적 절차에 있어서 '주장만 있고 토론은 없는' 문제에 대한 유력한 보완책이라는 점에 십분 동감하는 바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지적하고 싶은 바는 숙의 제도 또한 의사 결정의 한 방법에 지나지 않으며, 다수결의 폐단을 여전히 상당 부분 안고 있다는 점입니다.
    사람들은 이상적인 토론자가 아닙니다. 전우용씨도 지적한 바, 사람의 생각은, 스스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더라도, 모든 근거를 검토한 끝에 결론을 내리는 것이 아니라 초기에 결론으로 비약한 후 그를 지지하는 근거를 모으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반대 의견의 근거가 더욱 옳아 보일 때 의견을 바꿀 수 있지만, 어떤 사람들은 자기 쪽의 논거만을 더욱 강화하려는 움직임을 보이지요.  그래서 이 토론의 과정이 얼마나 실질적 효용을 거두는가에 대해서는 전우용씨 말처럼 '사회의 평균 수준보다 반 계단 정도 높은 수준'이라는 말이 적절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전우용씨는 이 점을 높이 평가하는 데서 만족하시는 것 같지만,  저는 어떠한 문제가 과연 애초에 정치와 합의의 영역에서 다루어지는 게 적절한지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싶습니다. 예를 들어 사회 집단 간에 이익이 강력히 상충하는 경우, 어떠한 다수결적 절차를 사용하더라도 소수 의견이 압살되는 것을 막을 수 없습니다.  극단적으로는 한 명의 재산을 몰수해서 나머지 아홉 명이 나눠 갖자는 의견이 '사회 수준보다 반 계단 위'의 결과로 3:7로 통과될 수 있다는 거지요. 물론 이건 교과서에나 나올 법한 예시지만, 자격을 갖춘 조정자에게 결정권을 맡기는 게 꼭 나쁜 것만은 아니라는 예시로는 적용될 수 있습니다.
    이권 대립의 문제가 아닌 사례도 있습니다. 안아키 카페를 떠올려 봅시다. 이들의 신념은 명백히 자신과 가족에게 유해한 것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상당한 규모로 확산된 바 있습니다. 이들에게 부족한 것이 자신의 주장이 틀렸음을 나타내는 근거였을까요? 아닙니다. 보고서도 믿으려 하지 않고, 전문가들이 자신의 이익을 위해 꾸며낸 말이라고 매도했지요. 숙의의 장에 이들의 의견에 동조하는 사람들이 다수이고 전문가들이 소수였다면, 이들의 주장이 옳은 것이 되었을까요? 다수를 흡족하게 만들고 동시에 그들에게 위해를 가하는 그런 '반 계단 위'의 결과를  저는 '숙의민주주의의 실현'이라는 결과에
    만족하며 수용하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물론 현실에서 안아키 카페는 다행히 다수를 점하지 못했지만,  그렇다고 옳지 못한 주장이면 자연히 양식 있는 다수에게서는 경원시될 것이라는 생각은 우리 자신과 이 사회를 과신하는 위험한 생각이라는 우려를 떨칠 수 없습니다.
    물론 결정권을 조정자나 전문가에게 맡기는 데도 많은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입니다. 누구에게 어떻게 맡길 것인가, 어떻게 그들을 신뢰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은 정치가 생긴 이후 끊이지 않는 고민이었으니까요.  엘리트주의는 위험한 사상이고, 사대강 문제 같은 끔찍한 사건이 일어난 지도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민주적 절차로서 널리 받아들여지는 제도에도 동등한 위험이 있다는 점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이번 원자력 문제의 의견 수렴 과정에 이러한 제도가 도입되었다는 사실 자체에 대단히 긍정적이거나 그를 넘어선 의견이 많이 보입니다. 하지만 민주주의는 아직 개선될 필요와 여지가 많은 어려운 이념이라고 생각하며, 보다 신중하게 접근해야 하지 않나 하는 말씀을 감히 올리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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