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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 후금의 명나라 최초 공격의 규모에 대해-1.jpg

후금사 모음집

 

 

1618년 음력 4월 13일, 누르하치는 허투 알라에서 칠대한을 하늘에 고한 뒤 칠대한이 쓰여진 종이를 불태우고 하늘에 절했다. 그리고 자신이 미리 소집한 대군을 이끌고 허투 알라를 출병, 명나라의 무순으로 진격했다. 그에 선행하여 무순에 미리 계책을 써두어 '마시를 위해 여진인들이 갈 것'이라는 가짜 정보를 전달, 무순과 그 주위에 주둔한 명군이 경계를 풀도록 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전력면에서 명의 당시 국경방어전력에 비해 압도적인 군세를 이끌고 있던 누르하치였지만, 병력의 힘만을 믿고 방심치 않고 성공적인 기습을 통하여 피해를 최소화하고 전과를 최대화하기 위함이었다. 


그 출병을 시작으로, 후금의 명나라에 대한 전쟁이 최초로 막을 올리게 된다.


 

누르하치27.PNG

 

삽화 출처 : 칼부림

 

 


누르하치가 명에 대한 1618년 4월의 최초 원정에 대군을 동원했음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과연 몇 명의 대군을 동원했을까?


우선 이 시기를 다룬 후금의 사료중 가장 대표적이고 상세한 『만문노당』을 살펴보자면 무려 10만의 대군이 소집되었고, 그 대군이 모두 누르하치의 통솔하에 무순을 향해 출병했다고 기록되어 있다.1


무순 침공의 역사적 상징성을 고려해보면 만문노당의 기록대로 누르하치가 10만 대군을 동원했을 가능성이 있을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나 이전 시대의 연구에서는 후금 및 입관전 청의 각 원정 및 전역(戰役)에 대한 투입 병력 규모가 대단히 큰 규모로 산출, 기술되었기에 더욱 그러하다.


하지만 살제로 누르하치가 이러한 대군을 동원했을 가능성은 거의 없다. 당시 후금의 국력으로서 10만의 대군을 원정에 동원하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할 수는 없었으나, 실상을 놓고 보자면 그것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고 할 수 있을 뿐, 현실적인 실현은 힘들었다. 


실제로 당시의 후금이 이런 규모의 대군을 원정에 종군시키려면 팔기에 소속된 대다수의 장정과 그에 수반되는 상당한 규모의 쿠툴러(말구종, 노복병)들을 동원해야 했다. 그러나 누르하치로서는 국가 통치자의 입장에서 그런 대군을 동원할 이유도 없었고, 실제적으로 동원할 수도 없었다. 


당시 누르하치의 전략 목표는 엄연히 무순 및 그 주변 지역에 대한 공략 및 약탈이었다. 단순히 유격부가 설치된 무순과 그 인근의 요새들을 공략하는 작전에 국가의 전력을 쏟아붓는 것은 당시 원정의 상징성을 고려하더라도 비정상적이고 비효율적인 행위다. 10만의 군대보다 훨씬 적은 군대로도 전략 목표를 달성할 수 있는데 무리하게 대군을 움직이면 성과 대비 실익은 기하급수적으로 감소할 수 밖에 없다. 


그 뿐이 아니다. 그런 대군을 동원하면 원정이 진행되는 동안 국가의 산업이 마비되고 나아가 국토 방어력 역시도 취약해진다. 당시 후금은 해서여진계의 마지막 세력인 여허 조차도 명의 간섭으로 말미암아 복속치 못한 상황이었다. 조선의 배후 존재 역시도 변수였다. 

 

몽골계 세력들과는 연대를 구축해 나가고 있었지만 그들은 1619년 칼카 5부 중 하나인 옹기라트의 수장, 자이사이가 명에 대해 협조한 것에서 살펴지듯 언제든지 등을 돌릴 수 있던 존재들이었다.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구태여 국가 방어와 원정 진행 도중의 국가 운영까지 포기하고서 10만의 군대를 동원할 이유는 그 어디에도 없다.

 

 

후금 공성.PNG

 

삽화 출처 : 칼부림

 



『만문노당』상에서 10만의 군대를 허투 알라에 소집했다는 기록에 관하여서는 크게 두 가지 가능성이 존재한다. 하나는 당시의 누르하치의 출병을 실제보다 포장, 윤색하기 위해 집결, 출병한 군대의 수효를 실제보다 대폭 과장하여 10만이라고 칭했다는 것이다. 당시 여진족에게 있어 10만이라는 숫자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수를 뜻했는데, 그 숫자를 출병한 군대의 수효에 대입시킨 것은 당시 누르하치의 출병이 가진 상징성을 생각하여 해당 출병을 기록상에서 더욱 '신화적으로' 포장하기 위함이었을 가능성이 존재한다. 이 경우는 집결, 출병한 병력이 모두 과장되었으리라는 견해이다.


또 다른 가능성은 실제로 10만의 수효가 집결했긴 했으나, 그들 대부분은 그저 누르하치의 칠대한의 공식적인 선포 의식을 참관하는 역할만을 했고 이후 그 중 일부만이 누르하치를 따라 출병했다는 가능성이다. 이는 누르하치의 칠대한의 공식적 천명이 가진 상징성이 후금내에서 상당히 중요했고, 그렇기에 최소한 선포 의식에는 후금의 장정들과 그에 수반되는 쿠툴러 대다수가 참여했다는 논지이다. 

 

다만 이후 이루어진 출병에는 소집된 장정 전부가 동원되지 않고 오직 일부만이 투입되었다는 견해이다. 다만 기록상에서는 칠대한 선포 이후 출병한 병력 역시 10만이라고 과장하여 누르하치의 출병의 상징성을 유지했다는 것이다. 이 경우에는 집결한 병력은 과장이 아니되 출병한 병력만이 과장이라는 견해이다.


두 가설중 무엇이건간에, 당시 누르하치가 대동한 출병병력을 10만으로 보는 견해는 아니다. 

 

 

 

홍타이지 출정.PNG

 

 

삽화 출처 : 칼부림

 

 

 

 

그렇다면 누르하치는 실제로 어느 정도의 군대를 투입했을까. 실록에는 그 단서가 존재한다. 『무황제실록』을 비롯한 청태조실록계의 삼실록(三實錄)에는 만문노당과 같이 10만 병력을 동원, 운용했다는 기록이 꾸준히 살펴진다. 그러나 실록에서는 한 가지 실수를 범하여 누르하치의 실제 투입병력이 드러나 버린다. 바로 무순 전역에 대한 기술 초반부에 '임금께서 2만명을 이끌고 명을 정벌하기 위해 출병했다'는 구절이 뒷부분의 '10만이 출병, 운용되었다'는 기록 맥락과 합을 맞추어 수정되지 않고 그대로 실록에 남아버린 것이다.2


즉, 이를 통하여 누르하치가 투입한 병력이 2만여명이라는 것이 후금/청측의 기록으로 명확하게 파악된다. 뿐만 아니라 당시 조선 역시도 비록 공신력 있는 출처는 아니며 일부 정보가 틀리긴 했으나 '누르하치의 2만의 병력이 여허로 출병했다'는 정보를 자신들에게 접촉해 온 여진인3으로부터 얻었다. 이를 보건대 타국에 의한 정보수집 결과로서도 이 당시 출병한 후금군의 실제 병력은 2만 정도로 추산된다.4


사실, 이러한 병력투입규모는 '10만 병력 투입'을 꾸준히 주장하고 있는 『만문노당』을 통하여서도 어느 정도 윤곽을 잡을 수 있다. 만문노당에는 출병 전 누르하치가 포고한 전략지침이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누르하치는 각 니루당 40명의 장병을 차출하여 원정에 투입할 것을 공지했다.5 


이 당시 후금이 보유하고 있던 니루의 수효를 최대수로 잡는다고 하더라도, 각 니루당 40명의 장병을 차출했다고 한다면 팔기에서 뽑히는 원정 종군 병력은 8천에서 8천 5백여명 정도로 계산된다. 하지만 후금의 원정병력은 팔기의 갑병들로만 구성되는 것이 아니고, 각 장정들이 차출하는 쿠툴러들 역시 그 구성원으로서 기능한다. 당시 쿠툴러에 대한 규례가 어떻게 적용되었는지는 명확한 규례를 찾아보기 힘드나, 사례를 살펴 보건대 갑병 한 명당 한 명씩을 차출하는 것을 기본규례로 삼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이 규례를 적용하자면 실제 국내에서 차출되는 병력은 약 2배인 1만 6천에서 1만 7천 가량이 된다. 


뿐만 아니라 몽골계 세력인 바유트의 엉거더르 타이지. 사할차의 사할리연 어푸 역시도 따로 활동치 않고 누르하치와 함께 원정군에 종군했으니 이들이 데리고 온 군대 역시도 넉넉잡아 가산하면 대략적으로 2만여명이 계산된다. 즉, 만문노당 역시 선전상으로는 10만명의 병력이 운용된 것을 선전하나 실가용병력으로는 '2만여명'정도가 운용되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노출하는 셈이다.



1. 『만문노당』 무오년 음력 4월 13일. 

2. 『청태조고황제실록』 천명 3년 음력 4월 13일, 上率步騎兵二萬征明。臨行、書七大恨告天. 『만주실록』 천명 3년 음력 4월 13일, manju gurun i genggiyen han daiming gurun be dailame yafahan morin i juwe tume cooha be gaifi(이하 생략) 

3. 후금인으로 추정 

4.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초본 광해군 10년 윤 4월 16일. 

5.『만문노당』 무오년 음력 4월, dehi uksin i niyalma tucifi yabu (이하 생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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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 필자

댓글

  • 핏빛칼날부리
    2024/10/05 18:17

    스크랩해놓고 나중에 봐야징

    (dB6xTb)


  • 미하엘 세턴
    2024/10/05 18:18

    추천도 눌러주세오

    (dB6xTb)


  • 바리BARY
    2024/10/05 18:20

    2만의 병력으로 평양까지 진격한 고니시 생각하면 적지 않은 병력이지..

    (dB6xTb)

(dB6xTb)